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퉷~"
"꺄르르... 너므 심한거 아니니. 야미꼬? 불쌍하잖아~"
딩동댕동~
수업종소리가 울리자 나를 괴롭히던 야미꼬 패거리는 참새들마냥 교실에 들어가기 분주하다.
이젠 저인간들의 괴롭힘도 어느정도 익숙해져 가지만. 역겨운 말투와 냄새는 좀처럼 참을수가없다.
교실문이 지옥문처럼 보이는 애가 나말고 또있을까?
그냥 이렇게 복도에 서서 창밖을 바라본다...
자연의 이치는 참으로 묘하고 신기해서. 햇살도. 바람도. 한국의 그것처럼 포근하다.
햇살도 따뜻하고 바람도 살랑 살랑 불고. 마치 엄마의 손길처럼 나를 나른하게 만든다.
일본에 온지도 어느덧. 사년 째이다.
한국... 눈만 감으면 내가 살던 그곳이 눈에 훤하고 나와 뛰놀던 친구들의 목소리가 귓전에 맴도는듯하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 이대로. 저 바람에 실려 두둥실 한국으로 돌아갈수만있다면... 후훗...말도안되지만...'
"엄마~! 무슨 소리야? 말도 안돼! 난 시러시러~"
"아가. 엄마말도 들어야지. 그곳에 가면 너희 친척이 살고있어. 여기있어도 엄마는 이제 곧 떠날텐데.만약에... 만약에... 엄마가 없다면 널 돌봐주실 분이야.엄마는 니가 그곳에 가면 정말로 좋겠어. 마음이 한결 편할거같아."
"말도 안돼는 소리좀 하지마.내가 왜 갑자기 일본으로 가야해? 난 여기가 좋아. 내가 사는곳이 좋다고 그리고 엄마가 죽긴 왜죽어? 일년도 못산다고 했지만 엄마
벌써 일년이 모얌. 이년째 이렇게 숨쉬고있잖아. 왜그렇게 약한 말만하는거야? 싫단말야 흑..."
"수미야. 엄마 소원알지? 엄만 수미가 엄마 없이도 외롭지 않길 바래. 엄마말 잘듣던 우리 수미가 이렇게 심술 부리니 엄마가 힘들다...우리 수미"
그렇게 갑작스럽게 나에게 일본행으로 가야한다는사실을 말하고 엄마는 일주일만에 병원에서 세상을 뜨셨다.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시길 기다렸다는 듯. 일본에선 불청객이 나를 찾아왔다.
큰키에 약간은 흰머리가 희끗 보이는 듯한 회색머리. 그리고 굵게 패여진 이마의 주름. 선이 대체로 굵고. 나는 일본인이요를.이마에 새긴듯한. 분위기의 남자.
그는 아무 표정없이. 하나의 흔들림없이. 나에게 그가 나의 아버지라고 말했다.
우습지 않은가.
15년을 살아오면서 난 한번도 아버지를 그리워 해본적이없다.
가끔. 학교에서 학부모 모셔오기 모 그럴적에는 필요성이 느껴지긴 했지만.그것이 절실하지는 안았다.
엄마는 아버지의 자리도 거뜬히 채워 줄만큼 나를 사랑 해주셨다.
하지만 엄마는 한평생을 그리움에 사셨다. 엄마의 눈동자를 볼때면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것을 난 어린나이에도 대번에 알수있었다.
내가 아버지 없이도 살수있듯. 난 엄마 또한 그럴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엄마는 단한번도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사신적이없다.
그런데 그렇게 한평생을 그리워하던 이가. 이사람 이란말인가?
자기의 자식을.15년이나 떨어져 살던 자식을 보면서도 하나의 눈물도 없이. 흔들림없이.
자식과 부모사이의 그 끈끈한 무언가도 없이 그는 나의 아버지라고 말하고 있지않은가?
" 전 가지 안겠어요"
" 왜지?"
나는 그를 뚫어 져라 쳐다본다.
그는 나에게 왜냐고 묻고 있지만 표정 어디에도 나의의사가 궁금해 보이지는 않는다.
다분히 조건 반사이다. 내가 말하면 받아쳐주는 대답일뿐이다.
왜냐구?
왜냐구? 당신 나라 일본은 그러하단 말인가?
당신만 바라보던 엄마야. 한순간의 사랑으로 평생을 짊을 지고 사셨던 엄마라고.
당신이 오길. 언제나 당신이 엄마를 우리를 찾아오길 그렇게 기다렸는데.
어떻게 이제야 온거지? 엄마가 돌아가시길 기다린거냐고. 왜 난 단순히 당신의 혈육이니까 의무적으로 나를 데려가려는건가?
역겨울 뿐이다.
" 전 당신을 따라갈 이유가없어요. 난 한국인이고. 일본을 갈이유가 단 한가지도없다구요"
" 이유?"
그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진다.
나의 말이 그의 심기를 건드린것인가?
" 이유라... 이유따위가 필요한가? 너는 나의 딸이니까. 그이상 그이하의 이유도 없지. 굳이 설명 해야하는건가?
현명하게 자라길 바랬는데.소에루... 준비는 다 되었으니. 이젠 한국에 대한 미련을 남기지 말도록해라"
"소에루.교실로 안들어가고 여기서 모하는거지?"
문득... 사년전 을 떠올리고있던 나였다. 아직도 생생하기만 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히라야마 선생이 날보고있다.
그녀는 나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아마도 내가 혼혈이라는 사실을 안후부터 그녀의 행동이 바뀐듯하다.
그녀는 단정한 외모를 지니고있다. 깔끔하게 빗어서 틀어올린 머리. 그리고 그녀의 성격을 알려주듯 그녀는 항상 정장식의 옷을 즐겨입는다.
"몸이 좀 안좋아서요. 교실에 앉아 있으면 쓰러질거 같아요."
"그럼 조퇴하도록해. 어짜피 그러고 비실비실 있으면 수업에 방해만 될뿐이니까."
갑자기 얻은 행운이 아닐수없다.
교실에 들어가 대충 가방을 챙긴다.
" 어머 조퇴하니? 저런...소에루.아깐 미안. 난 이상하게 너만 보면 이놈의 입이 저절로 움직인다니까. 큭큭..."
야미꼬가 조롱하듯 말을 붙인다.
나는 더러운것은 눈을 가리고 잡소리는 귀를 닫으면 된다는것을 자랑스럽게도 일찍 터득하였다.
이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어 나는 뛰듯 교실을 나왔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을 향했다.
학교에서 나와 집으로 가자니. 차라리 학교에 남는것이 나을듯싶다.
생각없이 발을 옮긴다. 어디를 가야하나...
4년이란 시간을 보낸 일본이지만. 정말이지.정이 안가는곳이다.
처음 일본으로 가야한다는 사실을 알고 무작정 이질감을 느껴야만했다.
TV속에서 다큐멘터리식으로 일본이란 곳이 나왔을때. 난 일본인은 곤니찌와 와 아리가또를 남발하는 인간들일줄알았다.
허나 일본인들은 그리 친절하지않았다. 한국인이여서 그런것일까...
또한 만화책에서 봄직한 옷차림도 볼수없었다. 난 아직도 이곳은 버선신발에 기모노를 입고있을줄알았지만 우리가 한복을 입지 안듯 이곳도 이젠 그런것을
찾아볼순없다.
단순히 겉으로 보기엔 한국과 다름없다.
동양인 얼굴이 달라봤자 얼마나 다르겠는가. 하지만 정이 안가는 인종인것은 틀림없다.
난 일본인을 경멸하거나 비하하던 사람은 아니다.
단순히 그것을 느끼게 된것은. 내 아버지와 그리고 내 아버지의 정부.그리고 학교아이들 덕택이다.
무작정 돌아다니다가 난 나만의 아지트가 되버린 허름한 패가쪽으로 와버렸다.
이곳은 내가 일본에와서 가장 맘에 들어하는곳이다.
귀신이 나옴직할정도로 스산하지만. 그곳에 앉아서 한국을 회상하고 그리워하기엔 이곳만한곳이 없기때문이다.
마당이였는지 모를 곳에는 이젠 잡초만 무성하고 문짝은 낡아서 형태조차 알아볼수없지만. 넓은 창문은 그나마 시원스럽게 밖을 볼수가있다.
조명등도 없거니와 산뜻한 공기는 생각조차할수없다. 쾌쾌하기 짝이없는 공기가 집에 들어서자 마자 콧속으로 확 밀려온다.
발을 옮길때마다 삐그덕 소리가 절로난다. 좀있으면 무너질까 염려된다.
어떤이도 이곳이 무너진다해도 전혀 상관안할테지만 나는 이곳이 무너지면 나의 조금한 공간마져 잃어버릴까 걱정이 된다.
조심조심 발을 옮겨 창가로 간다.
나는 마치 내가 비운의 여주인공이 된마냥 넋을 잃고 밖을 바라본다.
내가 이곳에 와서 생긴 습관은 멍하니 창밖을 보기다.
어느것 내맘은 이미 한국으로 돌아가있다.
초등학교때부터 친구였던 민정. 보고싶다. 보고싶다는 말밖에는 없다.
그리고.
그리고... 연우. 오늘따라 더더욱 그리움에 사묻힌다.
그 시절엔 왜 그게 행복이였는지 깨닫지 못한걸까... 더 잘해줄것을. 더 안아 줄것을.
내가 왜 이곳에 와야만 했는지. 나는 도대체 이곳에서 무엇을 할수있는것인지.
물위에 동동 뜨고 저어도 저어도 섞이지 않는 기름처럼 나는 이렇게 일본이란곳에 뚝 떨어져 있는것인가...
문득 밖을 보니 컴컴하다. 저녁이 다됐나보다. 이크...
얼른 집으로 가야겠다.
딩동.
" 누구십니까? 어맛 소에루~ "
" ..."
" 이치카와상. 소에루가 왔네요. "
문을 열어주며 나에게 미소를 짓는 여자. 그여자는 마치 자기가 내 엄마라도 되는냥 날 반긴다.
그런게 그미소가 전혀 아름답지 못하다. 가늘게 뜬 눈하며 입주위에 작은 경련이 일부러 웃고있다는걸 여실히 보여준다.
그녀의 이름은 미카코.
그녀는 창백할정도로 하얀얼굴에 항상 빨간 립스틱을 칠한다. 그입으로 나한테 미소를 지으면 난 소름이 끼친다.
처음 이집으로 왔을때는 다른 여자가 집에서 주인행새를 했더랬다.
나이가 나보다 한두살 많아 보이는 여자였다. 나랑 같이 살기 민망하던지. 집을 나가 버렸고.
곧이어 이여자 미카코가 집에 와서는 마치 자기가 아버지의 마누라도 되는냥 굴고. 이젠 아에 내 엄마라도 되는것처럼 간섭을 한다.
이치카와.그게 내 아버지의 이름이다.
예상과 마찬가지로 그는 역시나. 모든지 독재적이고.자기 중심적이며. 바람둥이다.
하기사 스튜디어스였던 우리 엄마를 꼬득였으니 오죽하겠는가.
엄마는 한때 유능한 스튜디어스였고. 아버지는 사업차 한국을 자주 오가곤하셨단다.
아버지의 멋있는 모습에 어머니는 홀딱 첫눈에 반했다고한다. 덜컥 나를 임신하시고 그후로 아버지는 연락이 되지않았다고.
하여튼...
그렇게 여자 좋아하는 남자는 보다보다 처음이다.
항상 여자가 끊이지 않고. 저 미카코 외에도 밖에서 만나는 여자 줄을 이으리라.
조용히 서재에서 아마도 책을 보고계시겠지.난 나에게 미소짓는 미카코를 무시한채
서재로 가서 문을 두드린다.
똑똑.
"..."
" 저에요. 학교 다녀왔습니다."
" 지금이 몇씨지? 소에루? 학교를 파했으면 곧장 집으로 들어와야하는게 맞는 법 아니더냐?"
" 죄송해요... 그냥. 이런저런 생각하며 걷다보니 시간 가는줄 몰랐어요..."
" 이런... 똑똑 해지려무나.소에루. 넌 내 딸이야. 바보처럼 흐느적 거리는 꼴은 난 용납할수없다. 씻고 내려와 저녁먹거라"
곧바로 그는 눈을 돌려 책을 읽는다. 나의 대답도 듣지 않은채 말이다.
독재자...
서재에서 나와 곧바로 이층 내방으로 올라가서 침대에 누워버린다.
하루종일 나 자신과의 싸움에 이골이 난다. 울지 않기위해. 쓰러지지 않기위해.
" 소에루상. 저녁은?"
" 먹기시러요.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나한테 관심 끄세욧."
"... 미안. 난 그저. 쉬거라..."
무안한듯 나가는 그녀다. 나에게 호의적인 그녀지만 난 그녀다 이치카와 때문에 그러하다는걸 잘알고있다.
이치카와한테는 죽고 못사는 그녀이다. 내가 이뿔리 있겠는가. 어디서 굴러온줄 모르는 계집아이로 밖에는 안보일것이다.
항상 짜게 먹던 식습관도. 밍밍하게 조리되는 음식에 조금씩 적응은 되었지만. 난 여기로 온후에 8키로나 몸무게가 빠졌다.
똑똑.
" 이치카와상. 소에루가 저녁을 안먹네요."
" 억지로라도 먹였어야지."
" 어떻게 억지로 먹이겠어요. 어린 아이도 아닌걸. 그나저나 학교 생활이 걱정되요.혹시 따돌림이라도 당하는건 아닌지...
얼굴이 마니 야윈거 같거든요. 제가 한번 학교라도 찾아가 봐야하는거 아닐까요?"
" 흠... 마음대로 해. 학교 생활에 적응 못하는일은 절대로 있어선 안돼지."
"네에~ 내일 찾아가 봐야겠어염. 이치카와상 이젠 잠자리로..."
미카코는 고양이마냥 아릉 거리면서 이치카와에게 매달린다. 그런 미카코를 이치카와는 안고 침실로 간다...
' 아가... 수미야. 일어나야지'
으음... 엄마?
" 엄마~!"
휴...꿈이다. 시계를 보니 이제 5시다.
다시 잠들기에는 좀 어중간한 시각.
교복을 주섬주섬입고 가방을 들고 살금살금 현관을 나섰다.
봄새벽 공기가 서늘하고 차갑다. 그리고 상쾌하다.
이대로 학교를가기는 싫다.
나는 패가로 향했다.
패가안은 어두 컴컴하다. 하지만 무섭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않는다. 안으로 들어갔다.
항상 느끼던 쾌쾌한 곰팡이 냄새가아닌 다른 냄새가 났다.
무슨 냄새지?
손으로 코를 막았다. 윽... 본드 냄새다.
누군가 안에 있다.
"君きみはだれだ(누구야)?!"
안을 향해 소리를 질러보았다. 유일한 나만의공간에 누군가가 침범한것이다.
컴컴한 곳을 향해 눈을 크게 떠 무언가를 찾아보려했지만. 허공만 보일뿐이였다.
다시한번 소리쳤다
"そこにだれかいないか(거기 누구없어!)!"
정적뿐이다...
약간 서늘한 분위기에 등이 오싹해진다... 하지만 이곳을 누군가에게 뺏길순없다는 생각에 사방을 둘어보았다. 이런...캄캄하기만 하군.
삐그덕...
누군가 움직이는듯하다. 누군가 분명히 있는것이다.
" やかましい...(시끄럽군...)"
낮고 조용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곤 검은 형체의 움직임이 보인다. 그검은 형체는 꽤나 커보인다. 그리고 나에게 점점 다가오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