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애기하면 누워서 침뱉기요.
내욕하는거 같아서 쓰기는 싫지만 그래도 함 옛 생각하면서 써볼랍니다.
다들아시지만 대학들어가 새내기떄에는 보통 첫 엠티에 맘에 드는 여자에게 대쉬를 해서 CC를 만드는것 남자들에게건 대학 생활의 첫번째 과제지요.
나도 역시 첫 엠티에 가서 맘에 드는 여자에게 무쟈게 대쉬를 해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CC를 만들었습니다. 첫날 캠프화이어를 하고 술에 골아 떨어져 모두 잠들어 버린 늦은 밤
밤하늘의 별을 지붕삼아 밤새 애기하고 (뭔 할 말이 그리도 많았는지) 이른 아침에는 맛있는 콩나물국으로 환심을 샀죠. 강가에 가서는 보트를 함께 타고 강 한가운데 가 고백을 했죠.
"나 너 무척 맘에 드는 우리 사귀지 않을래"(딴에는 무척이나 터프해 보였나) 대답이 미적거리길래
보트를 흔들어 버렸죠(죽으려고 뺵) 역시 여자는 알았다고 대답을 하더라구요.
이렀게 시작한 우리의 CC생활은 잠만 같이 안 잤지 거의 붙어 다녔죠(이게 화근일줄이야)
내성적인 성격의 그녀는 무척이나 저에게 잘했습니다.싸우기도 많이 했죠(둘다 고집이 장난이 아니라)
특히 그녀는 남자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동기 선배들이 그녀를 건들지도 못했구요
그런 그녀는 내앞에선 고양이앞의 쥐였구요(여성 편하적인 발언은 아님)그런 그녀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재수를 하고 간 학교이기에 저는 방학중에 여친 몰래 입영희망원을 내놓았습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그년 가끔 언제 군대가 란 질문을 해 올때 마다 난 응 졸업하면 갈까 란
아주 능청스런 거짓말을 하곤 했습니다.(나쁜넘이죠).
방학이 끝나고 가을학기에 우리의 사랑은 더욱더 깊어만 갔습니다. 축제에서의 추억 , 단둘만의 여행
제가 수업 떙떙이 치면 여친은 제 가방을 챙겨 제가 있는 곳으로 오곤 했구요.
기말고사를 보는 때였습니다. 같이 도서관에서 나오는 데 여친이 그러더군요 올 크리스마스는 어디 멋진데로 여행가자고 하더군요. 전 그저 웃기만 했지만
기말고사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학교 가기전 아버님이 웃으시며 건네신 입영 통지서 축하한다는 아버님의 말씀에 "이제 나왔네요"쓴 웃음만 나오더군요. 가려고 했지만 막상 통지서가 내 손에 쥐어 졌을떈
참 기분 뭐 같더라구요.입영일 12월26일 춘천 102보충대대 전방으로 가려나 보다란 생각이들더군요.
그날 여친에겐 말을 못했습니다.
기말고사 끝나고 엠티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강원도 설악산내 주위의 사람이 내가 군대 간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른채 난 무거운 마음으로 엠티를 갔습니다.
그리 썩 즐겁진 않더군요 그런 날 보면서 같이 맘이 안 좋았던 제 여친 엠티 마지막 날 저녁
산책을 하면서 묻더군요 뭐 안 좋은 일 있냐고 그래서 솔직히 애기 했죠 나 군대가 크리마스 담날이야.
아무말 없이 멍하니 걷고 있다가 와락 안긴 그년 제 어깨의 잠바가 다 젖도록 울더군요.
전 울음을 참아 보려 빈 하늘만 쳐다보았지만 저역시 볼에 흘러 내리는 뜨거운 눈물은 주체를 못했습니다. 기다려달란 말 못하겠다, 그저 맘만 변하지마라, 그년 저의 그런말에 더욱더 서럽게 울더군요.
한 20여분을 울던 그녀는 저에게 다짐을 받더군요.무슨 일이 있어도 몸 건강히 그리고 자기에 대한 맘 변치않고 군생활하라고요, 그녀의 작은 새끼 손가락이 내 새끼 손가락에 걸리면 그녀는 활짝 웃으며
제 팔짱을 끼고 제 어깨에 얼굴을 파 묻었습니다.
그것이 우리 커플의 군생활의 시작이었습니다.
우린 우울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다음날 밤새 우리집에 있던 그녀는 절 배웅하기위해서 춘천으로 쫓아 왔습니다. 춘천 함꼐 와 보았지만 왜 그리 그곳이 낯설던지 가족과 헤어지는 마지막 시간 제 마지막 가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와 함께 하염없이 울던 그녀
훈련소 입소하고 매일같이 써내려간 편지 편지라고는 하지만 매일같이 보넨 일기
더욱이 자대 조기 착출이 되 남들 다하는 수료식도 없이 자대로 온 나는 훈련소 이후 연락을 통하지 못했습니다.자대 온 후 한 달 그제야 연락이 된 식구들과 그녀 1박2일에 짧은 외박에서 내 모습을 본 그녀는
내 어머니가 곁에 있어서 그런지 표정을 어떡해 지을지 모르더군요.
짧게 잘린 머리 꼬재재한 얼굴 마치 수용소 난민을 연상케하는 모습 (이런 제 모습이 약간은 부끄럽울 정도로)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전 그녀와 산책을 나갔습니다. 마땅히 갈곳도 없었지만 걷다 추워서 차안에 들어 갔죠 . 저녁을 그리 많이 먹고 나온김에 과자르 한그득 사가지고 차안에서 정신없이 먹다보니
그녀 "나먹어보란 소리도 없이 그렇게 먹어" 목이맨 그녀의 목소리에 입안 한 가득 과자를 물고 쳐다본 그녀 눈에는 당장이라도 폭포처럼 쏟아질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입안의 과자를 삼키곤 겸면쩍어서 그저 웃어버린 나에게 그년 제 가슴으로 얼굴을 묻으며 한 없이 울더군요. 사회에선 과자 입도 안 대던 내가 밥 먹은지 1시간도 안되 과자상자를 끌어안고 연신 먹어댔으니
얼어터져버린 손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기도 미안 했습니다. 소매를 이끌어 그녀의 눈물을 닦을떄 제 손을 잡더군요. 참 고왔습니다.마디 마디엔 못이 박히고 불어 터져버린 손끝으로 전해오는 그녀의 고운 손의 체온은 날 슬프게 하더군요.이런 나에게 "힘들지 우리 조금 참자 조금" 뭐라 할 말도 없었습니다.
그저 그녀를 끌어 안고 영원히 그 시간이 끝나지 않길 빌었습니다.
그런 그녀였기엔 전 역시 매일같이 편지를 섰습니다. 보안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저의 생활을 편지에 보내주었습니다. 그녀 역시 매일 같이 답장을 보네주었구요.
그런전 부대내에서 소문난 넘이었습니다.
그런 어느날 고참과 근무를 나선날 이었습니다,
고참이 그러더군요 저에게 야 니 제대하면 지금 아가씨하고 결혼 할 끼가
전 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고참이 웃더군요.니 아가씨가 기다려 준다고 믿나
네 믿습니다. 기다려 줄겁니다. 그러자 또 웃으며 그럼 니 맘은 안 변할끼고
네 전 변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자 고참이 애기 해주더군요 .
그 고참도 저 마냥 열렬한 애인이있었다고 대구에서 매주마다 오던 그녀였다고
집안도 다 아는 처지라 제대하면 결혼이 기정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사이였다고
그러대 그 고참 병장 달고 사회에 나갈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걱정이 되더라는 겁니다.
복학도 해야하고 유학도 가야하고 직장도 다녀야 하고 이것 저것 생각하니 막막하더랍니다.
여자는 동갑이고 자기가 사회에 자리를 잡게되면 여자는 나이가 넘어서버리고 그러자고 일찍 결혼해서
시작하자니 그건 더 갑갑하고 그 고참 제대 4개월 남겨놓고 휴가가서 애인에게 그랬답니다.
헤어지자고 여자는 울고 불고 난리가 났더랍니다. 어떡해 그럴수가 있냐고 그 고참 어쩔수 없다고
헤어지자고 안된다는 여자를 뿌리치고 복귀해버린 고참 그 애기를 하더군요.
난 그 고참 애기 듣고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보곤 니 맘 변치 마라하더군요(그 당시엔 그 고참 참 어이없는 넘이라고 생각했죠)
우린 상병때까지 참 사이가 좋았습니다. 거의 2주마다 오는 앤을 보면서 우리둘의 사인 영원하리라 믿었습니다.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던 병장 계급
병장 달고 젤 먼저 그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무척이나 좋아하더군요(당시 우리 여친은 우리가게에서 아르바이트 중이었습니다.)그런대 왠지 모를 불안함(이게 전조 일줄이야) 여친 전화 통화 끝에 남긴 묘한 여운.그래서 전 다시 저녁에 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저의 어머니 별일 없다곤 하시지만 그래도 이상했습니다.그런일이 있은후 한 3개월 뒤에 휴가를 나가게 됬습니다. 가게에서 알바하던 우리 여친 날 보고도 차가운 기운이 감돌더군요. 뭔일인지 알지 못하는 난 저녁에 집에 바라다 주며 물었습니다.
무슨 일 있냐고 여친은 아무말 않더군요 ,그리고 그 말 뒤에도 묘한 신경질적인 말투들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제 여친과 사이가 안 좋다 하시더군요. 그래서 전 여친도 다독거리며 어머니에게 비위를 맞추며 휴가를 보냈습니다.
그런대 제가 복귀하고도 그 문젠 해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녁 전화를 하면 저에게 하소연하시는 어머니 그리고 전화하면 신경질적으로 대하는 여친 그 중간에서 참 난감하더군요.
그런 일이 계속 지속되던 어느날 제가 제대 3개월 남았던 어느날 사고가 터지고 말았습니다. 제 후배병중 하나가 사고를 쳐서 영창에 가게 될 일이 생겼습니다.(좀 심각한 사고였지요)말년 이었습니다.
잘못하면 코껴서 말뚝 박을지도 모르는 상황 내무반에서 근신하고 있으며 오만 생각이 들더군요
더블백 뒤에 두고 저역시 그떄의 고참처럼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저녁 인사과로 불려간 저는 하늘이 무너져도 솓아 날 구멍이 있구나 했습니다.
제 분과 후임병중 하나가 장기지원을 하느 바람에 제가 구명되었습니다. 그녀석 전부터 장기 지원하려고 맘 먹고 있다 그 사건으로 제 대신 장기지원하게됬습니다. 정말이지 고마웠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전 여친과 잠시 시간을 두기로 했습니다. 긴 시간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제 생각엔)
그래서 편지를 썼습니다. 내용은 우리 헤어지자 구구하게 변명 늘어놓기도 싫다 우리 이제 그만 헤어지자 답장이 없더군요 그리고 군 생활에 충실히 임했습니다. 그러던 크리스마스 눈이 엄청스리 많이 내리던날 면회객도 거의 없는 그날 3시가 조금 넘게 행정반 전화벨이 무척이나 크게 울릴때
왠지 이상한 예감 뒤돌아본 행정반에선 사계넘이 전화수화기를 흔들며 웃으면서 나에게 그러더군요
면회왔어요! 면회! 그녀 였습니다. 전방인지라 토요일 면회는 외박이되는 우리부대
전 당직에게 보고하고 위병소에 잠시 갔다온다느말을 하고 나갔습니다. 추리닝에 야샹만 걸치고
위병소까지 왜 그리 먼지 눈발이 눈앞을 가려 걸어가기도 힘들었습니다.
위병소에 다달었을떄 위병소안에선 난리가 났었습니다. 왜 외출복 안 입었냐는둥 왜 이렇게 늦게 오냐는둥 (남 속도 모르고) 면회실에 있는 그녈 보기위해 면회실 문을 연 순간 난로 에서 불을 쬐던 그녀
뒤돌아 보는 순간 난 쥐구멍이라도 있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탁자위엔 낯선 상자 제 얼굴을 보자 그년 그 작은 손을 날려 제 뺨을 때리더군요.
어떡해 니가 나한테 이럴수가 있어 어떡해 그리고 제대후에 애기하면 안됬어 그동안 난 뭐였는데
난 뭐라고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저 미안해 미안하단 말 뿐이 없어
그리고 정적이 흐르고 그년 면회실을 나가버렸습니다. 전 한 참을 그 곳에 서있었습니다.
그리고 나가본 모습은 부대 정문을 뒤로한채 눈발속으로 사라져가는 그녀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미안해 이런 내가 나도 밉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내 선택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잘 살아라 그리고 행복해라 정말 미안하다.
이런 외침을 그녀가 들릴 수 있게 소리 쳐 보고 싶어지만 입안에서만 맴돌뿐
그리고 그것이 그녀와의 마지막이 될 줄은
제대후에 간간히 들리던 그 녀의 소식 애써 무덤덤 해지려 했지만 쉽지는 않더군요.
이제는 첫사랑의 진한 추억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그녀에겐 무척이나 미안합니다.
저의 이기심에 전 제 첫사랑을 버렸습니다. 힘들때 힘이 되 주고 어려울때 제 곁에 있어준 그녀를
남자는 군대를 갔다오면 여자를 보는 눈이 바뀐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족과 자신의 미래를 현실있게 보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지금 곁에 있는 그녀를 그곳에 넣다보면 괴리감이 생기는 것을 느끼죠.현실적인 괴리감 전에는 느끼지 못하던 어려움
저역시 그랬습니다. 결혼도 하기전에 생긴 고부간에 갈등(?)그리고 제 미래의 사회생활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절 그녀에게서 멀어지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병장을 달기전 그 고참의 애기가 제 현실도
맞닥드려 졌을떈 저도 무척이나 난감하더군요. 저의 이런 애기가 여자분에게 돌 맞을 소린란 것을 압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녀와 헤어지고 잘되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가니까요.
하지만 남자들은 군이란 특수한 생활속에서 다시 사회란 곳으로 돌아 올때 쯤이면 여자분들이 아는 그전의 남자가 아닌 다른 남자로 나오는 것입니다.(다는 아닐수도 있죠)
기다려준 여친들에겐 무척이나 미안 할 것 입니다. 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남자의 심정도 약간은 이해해 달라는 애깁니다. 저의 허접한 애기를 길게 읽어준 여러분에 고맙다는 말과 함께 혹시 이 애길 그떄의 그 여친이 읽는다면 정말 너무 미안한단 애기 이런 말 뿐이 할 수 없는 제 자신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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