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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결: 이성강 감독이 직조해낸 성인들의 동화

살결 |2007.06.15 13:32
조회 120 |추천 0

이 남자 민우(김윤태), 우연히 두 여자의 육신과 영혼에 접속한다. 먼저 대학 시절 사귀었던 동기 재희(김주령). 지금은 다른 남자의 아내인 재희는 시내에서 우연히 만나자마자 9번의 섹스를 제안한다. 그리고 바로 모텔방으로 직행. 또 다른 여인은 정체불명의 소녀(최보영). 독립을 위해 마련한 다소 허름한 집에 자꾸자꾸 출몰하는 영상 속 소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아무래도 범상치 않은 사연을 간직한 것 같은 이 소녀가 자꾸 민우의 일상으로 끼어든다.

<마리 이야기> <천년여우 여우비>의 이성강 감독이 애니메이션 작업에서 탈피, 극히 사적인 영감을 저예산 HD 장편영화로 완성해낸 작품이다. 촬영은 2년 전 여름에 끝났으니 거의 3년 가까운 시간이 넘어서야 빛을 본 셈이다. 만약 이성강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즐겨왔던 관객이라면 다소 어리둥절하게 만들 만큼 <살결>은 살색으로 가득 찬 화면을 자랑한다. 인간의 육신으로 맺어지는 관계를 가감 없이 보여주겠다는 이성강 감독의 속내가 읽혀지는 부분. 그러나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성강 감독이 방점을 찍은 건 지리멸렬하고 답답한 현재보다는 바로 소녀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뽀얀 느낌의 플래시백이기 때문이다. 이 과거 장면들은 민우가 소녀의 기억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끊어진 숨을 현재에 되살리는 판타스틱한 주제를 구현하는 중요한 영화적 장치로 기능한다.

한편으로‘Texture of Skin’, 이 영어 제목은 두 가지 테마를 읽게끔 추동한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육신에서 느껴지는 삶에 대한 비루하거나 혹은 찬란한 이 상반된 욕망들. 동시에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하게 과거와 현재, 인물과 인물을 엮어낸 이 관계들에 주목하라는 목소리 말이다. 챕터별로 나뉜 구조도 눈에 띄지만 영화 전체가 퍼즐처럼 엮여있는 플롯은 후자의 테마와 긴밀히 조응한다. 오랜만의 만남에서 전날 죽은 소녀 이야기를 꺼내며 “손 끝에서 숨이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말하는 민우나 그 얘기를 듣고 컵을 깨뜨리는 재희의 행위는 결말 부분에 소녀의 사고 장면이 반복될 때 더 큰 울림을 전달한다. 생과 사의 경계, 사랑과 불륜 사이, 비루한 일상과 찬란한 과거, 남자와 여자 혹은 민우와 소녀를 구분 짓는 그 결들. 이를 직조해낸 이성강 감독의 영화적 야심이 읽혀지기에 충분하다.

또한 영화 속 공간들도 주목할 만하다. 민우와 재희, 소녀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것이 모두 길 위라는 점, 그리고 민우와 소녀를 맺어주는 오래된 한옥 집, 민우가 소녀의 옛 남자친구를 훔쳐보게 되는 건물 옥상 등의 공간들은 나름 의미심장하다. 길이라는 인생의 도정은 어디로 갈지 모르는 세 인물의 심리 상태를 반영하고, 지극히 사적인 집이라는 공간에서 도킹해 결국은 서로의 경계가 무너진다거나, 서울이라는 무채색의 도시를 집약하는 아파트 옥상에서의 민수의 방황은 이러한 공간의 분위기로 충분히 설명된다. 이는 HD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 화면과 함께 도시적인 인물들의 지친 방황이라는 주제와도 맞닿아 있다.

아쉬운 점은 지극히 모호한 주인공 민수의 심리 상태. 모든 상황이 민수에게 집약되어 있지만 쉽사리 민수가 느끼는 감정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시종일관 모호한 포지션을 취하는 것 처럼 느껴진다. 지나치게 긴 섹스 장면도 다소 의아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형식적으로나 현대인의 심리를 판타지로 이겨내려는 주제로 봤을 때 <살결>은 이성강 감독이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실사 영화에서도 재능이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또 그만큼 여러의미에서 매력적인 작품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단, 국내 관객들의 공감보다 외국인의 입맛에 안성맞춤일 무국적인 성인들의 동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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