다시 프랑스에 도착한 첫날로 돌아 간다..
우리 둘은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프랑스행 비행기에 용감하게 몸을 싣고 부푼 가슴을 안고 지치고 피곤한 여행을 했다..
아마도 한 열 대여섯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갔던것 같다..
우리가 어학학교로 선정한 곳은 앙제 라는 파리에서 떼제베를 타고 한 2시간이었나..세시간이었나..?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그렇게 가면 되는 어학학교로는 좀 정평이 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지금은 절친한 친구가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그저 얼굴만 아는 정도의 그 친구..(이름을 초이 라고 하겠다..프랑스 사람들은 '최'씨 성을 가진 그 녀를 '초이' 라고 불렀다)
초이와 함께 가는 내내 서로의 원대한 꿈에 대해 뻥과 불확실한 점쟁이의 말을 썩어 가며 누가 더 뻥 잘치나 ..내기를 하듯..자신이 프랑스에서 '대성공' 을 거둘것 같은 그런 '예감' 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그러나 눈치 챈 사람들은 이미 눈치 챘겠지만..우린 좀 '엉성' 한데가 다분히 있는 못말리는 걸들이었다..
변명이라면 변명이랄까....
뭐 일케 멍청한 애들이 다 있지..? 생각하는 분들을 위해 조금 부연 설명을 하자면..
부모의 과보호 속에 자란 마마걸,파파걸이 바로 우리였던것이다.
나는 학교에 휴학계를 내고 프랑스로 갔는데 휴학계 낼때 아빠가 함께 가서 냈을 정도 였다..
그러니 나로 말하자면 부모 없이 무슨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것은 프랑스로의 유학이 처음이었다
첫 일 치곤 좀 규모가 크고 대담한것이긴 했지만..그 나이때는 부모를 떠나 독립하고 싶은 마음이 자글 자글 할때여서 아무 경험도 세상 물정도 모르는 내가 그렇게 대담하게 프랑스로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건 '불문학' 전공 하던 친구 초이도 마찬가지였을거라 생각한다..
애니 웨이....
파리에는 역이 다섯개인가..? 있는데 앙제로 가는 떼제베가 출발하는 역은 '몽파르나스' 이다..
그런데 우린 그걸 확인을 안 하고 간 것이었다..
불어 공부할때 교재 내용에 보면 '쌩 나자르'라는 멋진 이름의 역에서 일어 나는 일들을 주재로 다룬 파트가 있다...
"쌩 나자르"
얼마나 파리 스러운 이름인가....
그 이름이 퍽이나 마음에 들던차...
한국에 있을때 프랑스에 다녀온 사람들에게 일케 물어 봤었다...
"앙제로 갈려면 어느 역에서 기차를 타야 돼죠?"
"글~쎄~"
" 쌩 나자르 역인가요?" (쌩나자르 이길 바라면서)
"그런가~?"
"쌩 나자르군요?" ( 대만족)
"하지만 확실하진 않는데...다른 사람 한테 물어 봐"
역이 다섯개나 되고 그 수많은 지방 도시중 하나인 앙제행을 어느 역에서 타야 하는지 한국에 들어 앉아 알아 맞힐 도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쌩 나자르" 역 을 강요했고
그들은 어쩔 수 없이.."아마도..."
하고 대답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파리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쌩나자르 역에 도착할때까지 나는 나의 그 예감을 한번도 믿어 의심치를 않았었다..
밧뜨!
역에서 우리가 가야할 곳이 쌩나자르가 아니라 몽파르나스 역이란걸 확인하는 순간...
나는 그제서야..왜 내가 그렇게 확신에 찼었는지 비로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급히 택시를 타고 몽파르나스 역으로 향했지만 이미 막차 마저 떠나고 없는 상태였다...
우리는 몹시 배고팠고 무지 무지 큰 삼단 가방 말고도 책이 가득 들은 책가방등 큰 가방을 두개나 더 들고 있었고..갈데도 없었고 무지 막막했다...
만약 지금 같았으면 주저 없이 주변의 호텔 아무곳이나 들어가 가방을 내려 놓고 다시 나와 파리의 야경도 즐기고 느긋하게 그 밤을 보냈을것이다..
물론 그다지 비싸지만 않다면 적당한 레스토랑도 찾아 허기도 채웠을것이고...
그러나 우리는 그때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돈을 아껴야 한다' 라는 절대 절명의 의무감에 시달렸고 (아무도 그렇게 궁상 떨라고 시킨적도 없음에도) 더군다나 유학생은 '가난' 해야 한다는 환상에 시달리고 있었다...
막 한국에서 왔던지라 주머니에 돈도 두둑했건만..우리는 감히 주변의 '아무' 호텔에나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파리' 에서 가장 '싼' 호텔이 어디 냐고 물었다..
하여간..우리의 고행길은 그렇게 멍청하기에 예고된 것이었다..
삼단 가방은 짐을 채워 넣다 못해 제대로 굴러 가지도 않고 일월이라 나는 그 당시 유행하던 무스탕을 초이는 긴 롱코트를 입고 거기다 그 무거운 책 보따리까지 두개 세개 들고, 지나가던 친절한 프랑스 사람이 알려준 '아주 싼' 호텔을 찾아 길을 떠났다...
택시를 탔느냐? 물론 아니다..
지금 생각컨데 우리가 쓰러져 가던 삼단 가방을 끌어 가매 가방끈 때문에 어깨 까져가매 한 겨울에 비지땀 질질 흘려가매 죽을 똥 살똥 찾아 갔던 그 '싼' 호텔과 역 근처의 그저 그런 호텔 사이의 가격 차이는 한 삼만원 정도 났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당시..우리는 가난해야만 참 된 유학이란 허상에 사로 잡혀 그저 '싼' 것에 목숨을 걸었었다..
물론 밥도 굶었다...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대여섯 시간전에 먹은게 다였다..그것도 입맛에 맞지 않아 반 이상 남겼다 보니 뱃속에서 밥 달라고 난리가 아니었지만...어떻게 가난한 유학생이 저녁을 두번 먹으리....
그리하여 고생 고생 하며..찾아간 호텔이 그 프랑스 사람이 알려준 그 호텔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그 호텔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다고 대만족을 하였다..
우리에게 준 방은 엘리베이터 없는 5층 방이었는데
프랑스에선 일층을 일층이라 하지 않고 '헤 드 쑈세' 라 하고 이층부터를 일층이라 한다..
고로 그곳은 엘리베이터 없는 육층이었다..
계단 역시 꼬불 꼬불하고 희안하게 생겼다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 손을 잡아 주고 끌어 주고 힘내라며 용기를 복돋아 주며 육층까지 그 어마 어마한 짐을 올려 놓고 털썩 침대에 주저 앉았다...
너무 용을 많이 써 손이 덜덜 떨렸다..
둘이서 침대에 걸쳐 누워 좀 쉬다가 일어나 세수를 하기 위해 세면대에 물을 받았다...
그랬더니 세면대에 뿌연 석회물이 막 나오는게 아닌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원래 프랑스는 물이 안 좋다..옛날엔 물이 워낙 귀해 사람들이 잘 씻을 수가 없어서 몸에 냄새가 많이 나 프랑스에 향수가 발달했다고 한다..
어쨋거나 그 뿌연 석회물을 보고 우리는 싸구려 호텔이라 어쩔 수 없다며 그 뿌연 석회물에 세수를 하고 나니 몹시 피곤하고 또 추웠다..
우리 나라 처럼 난방 빵빵하게 떼는 나라가 또 있을까...
정말 유럽 사람들은 검소하다...그들의 가장 일반적인 난방 기구는 라지에이터라고 하는 벽면에 붙은 작은 난방기 하나 뿐이다..
우리 나라 처럼 보일러를 빵빵 돌려 집안 전체를 후끈하게 하는것이 아니라 라지에이터를 덥혀 줌으로써 거기서 나는 열로 '너무 춥지' 않게 하는 목적으로 난방을 하는것이다..
그러니 어찌나 춥던지...그때가 일월 말경이었으므로..라지 에이터라는것은 가까이 다가가 손을 대 보면 따뜻할까 거기로 부터 50센티만 떨어져 있어도 전혀 온기를 느낄 수 없을 정도니...그것도 난방이라고..
하여간 어찌나 춥던지..얼른 이불속에 들어가 심신을 쉬게 하기로 맘 먹은 우리였지만 도저히 덥고 잘 이불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호텔에 가면 일반적으로 이불을 잘 정리하여 덥고 자는 이불을 팽팽하게 패서 침대 매트리스 안으로 야무치게 챙겨 넣어 놓는다..
그러나 그날 그때까지 호텔이고 여관이고 처음 가 본 우리는 이불이라 하면 가정집에서 덮는 뽕실하고 도톰한것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이불이 없는것이었다....
머릿속으로 저것이 이불이 아닐까..잠시 그런 생각이 스쳤지만 아무리 봐도 그게 이불이라고 하긴 너무 얇고 또 매트리스 속으로 그 끝을 야무지게 당겨 넣어 놓으니 이불 같지 않았다..
그래서 나보다 불어를 잘하던 초이가 프론트에 전화를 걸어 이불을 달라고 했다..
"뭐래?"
"이불이 침대에 있대"
"뭐? 그 자식이 우리가 외국인이라고 얕보고 이불 안줄려고 거짓말 하는거 아냐?"
"아무래도 그런것 같아"
"다시 전화해 봐, 우리가 바본줄 아나 본데 확실하게 침대 커버 말고 "덮는 이불" 을 찾는다고 야무지게 말해줘"
"알았어"
그리하여 초이는 다시 전화를 해서 '확실'하고 '야무지게' 우리가 '덮는' 이불을 찾는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역시..침대위에 이불이 있다는것었다..
이쯤되니 우리도 기가 막혔다..
아무리 싸구려 호텔이지만 손님에게 이불을 안 주다니....
그래서 이번엔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친절' 하고 '정중' 하게 이불을 요구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들려 오는 대답은 역시 침대위에 이불이 있다는 똑같은 내용의 대답이었다..
너무나 춥고 지치고 피곤한..우리는 안 주겠다는것도 아니고 거기 있으니 알아서 덥으라는데 더 이상 떼를 쓸수가 없어져 프랑스 사람의 극악 무도한 상술에 치를 떨며 이불 없이 자기로 했다..
그리하여 멀쩡한 이불을 밑에 깔고 둘이서 옷도 갈아 입지 않고 입은 옷 그대로 누웠는데 어찌나 춥던지..초이의 롱코트를 이불 삼아 덮고 내 무스탕 을 그 위에 다시 덮고 둘이서 너 없인 못 살겠는 불멸의 연인이라도 된양 꼭 끌어 안고 잠을 잤다...
결혼한지 육년이 되었지만 나는 지금까지 남편도 그렇게 끌어 안고 자 본적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밤 내내 둘이서 눈속에 조난 당한 자들이 서로의 온기로 목숨을 부지하려는 듯 그렇게 꼭 끌어 안고 잠을 잤다....
한마디로 고생도 고생도..
안 해도 될 고생을 둘이서 무지 막지 하게 하고..막판에 프랑스 사람의 극악무도 ,파렴치한 행각에 치를 떨며 어떻게든 이 험난한 유학생활을 슬기롭게 극복하자고 ..둘이서 용기를 복돋우고 ...
내일이면 따뜻한 태양이 뜰거라고..그렇게 위로하며..
내 생애 프랑스에서의 첫날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 클릭, 아홉번째 오늘의 톡, 스승의 은혜는 하늘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