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붉은수염] 사랑 밀어내기 (7)

말글눈 |2003.05.27 10:18
조회 656 |추천 0

7. 첫 경험


문영이 송정숙을 만난 것은 대학 3학년 때였는데 그때까지 그는 숫총각이었다. 두 사람은 극장에서 만났다. 영화를 보다가 만난 것이 아니다. 정숙은 매표원이었고 문영은 간판 그리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화가를 지망하는 미대생의 안목으로 봤을 때 정숙은 결코 미인은 아니었다. 얼굴도 몸매도 그저 그런 평범한 처녀였다. 거기에다 화가라고는 피카소밖에 모르고 책도 변변히 읽은 게 없는 것 같았다. 잘 아는 거라고는 영화배우 이름뿐이었다. 요컨대 교양하고는 담을 쌓고 사는 처녀였던 것이다. 자기 말로는 여상을 나왔다고 했지만 문영이 보기에는 중학교나 간신히 졸업한 것 같았다.
그런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저녁을 사겠다고 했을 때 문영은 은근히 기분이 상했다. 극장에서 간판이나 그리고 있으니까 사람 우습게 보는구나 싶었다. 그러면서도 딱 부러지게 거절하지 못한 것은 순전히 여자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고학을 하느라고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데이트 같은 것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중국집에서 탕수육과 짜장면을 먹었다. 정숙이 마음대로 시키라고 했지만 문영이 아는 중국 음식은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도 바로 탕수육과 짜장면이었다. 정숙이 물었다.
술, 잘 마셔?
쪼끔.
한잔해, 그럼. 여기요, 고량주 한 병 주세요.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중국 음식에는 역시 고량주가 찰떡궁합이거든.
정숙은 얼굴을 찡그려 가면서 그 독한 고량주를 잘도 마셨다. 문영보다 두 배는 더 잘 마시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술기운이 오르자 느닷없이 사랑을 고백했다.
나 있잖아, 자기 처음 보는 순간부터 마음에 들었다. 대학생이면서 조금도 그런 티를 안 내고 말도 없고 일만 열심히 하고 순진하게 생겨서 첫눈에 반했어. 이런 내 심정 알겠어?
이런 경우에는 도대체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 된단 말인가. 시선을 피한 채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다행히 정숙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두 번째 질문은 더 고약했다.
자기, 나 처음 봤을 때 어떤 인상을 받았어?
대답을 안 하고 넘어갈 도리가 없게 되었다. 문영은 듣기 좋은 말만 골랐다.
착하고 얌전하고 예쁘게 생긴 처녀구나, 그런 인상을 받았지.
정말?
가장 무난하고 두루뭉실한 대답이었는데도 정숙은 어린애처럼 활짝 웃었다. 좀 모자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단순한 점이 어쩐지 마음에 들었다. 정숙한테 처음으로 호감을 느낀 순간이었다.
그 다음에는 문영이 자기 얘기를 털어놓아야 할 순서였다. 정숙은 마치 심문이라도 하듯 꼬치꼬치 이력을 캐물었다. 문영은 별로 숨기고 싶은 생각도 없어 비교적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지금까지 어느 누구와도 자신의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어 신기하기도 했다. 정숙은 연신 어머 불쌍해라, 저런 어떡하니 해 가면서 흠뻑 이야기에 빠져 들더니 결국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치기에 이르렀다. 문영이 난생 처음으로 어떤 사람의 동정을 받아 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눈물은 결정적으로 정숙과 가까워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그렇게 고량주 한 병을 다 비웠을 때 정숙이 물었다.
자기 그럼, 혼자서 자취하고 있어?
아니, 선배하고 같이 있어.
선배하고 둘이서 자취한단 말이야?
둘이 자취는 하지만 나는 방세도 안 내고 있으니까 선배한테 신세지고 있는 거지.
선배도 대학생이야?
작년에 졸업하고 지금 학생들 가르치고 있어.
뭘 가르쳐? 그림?
응.
야, 재미있겠다. 나, 거기 좀 가 보면 안 돼?
안 될 것도 없지, 뭐.
정숙은 계산을 하고 나와서 택시를 잡았다. 버스비도 아까워 웬만한 데는 걸어 다녔던 문영으로서는 대단한 호강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택시 안에서 정숙이 손을 꼬옥 잡아 준 것이다. 문영은 그 손길에서 동정과 연민과 사랑이 촉촉하게 배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첫 데이트에서 너무 빠른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기분이 좋은 것은 사실이었다. 문영은 정숙이 참 좋은 여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 친구 만나서 한잔하고 올 테니까 둘이 얘기들 하고 있어.
화실에 도착해서 정숙을 소개시켰더니 선배는 그렇게 말하고는 바쁘다는 듯이 휭하니 나가 버렸다. 정숙이 말했다.
정말 멋진 선밴데.
뭐가?
둘이 재미 보라고 알아서 자릴 비켜 주는 거 봐.
무슨 재미? 친구 만나서 술 한잔하고 온다잖아?
아유, 이런 쑥맥. 그런 눈치도 없어? 자기 방은 어디야?
이쪽.
자기 방 좀 구경해.
그러나 방에 들어가자 정숙은 방 안을 한번 둘러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침대 위에 벌렁 누워 버렸다.
나, 취했나 봐. 잠깐 좀 누워야겠어.
그리고는 한 팔을 벌리면서 나른하게 말했다.
이리 와. 내 옆에 누워.
난 안 취했는데.
멋대가리 없는 소리 말고 이리 와 누워.
문영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경험도 없었거니와 설마 이렇게 빨리 여자와 가까워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했던 일이다. 다시 재촉을 받아 정숙의 팔을 베고 누워서야 비로소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짐작이 갔다.
자기, 사랑해.
정숙은 문영을 힘껏 끌어안으면서 다짜고짜 입술을 포개 왔다. 문영에게는 그것이 첫 경험, 첫 키스였다. 창피한 얘기지만 문영은 그때까지만 해도 키스라는 게 입술끼리 그냥 갖다 대기만 하는 것인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입을 꼬옥 다물고 있는데 정숙의 호통이 떨어졌다.
바보야, 입 좀 벌려.
정숙의 혀가 밀고 들어왔다. 그것은 그 동안 문영이 상상했던 키스가 아니었다. 그저 불결하고 징그러운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하고는 아무 상관없이 육체는 순식간에 달아 오르고 있었다. 정숙이 문영의 사타구니를 만져 보더니 말했다.
짜식 성났구나?
그리고는 서둘러 문영의 바지를 벗겼다. 영화에서 많이 보았던 그대로였다. 그러나 영화하고 다른 것은 문영이, 그러니까 남자 쪽에서 그 다음 순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
뭐 하고 있어?
응?
내가 자기 옷을 벗겨 줬으니까 이번엔 자기가 내 옷을 벗겨 줘야 할 거 아냐?
다 벗겨?
바쁜데 다 벗을 거 뭐 있어, 자.
정숙이 스커트를 훌렁 걷어 올렸다. 엉덩이에 비해서 엄청나게 작은 분홍색 팬티가 거기 있었다. 문영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벗겨 내렸다. 팬티가 너무 꼭 끼어서 엉덩이를 빠져나오는데 한참이나 걸리는 것 같았다.
자기, 진짜 숫총각이구나?
미안해.
미안하긴. 나한텐 영광이지 뭐. 그런데 뭐 하느라고 그 동안 딱지도 못 떼고 살았어?
어쩌다 그렇게 됐어.
자기가 점점 더 좋아지는데. 이리 와, 내가 다 가르쳐 줄게.
정숙이 문영을 끌어안으며 다시 입술을 포개 왔다. 그리고 아플 정도로 힘껏 혀를 빨면서 문영의 손을 잡아 자신의 사타구니에 갖다 댔다. 무성하면서도 거친 털들이 거기 있었다. 말랑말랑하고 허연 여자의 속살하고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뜻밖의 감촉이었다.
그래 거기… 볼록 나온 거 있지? 그게 뭔지 알아?
크… 클리토리스.
클리토리스는 알고 있구나? 그걸 손가락으로 살 살… 그래 그렇게. 아, 좋아. 더 세게 더. 아, 나 죽어. 더 못 참겠어. 빨리 들어와.
문영은 그날 완벽하게 성교육을 받았다. 전희는 어떻게 하는 것인지에서부터 여자가 절정에 오를 때까지는 절대로 사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신사도까지 다 배웠다. 그리고 문영이 신사도를 무시하고 삽입을 하자마자 사정을 해 버린 것에 대해서도 위로의 말을 잊지 않았다.
처음이라 그런 거야.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실망할 것 없어.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씻고 와. 그러면 다시 설 테니까.
문영은 뭐가 뭔지도 잘 모르면서 정숙이 시키는 대로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자신의 물건을 씻었다. 안 그래도 거기가 끈적거리고 찜찜해서 씻고 싶었던 참이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었다. 조금 전에 사정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물건이 다시 벌떡 일어선 것이다.
거 봐, 내가 뭐라고 그랬어.
정숙은 대견하다는 듯이 문영의 물건을 쥐고 흔들었다. 그리고 벌렁 드러눕더니 허벅지를 쩍 벌리면서 말했다.
이번에는 성의를 가지고 잘 한번 해 봐. 섹스는 정력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성의 문제란 말이야.
문영이 성의를 가진 것은 아니지만 두 번째는 제대로 된 것 같았다. 정숙이 문영의 등을 앙칼지게 긁으면서 자기, 오빠, 여보, 문영씨 하다가 나중에는 비명을 지르며 나가 떨어졌으니까 말이다.
첫 경험은 그렇게 어정쩡하게 끝났다. 그리고 그 경험에는 확연하게 빛과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섹스의 쾌감과 기술을 배우게 된 데다가 언제든지 사정을 할 수 있는 상대가 생겼다는 것은 대단히 긍정적인 면이다. 그러나 정숙이 처녀가 아니었다는 사실은 정말 불행한 일이다. 문영한테 처녀를 감별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서 알게 된 것도 아니다. 정숙 자신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고백해 온 것이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여러 번 반복해서.
난 자기하고 할 적엔 정말 너무 너무 행복해. 이 세상에 자기처럼 잘하는 남자는 몇 명 안 될 거야. 전에 사귀던 남자애들은 무조건 식식거리다가 저 볼일만 보면 벌렁 나가 떨어지거든. 그럴 때 나한테 권총이 있었다면 쏴 죽였을 거야.
문영이 간절하게 기다리고 상상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서로 수줍고, 소근거리고, 어루만지고, 그러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어 결합하는 것이 사랑이며 섹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숙과의 관계에서는 그 모든 과정이 몽땅 생략되어 버린다. 마치 발정난 짐승처럼 만나자마자 흥분하고 곧장 섹스를 향해서 돌진한다. 순결한 처녀를 만나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멋진 연애를 꿈꾸고 있던 문영한테 그것은 악몽이었다. 그러나 악몽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것은 공급과 수요의 법칙 같은 것이었다. 관계가 끝날 때마다 참담하게 후회를 하면서도 며칠만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욕구가 솟구친다. 주체할 수 없는 젊음과 통제가 불가능한 욕망이 그렇게 만든다. 거기에다 생각이 날 때마다 언제든지 팬티를 벗길 수 있는 여자가 있다는 것처럼 편리한 일도 없다. 그것은 도저히 거절할 수도 발을 뺄 수도 없는 강력한 유혹이었다.
결국 문영은 선배의 화실에서 나와 정숙의 자취방으로 보따리를 옮겼다. 문영으로서는 호박이 덩굴째로 굴러 떨어졌다고 할 만한 일이다. 밥해 먹는 일과 빨래로부터 해방된 것은 물론 생활비도 들지 않았다. 난생 처음 누려 보는 호강이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함정이 있었다. 어느 날 밤, 한바탕 일을 치르고 나른하게 엎드려 있는데 정숙이 물었다.
자기, 학교 졸업하고 나서 뭐 할 거야?
군대 가야지.
군대 갔다 와서는?
그림 그려야지.
그림 그려 가지고 먹고살 수 있어?
유명해지면 먹고사는 건 걱정 안 해도 돼.
언제 유명해지는데?
그건 그때 가 봐야 알지.
그럼, 유명해질 때까진 맨날 극장 간판이나 그리고 지낼 거야?
그것 말고도 할 일은 얼마든지 있어. 화실을 열어서 아이들을 가르쳐도 되고 인테리어나 북디자인, 패션 디자인도 있으니까.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그렇다면 걱정 안 해도 되겠네. 나도 계속 벌 테니까, 우리 결혼식 올리자.
뭐?
기왕에 같이 사는 거 식을 올리면 남 보기에도 떳떳하고 좋잖아?
지금 당장 식을 올리잔 말이야?
아니, 지금 당장은 아니고 자기 졸업한 담에 말이야. 졸업하면 군대 간다며?
그런데?
군대 가서 맘 변하면 난 뭐야? 낙동강 오리알 신세 아니야? 그러니까 군대 가기 전에 식을 올리자구. 혼인신고도 하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문영은 비로소 자신이 덫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숙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던 자신의 불찰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정숙처럼 단순하고 막무가내인 여자한테 나 너하고 결혼할 수 없어, 하고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정숙이 어떻게 나올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시간은 있었다. 그 동안 머리를 짜 내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손도 안 대고 코를 풀 듯이 너무나도 쉽게 그 기회가 찾아왔다. 정숙으로부터 청혼을 받고 두어 달쯤 지났을 때였다. 그날은 정숙이 쉬는 날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문영 역시 학교를 쉬게 되었다. 교문 앞에서 데모대와 경찰이 충돌하는 바람에 강의가 취소되었던 것이다. 문영은 한번도 데모에 참가한 적이 없었다. 용기도 없거니와 잘못되어 잡혀 가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나마 간판 그리는 일자리마저 날아 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을 보내기가 마땅찮았다. 극장에는 오후 6시까지 출근하면 된다. 그때부터 밤 12시까지가 문영의 근무시간이었다. 다른 극장에 가서 영화나 한 편 보았으면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이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집에 가 모처럼 낮잠이나 실컷 자고 출근하기로 했다. 그런데 집에 가 보니 방문 앞에 웬 남자 구두 한 켤레가 떡 버티고 있었다. 정숙에게 손님이 온 것이다. 문영은 창문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정숙과 웬 젊은 남자가 홀랑 벗은 알몸으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한쪽 무릎을 세운 채 앉아 있는 정숙의 시커먼 사타구니가 정면으로 보였다. 문영의 물건이 불끈 솟아올랐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속없는 물건은 때와 장소를 가릴 줄을 모른다.
한번만 용서해 줘,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란 말이야.
정숙은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간절하게 사정했다.
옛날에 벌써 끝난 사인데 갑자기 찾아와서 결혼을 하자고 그러잖아. 도저히 날 잊을 수 없다고 말이야. 이미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생겼다고 아무리 얘기를 해도 들어 먹지를 않는 거야. 그러더니 결국은 행복하게 잘살기를 빌겠다고 하면서 헤어지는 기념으로 한탕만 뛰자는데 어떡해.
문영은 그길로 보따리를 쌌다. 그리고 극장도 그만두었다.


 ---------------------------------------------------------------------- 8편에 계속..

사랑은 밀어내김과 당김의 연속이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