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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殺)바퀴벌레의 추억

이소저 |2003.05.21 18:28
조회 623 |추천 0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평화로운 저녁시간을 보내고,

늦게까지 인터넷을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눈이 피로해서

컴퓨터를 닫고, 불도 끄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침대에 누워서 그날 있었던 일들과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잠을 청하고 있는데…

간혹 똑…… 따닥……하는 소리가 자그마하게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깊은 밤 아주 조용할 때면  가구나 가전제품 또는 바닥장판 등에서 한번씩 나는 작은 소리 있잖아요… 

 

제가 귀가 좀 밝고 신경이 예민한 편이라 그런 소리를 더 잘 듣거든요.

그래서 애써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계속 잠을 청하는데,

사사삭… 사사삭…

하는 소리가 점점 크게 점점 짧은 간격으로 들려 오는 것이…

뭔가 심상찮은 사태(?)가 벌어질 것만 같아, 청하던 잠은 다 달아나고

온몸의 신경이 두 귀로 집중이 돼서 사태파악을 하려고 하는데…

 

푸드드드득~

 

하는 소리가 바로 내 머리 위로 지나가는 듯 생생하게 들리면서

미세한 공기의 파동이 얼굴위로 느껴지는 순간

0.1초의 반사적인 속도로 덮고 있던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썼습니다.

헉…그 순간 캄캄한 어두운 방안에서의 공포란…

 

온몸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납작하게 누워 공포에 떨면서도 갈등에 휩싸였죠.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그냥 귀 꽉 틀어막고 잠을 청해 볼까…

쩌걱…쩌걱…하는 뭔가 움직이는 것 같은 소리는 가까이에서 계속 들려오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있으니 또 왜 그리 덥던지…

 

이대로 잠든다 해도 밤중에 저 물체가 계속 내 방안을 활보한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그냥 있을 수는 없겠더라구요.

그래서 모진 마음 먹고 이불을 살짝 걷어내고 슬그머니 침대 옆 스탠드 불을 켰습니다.

 

흐릿한 눈으로 방안을 한번 휘익 둘러 보니 별 이상은 없는 것 같았죠.

안경을 찾아야 하는데…

하필 왜 안경은 또 침대와 멀리 대각선 방향에 있는 컴퓨터 옆에 있는 거야…제길…

 

살금살금 안경을 집어서 끼고는 침대로 돌아와 앉아서

다시 한번 방안을 천천히 둘러 보았으나…

그때까지 이상한 물체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스탠드 불빛 앞으로 희끄무레한 먼지 같은 것이

천장에서부터 천천히 떨어지는 것이 보이는 순간…

뒤통수 쪽에서 다시 한번 푸드드득~ 하며 시커먼 물체가 날아오더니

천장 한복판에 철썩 붙는 게 아니겠습니까…

꺄아아~~~악…..읍흡흡!!!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다 다른 방에 식구들이 깰까봐 이불로 입을 틀어막은 소리죠.

잽싸게 이불을 다시 뒤집어 쓰고 정신을 가다듬은 다음 눈만 빼꼼 내고 쳐다보니,

천장 한가운데 위용(?)을 드러낸 그놈의 정체는 바로 바퀴벌레!!!

 

   - 신장 5cm

   - 몸통둘레 3cm

 

더듬이까지 포함한 총기장이 10cm는 족히 되어보이는 우람한 놈이었죠.

온몸을 땀으로 진득해 졌고, 심장은 벌렁벌렁 뛰고…

이 놈은 지금까지 내가 수십년(?)간 살면서 본 것들 중에 최장신이었습니다.

 

혹자들은 그러겠죠. 바퀴벌레 한 마리 갖고 뭘 그리 수선을 떠냐고…

하지만 많은 여자분들(간혹 심장이 극히 약한 남자분도)은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시커먼 바퀴벌레가…

그것도 크고 반질한 놈이…

한밤중에 혼자 있는데 나타났을 때의 그 공포감을!!

 

저도 나름대로 용감한 편이라…아니 용감한 척 하는 편이라…

웬만한 바퀴벌레는 파리채로 다 때려잡습니다.

무섭지만 그냥 둘 수 없으니 모진 맘 먹고 꼭 처치하고 맙니다.

하지만 그런 저로서도 특별히 더 싫은 놈들이 있습니다. 바로…

 

   1. 유난히 크고 윤기가 반지르르한 놈

  2. 긴 더듬이를 360도 쉴새 없이 움직이는 놈

  3. 높은 벽이나 천장에 붙어서 불규칙적인 저공비행을 하는 놈

 

이런 놈들 때려 잡기란 정말 죽기 만큼 싫은 노릇입니다.

지금 나타난 이놈은 위의 세가지 조건을 두루 갖췄습니다.

 

가만히 주시하고 있으니 이놈은 천장을 슬슬 기어 가더니

천장과 벽이 만나는 모서리만 골라서 왔다 갔다 합니다.

파리채로 공격하기 곤란한 위치…(역시 이놈들의 생존을 위한 방어본능은 대단해…)

 

그것도 워낙 몸집이 크고 무거워서 천장에 매달려 있기가 버거운지

술 취한 사람 마냥 걸음이 휘청휘청…간혹 헛발질도 하면서…

그러더니 하필이면 방문 바로 위에 붙어서 한동안 움직이질 않는 것입니다.

빌어먹을…놈을 가격할 파리채와 살충제는 거실에 있는데…

 

몇 분이 지났을까…

놈은 다시 휘청휘청 불안한 걸음을 하더니

다시 한번 푸드드득~ 날아서 옆쪽 벽에 착지하였습니다.

날개를 다 펴고 날 때는 거의 참새와 맞먹는 덩치더군요.

내 등에는 또 한방울의 땀이 쪼르륵.

 

기회를 놓칠세라 저는 재빠르게 달려나가

거실 한쪽 구석에 있는 파리채와 살충제(레**)를 집어 왔습니다.

다행히(?) 놈은 아직 그 자리에 있더군요.

 

거실쪽에서 방문으로 몸을 숨기고 지켜보고 있으니 놈이 이쪽을 향해 기어 오고 있었습니다.

파리채로 때려 잡기엔 여전히 너무 높은 위치라

살충제 대롱을 펴서 치익!…..치익! 두 번 “치고 빠지는” 공격을 가했죠.

잘못하면 내 얼굴 쪽으로 툭 떨어 질 것만 같아서(읔…생각만해도 끔찍!)

도저히 더 가까이는 접근할 수가 없었어요.

 

약을 두 번 맞고 나서 힘이 빠졌는지(역시 바퀴벌레 잡는 데는 노란색 레**이 최곱니다)

벽의 높은 쪽으로 슬슬 기어서 방을 반바퀴 돌더니

하필이면 장롱 뒤쪽 벽에서 투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몇 차례 나더군요.

 

장롱 밑으로 기어 나오기를 학수고대(?)하면서 장롱 옆과 뒤로 삼방향 살포를 가했는데…

꼼지락거리는 소리만 간헐적으로 들릴 뿐 절대로 몸을 내밀지 않았습니다.

틀림없이 거기 있는데…

 

한손에는 살충제를 한손에는 파리채를 들고 장롱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기다리기를 30여분.

이제는 최후의 몸부림도 그치고 완전히 숨을 거두었는지 아무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파리채로 장롱 아래의 앞쪽을 몇 번 저어 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파리채와 살충제를 내려놓고 침대에 걸터 앉아 장롱 아래쪽을 주시하며 또 30여분.

혹시나 약발(?)이 떨어져 의식을 회복해서 내가 잠든 후에 기어 나오면 어쩌나…

걱정을 하면서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 있자니…어찌나 내 꼴이 처량한지…

이럴 때 내 옆에 키크고 듬직~~한 남편이라도 있었으면…

아니…

키 안 크고 안 듬직해도 바퀴벌레 잡을 수만 있는 남자면…(점점 내려감 ㅠㅠ)

내가 이러고 있진 않았을걸…

전 사실 씩씩한 편이라 남자들한테 의존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때 만큼은…

 

기억 속의 남자들 얼굴은 하나하나 슬라이드 넘기듯이 지나가고,

(하나같이 괜히 듬직하고 멋져 보였슴…원래는 별로였는데…)

순간적으로 너무 에너지를 집중해서 그런지 배는 고파서 꼬르륵거리고…

비몽사몽하면서 누워 있다 언뜻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창 밖엔 벌써 동이 텄더군요.

 

사실 오래 전에도 이런 비슷한 상황에서 바퀴벌레를 잡은 추억(?)이 있습니다.

 

그땐 이만큼 큰놈은 아니었지만 천장에 붙어서 움직이질 않아서

온몸이 땀 범벅이 되도록 약 2시간 정도 대치한 끝에 때려 잡고 나서

방바닥에 털썩 주저 앉아 한참동안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엔 나이를 더 먹어서 그런지 죽이고 나서도 울진 않았다고…스스로 위로를 해 봤습니다.

얼마나 더 살아야…

이런 무시무시한 바퀴벌레를 아무렇지 않게 용감하게 때려 잡을 수 있을지…

 

지금도 그놈의 시체가 내 방 장롱 밑에 있다고 생각하니 엄청 찝찝합니다.

파리채로 강력하게 때려 눕힌 다음 시신을 수습하여 변기통속에 수장을 시켰어야 하는건데.

오늘은 기필코 기다란 철사나 막대기를 구해서 사체를 확인하고야 말 것입니다.

그리고 그놈의 침입경로로 추정되는 거실 방충망의 구멍 뚫린 부분을 땜방할 생각입니다.

 

바퀴벌레 없는 밝고 명랑한 사회가 빨리 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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