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이때까지 20년동안 항상 혼자 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혼자고 앞으로도 혼자가 될까 조금 두렵습니다.
태어나서 전 항상 불행한 아이였습니다.저 때문에 친모의 불행한 인생이 시작됐구여
중학교때까지 절 키워 주시던 할머니의 희노애락 인생두 제가 다 빼앗았습니다.
전 철이 없었습니다.그렇지만 제가 처한 현실 그대로를 받아들였습니다.
부모님의 이혼과 아버지의 여자를 수도 없이 만나 이별하는 그런 쉬운 인생을 제가 아버지께
짊어드렸지여...
그리곤 친척들의 잦은 폭행도 전 참으며 생활했습니다.
전 생각했지요 난 살아야 한다.
그래서 내가 불행하게 했던걸 다 재자로 돌려 놓겠다고여
그래서 겨우 친구들과 선생님의 도움으로 겨우 중학교 졸업을 마쳤습니다.
친척의 도박으로 항상 할머니는 돈을 빌리러 다니셨습니다.
그래서 전 할머니께 차비를 달란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도 지금의 새어머니를 만나셔서 저에게 따듯한 정한번 재대로 주지 않았습니다.
새어머니와 3년을 같이 보냈습니다. 어머니에게 잘보이려구 글짓기 상장도 타고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취미없던 육상에서 1등을 하여 상장을 가져왔을땐 웃음보단 냉정한 눈빛이더군여..
잦은 구타로 몸은 말이 아니었구 그나마 저랑 피를 나눈 남동생도 아버지에게 야구 방망이로 머리를 맞아 한동안 병원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갖은 고생을 하고 전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왔습니다.
결국은 전 동생에게 아무것도 해주지못하고 지금도 우울증 증세가 있는거 같습니다.
집이 싫고 내가 먹고살 돈이 없었기에 산업체 학교를 진학했습니다.
중학교 담임은 그래도 실업계를 가면 상위권에서 장학금 정도는 탈수 있다고 절 말리셨지만
전 먹고살 돈이 필요하고 동생이 조금 있으면 중학생이 되어서 돈이 마니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공장을 다니며 코피를 흘리며 공부를 했습니다.
항상 외박을 나오거나 외출을 하면 가족과 맛있는 피자를 먹으면 서 생일 파티하는 애덜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그보다도 제가 돈을 벌어 집에서 조금은 보탬이 되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고등하겨3학년이 되어서는 저를 위해 뭔가를 했으면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이제까지 재대로된 첫사랑 같은 느낌도 없이 구닥다리 리어카처럼 일만 하고 공부만 했ㄱ고
아무생각도 없었습니다.
대학을 진학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담임선생님도 많이 도와주셨고 같이 힘든 처지의 친구들도 많이 도와 주었습니다. 코피를 흘리며 고막이 터지도록 울릴는 기계속에서 전 단어를 조금더 외웟습니다.
우습지요?
남들이 말하는 80년대를 보시는것 같죠?
그때 비로소 공부를 하고 싶었습니다.
한번은 일을 하다가 쓰러졌을때, 심한 고열로 응급실로 실려 갔을때,
제 곁엔 누구도 아닌 가족도 아닌 한권의 낡은 연습장만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제가 그렇게 머리가 좋은 것두 아니구, 잘사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전 지금 이렇게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그런거여.
항상 혼자만의 공간이 잇고요
그런 독한 마음으로 3년동안 2천오백만원 정도를 벌엇습니다.
대단하다고 그러더군여 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동안의 수많은 눈물 들 땀이 저에게 이런 세상을 볼 수있게 해 주었습니다
항상 혼자서는 ㅅ세상을 살기 힘들어여
자긴 혼자라고 생각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건 정말 오차예여
보이진 않지마 누군가는 당신을 지켜볼꺼구 아직도 많은 인생의 희노애락이 남아잇습니다.
세상이 무섭고 지루하고 힘들땐 전 항 상 지난ㄴ날을 기억합니다
글구 세삼스레 웃지여............
지금은 서울보건대 응급구조과에 재학중이지여
전 누구보다도 절 도와준 사람들에게 어떤 보답을 할까 생각했었는데..
평생 남을위해 어려운 위험에 처해 있는 이세상 사람들을 위해 뛰고 싶어여
다시는 저보다 불행한 아이들이 없는 세상을 항상 저혼자만의 꿈을 꿉니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예여
낡은 지하단칸방도 당신의 사랑스런 운 것들인거 다아시죠?
꿈있는 모든 여러분들 항상 행복하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