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몬드의 역사에 대하여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 유명한 17세기의 프랑스 여행가인 타베르니에게 영원히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인도의 표사광산에서의 채굴이나 다이아몬드의 평가방법에 대한 기술(記述), 그중에서도 그가 인도나 다른 여러나라에서 조사할 수 있었던 수많은 유명한 다이아몬드에 대한 설명은 후세의 사람들에게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가 1676년에 발행한 저서인 "인도 여행기(Travels in India)"를 보면 6개의 유명한 다이아몬드에 대한 언급이 있으며, 그 중에 다랴이누르로 추정되는 3번째 것에는 그림과 함께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져 있다. - 이것은 242.31캐럿으로 골콘타에 있을 때 이 다이아몬드를 보았으며 시장에 있는 것으로 지금까지 내가 본 최대의 다이아몬드로 50만 루피의 가격이 책정되어 있어 40만 루피의 가격을 제시하였으나 살 수가 없었다고.........
"빛의 바다"를 의미하는 다랴이누르는 지금까지의 어떤 다이아몬드보다도 훨씬 탁월하고 컬렉션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보석으로 역사에 남을 위대한 다이아몬드 중의 하나이다.
다랴이누르는 작은 인도산 다이아몬드를 많이 세팅시킨 작품에 이미 감석(敢石)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중량은 확인할 수 없으나 175-195캐럿 정도로 추정되고 있고, 이것은 식민지의 행정관으로 외교관이기도한 S.J.말콤(1769-1833)의 1827년에 간행된 저서 "페르시아의 스케치(Sketches of Persia)"에 기술되어 있는 190.9캐럿의 다이아몬드와 거의 일치하는 것이다. 말콤은 19세기 초에 테헤란을 방문하여 샤(Shah)의 허락을 얻어 페르시아 임금들의 재보(財寶)들을 조사하여 월계관을 의미하는 "타지.마"와 다랴이누르가 하나의 팔찌의 중심에 세팅되어 있어 100만 폰드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다랴이누르는 골콘타 근교의 표사광산에서 채굴된 것이 거의 틀림없는 것으로, 장방형의 스텝 커트로 연마된 평평한 판(板)형태의 다이아몬드로 크라운은 대부분 없는 것과 다름없는 정도로 되어있다.
사이즈는 41.4×29.5×12.15mm 정도이며, 하부의 퍼빌리온 부위는 다수의 큰 스텝 패싯으로 형성되어 중심이 상당히 틀어진 20-25mm의 각진 큘렛으로 연결되어 있고, 또한 스텝 패싯이 가느다란 쪽의 끝쪽 퍼빌리언에 붙어 있으며, 테이블 면의 마무리 작업은 거의 완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랴이누르는 엷은 핑크색으로 클래러티 등급은 플로리스(FL)로서, 인도산의 최상질의 특징인 탁월하게 뛰어난 투명도를 가지고 있다. 현존하는 것 중에서 매우 큰 핑크 다이아몬드로서 이것을 실제로 보면 에드윈.스트리터가 저술한 "다랴이누르는 피와같이 붉은 빛을 발하는 것으로 상상하면 된다."라는 말로부터 그가 본래의 색을 알고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한편, 이 다랴이누르 다이아몬드에는 또 다른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186캐럿의 모서리가 둥근 장방형(Cuhion shaped rectangular)의 로즈 커트로 적어도 25밀리 미터 정도의 길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다이아몬드의 명칭은 "빛의 바다" 또는 "빛의 대양" "빛의 강"을 의미하고 있다. 이 다이아몬드는 의심할 여지 없이 1739년 데리로서 획득한 나딜.샤 왕의 전리품으로서 긴 세월 페르시아 왕조의 재보(財寶)중에 있었음에 틀림없다. 어느 시기에는 이란을 떠나 인도에 이송되었다고도 전해지나 금세기가 되어 이란의 재보중에 이 다이아몬드가 발견되었다는 것이 종종 보고되고 있다. 1979년에 이란 혁명에 의해 왕좌를 추방당한 레자 팔레비(파후라비) 전 국왕의 재위중에는 왕실의 재보중에 확실히 있었고, 중앙은행의 지하금고 속에 전시되어져 있었으나 이란의 정세변화 때문에 그 후의 다랴이누르에 관한 기록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