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파티마의 제3 예언(7. 귀환)

[Mr.Crow] |2003.06.02 17:41
조회 393 |추천 0

  7. 귀    환


 



「여기가 어디에요?」

택시비를 계산하고 내려서는데 주위를 둘러보던 타라가 물었어.

「압구정 동이라고 우리 나라에서 가장 잘 나가는 유흥가 중에 하나야」

「근데 여긴 왜 온 거에요?」

내 유전자를 추출했던 그 빌어먹을 택시기사 놈을 찾아내기 위해서 비행기 안에서 꽤 오랫동안 명상을 해봤지만 현장성이 결여되어서인지 전혀 소득이 없었어. 그래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이 곳으로 온 거야. 혹시 놈을 처음 만났던 이 곳에 오면 뭔가 놈에 대한 정보를 인지해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 때문에 말야.

「사람을 찾아야 돼」

「누구요?」

「택시 기사」

「택시 기사요? 또 택시 타려구요? 아까 그 차 타고 계속 가면 돼잖아요?」

「그런 게 아니고……」

호기심 어린 녀석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내 입술을 더듬었어. 자세한 사정을 얘기하자니 내가 복제인간이라는 사실까지 거론해야 할 것 같고, 또 그 놈을 찾아서 뭐하려고 그러냐고 물어오면 차마 놈을 때려 죽이기 위해서라고 말할 순 없잖아.

「으응……. 그, 그게 아니고…… 사실은 타라한테 서울 구경 좀 시켜줄라고」

「정말요?」

「응. 정말……」

원체 거짓말에는 익숙치 못한 터라 조금 난감했어. 컹……. 근데 이 녀석은 아주 신이 났어. 내 팔에 자기 팔을 걸고는 횡단보도 건너 편에 우뚝 솟아 있는 디자이너 클럽 쪽으로 마구 날 끌고가는 거야.

흐미……. 이라모 곤난헌뒤……. 좀 차분한 분위기에서 놈의 뇌파를 추적해야 대는뒤…….

타라의 손에 이끌려 디자이너 클럽 건물 안으로 들어서기 전까지 나는 힐끔힐끔 고개를 돌려 그 날, 그러니까 내 생일날 그 택시가 서 있던 그 곳을 열심히 살폈어. 그 때마다 언뜻 언뜻 그 날의 상황이 눈 앞에 펼쳐지더군. 놈의 택시 보조석 창을 통해 흥정을 하던 만취한 나와 그걸로는 도저히 타산이 안 맞는다는 듯 잔뜩 미간을 구기며 오른 손을 휘젓던 놈의 못마땅한 표정……. 그런 장면들이 꿈을 꾸듯 뇌리 속에 스쳐지나갔어.     

「맨 윗층부터 훑어 내려오는 게 편해요」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서며 타라가 말했어. 원래 난 맨 아래층부터 위쪽으로 올라간 뒤에 괜찮아 보였던 물건이 있는 위치를 기억해 뒀다가 내려올 때 쇼핑을 하는 스탈이었지만 그냥 녀석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만 끄덕였어. 그리곤 잠시 타라의 얼굴을 살펴봤는데 녀석은 소풍 전날의 어린 아이처럼 들뜬 표정으로 에레베이터의 현재 위치에만 관심을 두고 있더군. 그 틈을 타서 난 건물 밖을 곁눈질했어. 그 날밤 일들을 머리 속에 강제연상하면서 내 기억 밖의 일들을 인지하는데 주력했어.

‘태광……. 28호……’

그순간 놈이 타고 있었던 택시의 회사명과 홋수가 타이핑되듯 뇌리 속에 각인되더군. 그 때였어. 어느새 에레베이터에 오른 녀석이 날 향해 소리친 건. 

「뭐해요. 어서 타요」

녀석은 마치 날 다른 여자의 미끈한 다리를 훔쳐보다가 들킨 바람둥이 애인다그치듯 매서운 눈으로 쏘아보고 있더라구.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이 코딱지만한 게……. 컹. 180cm나 되는 코딱지가 있남? 좀 그렇네. 그럼 다른 걸로…….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머리에 피 마르면 죽지? 쩌업. 이것도 좀  글큰. 그럼……. 이 쥐방울만한……. 컹. 가슴이 내 머리통보다 조금 작은데 쥐방울만해? 이 것도 역시 그렇네. 그럼 다른 걸로……. 호적에 잉크도 안 마른 놈이! 콱!! ㅋㅋ 성공! ^^v


「아, 이 누무 쥐새끼들……」

오른 쪽 관자놀이 부분을 한 손으로 감싸 쥔 채 잠에서 깨어난 혼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곤 습관처럼 손을 뻗어 침대 맡의 담배갑을 집어들었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문 혼은 지포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내 오늘은 기필코 니들을 모조리 질식사시키고야 말겠다」

그리곤 연거푸 담배연기를 들이마셨다. 자신의 편두통이 머리 속에 뛰어 노는 쥐새끼들 탓이라고 믿고 있기라도 한 듯. 그 쥐새끼들을 담배연기로 모조리 질식케 만들고야 말겠다는 듯. 그러자 잠을 깨울 정도로 기승을 부렸던 편두통이 거짓말처럼 사그러 들었다. 혼의 입가에는 회심의 미소가 번져갔다. 그 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 상기였다.

「기억은 잘 안나지만 침대에서 눈 뜬 거 보면 잘 들어온 거 같다. 하하!」

「필름이 끊겼다고? 이런……. 같이 술 못 먹겠네?」

「그렇게 말이야. 헤어질 때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것 같은데 집에 오는 중에 끊어졌나 봐. 닌 잘 들어갔나?」

「하하. 나야 뭐 애들이 알아서 침대에 눕혀주기까지 하니까 뭐……」

「그럼 너도 필름 끊긴 거네? 이 자식, 같이 술 못 먹겠구만」 

「흐흐. 17병째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솔직히 그 뒤에부터 기억이 가물가물해」

「경식이 형님도 잘 들어갔나 모르겠다. 그 형님, 어제 많이 무리하신 것 같던데」 

「형님은 내가 애들한테 안방까지 잘 모셔다드리라고 했으니까 걱정 안해도 될 거야」

「후후. 그래. 잘했다」

「오늘 저녁 시간 어때? 우리 클럽 쪽으로 나와라」

「별 일은 없는데……」

「근데 왜? 겨우 그 정도로 꼬리 마는 거야?」

「헐……. 천하의 유혼을 뭘로 보고……. 조아쓰. 저녁 몇시에?」

혼은 저녁 7시에 명동에 있는‘율리시즈’에서 상기와 만나기로 했다.‘율리시즈’는 상기가 운영하는 초호화 룸싸롱이었다. 경식에게는 상기가 따로 연락을 취하겠다고 했다.

「허걱!」

통화를 마친 후, 다시 침대에‘大’자로 누운 혼은 그제서야 천장에 매달려 있는 벽시계를 찾아냈다. 12시 20분을 넘어서고 있었다.  

「이 누무시키덜이 또 연대파업을?」

혼은 침대 맡의 자명종 시계를 부숴트릴 듯 움켜쥐었다.

「헐……」

오늘 수업은 9시부터였지만 알람은 10시 10분에 맞춰져 있었다. 게다가 알람 버튼은‘OFF’에 가 있었다. 어제 아침 10시 10분 이후에는 자명종을 건드리지도 않았다는 얘기였다.

「도대체 어제 얼마나 마셨다는 거야……?」

용수철처럼 튕겨오른 혼은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욕실로 뛰어갔다.


「이제 고마 사지?」

시야를 가릴 정도로 수북히 쇼핑백을 안고 있는 내가 사정하듯 말했어. 컹 그런데도 녀석은 들은 척도 안하고 또 다른 샵으로 들어가는겨. 일헌……. 저 놈 저거 쇼핑중독증 있는 거 아닌가 몰러. 지금까지 산 것만도 돈 백은 되겠구만. 컹!

「난 아저씨 나라가 정말 맘에 들어요. 앞으로 여기서 살려면 입을 옷하고 신을 신발은 몇 개씩 갖고 있어야죠」

된장. 당장 등 붙일 곳도 없는데 이 많은 짐을 어떻게 들고 다니라는 겨. 아무리 지 돈으로 지 물건 산다지만, 들고 다녀야 되는 건 나 아니냐구. 내가 지 짐꾼이냐구, 에혀…….

공항에서 환전한 돈으로 계산을 마친 녀석은 당연하다는 듯 내 팔 위에 또 하나의 쇼핑백을 올려놨어. 이젠 정말 전혀 앞이 보이질 않더군.

「뭐해요? 얼른 안 오고」

ㅠㅠ 녀석의 목소리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딛으면서 난 괜히 녀석을 데려 왔다는 후회를 하기 시작했어. 지금이라도 살살 타일러서 돌려보낼까? 아니면 걍 아무 데나 던져놓고 튀어버려? 그럼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지 않을까? ㅠㅠ


소양강변도로를 질주하던 혼은 길게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는 차량들의 행렬에 오른 발을 브레이크 페달로 가져갔다.

「뭐야? 사고라도 났나?」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는 막힐 일이 거의 없는 도로였다. 오죽하면 인근 운전면허학원들마다 이곳을 주행시험과 도로연수 코스로 삼을까? 그런 도로가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밀려 있을 이유가 뭘까? 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하야부사를 인도 위로 이끌었다. 몇 키로를 그렇게 진행한 후에 혼은 그 원인을 알아낼 수 있었다. 반대편 차선에 직경 2미터는 족히 넘어 보일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고 도로보수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운석이라도 떨어졌나? 어제 아침까지도 멀쩡했는데……」

혼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오른손잡이를 감아쥐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또 다시 정체현상을 만났다.

「헐. 운석비라도 내렸나?」   

혼은 하야부사를 멈춰세웠다. 마찬가지로 반대편 도로엔 커다란 웅덩이가 패여져 있었다. 그순간 무언가 어렴풋이 뇌리를 스쳐지나가는 장면들이 있었다. 

「이상하다……」

꿈이었는지 생시였는지 분간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한 기억이었다. 저쪽 중앙선 쯤에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져 있던 서양인을 하야부사에 태우고 어디론가를 향해 무지막지하게 내달렸던 것 같은데 목적지가 어디였는지, 그리고 그렇게 죽기살기로 내달려야했던 이유가 뭐였는지는 좀처럼 떠오르질 않았다. 그 때 핸드폰이 진동했다. 액정엔‘백철규’라는 이름이 세겨졌다.

「아, 형님. 어쩐 일이세요?」

「응. 과사로 어떤 여자분이 찾아오셨는데 너 수업받는 강의실에 가봐도 없길래」

백철규는 대학원에서 국제법을 전공하면서 이번 학기부터 과사무실 조교를 맡고 있었다. 겁많게 생긴 외모처럼 성격 또한 소심하기 그지없었지만 반면에 후배들의 일을 자기 일처럼 꼼꼼하게 챙겨주는 자상함으로 인해 인기는 많은 편이었다.

「여자요? 혹시 갓난 아이를 안고 왔다면 저 죽은지 딱 1년 되는 날이니까 젯밥이나 한상 차려달라고 전해 주세요」     

「갓난 아이 대신에 외상술값 전표를 한 아름 안고 오셨는데?」

혼의 장난기를 철규는 멋지게 받아쳤다.

「이런 경우 채권은 소멸시효가 1년이니까 그 동안만 착실히 잠수타라. 학교에는 니 대신 형이 벌써 자퇴서 제출해놨으니까 걱정 말고!」

「켁. 자퇴서요?」

「당장 널 내놓지 않으면 교수님들 방으로 쳐들어가겠다는 데 어카냐? 교수님들 귀에 들어가면 당장 퇴학처분 당하지. 퇴학보다는 자퇴가 훨씬 뽀대가 나오잖아?」  

「크크. 뽀대는 무신……. 어쨌든 난 확실한 자퇴보다는 불확실한 퇴학을 선택할 거요. 자기도 체면이 있지 설마 교수님들한테까지 찾아가겠수? 그래봐야 지한테 득될 게 뭐 있다고」

「몇번 올라갈라 그러는 걸 내가 사정사정해서 붙들어 두고 있는 거야!」

「그래도 난 퇴학을 선택할거요. 교수님들이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면……. 사실대로 말씀드려야지 뭐. 철규형님이 요즘 너무 외롭다고 그래서 포장마차에서 소주나 한잔 사줄라고 그랬더니 아가씨들 있는 집으로 끌고가더라고」

「켁. 어차피 퇴출당하는 거 똥 한번 제대로 뿌리겠다?」

「크크. 똥을 뿌리다니 거 무슨 섭한 말씀을……. 물러 터진 형님을 혼자 놔두고 가려니 발이 떨어지질 않아서 그러는 거지」

「그래……. 내가 젖소다」

「근데…… 누구래요?」

「한단비씨라고 알아?」

「첨 들어보는 이름인데요?」

「널 취재하고 싶다시던데……. 혹시 너 매스컴에 사진 밖을만한 짓한 거 있냐?」

「헐……. 형님도 잘 아시잖수. 나 죄짓고는 못 사는 성격인 거」

「암튼 지금 어디냐?」

「학교로 가는 길인데 온통 도로 공사 중이라 차가 많이 밀려 있네요」

「그래? 얼마나 걸릴 것 같은데?」

「후후. 정 안 되겠다 싶으면 골목길로라도 쏴야죠, 머. 한 10분 후면 도착할 거요」

「그럼 기다리고 계시라 그럴까?」

「예뻐요?」

「응. 결혼 날짜 잡은 거…… 후회될 정도로」

「크크. 그럼 목숨을 걸고 붙들어 둬요. 5분 안에 도착할 테니까……. 근데 형수님 핸펀 번호가 몇 번이더라? 6260이던가……?」

「켁. 내가 대왕젖소다」

「크크. 암튼 가서 봅시다. 끊을게요」

병목현상이 일어나는 곳을 지나치자 정체는 어느 정도 풀려갔다. 더 이상의 도로 공사 현장은 보이질 않았다. 이 정도면 5분 안에 도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은 오른 손을 좀 더 감아쥐며 마치 곡예하듯 차량과 차량들 틈을 파고들었다.  


시차 적응이 안 되서인지 타라는 샤워를 마치자 마자 곯아 떨어져 버렸어. 그 틈을 이용해 난 그 망할 택시 기사놈을 해 치울 요량으로 모텔을 나섰지. 아까 타라가 쇼핑에 넋이 나가 있는 사이에 난 114를 통해 태광운수로 전화번호를 알아냈어. 그리곤 그 놈의 차에 가방을 두고 내린 손님으로 가장해서 녀석의 교대시간이 1시라는 사실을 알아냈지.

태광운수는 도봉구 방학동에 위치하고 있었어. 아무 택시나 잡고 방학동 태광운수라고 말했더니 알아서 그 앞까지 데려다 주더군. 회사 입구 옆으로 좁다란 등산로가 있었어. 등산로 입구에 앉아 담배 한 대 피우고 있으니까 28호차가 들어오더군. 그런데 운전자는 그 녀석이 아니라 환갑은 되어 보이는 노인 양반이었어. 세차원과 몇 마디를 주고 받은 노인이 사무실로 들어가자 잠시후 녀석이  그 안에서 나오더군. 그 광경을 지켜보며 난 몸을 일으켜 도로쪽으로 걸어갔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이 운전하는 28호차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더군. 난 녀석을 불러세운 후 뒷자리에 올라탔어.

「어디로 모실까요?」

스물 예닐곱이나 됐을까? 아직은 엣되 보이는 그런 얼굴이었어. 당장에 녀석의 목줄을 끊어버리고 싶었지만 지나다니는 차와 사람들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어.

「우이동으로 갑시다」

일단 조용한 곳으로 놈을 끌고가기로 했어.

「우이동 어디쯤이요?」

「전경부대 있죠? 돈 좀 더 드릴 테니까 그 쪽으로 올라가 주세요」

난 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 요금을 선불로 치뤘어. 전경부대라는 말에 미간을 찌푸리던 녀석은 만원짜리를 내밀자 함박웃음을 짓더군. 우이동 회전분리대 앞에 이르자 녀석은 알아서 파출소를 끼고 계곡쪽으로 방향을 잡더군. 그곳이 지 무덤이 될지도 모르고 신이 나서 콧노래까지 부르며 말이야.

「더 올라가나요?」

전경부대 앞에 이르렀는데도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녀석이 물었어.

「조금만 더 올라갑시다」

그렇게 수 분을 더 올라가자 식당도 사람도 보이지 않더군. 이쯤이면 되겠다싶어서 차를 세웠어.

「잠시만 좀 도와주실래요? 저 밑에서 뭘 좀 가져와야 하는데」

계곡 쪽을 가리키고 있는 내 손 끝을 바라보며 녀석은 영 귀찮다는 표정을 짓더군. 난 만원짜리 한 장을 더 꺼내 녀석에게 건넸어. 그러자 흔쾌히 따라나서더군.

「무거운 건가보죠?」

계곡으로 향하며 녀석이 물었어.

「아뇨. 그렇게 무거운 건 아니에요. 딱 당신 무게 정도죠」

그와 동시에 난 녀석의 턱을 돌려찼어. 나무에 뒷머리를 쳐밖은 뒤 녀석은 데굴데굴 굴러서 계곡에 얼굴을 쳐밖더군. 난 녀석의 뒷덜리를 잡고 일으켜세웠어.

「나 기억 안나?」    

「도, 도대체 왜 이렇는 겁니까?」

「한달쯤 전 새벽, 압구정동 디자이너 클럽 앞에서 술 취한 대학생 하나 춘천까지 7만원에 데려다 주기로 한 적 있었지? 기억 나?」

단추구멍만하던 녀석의 눈이 당구공만해졌다.

「그, 그게 뭐 잘못된 거라도 있나요?」

내 주먹이 녀석의 미간 사이에 쑤셔밖혔고 녀석은 포물선을 그리며 공중으로 떠올랐다가 나뒹굴었다.

「몰라서 물어? 그게 뭐 잘못된 거라도 있나요?」 

난 안간힘을 쓰며 일어서려는 녀석의 옆구리를 걷어 올려 찼어. 녀석은 그대로 고꾸라지더니 소금뿌려진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더군. 숨이라도 넘어갈 듯 꺽꺽대면서 말야.

「자, 잘못했습니다. 제, 제가 그만 돈 몇 푼에 눈이 멀어서……」

겨우 숨을 쉴만해지자 녀석은 무릎을 꿇고는 불이 나도록 두 손바닥을 비벼대더군.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말야.

「몇 개나 유전자를 축출해서 미국으로 보냈나?」

「30개 정돕니다」

「한 개당 얼마나 받았지?」

「시, 십만원씩 받았습니다」

「크크. 내 목숨값이 겨우 십만원이란 말이지……?」

「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녀석은 이해가 않간다는 표정으로 땅바닥에 쳐밖고 있던 머리를 슬그머니 치켜들었어.

「닥쳐! 묻는 말에 대답만 해!」

「네, 네. 알겠습니다!」 

한쪽 다리를 치켜드는 시늉을 하자 녀석은 재빨리 고개를 떨구더군. 마치 경기들린 사람처럼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야.

「그 덕에 네 놈은 삼백만원 정도를 챙겼겠군」

「그, 그렇습니다」

「그쪽에서 왜 돈을 주고 유전자를 구했을까?」

「그, 그런 건 저도 잘 모릅니다. 그저 단지 메일이 들어왔을 뿐입니다. 유전자를 추출할 지원자를 모집한다고요. 그래서 지원을 했더니 유전자 추출에 필요한 기구들을 소포로 보내주더군요」

「추출한 셈플은 다시 소포로 보낸 건가?」

「아닙니다. 셈플은 추출한 다음날까지 신라호텔에 묵고 있던 그 쪽 사람에게 그때 그때 인계했습니다」

「수고비는 그 자리에서 받았겠군?」

「그렇습니다……」

「그들이 유전자 셈플로 뭘 했는지 아나? 사람을 만들어 냈어. 네 놈과 똑 같은 인간들을 복제해냈다구! 너 같은 놈들이 전 세계 각지에서 보내온 유전자 셈플 중에 500개가 태아로 둔갑됐어. 그리고 인큐베이터 안에서 모두 죽었지. 단 한 명만 빼고!」

「어, 어떻게 그렇게 잘 알고 계십니까?」

「내가 바로 그 한 명이니까!」

녀석은 잠시 멍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다가 기절하고 말더군. 싱거운 놈 같으니……. 난 물가에 솟아 있는 바위에 걸터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어. 그리곤 녀석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지. 유리 캡슐 속에 갇혀 있을 땐 반드시 녀석을 찢어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지만 사실 세상에 쳐 죽일 놈이 어디 이 놈뿐이겠어? 이 놈을 죽이면 유전자를 추출한 다른 놈들도 하나씩 다 찾아내서 죽여야 하잖아? 솔직히 이 놈들이야 뭘 알았겠어? 돈을 준다니까 옳다꾸나했을 뿐이지 유전자 셈플로 인간을 복제해낼 거라는 사실을 예상이나 했겠어?

이 놈들도 선의의 피해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 돈 몇푼에 꼭두각시 노릇을 한 셈이니까. 연구소 쪽 놈들이 진짜 나쁜 놈들이지. 된장! 그날 이 프로젝트와 관계된 놈들을 모조리 찾아내서 샌프란시스코 앞 바다에 수장시켜 버릴 걸.

녀석을 들쳐메고 도로쪽으로 올라갔어. 운전석에 녀석을 우겨넣고 문을 다 잠궜어. 인적이 드믄 곳이라 택시강도를 당할 수도 있으니까. 그리곤 주위를 살펴봤지. 아무도 보이질 않더군. 난 인수봉이 내려다 보일 때까지 날아 올랐어. 이 정도면 지상의 사람들 눈에는 띄지 않겠다 싶더군.

타라를 재워둔 모텔은 성북역 근처였어. 어차피 춘천행 열차를 타려면 그 쪽이 편할 것 같아서 말야. 녀석은 아직 꿈나라를 헤매고 있을까? 아니면 없어진 날 찾아 밖으로 나섰다가 길이라도 잃고 헤매고 있는 건 아닐까?

근데 어느 쪽으로 가야 되는 거지? 이 동네, 내가 제법 아는 동넨데도 하늘에서 보니까 영 방향감각 안 서네, 그려.


「헐. 이번에는 또 뭐야?」

사거리 근처에 이르자 차량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혼은 오른 편 골목으로 핸들을 틀었다. 그 때였다. 골목 안 쪽에 정지해 있던 승합차가 하야부사의 앞을 막아선 건.

승합차의 문이 열리더니 쇠파이프와 각목으로 무장한 한 무리의 사내들이 뛰쳐 내려 하야부사의 주위를 에워쌓았다. 승합차 뒤 쪽에 서있던 검은 색 벤츠에서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능글맞은 미소를 머금은 최 사장이었다.

「어딜 그렇게 급히 가시나?」

지난 새벽, 상기에게 최사장과의 미묘한 관계에 대해 전해들었다. 다된 밥에 코를 빠뜨리게 했던 것에 대한 앙갚음을 하려는 듯 보였다. 최사장까지 모두 아홉명. 그 중에 무장을 한 놈은 혼을 에워쌓고 있던 여섯 놈이었다.     

「피부가 뽀송뽀송한 거 보니까 어제밤에 푹 잤나 보구만. 난 한숨도 못 잤는데 말야!」

「그래서 피부맛사지라도 받게 해 달라는 건가? 내가 볼 땐 당신 피부는 맛사지 같은 걸로는 해결될 피부가 아닌 것 같은데?」

최사장의 눈썹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특유의 느끼한 미소도 종적을 감춰버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걸 보면 믿는 구석이 있나보군. 좋아. 어디 한번 두고 보겠어!」

그가 오른 손을 높이 치켜들자 사내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각자 들고 있던 무기를 혼을 향해 휘둘러댔다. 그와 동시에 하야부사를 밖차고 뛰어오른 혼은 사내들을 훌쩍 뛰어 넘어 최 사장을 호위하고 있던 두 사내의 안면을 가위차기로 가격했다. 무방비 상태였던 두 사내는 좌우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 떨어졌고 혼은 착지하자마자 용수철처럼 뛰어 올라 최 사장의 턱을 군화발로 올려찼다.

‘빠각’하고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최 사장은 그대로 앞으로 무너져내렸다. 등뒤쪽에서 무언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리를 숙여 각목을 비껴낸 혼은 사내의 안면에 군화 뒷축을 쑤셔밖았고 사내는 다른 사내 둘과 뒤엉킨 채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쇠파이프를 높이 치켜든 채 달려드는 또 다른 사내의 가슴을 파고든 혼은 그의 손목을 비틀어 쇠파이프를 빼앗은 뒤 무릎으로 낭심을 걷어 찼다. 단말마의 비명을 토해낸 사내는 아스팔트에 얼굴을 짓이겼다.

뒤이어 쇄도해 들어오던 사내들은 그제서야 상대가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한 듯 주춤주춤 제 자리에 멈춰섰다. 맨 손인 상대에게 벌써 보스를 비롯한 다섯 명의 조직원이 나가 떨어졌다. 더군다나 이제 상대의 손엔 쇠파이프까지 들려져 있었다. 사내들의 얼굴엔 전율이 어려 있었다.

사내들이 서로에게 선공을 미루는 사이, 혼의 쇠파이프가 등 뒤에 서 있던 사내의 목덜미를 강타했다. 그 틈을 타 세 명의 사내가 일제히 달려들었다. 혼은 쇠파이를 한 사내의 안면을 향해 집어 던진 후, 몸을 날려 왼편으로 쇄도해 들어오던 사내의 팔목을 비틀며 그의 등뒤로 몸을 숨겼다. 반대편 사내가 휘두른 각목이 혼에게 제압당한 사내의 정수리에 내리찍혔다. 사내는 그 자리에 쏟아져내리고 말았다.

적이 아닌 자신의 동료를 가격한 사내는 넋이 나간 듯 멍한 눈으로 자신의 손에 들려져 있는 각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혼은 몸을 날렸다. 허공에서 큰 원을 그린 후 상대의 관자놀이를 뒷축으로 가격하는 장면을 머리 속에 그리며. 하지만 그 순간 혼은 가슴에 엄청난 통증과 함께 오른 쪽 근육에 심한 경련을 느낄 수 있었다. 혼은 간신히 몸을 추스리긴했지만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자신도 모르게 그의 한 쪽 손은 가슴 부위에 가 있었다.

언젠가도 한번 이런 적이 있었다. 한 2주 쯤 전이었는데 헬쓰클럽에서 벤취플레스를 들다가 갑자기 가슴 부위에 통증이 오면서 몸의 오른 쪽 부위 근육이 마비되어 버린 것이었다. 벤취 프레스가 아니라 바벨이었으면 갈비뼈나 목뼈가 부러지는 대형 사고를 당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마비증세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지만 그 통증은 호흡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격렬했다.

「생각해보니 저 쓰레기들을 치울 놈 하나는 남겨둬야겠군」

혼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정색을 하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고 있었다. 만약 지금 상대가 공격해 온다면 그게 설사 유치원 꼬마라고 해도 혼은 결코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겁에 질려 있던 사내는 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가 의식을 잃은 동료들을 하나씩 승합차에 옮겨 싣는 동안 혼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넋을 놓고 싶을 정도로 극심한 통증과 맞서 싸워야했다. 하지만 몇 분에 불과한 그 시간은 하루보다도 더 길게만 느껴졌다.    


「빌어먹을!」

모텔로 향하던 난 갑작스레 눈 앞에 펼쳐지는 어떤 영상을 봤어. 춘천 소양강변도로 근처 어느 골목에서 내가 험상궂게 생긴 10여 명의 사내들에게 둘러쌓여 있는 그런 장면이었어. 비행을 멈춘 난 그 영상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고민에 빠졌어.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길 거라는 건지, 아니면 춘천에 있는 또 다른 내가 지금 그런 상황에 처해있다는 건지 분간이 서질 안았어.

난 두 손을 관자놀이에 대고 지긋이 눈을 감았어. 그리고 춘천에 있는 또 다른 나의 뇌파를 추적하는데 모든 신경을 집중했어. 잠시 후 마치 내가 현장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녀석의 모습을 지켜볼 수가 있었어. 그런데 상황은 이미 종료되어 버리고 말았더군. 녀석을 위협했던 10여명의 사내들은 각양각색의 포즈로 녀석의 발 밑을 뒹굴고 있었어. 크크, 자식……. 날 닮아서 싸움 하나는 조금 한단 말이야.

난 다시 몸을 날렸어. 아래로 타라가 잠들어 있는 모텔이 내려다보이더군. 난 모텔의 화장실을 떠올렸어. 그곳으로 공간으동을 하려고 말이야. 그런데 그 순간,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거야. 그렇게 아무 일 없이 끝날 거라면 왜 갑자기 녀석의 모습이 비춰진 걸까?

난 다시 비행을 멈추고 녀석을 떠올렸어. 녀석은 유유자적한 걸음으로 하야부사에 올라 여기저기에 널부러져 있는 사내 녀석들을 피해 어디론가 향해가고 있더군. 그런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녀석의 주위에 아주 묘한 기운이 서려 있더군. 아주 음울하고도 사악한 기운이 녀석의 몸을 둘러 쌓고 있었어. 아무래도 녀석에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어.

난 공간이동을 상상했어. 하지만 너무 먼 거리라 그런지 내 몸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더군. 여기서 춘천까지 거리가 얼마나 될까? 직선 거리로 따지면 한 50km쯤 될라나? 최대한의 스피드를 구사하면 2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겠군.

난 비행자세를 취했어. 그리곤 빛처럼 뻗어나가는 나를 상상했지. 긴 머리를 휘날리며 내 몸은 공간을 갈랐어. 하야부사의 최고속보다도 훨씬 빠른 스피드로 말이야. 이 정도면 시속 얼마나 될까? 500km/h 정도 될까? 아냐, 적어도 그 이상일 거야. 계속 이만큼만 유지할 수 있다면 20분은커녕 10분도 안 걸리겠다. 좀만 버텨라, 이 녀석아. 이 형님이 도착하실 때까지만!


「비, 빌어먹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고 마비도 풀리자 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툭툭 털고 일어나 하야부사를 출발시켰다. 산으로 막힌 골목에서 좌회전을 해 또 다른 골목으로 접어 들려는 즈음, 하늘을 올려다 보며 혼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검은색 롱코트를 걸친 금발의 서양인 하나가 50미터 쯤 상공에서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내려다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혼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기억이 있었다. 바로 오늘 새벽의 일들이었다. 

지글로라는 지구인의 먼 후예를 구하기 위한 두 명의 기드온 전사들과의 죽음의 레이스, 배후령을 지날 즈음 출현한 덤프트럭과 기드온 전사들과의 정면 충돌, 소양호 바닥에 가라 앉아 있던 우주선 속에서 치료를 마치고 돌아온 지글로가 증언한 그 엄청난 사건들…….   

「그, 그럼 그게 꾸, 꿈이 아니었단 말야……?」

느닷없이 출현한 또 다른 존재는 혼에게 의식의 저편에 묻혀져 있던 기억들을 되살아나게 하는 자극제 역할을 했다.

「그런데…… 쟈는 뭐하자고 절케 버티고 있는 겨?」

그와 동시에 가만히 내려다 보고만 있던 금발 사내의 오른 손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혼은 그가 결코 자신을 이롭게 할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닐 거라고 짐작하며 재빨리 하야부사의 오른 손잡이를 감아쥐었다.

“콰쾅!”

사내의 오른 손에서 출수된 에너지 파는 혼의 왼쪽 어깨를 스친 후 아스팔트 바닥에 부숴져내렸다. 햄머로 내려친 듯한 통증과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에 혼은 핸들을 잡고 있던 왼손을 놓치고 말았다. 하야부사가 왼쪽으로 기울어져갔다. 하지만 혼은 반대편 핸들을 힘껏 움켜쥐며 차체를 바로 잡은 후 오른 쪽 손잡이를 바짝 말아 쥐었다. 하야부사는 광포한 엔진음을 토해내며 공간을 꿰뚫었다.

골목 끝은 대로와 연결되어 있었고 차량들의 움직임도 더뎌 보였다. 그곳으로 나갈 순 없었다. 얼마 가지도 못한 채 녀석의 손에 당하고 말 테니까. 게다가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불똥이 튈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그러다면 소양강변 도로 쪽으로 되돌아가야한다는 얘긴데 그 쪽 역시 도로공사 때문에 번잡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차량들에 행인들까지 붐비는 대로보다는 강변도로 쪽이 엉뚱한 피해자를 발생시킬 가능성은 현저히 낮을 테니까.

강변도로 쪽으로 되돌아가려면 다시 한 번 좌회전을 해야했다. 혼은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얹으며 하야부사를 왼쪽으로 바짝 눞혔다. 그리고 기드온 전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손 끝에서 뿜어져 나온 불덩어리가 혼의 옆구리에 작렬했다. 혼은 공중으로 솟아올랐다가 축대에 날아 떨어졌고 주인을 잃은 하야부사는 아무렇게나 땅바닥을 뒹굴었다.


멀리 소양강변도로가 보이기 시작했어. 난 서서히 고도를 낮추면서 더욱 더 속도를 끌어올렸어. 그 불길한 느낌이 바로 녀석의 코 앞에까지 들이닥쳤음을 느낄 수 있었거든.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막 검은 코트를 두른 어떤 놈의 공격에 만신창이가 된 채 나자빠지고 있었어. 빌어먹을! 내가 한발 늦고 만 거야. 난 녀석을 공격한 검은 옷을 입은 놈을 향해 사력을 다해 돌진해갔어.

놈은 그제서야 눈치를 채고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나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경이적인 스피드에 놀라 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입만 쩍 벌리고 있더군. 난 멋지게 녀석의 턱을 720도 돌려차기로 한방 먹여주고 싶었지만 주체할 수 없는 속도 때문에 이미 놈의 가슴팍을 관통하고 지나가 버리고 말았어. 뽀다구 안 나게시리…….

땅바닥에 착지해 내린 나는 놈이 있던 허공을 올려다 봤어. 그 순간 놈의 몸은 폭격을 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굉음과 함께 산산조각나 버리더군. 난 내 몸 주위에 에너지 쉴드(shield)를 형성했어. 하늘을 붉게 물들인 놈의 육신의 파편들이 쉴드를 두들긴 뒤 땅바닥으로 추락했어.

난 쉴드를 거둬내고는 축대 옆에 널부러져 있는 또 다른 나에게로 다가갔어. 쯧쯧……. 옆구리가 절반쯤은 녹아들어가 내장이 다 드러나 보였고 축대에 부딪힌 머리는 두개골이 완전 으깨져서 도저히 눈을 뜨고는 못 봐주겠더군. 완전히 누군지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되어 버렸어. 조금만 빨리 도착했어도 살릴 수 있었는데…….

도대체 지난 한달 사이에 녀석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녀석은 조직 폭력배들과 일전을 벌여야했고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놈에 의해 죽음을 맞아야 했을까?

난 녀석의 가슴에 오른 손을 얹고 두 눈을 감았어. 그리곤 녀석의 최근의 일들을 녀석의 시각에서 역순으로 되집어 갔지. 방금 전 정체불명의 에스퍼에게 추격을 당하던 일, 그리고 조직폭력배들과 한데 뒤섞여 드잡이 질을 하던 일들을 말이야.

그랬더니 곧 녀석이 격었던 일들이 한 편의 영화를 보듯 내 뇌리 속에서 재현되더군. 아니, 재현된다기보다는 녀석에게서 나에게로 입력된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겠군. 녀석이 한 달간 격은 일들이 내게 입력되는데는 불과 1분도 채 걸리지 않았어. 단 1분 동안 녀석의 한 달간의 기억들이 내게 빛처럼 빠르게 흡수된 거야. 헐…….

그 중에 내가 주목한 건 제이슨의 말처럼 그에게 마비가 오기 시작했다는 것과 지글로라는 정체불명의 사내가 내뱉은 미래에 대한 엄청난 사실들이었어. 지글로의 말은 과연 사실일까? 모든 인류가 두 신에 의해 종말을 맞게 되고 요행히 살아 남은 몇몇 지구인들이 로이라는 혹성으로 이주해서 수 천년 동안 맥을 이어오고 있다는 게……?

나중에 그를 한 번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일단 이 불쌍한 녀석 좀 묻어 줘야지. 난 하야부사로 다가갔어. 녀석은 좀 긁혔을 뿐 크게 다친 곳은 없더라구. 녀석을 길 가쪽에 일으켜 세운 후 키를 뽑아냈어. 그리곤 다시 또 다른 나에게로 다가가 녀석을 어깨에 둘러 맸지. 그리곤 300미터 쯤 상공으로 날아 올랐어. 소양호 쪽 어딘가에 묻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 녀석이 좋아하는 강도 있고 산도 있으니까…….


「한국은 정말 아름다운 나라군요??. 기대했던 것 이상이에요」

춘천으로 향하는 열차 안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타라가 말했어.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가 녀석의 감탄사에 나도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어. 철길을 따라 북한강이 늘어서 있었고 초록으로 뒤덮인 크고 작은 산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지.

늘상 봐오던 것들이라 그런가? 감탄사가 터져 나올 만큼 멋지거나 아름다울 것도 없는 평범한 풍경일 뿐이었어. 솔직히 외국 영화들 봐봐. 어디서 찍어도 영화가 되잖아. 거기에 비하면 우리나라 경치는…… 뭐 내세울만한 게 있나? 걍 평범하고 무난한 정도지.

난 그냥 타라의 찬사를 인사치레로 받아들였어. 집들이 초대받았을 때……

「이런 게딱지만한 집에서 어떻게 살아?」

「벽지랑 장판, 새로 한 거 맞아?」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아무리 좁고 지저분해도……

「둘이 살긴 딱이네!」

「반지하라 여름엔 시원하겠는 걸?」

……그러쥐. 아마 타라도 그런 심정이었을 거야. 그녀의 계속되는 감탄사를 외면한 채 난 다시 생각에 잠겼어. 이제부터 뭘 어떻게 해야할 지에 대한 정리가 필요한 때라고 판단됐거든.

난 녀석을 소양호가 내려다 보이는 산 중턱 양지 바른 곳에 묻어줬어. 녀석을 묻는데 꼭 내 자신을 묻는 것 같아 눈물이‘핑’돌더군. 녀석을 다 묻고 나서 착잡한 마음에 담배 한 개비를 태우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 녀석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녀석의 죽음은 나에게는 큰 다행이라는 생각……. 언제까지 초능력을 이용해서 도둑질한 돈으로 여관을 전전하면서 살 순 없는 노릇이잖아. 그리고 철저히 나 자신을 숨기며 살아야 했던 것도 고민거리였는데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야. 그리고 어쩌면 녀석을 위해서도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몰라. 점점 더 통증과 마비증세가 심해지다가 결국엔 밥 숟갈 하나 들지 못하게 될 텐데 그렇게 살아서 뭐해? 내가 잘 아는데 아마 녀석은 자기가‘루게릭’병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되는 그 순간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거야. ㅠㅠ

그나저나 앞으로 어쩐다? 지글로라는 녀석의 말이 사실이라면 불과 5개월 후에 지구가 멸망할 건데 그 동안 뭘 해야 미련이 남지 않을까? 참! 그 녀석 말로는‘로이 파멜라’라는 사람과 그 일행이 거대한 우주선을 이용해 살아 남는다고 했지? 그 인간들을 찾아가서 나도 좀 태워달라고 사정할까? 안 통하면 초능력을 이용해서 협박이라도 해 봐? ^^;;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