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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가는 길을 자랑하지 말라!

참돌 |2003.06.05 00:57
조회 370 |추천 0

어느새 그녀가 떠난지 60일이 지났다.

이렇게 세월은 빠른데 상처가 아무는건 더딜까!

 

우린 4년전엔 서로가 넘볼 수 없는 사이였다.

그녀는 공업사를 하는 잘 나가는 남편과 함께 딸 둘을 가진

어엿한 가정 주부였고 나는 이혼 3년차 홀애비였었다.

그녀가 내가 일하는 주유소에 기름을 넣기 위해 왔을때 이

상하게 관심이 갔다.

노란머리와 갸름한 몸매, 그러나 얼굴은 화장발이 안받아서

인지 몹시 피곤해 보였다.

청바지뒤에 핸드폰을 쑤셔넣고 그녀는 스스로 주유를 하며

주유소 사장인 형님과 농담을 주고 받고 있었다.

'도대체 저 여자는 누굴까?'

그리고는 한동안 잊어 버리고 말았다.

 

교회에서 1999년 봄에 야유회를 갔다.

산꼭대기에 몇몇 교회가 모여 야유예배를 드리러 갔는데

그녀가 보였다. 개량한복을 입고 나온 그녀는 오후 오락

시간에 눈에 확 들어올 만큼 관심을 끌었다.

'아! 교회에 다니고 있었구나!'

왠지 말이라도 걸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었지만 그럴만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몇 일 후 나는 형 집을 나와 과자와 잡화를 동네가게에 납품

하는 도매상을 인수했다.

한 참 일을 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안녕 하세요? 저 한소희(가명)예요.

저희 집에 에프킬라 한 박스만 갖다 주세요."

난 단번에 그녀의 목소리를 알아 볼 수 있었다.

왠지 모를 반가움과 설레임이 마음속에 일렁이고 있었다.

"네. 곧 갖다 드리겠습니다."

근데 막상 물건을 가지고 나가는데 그녀의 집이 어딘지 정확

히 알 수 없었다.

대충 짐작을 하고 있던 공업사를 찾아 갔다.

그녀가 있었다.

"빨리도 오셨네요. 이 쪽 창고에 내려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녀가 돈과 함께 박카스를 한 병 갖다 주며 말했다.

"사업 잘 되세요?"

"뭐 이제 시작하는 거라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바쁘긴 합니다."

그녀의 공업사엔 몇몇의 남자들이 다방 아가씨를 불러다 놓고

농을 즐기고 있었다.

누가 그녀의 남편인지 알아 볼 수 없었다.

남자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수고들 하라고 바로 돌아왔다.

 

사업에 바빠 정신없이 뛰고 있던 그 해 가을에 뜻밖의 소문이

떠돌고 있었다.

"거 만파교회(가명)  한소희씨가 이혼했답니다."

난 그 와중에도 별로 신경이 쓰이지도 안았고 또한 믿기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그녀가 내 친구가 운영하는 맛사지샵에 동생과

함께 나타났다.

잠깐 친구 샵에 갔었는데 그녀가 초췌한 모습으로 들어설때 몹시

이상한 어색함이 흐르고 있었다.

그녀가 그런 어색함을 깨고 말을 건네왔다.

"사업 잘 되세요?"

"글쎄요. 뭐 그저 그렇습니다."

내 사업은 바쁘기는 했지만 해 보니까 이게 아니다 싶을 정도로

몸만 고달프고 수입은 적어 자칫하면 빚덩이에 눌릴만큼 위기에

직면해 있을 때였다.

"나 좀 도와줘."

친구가 하는 말에 나는 뭘 말하는지 몰라 당황했다.

"여기 한소희 사모님 발 좀 매어 달라고."

기계에 발을 고정 시키는 일이었는데 내게 친구가 부탁을 하여

그녀의 발을 잡고 기계에 붙들어 맸다.

그녀의 발은 몹시 가냘프고 약해 보였다.

"꼭 붙들어 매니까 알아서 하십시요."

웃으면서 말을 하자 그녀는,

"알아서 하세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로부터 몇일 후 그녀가 다니던 교회의 장로님께서 나와

한소희씨를 중매하려 한다는 소문이 들려 왔다.

전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좋기도 하겠지만 이상하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지역에서 버젓이 남편이 살아 있는데 결혼을 해서 산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소문이 있은지 얼마후 가을 야유회가 교회에서 있었다.

그녀가 보였다.

양산을 받쳐든 그녀옆에 어떤 희멀건 남자가 함께 붙어 다니고

있었다.

'저 남자는 누구일까? 남편일까?'

남편은 아닌것 같았다.

그녀와 눈이라도 마주쳐 보고 싶었으나 그녀는 그 남자의 곁을

종종 따라 다니다 결국 그날은 가고 말았다.

몇 일후 그녀가 경기도 어디에서 가족들만 참석한채 결혼식을

올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참 싱겁기도 하고 왠지 모를 아쉬움도 들었다.

 

나는 끝내 인수했던 사업을 포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혼자는 할 수 없는 사업임을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내가 외부에서 활동을 하면 안에서 정리를 해 줘야 되

는데 그럴만한 자원을 확보할 만한 상황이 안 됐다.

맘만 같으면 우울증이 있는 여동생이라도 쓰고 싶었지만 녀석

은 그럴만큼 준비가 되어 있지도 못했다.

사업을 딱 정리하고 났더니 빚이 순간 몇 천이 쌓여 있었다.

1년 반만에 난 돈을 써 보지도 못하고 빚을 진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너 바보 아니야?'

난 스스로 되물었다.

'그래. 난 바보야.' 답이 나왔다.

 

그 순가부터 나는 마치 무덤을 파는 것 같은 시간들을 채워 왔다.

의욕적으로 뒤이어 뛰어 들었던 우유배달 사업은 중도에 지친데다

자동차 사고로 허무하게 무너져 버렸다.

다시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목포에 사무실을 내고 컴퓨터 판매를

시작했다.

첫 느낌이 아주 좋았다.

본사 보증금도 얼마 되지 않아서 카드를 가져다가 500만원을 끊어

줬다.

그러나 이게 함정이었다.

불과 6개월이 채 되지 않아 회사가 삐걱이기 시작했다.

회사를 살리기 위해, 아니 구겨진 자존심과 무너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하루가 멀다하고 서울과 목포를 오르 내렸다.

그러나 결국은 몇 백억이 넘는 돈을 꿀꺽 삼킨 사장의 예정된 연

극에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빚은 이제 감당하기 버겁다고 느낄만큼 늘어나 있었다.

A/S 기사와 경리 아가씨를 눈물로 보내고 사무실을 정리하고 고향

으로 오는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당장 살기 위해 광고를 보고 충청도 어느 지역의 외판사원으로 취

직을 하였다. 그러나 그 쪽일도 무지 어려워 한달만에 목포의 모

목사님의 콜을 받고 갓 창업한 회사의 기획실장으로 캐스팅이 되었

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가닥이 잡히고 미래가 보이기 시작했다.

고진감래라! 그런 마음이 들었다.

정말 새내기 회사를 살리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기 시작했

다.

유기농과 건강식품과 선교.

내 마음에 딱 드는 컨셉이었다.

홍보를 위해 전국투어를 계획하고 봉고차를 운전하고 나섰다.

서울, 대전, 대구, 광주, 그리고 여수를 향하였다.

여수 모병원은 천연치료로 유명한 곳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병원 식당으로 들어선 순간 난 눈을 의심하지 않

을 수 없었다.

그녀, 한소희씨가 앉아 있었다.

"어? 여기는 왠 일이세요?"

깜짝 놀라 묻는 말에 그녀가 오히려 되물었다.

"아니, 집사님은 여기 왠 일이세요?"
"네. 저 저희 회사 홍보하러 왔습니다."

"그러셨군요. 멀리 오셨는데 좀 기다리세요.

제가 식사 준비할께요."

모두들 식사가 끝난 후라 다시 밥상을 차린다는 것은 고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룰룰랄라 노래를 부르며 밥상을

차려서 내어 놓았다.

밥을 먹으며 몇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떻게 여기 계세요?"하고 묻자 그녀는,

"여기에 취직하게 되었어요."라고만 말을 하였다.

분명 경기도에 있어야 할 그녀가 다시 헤어졌단 말인가?

더이상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그녀가 측은하게 느껴

지는 순간이었다.

 

회사가 서서히 정리정돈이 되면서 매출이 늘기 시작했다.

두 명의 여사원이 있었던 회사가 8명의 여사원과 3명의 남자사원이

활기차게 움직이는 회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입사 3개월 이후부터 목사님의 목소리에 왠지 모를 거리낌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문제가 임금 문제라고 눈치가 보여졌다.

나는 정식으로 얘기를 하면 상황에 따라 맞추어 나가리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부러 더이상 얘기를 꺼내지는 않고 있었는데 6개월차

가 되면서 아예 까놓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그 것이 계기가 되어 최고의 직책에서 하루 아침에 쫒겨나는 신

세가 되고 말았다.

"허허. 참 이상도 하군."

그랬다. 그 때는 웃음밖에 안 나왔다.

누구를 원망하고 싶지도 않았었다.

왜 이런 일이 나를 또 괴롭히고 있는지 그게 답답했었다.

모든 미련을 버리고 집에서 틀어 밖혀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했다.

한 달을 백수로 보내고 있을 무렵 타교회의 여집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업을 같이 하자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만나보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당장 뛰어가 그 분을 만나서 얘기를 나누었는데 다단계 사무실을 운영

해 보자는 것이었다.

난 교육을 맡으라는 것이다.

'이런!' 순간 실망했으나 번쩍 스쳐 가는게 있었다.

"예. 사장님. 우리 그러지 말고 진짜 사업을 해 보시죠."

"어떤 사업 말입니까?"

난 목포에서 하던 사업을 소상히 설명하면서 우리 지역에도 한 번 해보

는게 어떻겠느냐고 제의를 했다.

얼마나 확신에 차게 설명을 조목조목 했던지 그 분이 그 자리에서 동감

을 표시하면서 내게 착수금이라며 당시 내게는 큰 돈을 내 놓는 것이었다.

그렇게 또 삽을 들고 무덤을 파는 일에 뛰어 들기 시작했다.

 

사업구상한지 1개월만에 오픈행사를 가졌다.

여직원 두 명을 고용하고 40평 매장에 물건을 채우고 대대적인 건강세미

나를 읍사무소에 유치하고 지역에서 유명한 박사님을 모셔 오는등 일은

순조롭게 풀리기 시작했다.

오픈한지 3일후 전화가 한 통 왔다.

"집사님, 안녕하세요. 저예요. 저 한소희."

"어? 안녕하세요. 왠일이세요?"

"집사님. 사무실 내셨다면서요?"

"아니요. 제가 낸게 아니고 저는 여기 기획실장일 뿐입니다."

"거기 혹시 맛사지 하는거 맛나요?"

"네. 그렇습니다만."
"그래요. 저 놀러가도 될까요?"
"네. 아무때나 오세요."

"일요일날도 근무 하나요?"

"네. 저는 근무할 겁니다."
"네. 알았어요. 수고 하세요."

일요일 오후 난 매장에 앉아 사무정리를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문이 열리더니 그녀가 나타났다.

아직은 어린 천방지축 딸을 데리고 말이다.

여수에 있을 사람이 이 곳엔 또 웬말!

그녀는 혹시 사람을 채용하느냐 물어 왔다.

사람은 충분 하였지만 의욕적으로 사업을 주도하고 있었던

나는 가능하다면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내가 주인도 아닌이상 함부로 말을 할 수

는 없었다.

"글쎄요. 뭐 아직은 꼭 필요하지는 않습니다만..."

난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저 돈을 안 받아도 좋거든요. 우선 여기에 좀 다녀도 될까요?"

참 이상도 하셔라.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돈을 받지도 않고서 다니겠다고? 그녀가 경제력이 어느 정도인이는

모르지만 이해는 안 되었다.

"그래요. 정 그러시다면 우선 다녀 보세요. 또 나중에 사업이 잘 되면

기회가 있을 수도 있겠죠."
참 이상한 일이다.

난 그녀를 그렇게 말하고 보내놓고 어느 순간 경계하고 있었다.

도대체 그녀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다음날 부터 아예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어찌된 일이냐고 물어왔다.

사실대로 얘기했더니 의아하게 생각하는건 마찬가지였다.

몇일후 그녀에게 한 밤중에 전화가 왔다.

"집사님. 저예요. 오늘밤에 시간있으세요?"
"네. 그런데 무슨일로...?"

"네. 저 사실은 얘 때문에 죽겠어요. 집사님은 혼자 아이들을 키우고

계시니까 제 마음을 알거 같아요. 저 상담 좀 하고 싶어요."

"그러세요. 어떻게 하죠?"

"제가 차를 가지고 집사님 댁으로 갈께요. 바다에나 나갔다 왔으면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20분 후 정확히 동네에 도착 하였다.

그녀의 검은색 중형차레 동승하여 우린 15분 거리의 바닷가로 나갔다.

무르익은 가을밤의 날씨는 낭만스러운게 아니고 을씨년스럽고 추웠다.

난 얇은 옷을 입고 대충 나온터라 바닷가의 갯돌들이 얼음처럼 느껴

졌다.

"저는 마음이 답답하면 자주 바닷가를 찾아요.

제가 바다가 고향이라서 그런가 봐요."

"네. 그런데 어찌된 일입니까? 덜덜덜"

"우리 아이가 몹시 속을 상하게 하는데 정말 속이 터져 죽을것만 같아

서 집사님을 불렀어요. 괜챦으세요?"
"아니 저는 괜챦습니다만 그렇게도 힘 드시나요?"
난 사실 아이들과 관련된 분야에서 오랜동안 일을 해 왔기 때문에 몇

십명의 아이들을 끌고 다니는것은 문제로 보이지도 않았던 터였다.

그래서 아이 하나 가지고 그러는게 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문제라면 저 한테 맡겨 보십시요.

사실 저는 다시 결혼한다면 세 명 정도는 아이들을 더 낳고 싶은 사람

입니다."

"누구 죽일일 있으세요? 호호호."
그녀는 그렇게 웃었다.

차가운 밤바다는 낭만도 즐거움도 가져다 주지는 못했지만 이상한 감

정은 가슴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너무 추운 날씨에 그대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그 다음날부터 아침에 그녀로부터 문자메세지가 날아 오기 시작했다.

내가 친한 동료에게 그런 애길했더니 내가 그녀에게 찍힌 거라고 말

을 하기 시작했다.

'과연 그럴까?' 난 반신반의 했지만 난 어느새 그녀에게 빠져들고 있

었기 때문에 그녀가 함께 나머지 인생을 동행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

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녀의 문자메세지가 점점 잦아지더니 밤에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몇 시간이고 이런저런 문제를 가지고 얘기를 했다.

그리고는 꼭 뒤에 덧붙이고 전화를 끊었다.

"집사님. 저 그냥 전화 드리는 거예요. 집사님이 심심해 할까 봐서요."
그녀의 얼굴은 다정다감한 편은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난 그녀에게 빠져 들었어도 그녀는 내게 결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거의 한 달이 순식간에 지나고 난 이제 밤에 오는 그녀의 전화로 만족

할 수 없었다.

"한소희씨. 저 부탁이 있는데요."

"뭔데요?"
"저 지금 소희씨를 보지 못하면 죽을것만 같습니다.

저 지금 소희씨를 보러  가고 싶은데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의외로 그녀의 반응은 빨리 왔다.

"알았어요. 조심히 오세요."

난 뛸듯이 기쁘다는 생각도 할 틈이 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약 30리 거리의 길을 쏜살같이 달려 갔다.

밤 11시가 넘은 시간, 그녀가 어둠 속에서 나타났다.

먹구름이 잔뜩 낀 밤이었다.

"소희씨."

"이렇게 빨리 오셨어요? 오래 있으면 안돼요. 빨리 할말만 하세요."

"소희씨. 저 소희씨를 납치해 갈 겁니다. 이제 겁을 먹으세요."

"그럴 능력 있으세요?"

"능력요? 하하하.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아니다 싶으시면

뛰어 내리세요."

난 차를 몰아 아주 깊은 산골로 향했다.

정적이 주위를 싸고 있는 산속에서 그저 난 그녀를 바라만 보고 있

있었다.

나이 40.

중년의 멋을 한 껏 부리고 있을 그녀의 삶이 왠지 애달퍼 보였다.

"소희씨. 눈을 감아 봐요."
"왜요?" 하면서도 그녀는 어둠속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난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안고 의자의 레바를 잡아 당겼다.

"왜 그러세요?"

그러나 그녀는 반항하지 않았다.

"저 키스하고 싶어요. 꼭 키스하고 말 겁니다."

"그러시면 안돼요."

그녀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난 그녀를 뉘이고 입술을 훔치고 말았다.

뭐라 말할수 없는 행복감이 서른 여덟의 가슴을 적시고 있었다.

"내가 누나의 입술을 훔쳤군요."

그녀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소희씨. 사실 저 어느때인가 부터 사랑하고 있습니다.

함께 살 수 있다면 참 좋겠어요."

"그런말 하지 말아요."

"소희씨. 아마도 이 번 만큼은 제 마지막 사랑이 될 것 같아요.

소희씨가 제 인생의 마지막 사람이 되어 주세요."

그녀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뭔가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아예 그녀에게 못을 박고 작업에 들어 갔다.

그녀는 이제 회사의 정식사원이 되었고 사랑도 깊어져 가고

그녀는 함께 인생을 하겠노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참돌씨.

전 가난하게는 못살아요."

그 땐 그 이야기의 핵심을 모르고 있었다.

 

어느날 밤 그녀를 만났는데 그녀가 이제 더 이상 만나지 말자고

얘기를 했다.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여자의 마음이 갈대라지만 정을 몽땅 주던 사람이 한 순간에

그만 두자니.

그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어느날인가는 일찍 퇴근을 한다기에 보내 주었더니 그녀는 다른 남

자와 선을 보고 있다고 소식이 전해져 왔다.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내 어려운 경제사정이 그녀의 결정을 번복하게 만든 것이라는 동료

의 말이 들려왔다.

그러나 난 포기할 수 없었다.

내 주위의 동료는 포기하라고 내게 종용했다.

대신 나를 정말로 좋아하는 다른 사람이 있으니 그 쪽을 택하라고

말을 했다.

그랬다.

함게 일하는 사람중에 여자 시인이 있었다.

그녀는 홀로 살아가고 있는 30대 였는데 나와 함게 시간을 갖기를

원하고 있었으나 난 냉정하게 거절을 하곤 했었다.

오직 한마음을 품어야 하는것이 이혼후 나의 삶의 철학이었다.

어느땐가 그녀가 매내게 말을 걸어 왔다.

"실장님. 어떤 일이 있어도 한소희씨만 좋아 할겁니까?"
"네. 그래요. 오직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유유자적하듯이 선을 본 남자와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

다.

가슴은 타고 있었으나 행동은 냉정하리 만큼 차분하게 하고 그녀

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방법들을 찾고 있는데 내 동료가 자기가

도움이 되어 주겠다고 하더니 그녀와 나의 만남을 만들어 내기 시

작했다.

처음에 거부하고 반대하던 그녀가 60일이 지나고 완전히 마음을

돌려 왔다.

우린 일사천리로 결혼날짜를 잡기에 이르렀다.

만난지 5개월만에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고 그녀와 난 상상치도

못했던 많은 하객들의 축복속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집도 장만을 못할 만큼 생활이 어려웠으나 일단 마음을 잡고 앞

으로 나가다보니 하나씩 하나씩 일이 해결되기 시작했다.

멋진 기와집도 얻게 되고 아이들로 하나같이 데려와 여섯명의

대식구가 한지붕 한가족을 이루게 된 것이다.

신혼여행인지, 구혼여행인지를 우린 사업상 날짜를 줄여 1박 2일

로 줄이고 가까운 도시로 나갔다.

하룻밤은 너무나도 짧았다.

내 안의 모든것을 그녀에게 주어도 아깝지 않을만큼 그녀가 고맙고

사랑스러웠기에 후회하지 않을 만큼 멋진 밤을 보내었다.

집으로 돌아 오면서 난 그녀의 형제들 집을 방문하기를 원했다.

챙피하다며 결혼예식에 참석하지 않은 형제들의 마음을 녹여 보자

고 제의를 했으나 이상하게 그녀는 동의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얼굴이 어두워져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으나 그녀는 앞으로 살아갈 일이 꿈만 같다는 말

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뭔가 고민이 많았었다.

그녀만의 고민이.

나같이 단순한 동물은 알기가 어려운 그런 고민들이 있었다.

결혼 사흘후부터 그녀의 태도가 싹 달라졌다.

남자가 아니라는둥, 모든 남자들은 이 정도면 여자가 무엇을 원하

고 있는지를 안다는둥....

그리고 한 달 후, 아니 정확히 26일 후 그녀와 함께 몹시도 싸웠다.

어느 순간인가 화가 난 그녀의 손이 날아왔다.

좁은 차 속에서 나도 머저리 같이 그녀의 뺨을 치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날 이후로 떠날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빌어도 사정해도 소용이 없었다.

"넌 아무것도 없어."
그녀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그녀는 정말 떠났다.

몸만 아이와 함게 떠난터라 난 혹시 돌아오려니 했다.

그너나 난 중간에 그녀의 뒤를 추적하다 일이 꼬이는 일이 발생했

고 그녀는 전화로 고래고래 악담을 퍼붓다 끊어 버리고 말았다.

2주일이 지나고 난 그녀가 있는 경기도의 어느 사회복지 시설로 찾

아갔다.

그녀는 아주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무엇 때문에 왔냐고 몇 마디 하더니 급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그 날로 고향으로 내려온 나는 그녀의 숨결을 기억하며 집을 지키다

더 이상 외로움을 그리고 처절한 아픔을 참을 수 없어 본래 살던 노부모

님의 시골집으로 들어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

어느날 딸아이가 소리쳤다.

"아빠, 우리집 이사간다."

"무슨 소리야?"

"우리 살던 집 있쟎아. 사람들이 막 이삿짐 나르고 있어."

그럴리가.

집을 확인하러 갔더니 글쎄 깨끗이 청소까지 하고 본래 가져왔던 어마

어마한 짐들을 가져가 버리고 말았다.

그동안도 분노와 그리움이 교차되고 있었는데 그 날은 가슴에 넘치도록

분노가 솟아 올랐다.

그러나 아무 말도 말야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하며 오늘까지 살고 있다.

그녀는 몇 번의 결혼을 통하여 아마도 본능에 가까운 삶의 지식을 터득

한 것 같다.

살아야 할 지 말아야 할지에 대한 판단력이 뛰어 나다고 생각되어진다.

하지만 그녀가 지금이라도 내가 됐건 다른 사람이 됐건 한 번 정한 사

람이면 끝까지 갈 수 있는 정신을 소유했으면 하는 강력한 소원이 있다.

내게 그녀가 다시 돌아 오리라고 난 믿지 않는다.

그 동안 나의 삶은 몹시 황폐화되어 있었다.

그녀가 떠나고 나면서 직원들도 떠나 버리고 그녀와 꿈을 꾸며 외상으로

인수한 지금의 사업도 파리만 날리는 사업장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당장 회사를 정리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여자를 다시는 기억도 하지 마라고 한다.

그리고 목사님은 그런 사람이라도 용서하라고 한다.

그러나 난 이 회사를 떠날 수 없다.

어찌됐든 다시 살려 낼 것이다.

그 전에는 힘에 부치면 포기했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여자에 대해선 확신하지 못한다.

그녀는 돈이 없으면 못산다는 말을 주위에서 많이 했었는데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 나의 실수였다.

그러나 돈 보다도 내가 끝까지 인내하고 따뜻한 남자가 되어 주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더 지배적이다.

용서-이 세상에서 사랑하는게 어려울까, 용서하는게 어려울까?

가장 어려운게 사랑하는것이고 용서하는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내 마음은 용서해 주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

대화라도 잘돼서 깔끔하게 일이 정리가 됐다면 좋았으련만 헤어짐이라는게

그런것 같다.

단지 그녀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은 더 열심히 살아 감으로 삶의

역경을 극복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니까 혼자 사는것이 좋제!!라고 하시는 분들.

난 분명 반대한다.

우리의 삶은 어차피 도전과 성취와 실패, 기쁨과 슬픔으로 점철되어져 있다.

삶이 너무 힘들어 술을 마시고 싶을 때가 많은 사람들이 있고 죽고 싶은 생각

이 드는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술이 우리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해 주지 못하고 죽음이 모든것의

끝은 아니다.

아픔을 딛고서도 들풀은 새 봄에 꽃을 피워내고 홍수가 휩쓸고 간 뒤에도 여

전히 생명은 꿋꿋이 존재한다.

어떤 인간관계상의 문제들 때문에 혼자서 살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와 문제의 사슬속에서도 그 문제를 함께 풀어 가고자 하는 긍정적인 자세

를 가진 자들이 나라를 올바르게 유지하고 가정을 세우며 이성을 자극하고 궁

극적으로 행복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

실패의 아픔을 딛고 다시 서는 사람의 감동은 극대화 되어 찐한 향기를 몰고

올 것이다.

편하게 한 세상을 사는것 보다는 힘겹고 때로 버겁지만 보이지 않는 꿈을 위해

땀을 흘리고 눈물을 훔치면서도 끝까지 역주하는 사람들이 많아질때 이 사회

는 아름다워 질 것이다.

난 오늘도 다시 마음을 다 잡는다.

그래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인생의 아리랑 고개들을 한 많은 노래를 부르면서

라도 넘을 것이라고.

한(恨)도 풀다풀다 보면 흥겨운 가락이 된다는 사실을 선조들은 이미 알고 있

었다.

 

홀로 아픔을 간직하신 여러분들,

힘 내십시다.

그리고 이왕이면 밝게 적극적인 사고로 과거의 어두운 벽들을 돌파합시다.

물론 어려움도 있을 수 있겠고 성공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런 노력들을

역사로 남길 수 있는 삶은 이미 위인들의 삶에 결코 뒤지지 않는 멋진 전기

가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요.

좋은 남자분, 여자분 잘 만나서 잘 사십시요.

 

(제가 써 놓고 보니 워낙 졸필이라 우습기는 하지만 제 정성을 다해서 기록

했으니 좋게 생각해 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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