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런데 글을 처음 남겨 어색하지만 혼자하는 가슴앓이에 이젠 지쳐 제 속 이야기를
꺼내보려고 합니다.
조금 길어질지도 모릅니다... 일단 제가 자라온 환경부터 말씀드려야겠네요..
저는 갓난아기때부터 아버지가 안계셨습니다. 음.. 제가 태어나고 얼마 안있어 돌아가셨다고
들었는데 덕분에 전 어린시절 친척들의 기억은 아빠 잡아먹은년이라는 손가락질 받은게 다입니다.
그리고 마음 약하고 여린 우리 엄마.,. 불쌍한 우리 엄마 .. 아빠가 돌아가신 충격으로 엄마는 정신을
놓으셨고 병원과 집, 왔다 갔다 하시다 제가 중학교시절부턴 아예 병원에서 운영하는 가평
요양원에서 지내셨습니다. 형제, 자매 하나 없던 저였지만 친가쪽에선 절 아예 보지도 않으려하고
외갓쪽에선 네 엄마 하나로도 벅차다고 절 거의 외면하다시피 하셔서 그냥 그렇게.. 그렇게 버티고
버티면서 자랐습니다..
매일 매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나날이였죠.. 엄마 원망하지 말자.. 아빠 원망하지 말자..
비뚤어 지지 말자.. 사람답게 살자... 꼭 성공하자...
기독교에 반감을 가지신분들도 많겠지만 지하단칸방에 혼자 사는 여중생한테 쌀이며 음식, 간간히
생활비, 학비..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수 없고 당시의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따뜻한 인정. 을 보내준
종교입니다. 아마 꾸준히 저희집을 방문해주시고 손 잡아주시는 교회 집사님들이 안계셨다면 지금
제가 이렇게 살고 있지는 못하겠죠..
그러던 중 제가 고2때 그 사람을 알게 됐습니다.
저희집을 4년 넘게 항상 찾아주셨던 제가 누구보다 엄마처럼 따르던 교회 아주머니 아들이였고
아주머니가 직접 친오빠처럼 의지하고 공부도 배우고 친하게 지내라고 소개시켜주셨습니다.
오빠도 아주머니처럼 심성이 너무 착하고 좋은 사람이였습니다.
우린 그렇게 알게 되었고 몇달후부터 사귀게 되었습니다. 난생 처음 남자를 사귄거였습니다.
아주머니가 반대하실까 걱정했었지만 오히려 아주머니는 너무 잘됐다며 오빠보고 항상 저한테
잘해라 잘해라 그러셨습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7년입니다... 고2 열여덞살부터 2년전인 제가 24살때까지죠..
7년간..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수능을 보고 오빠가 군대를 갔을때 서로 너무 힘들어서
잠깐 헤어진적이 있었지만 서로에게 상대방의 자리가 얼마나 큰지 느끼고 다시 만났구요
그때 말고는 크게 싸운적도 헤어진적도 없이 우린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저에겐 그동안 없었던 아주머니, 아저씨, 오빠의 남동생까지 가족이 네명이나 생겼었구요 ..
뭘 하나 결정해도 누구에게 물어볼 사람 없이 혼자 고민하고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결과가 어떻든
혼자 책임지고 받아들여야 했던 저에게 아주사소한것조차 나눌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게 정말 얼마나
감사하고 고맙던지..
우린 오빠가 군대를 갔을때 빼곤 한시도 떨어져 본적이 없습니다. 대학도 오빠가 다니던 대학에 운이
좋게 들어가서 같이 다녔고 아르바이트도 같이 했고 여행도 같이 했고 고민도 같이 했고 기쁨도
같이 나눴고 슬픔도 같이 나눴습니다. 혼자인 저에게 대학 생할 참 쉽지 않았지만 주위의 도움과
오빠가 있어서 무사히 휴학한번 하지 않고 4년 잘 버텨서 졸업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졸업식날 오빠한테 청혼도 받았습니다. 꿈 같은 순간이였고 하염없이 울기만 했습니다.
저에겐 세상 누구보다 바꿀수 없는 소중한 사람이였습니다. 정말 피만 안섞였지 가족 같았습니다.
가족..... 맞아요 가족같았습니다. 가족같다는 이유로 버림 받았지만요..
오빠가 변한건 취업준비를 힘들게 하고 회사에 취직을 했을때부터 였습니다.
취업하면 바로 결혼하자고 청혼했던 오빠였는데 회사 입사동기 여자분과 마음이 맞았나봅니다.
사랑이 식어가는게 그렇게 빠른지 처음 알았습니다. 연락도 뜸하고 처음엔 퇴근하고 우리 회사 앞으로
와서 같이 저녁먹고 들어가고 그랬었는데 언제부턴가 바쁘다는 핑계로 안오고 전화도 없고 피하더군요.
제 나이 성인식때 처음 관계를 갖고 꾸준히 해오던 관계도 피곤하다고 힘들다고 거부하구요..
저 그렇게 오빠가 변해가는게 너무 너무 두렵고 무서웠지만 아무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말로 하면, 입으로 꺼내면 정말 날 떠난다고 할까봐 한번 따지지도 못하고 화도 못내고 참고 참았습니다.
그만큼 그때의 저에겐 그 사람이 전부였습니다.
근데 결국 올것은 오더군요.
그렇게 조금 지나니 그 사람 자기가 더 서럽게 울면서 고백하더군요.
미안하다고 .. 정말 너무 미안하다고... 내가 이러면 안되는거 아는데.. 너한테 나 밖에 없는거 아는데..
그 사람을 너무 사랑한다고. 전 여자가 아니라 가족같다고.....
그냥 너무 편한 가족같다고.. 사랑은 아닌거 같다고.........
정말 너무 서럽게 울면서 제 손잡고 미안하다고 울던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정말 그 순간 하늘이 새카매 졌습니다.
눈앞에 아무것도 안보이고 꿈이라고 , 이건 꿈이라고만 되뇌였었습니다.
미친듯이 잡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나한테 이러면 안된다고.. 가족같다면서 어떻게 가족을 버리냐고.. 나도 이미 가족처럼 느낀다고
그렇게 그냥 가족이 되면 안되냐고.. 어떻게 우리가 헤어지냐고.. 한번도 상상도 못해봤다고 ..
나한테 오빠랑 오빠네 가족은 전부라고 제발 뺏지 말아달라고 정말 무릎꿇고 울면서 빌기까지 했습니다.
근데 안된답니다. 그 여자분을 너무 사랑한답니다. 돌이킬 수 없답니다. 자기를 용서하지 말라고..
그 당시에는 다른 여자분을 사랑해도 오빠를 잃는게 너무 두려워서 무조건 기다린다고 했습니다.
정 안되겠으면 그 여자분이랑 사랑하라고.. 그 여자분한테 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분도 가족처럼 느껴지는 때가 되면.. 사랑하는 마음이 작아지면 그때 돌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보내줬습니다.
불행은 한번에 닥친다고 하던가요.
오빠랑 헤어지고 정확히 7개월후에.. 반 미쳐서 넋이 나가서 지낼때 엄마가 돌아가셨습니다.
당뇨병이 있으셨는데 합병증으로 고생하시다가 편한곳으로 가셨죠..
정말 완벽히 혼자가 된거죠..
그때 그 사람 ... 저희 엄마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오빠네 가족들은 와주셨습니다. 오빠네 아주머니 제 손잡고 불쌍해서 어떡하나면서 우시더라구요..
자기 아들 너한테 그러면 안된다고 그렇게 말렸는데 안통한다고.. 미안하다면서 우시고..
이럴꺼면 자신이 아들을 처음부터 소개시켜주는게 아니였다면서 용서하라고 하시더라구요..
그 사람 우리 엄마 장례식에 안온거 보고 정말 끝났구나.. 하고 정리하게 되더라구요.
저 정말 어리석게도 .. 지금은 너무 후회하지만 그땐 정말 엄마도 돌아가시고 그 사람도 떠나고
..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 발인하고 몇칠 후 지인분들도 뜸해졌을때 외로움에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손목을 그었습니다.
그런데 죽을 운명은 아니였나봐요.
제 성장과정, 남자친구일 알고 계시던 회사분이 장례치르고도 연락도 없고 회사도 출근하지 않아서
왠지 불안해지셔서 우리 집에 직원을 보내주셨던 거예요.. 저 죽고 나면 누구라도 들어와서
저 발견해달라고 문 열어놨었거든요.. 혼자 그렇게 죽은체로 오래 방치되는게 너무 싫고 무서워서..
그렇게 병원에 실려가고 회사 팀장님, 과장님 , 팀사원들 모두 몇날 몇칠이고 혼자 두면 안된다고
서로 돌아가면서 오셔서 어떤분은 야단도 치시고, 어떤분은 같이 울고 , 어떤분은 위로 하시고..
그러면 안된다고 달래주시는데... 그때 서럽게 울면서 느꼈죠.. 아직은 혼자가 아니라고..
오빤 병원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퇴원하고 죄송스러워서 사표를 제출했을때 우리 팀장님 사표 북북 찢으면서 .. 지금 저 내보내고
자기 무슨 나쁜놈 소리 듣게 할려고 그러냐고.. 미안하면 일 더 열심히하고 여기서 잘 지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살게 되더군요. 하루 하루 버티는게 힘들던 나날들도 회사일 하면서 동료들과 지내고,
친구들과 웃고 여행가고 하면서 조금씩 희석되더니 견딜만 해지더라구요..
일에 집중하다보니 인정도 받게 되고 연봉도 오르고.. 그 사람과 추억이 가득한 옛날집 이사하고
깔끔한 오피스텔로 옮기면서 뭔가 의욕도 생기구요..
그리고 올해 1월에 팀장님 소개로 한 남자분을 알게 됐어요. 저는 그 사람 헤어진지 2년 밖에
안됐고.. 아직 마음이 완벽히 정리된것도 아닌터라 거절했는데.. 우리 팀장님 정말 저에게 소개시켜주고
싶은 사람이라며 한번만 만나보라고 하더라구요.
참 괜찮은 사람입니다. 저한테 결혼할뻔한 사람 있는것도 알고 부모님 두분 다 안계신것도 아는데도
정말 절 아끼고 소중하게 여겨줍니다. 예전에 그 사람이 잘해줬던거 자기가 백배 더 잘해서
다 잊게 해준다며 하나 하나 신경써주고 배려하고 다시 웃게 만들어줍니다.
제 앞에서 개그맨 흉내를 엉성하게 내는게 너무 웃겨서 큰소리로 웃었더니 정말 웃는거 같다면서
감동받았다고 환하게 웃더군요.
그렇게 그 사람이랑 다시 시작하며 막 다시 행복해 지려 했습니다.
근데 지난달 , 6월 25일 제 생일에.. 오빠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26번째 생일 축하한다고.. 한번 만날수 없냐고. 처음 전화받고 저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그 목소리가 왜 그렇게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던지..
저 그러면 안되는거 알면서 생일날 지금 내 옆에 있어주는 사람 말고.. 오빠 만났습니다.
헬쓱해져 있더군요. 그 여자분이랑 1년 만나고 헤어졌다고 하더군요.. 1년전부터 저한테 계속
돌아오고 싶었는데 우리 엄마 장례식장에 안오게 너무 미안해서, 자살까지 하려고 했다는 소리 듣고
도저히 그럴수 없었다고..
그런데 다른 사람 만난다는 소식 우연히 듣고는 더 늦으면 이제 영영 돌아올수 없을것 같아서
연락했다고 했습니다.
만나는 사람이 있어서 안된다고. 오빠 말대로 늦었다고 그 사람 사랑한다고 하고 돌아나왔습니다.
그러면 포기할줄 알았는데 그 뒤 오늘까지도 계속 연락이 와서 돌아갈수 있게 해달랍니다.
우리 만난 7년.. 그 사람 만난 6개월이랑 어떻게 같을수가 있냐면서 .
기가 막힙니다.
우리 만난 7년보다 회사 동기 여자분이랑 만난 3,4개월이 더 소중하다고 가버린 주제에..
그런데 문제는 제 마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있다고 모질게 돌아나왔으면서.. 오빠 얼굴이, 7년간의 추억이, 오빠의 가족들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자꾸 자꾸 눈물만 나고 미안함에 지금 만나는 사람을 피하게 됩니다.
오빠에대한 마음이 사랑은 아닐겁니다. 우리 엄마 돌아가셨을때 정말 마음 접었으니깐요..
그런데 이 마음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서럽고.. 핸드폰에 찍혀있는 그 사람 수신번호만 봐도 자꾸만 눈물이 나고..
이렇게 돌아와준게 고맙고......... 밉고.. 원망스럽고..
그런데 안심이 되는....
저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전 왜 이렇게 멍청하고 미련할까요...
너무 길어졌습니다. 몇분이나 리플을 달아주실지 모르겠지만..
오늘 월차내고 혼자 바람이라도 쐬려 가려 했는데..
어디 가진 못했지만 이곳에 이렇게 털어놓아서인지 조금 마음이 편해지기도 합니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