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어머니
입춘이 지나고 우수를 며칠 앞둔 2월 중순, 문영은 서울로 올라왔다.
화실의 전세금을 빼기 위해서였다. 그 동안 화실을 그대로 둔 것은 서울에 올라왔을 때 여관방 대신 숙소로 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서울에 올라오는 가장 중요한 볼일은 신애를 만나는 일이었다. 이제 그 모든 일들이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문영은 집주인을 만나 전세금이 빠지는 대로 입금을 시켜 달라며 친구의 계좌번호를 적어 준 뒤 화실로 올라왔다. 학생들이 쓰던 이젤과 의자만 한쪽으로 치워졌을 뿐 화실은 옛 모습 그대로 뿌옇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문영은 가져 갈 물건이 없나 해서 구석구석을 뒤져보았다. 가구니 무어니 모두 버릴 생각이지만 그래도 옛날 살림에 미련이 남는다. 화장실에서 면도기와 면도솔을 발견한다. 산장에서는 면도크림이나 전기면도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면도솔로 비누칠을 하던 추억은 함부로 버릴 것이 아니다. 면도솔을 양복 주머니에 챙겨 넣는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어 보니 반쯤 마시다 만 양주병과 마른 새우 봉투가 있다. 냄새를 맡아 보니 바삭바삭한 게 상한 것 같지 않다. 잔을 꺼내다가 한 잔 마셔 본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짜릿하고 뜨거운 기운이 뱃속을 뚫고 내려간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불현듯 신애 생각이 난다. 모처럼 올라온 김에 전화라도 한번 해 봤으면 싶다. 만날 수 없다면 목소리라도 한번 듣고 싶다. 에라,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핸드폰을 꺼내는데 갑자기 현관문이 벌컥 열리면서 들어서는 사람이 있다. 삼촌이다. 그리고 뒤에는 머리가 허옇게 센 할머니 하나가 따라 들어온다.
이봐 조카, 정말 오랜만이군 그래.
삼촌은 느물거리며 식탁에 와 앉더니 할머니에게도 자리를 권한다.
이리 와 앉으세요, 얘가 바로 문영입니다.
할머니가 뚫어지게 문영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주춤주춤 다가와 자리에 앉는다.
하하, 꽁꽁 숨어 있으면 내가 못 찾아낼 줄 알았지?
삼촌이 통쾌하다는 듯이 떠들어 댄다.
내가 누구냐? 자타가 공인하는 정보통 아니냐 정보통.
문영은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다.
도대체 내가 여기 온 줄을 어떻게 알고 찾아왔어요?
여기 집주인을 구워삶아 놓았지. 화실을 그대로 놔 둔 걸 보고 니가 언젠가는 나타날 줄 알았어. 그래서 집주인이 즉각 나한테 전화를 해 준 거야. 어때? 알고 보니 간단하지?
집주인이 괘씸하다. 하지만 이런 일을 예상해서 미리 부탁을 해 두지 않은 불찰도 있다. 또 삼촌이 정보계 형사 출신답게 어떤 공갈을 쳤다면 집주인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문영은 어떻게 해야 이 자리를 모면할 수 있을지 머리를 짜내면서 물었다.
그런데 이 할머니는 누구요?
할머니?
삼촌이 또 웃음을 터뜨린다.
형수님, 얘 말하는 것 좀 봐요. 어머니를 보고 할머니랍니다. 세상에 이렇게 기가 막힌 일이 또 어디가 있어요?
그 할머니는 문영의 어머니였다.
열한 살 때 헤어졌으니까 자그마치 30년 만이다. 몰라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거기다 어머니는 나이에 비해 너무 늙었다. 잘해야 60대 중반이나 되었을 텐데 폭삭 늙어 버려서 80이 다 된 노파 같다. 중병을 앓은 게 아니라면 그 동안 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이 가는 일이다.
너한테 정말 미안하다.
어머니의 첫마디다. 그리고는 변명이 이어진다.
그때 내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아마 너희 아빠가 전사를 하는 바람에 충격을 받아 가지고 정신이 이상해졌던 모양이다. 이유야 어찌 됐던 어린 너한테 정말 못할 짓을 했다. 백번 천번 사죄하마.
그러더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훌쩍훌쩍 울기 시작한다.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는 모르지만 일부러 하는 연기는 아닌 것 같다. 문영은 다시 술을 따라 마시면서 생각해 본다. 삼촌이 어머니를 찾아서 데리고 나타난 이유는 너무나도 뻔하다. 자신의 힘으로는 돈을 뜯어 낼 수 없으니 모자간의 정을 이용해서 어떻게 해 보자는 것이다. 그러나 약은 고양이 밤눈 어둡다고, 삼촌이 모르는 점이 있다. 모자간의 정은커녕 문영은 지금까지 한번도 어머니를 그리워한 적이 없다. 자신을 버리고 도망친 여자, 삼촌 집에 맡겨 그 모진 고생을 하게 만든 나쁜 여자로만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을 삼촌은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30년 만에 만나고 보니 궁금한 일이 없을 수 없다. 문영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그저 지나가는 일처럼 물어보았다.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낼 모레면 70이다, 올해 예순일곱이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폭삭 늙으셨어요? 무슨 큰 병을 앓으셨나요?
병은 무슨 병.
삼촌이 나선다.
고생을 해서 그런 거 아니냐?
문영은 그러는 삼촌한테 사정없이 면박을 주었다.
내가 삼촌한테 물었어요?
삼촌은 대뜸 감을 잡고 머쓱해서 시선을 돌린다. 문영이 다시 물었다.
그 동안 재혼은 하셨겠지요?
으응… 하긴 했는데…….
하긴 했는데 헤어졌어요?
그게 아니고… 일찍 죽었어. 쉰네 살에 죽었으니까.
30년 전 어머니는 아버지의 연금과 전사 수당까지 몽땅 챙겨 가지고 부산에 가 친구와 함께 옷장사를 시작했다. 그냥 가게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그런 장사가 아니었다. 부두에 나가 상륙하는 보따리장수나 외국 선원들을 끌어다 보따리로 팔아 넘기는 제법 규모가 큰 장사였다. 처음에는 돈도 많이 벌었다. 그런데 장사에 재미가 붙고 이골이 날 때쯤 춤바람이 난 게 탈이었다. 당연히 제비가 하나 따라붙었고 어머니는 그 사내에게 밑천을 몽땅 털리고 말았다. 장사 밑천이 없으니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식당 주방일 같은 막노동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돈을 모아 조그마한 식당을 하나 차렸다. 그 식당에 단골로 와서 밥을 먹는 사내가 하나 있었다. 부두에서 노동을 하는 홀아비라고 했다. 두 사람은 식당에 딸려 있는 골방에다 살림을 차렸다. 어머니한테는 행복한 한때였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사내가 하역작업을 하다 배에서 떨어져 다리를 못쓰게 되고 말았다. 일을 못하게 된 사내는 하루종일 술만 퍼마시는 주정뱅이로 전락했다. 그 바람에 장사를 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다시 막노동을 해서 사내를 먹여살려야 했다. 그런 가운데도 애가 둘이나 태어났다. 살림을 꾸려 간다는 게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 사내가 결핵까지 걸려 약값을 대느라 여기저기 빚을 질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사내가 죽었을 때 어머니는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너무 힘이 들어 칵 죽어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자식들 때문에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을 살아 오고 있는 것이다.
문영이 물었다.
큰애가 지금 몇 살입니까?
스물한 살.
뭐 하고 있어요?
군대 갔어.
둘째는요?
지금 고등학교 2학년 다니고 있지.
그럼, 생활은 어떻게 꾸려가고 있어요?
자갈치시장에서 생선장사도 해 보고 구청 청소부도 해 보고 안 해 본 것이 없지. 지금은 식당에서 주방일을 하고 있는데 몸이 약해서 주인이 자꾸 그만두라고 그런다.
어머니가 손수건을 꺼내더니 눈물과 콧물을 닦는다.
그래서 얘긴데…….
삼촌이 다시 거들고 나서는 것을 문영은 한마디로 잘라 버린다.
삼촌은 아무 소리 말고 가만 좀 있어요.
…알았어.
이것 봐요, 어머니.
어머니가 고개를 번쩍 들고 아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간절하면서도 잔뜩 기대에 부푼 표정이다.
나를 낳아 주셨으니까 어머니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 어머니는 벌써 30년 전에 죽은 사람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이렇게 살아서 만났잖아?
내 마음속에서라고 그러잖아요. 어머니는 나를 여기 이 삼촌네 집에다 버리고 떠났어요. 그리고는 연락 한번 없었죠. 어떻게 자기 뱃속으로 난 자식인데 그럴 수가 있어요? 한번 보고 싶거나 궁금하지도 않던가요?
그때는 장사에 바빠 가지고 정신이 없어서…….
그 다음에는 남자를 만나서 정신이 없었구요?
어머니는 고개를 떨군다.
또 그 다음에는 고생을 하느라고 정신이 없었구요. 어머니가 정신없이 사는 동안 내가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는지 이 삼촌한테 한번 물어봐요.
삼촌이 펄쩍 뛴다.
어어, 왜 이래? 내가 뭘 어쨌다고 물고 들어가는 거야?
이거 봐요, 삼촌. 어머니를 어떻게 찾아냈는지 모르지만 헛수고한 거예요. 어머니를 데리고 와서 이렇게 한바탕 신파극을 늘어놓으면 내가 감동을 해 가지고 돈보따리를 끌러 놓을 줄 알았죠? 천만의 말씀입니다. 난 지난 일을 절대로 잊지 못합니다. 너무나도 비참하고 뼈아픈 기억이어서 말입니다. 삼촌하고 어머니 두 사람이 지금 내 앞에서 목을 맨다 해도 난 눈 하나 깜짝 안 할 겁니다. 아셨어요?
문영아, 내가 잘못했다. 제발 용서해 다오. 이렇게 빈다, 제발…….
어머니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두 손을 싹싹 빈다. 문영은 남아 있는 술을 마저 마셨다.
그렇게 궁상 떨지 말고 일어나요.
문영아 30년이나 지난 일이니까 그만 잊어버리고 용서해 줄 수 없겠냐? 니 입장에서는 죽이고 싶도록 밉겠지만 그래도 너를 낳아 주고 기저귀 갈아 주면서 키워 준 에미 아니냐?
글쎄, 일어나 앉아서 얘길 하세요.
어머니는 계속 눈물 콧물을 훔치면서 일어나 자리에 앉는다. 하는 기세로 보아 웬만해서는 물러나지 않을 것 같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삼촌이 머뭇거리며 또 나선다.
워낙 어려운 살림이라 조금만 성의를 보여 줘도 큰 도움이 될 텐데, 너무 야박하게 굴 거 없잖아?
삼촌하고 나는 전생에 무슨 원수를 져서 이렇게 인연이 질긴 거요?
너무 그러지 말아라. 내가 만든 인연이 아니고 하늘에서 만들어 준 인연인데 내 힘으로 어떻게 하겠어?
내가 미국이나 카나다로 이민을 가면 거기까지도 따라 올 거요?
삼촌은 더 얘기해 봐야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길게 한숨만 쉰다.
나갑시다.
어딜 가는데?
따라와 봐요.
문영은 두 사람을 데리고 나가 현금인출기에서 200만원을 뽑았다. 그리고 각각 100만원씩을 나누어 준 다음 단호하게 말했다.
두 분 다 이것으로 날 잊어버리고 다른 살 궁리를 찾아봐요. 또 한번만 귀찮게 하면 그땐 정말 이민을 가 버리고 말 테니까.
문영은 화실로 돌아와서 골똘하게 생각에 잠겼다. 저 삼촌이라는 인간을 어떻게 해야 다시는 못 찾아오게 만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