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가을 설악산에 가 봤냐? 단풍이 너무 멋지더라"
부부동반하여 설악산을 다녀온 친구의 자랑이었다
"가을철이면 어느산의 단풍인들 멋지지 않을까 왜 그렇게 호들갑이냐?"
"그래도 난 지금까지 그렇게 아름다운 단풍은 처음봤어 역시 단풍은 설악이 최고더라"
은근히 잔잔한 호수에 돌 던지는 친구. 나의 질투심에 단풍들게 하는 친구.
"나도 이제 슬 슬 산좀 다녀야겠어"
"갑자기 산은 왜?"
"이젠 건강도 생각해야 할 나이고 친구들도 하나 둘 산을 다니는데..."
어느날, 뜬금 없이 한마디 한다
"아~ 설악산에 한번 가 보고 싶어라"
"지금쯤 설악엔 단풍이 절정이라는데..."
나의 이런 산을 그리는 막연한 독백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고
한편 남편의 귀엔 못이 박히게 되었다
"이 사람이 갑자기 왜 않하던 산타령이람
저번엔 뒷산도 함께 가자니까 싫다고 하더니..."
"누가 뒷산에 간데? 아~ 설악산 한번 가 봤음 소원이 없겠네"
"내일 산에 다녀와. 자 여기 경비..."
거짓말 같게도 남편이 내미는 손엔 수표 한장이 들려 있었고, 그것이 나를 향해 다가오는게 아닌가
"저건 너가 가져갈 베낭이야 한번 열어봐"
남편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언제 부터인지 커다란 베낭하나 꿔다 논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었다
"아마 당신옷과 소지품만 챙겨 넣으면 될거야"
정말 열어본 베낭안에는 등산에 필요한 물건들이 다 챙겨져 있었다
(오~ 부러워 하는 저 여성분들의 표정좀 보세요)
절반은 친구들에 대한 막연한 질투로, 절반은 희망사항이엇던 나의 산타령이 현실화되고 보니
우선 겁부터 나기 시작했다
"내가 과연 1700미터도 넘는다는 대청봉을 오를 수나 있을까 나같은 초보자가 말이다
그것도 혼자의 몸으로...
깊고 깊은 산중에서 미아(?)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기가 질려버린다
"못 가겠다고 그냥 주저앉아 버릴까"
"아니야, 나도 자존심이 있지"
"할 수 없어 일단 그냥 밀고 나가보는 수 밖에"
"이 참에 산악인의 첫발을 과감히 디뎌보는 기회로 삼아보는거야
설악에서 죽은 귀신은 메이커(?)라도 남겠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날의 산행은 분명 성공리에 마쳤음은 증명이 되었고,
그 성공(?)이 발단이 되어 치맛바람보다 더 무서운 산바람이 십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
그 말이 정말 맞는 말이다
처음부터 먼 산을 떠난 죄(?)로 늘 피어오르는 먼 산에 대한 동경심이 그것이고,
혼자 떠난 첫 산행으로 지금까지 줄곳 혼자의 산행길이 되고 있으니 말이다
홀로 오르는 산행...한마디로 "홀로 아리랑 " 인 셈이다
작년 한해 지방산행만도 서른번은 족히 된 것 같고
서울근교의 산까지 합하면 산행횟수가 무려 백회는 될 것같다
처음엔 산여행가, 다음엔 등산가, 이젠 초보산악인쯤으로 나를 생각한다
내 목표는 전문산악인의 타이틀을 거머쥐는 것임엔 말해서 무엇하랴
내가 이렇듯 산을 사랑하는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분명히 있다
처음 산여행가로서 무작정 오르던 산이 이젠 세월이 흐르고 횟수가 거듭되어지면서
나름대로 산에 대한 철학도 생겨났고,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산을 사랑한 세월이 이쯤되고 보면 나름대로 이유를 밝혀 두어야 할 싯점도 된 듯하고,
그간에 은혜(?)에 보답하는 차원에서라도 나의 산사랑을
글로 마음을 고백해본다
- 내가 산을 사랑하는 이유 열 두가지 -
첫째; 산은 확실하다
사계절의 약속이 뚜렷하다
자연의 이치야 어디서들 한결 같겠지만 산에서야 말로 확실한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계절을 잊고 사는 도심지에 비해...각 각의 계절의 그 색깔대로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것이다
단풍이 보고픈 날은 오색의 단풍으로, 눈을 밟아보고 싶어지는 날은 발목이 푹푹 빠지도록...
둘째; 그리움의 텔레파시를 보낸다
힘든 세상, 어깨 축쳐져 살아가는 나에게 자신에게라도 희망 품으며 살아가라고
문득 문득 존재를 알리는 텔레파시를 사정없이 보내온다
"그래 내일 나를 만날 희망으로 열심히 살으렴"
세째; 생각의 약수터를 제공해준다
산처럼 크게 살라고, 영혼의 갈급함이 일어 갈증으로 허덕일 때 푸른 산은 자신의 모습을 부각시키며
삭막한 마음에 생수를 제공해 주듯 윤기나는 마음 일게 해 준다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날, 산 오르내림속에 생각이 정리되고 지혜가 생겨나게 된다
한발 한발 산을 오르면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아내면서
"그래 그 생각은 내가 너무 성급하게 내린 결론이었어" 차분한을 배우게 한다
네째; 영 육을 강건하게 해 준다
몸 아픈날, 마음도 육신처럼 마구 쑤셔오는 날 산 그늘에 서면 시원하고 향기로운 산 바람이
아픔을 씻어주고 어루만져 주며 화안한 미소로 위로해주곤 한다
"힘내, 나를 봐 많은 사람들의 발길에 채이면서도 이렇듯 환하게 웃고 있잖아"
다섯째;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이산 저산 나의 변덕스런 산 순례에도 질투를 하지 않는다
산 방문을 예정해 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야단치는 법 없고 떠나는법 또한 없으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내가 떠나지만 않는다면...
여섯째; 산은 기다려준다
아무리 오랜 세월 돌아봄 없어도 결코 삐지는 법이 없다
또한 산 오름의 명단에서 내 이름을 제외시키는 일 없이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려 주는 산
"언제든지 와 그리고 가고 싶은 순간에 뒤돌아봄 없이 내려가도 좋아"
가보면 늘 그 자리에 있는 산, 사람같지 않아서 좋다
일곱번째; 겸손하고 너그럽다
언제나 큰 얼굴로 바라만 보다도 나를 그저 고개숙이게 한다
작은 나를 일깨워주고 나를 반성하게 하고 배움을 준다
"나에 비해 넌 얼마나 작으냐 그러나 난 이렇게 묵묵히 침묵하잖니"
여덟번째; 위엄과 사랑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때론 겁없는 나를 곤경에 빠뜨려 자연의 무서움을 알게 하고 그로인해 겸손을 배우게 한다
자연앞에서 약함을 일깨워주고, 한 손으론 놀란 가슴 쓸어주는 자비로움을 경험하게 한다
"오르느라 힘들었지? 내 시원한 솔바람으로 너의 땀 모두 씻어주지"
아홉번째; 고난과 기쁨을 맛보게 한다
힘들여 산을 오를때의 땀흘림의 고난을 알게하고, 산정상에서의 보람도 맛보게 해 주며
하산하는 길에 위로도 잊지 않는다
그 오르내림속에서 인생의 참 의미를 맛볼 수 있는 경험을 산은 제공해준다
결코 정상의 오름을 호락 호락 허락하지 않아 인내와 수고가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수고했다 자 이제 너의 보람을 보아라"
열번째; 소유하려고 하지 않는다
절대 편애하는 일 없고 미워하지 않으면서 골고루 너그러움을 주는...
문턱이 높아 기웃거리지 않아도 되고, 고운옷이 없어 주저하지 않아도 된다
가을엔 낙엽으로 자신을 아낌없이 벗어던져도 결코 추함이라 여기지 않는 저 가을산의 아름다움이여
빈 산이 아름답듯, 빈 마음도 그리 여기라고 무언의 암시를 보내오는 산이여
가벼워진 베낭만큼이나 마음 비우길 진실로 원하는 산이여.
열 한번째; 머무름을 허락지 않는다
힘들여 올라온 정상이지만 한 순간의 휴식을 제공할 뿐 서둘러 떠나기를 재촉한다
"그만 내려가렴 그리고 살아가다 살아가다 힘들어지면 다시 오렴" 등을 떠 민다
움직이며 살라는 교훈이라 생각한다
머무름은 곧 고여있는 물과도 같은 것... 부지런히 움직이고 변화하는 삶을 살아내라는 무언의
가르침임을 왜 모르랴
"세상 살아내다 삭막해 지는 마음 드는 날 다시 찾아오렴" 사정없이 등 떠미는 야속한 산이여
열 두번째; 외로워 하지 않는다
부대끼며 살아가는 많은 세상 사람들에게 산은 말한다
"너희들 무엇이 그리도 외롭다고 눈물짓느냐 나를 보아라...
내 이렇듯 홀로 서 있어도 이렇듯 찾아와 주는 사람이 많아 넉넉한 마음되거늘
너희들의 가슴에도 이렇게 많은 이들이 깃들도록 노력하면 되는 것을..."
"정미 산장" 개업하는 날... 내 인생 최고의 날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