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레소녀 15. 마지막 이야기.
시니is
|2007.07.19 11:35
조회 1,612 |추천 0
네이트 분들 좋은 하루 되세요.^^
걸레소녀 마지막편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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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내가 서로를 잊을 수 있을까?
너와 내가 서로를 기억할 수 있을까?
너와 내가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너와 내가 서로를 미워할 수 있을까?
아니,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너와 내가 서로를 추억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웃을 수 있잖아.
슬픔이 자욱한 석양에 잠길 지라도···
“왜 왔어요···”
희미한 목소리로 은아가 힘겹게 말한다.
내가 와서 기쁜 마음도 있겠지만, 그 보다 더 큰 슬픔이 얼굴을 지배하고 있었다.
어쩌면 은아 역시 나의 미래를 예상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내가 오지 않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저 지경이 될 만큼 맞으면서도 입을 다물고 있었겠지.
“그러는 넌 왜 말 안했냐?”
“···몰라요.”
“나도 몰라.”
“그런게 어딨어요··· 피이.”
“가끔 그런 것도 있더라. 뭔지는 모르겠는데 알 것 같은···”
퉁퉁 붓고 멍든 얼굴의 은아를 쳐다본다.
얼마나 맞았는지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바닥을 적신 피들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아저씨가 말했지. 나 싸움 잘한다고.”
“네? 네···”
대갈이를 포함한 모두는, 마지막 배려라는 듯 우리의 대화를 지켜만 봤고,
은아가 내 말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나라면 이 정도 인원쯤은···· 도망칠 수 있었어.”
“예? 바보··”
애써가 아닌, 정말로 미소를 머금는 은아.
“조금만 기다려.”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기다리기 지친다는 듯 대갈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방심해라. 그렇게 자만해라.
그 순간 너의 날개는 잘릴 것이다.
기억해라. 잊지 마라. 느껴라.
은아의 처절한 아픔을, 나의 분노를.
“마지막 대화는 끝났나? 그러게 왜 그랬냐.”
거만하게 담배를 입에 물며 대갈이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 옆에는 기적과 원만이 나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리고 있었고,
뒤로는 건달들이 나를 주시하고 있다.
그리고 한 명은 은아의 멱살을 거칠게 잡고 노려본다.
만약 허튼 짓을 한다면 죽여 버리겠다는 뜻.
“아직 할 말이 많은데.”
“그래? 하지만 네놈에게 주어진 시간은 끝이다. 잘 가라.”
대갈이가 돌아선다. 그러자 은아를 잡고 있는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가 다가왔다.
은아를 재차 바라보다 이를 악문다.
가슴속에서 무엇인가가 치밀어 오른다.
그래. 네놈들에게 갚아주마.
은아가 느낀 아픔과 고통! 그리고 흘려보내야 했던 피.
그 모든 것들을 100배로 갚아주마.
····100배는 무리니 10배로.
“아따. 이런 놈 하나 처리하는디 이빠이 왔네. 크큭.”
각목을 든 한 어깨가 실실 쪼개며 말했고, 기적과 원만은 여전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빨리 담가라.”
그때 뒤에서 들리는 대갈이의 말과 함께 나는 이를 악물며 뒤로 물러섰다.
넓은 공간. 갇히면 난 죽는다.
1:1이 아닌, 1:다수로 싸울 경우, 결과는 뻔했다.
하지만 쉽사리 좁은 곳을 찾기 힘들다.
퍼어억!
“쿠, 쿨럭. 개자식!!”
한 놈이 나의 주먹을 정수리에 맞고 휘청거리자, 다른 놈이 욕설을 내뱉으며 달려든다.
후우웅! 각목이 나의 어깨를 스쳤지만 티내지 않는다.
싸우는 순간, 다른 곳에 정신을 돌리면 희박한 가능성마저 사라진다.
움직인다. 정확히 여섯 명이 나를 노리며 접근한다.
나에게 맞았던 놈도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합류한 상태이다.
단, 기적과 원만은 아직도 망설임과 함께 주춤거리고 있었다.
“타합!!”
어깨가 넓은 놈이 나에게 들소처럼 돌진했지만, 황급히 몸을 틀어 피했다.
그러자 나의 턱을 노리며 쇠파이프가 달려든다.
‘치이.’
바닥을 굴렀다. 싸움에 폼이란 존재 할 수 없다.
어떻게든 이겨야 살아남는 것이 싸움이다.
파아앗!
“커어억!!”
구름과 동시에 한 놈의 발목을 걷어찼다. 그러자 비틀거린다.
찬스는 몇 번 없다. 가능할 때 한 놈이라도 일어서지 못하게 만들어야한다.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녀석의 복부에 주먹을 꽂았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놈의 입에서 침이 흘렀고,
머리를 부여잡고 무릎으로 사정없이 찍어버린다.
퍼퍼퍼퍽!!
침을 넘어서 피를 흘렸지만 망설임 따윈 없다.
하지만, 이제는 또 다시 피해야한다.
공격하는 순간, 또 다른 놈이 나를 공격한다.
다구리를 맞게 되었을 때, 가장 까다로운 부분이다.
“아, 아저씨!!”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은아의 입에서 외침이 터져나왔다.
다가가고 싶지만 쉽지 않았다.
아니, 이긴다는 것도 불가능한데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만약, 뒷주머니에 있는 칼을 사용한다면 가능성이 높아지겠지만···
계속 망설여졌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시신이 자꾸 영상처럼 나타난다.
칼, 칼, 칼, 칼, 빌어먹을 칼!!
재차 뒷주머니에 가던 손이 바르르 떨려 돌아왔다.
난 칼을 사용하지 않는다. 누구를 죽이고 싶지도 않다.
물론··· 대갈이는 제외다.
“으으윽!”
다리가 휘청거렸다. 쇠파이프에 결국 맞은 것이다.
“죽어버려!!”
“아아악!”
참고 싶지만, 나도 모르게 비명이 흘러나온다.
쇠파이프로 인해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다리를 재차 각목에 가격 당했고,
결국 나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바닥에 무너졌다.
그러자 내 몸 위로 구타가 쏟아진다.
한 대, 두 대, 세 대, 점점 의식이 흐릿해진다.
그때 대갈이가 상황을 종료시키며 나에게 다가왔다.
그런 그의 품에는 은아가 붙잡혀있었다.
“자. 네가 끝내라.”
날이 잘 선 칼을 내미는 대갈이.
받으면 안 된다. 받으면 네가 살인자가 된다.
너에게 죄를 덮어 씌우기 위함이다.
“어머니가 병으로 언제 뒤질지 모른다며? 죽여라. 그럼 수술비를 주마. 물론 빚도 다 청산해주지.”
은아의 눈빛이 파르르 떨린다.
그랬구나. 어머니의 병이 심각해졌구나.
그런데 돈이 없어서 수술도 받지 못하고 있었구나···
“아저씨···”
나를 쳐다보는 은아의 볼을 타고 슬픔이 진득하게 흐른다.
그러자 애써 웃어보이는 나.
“아저씨····”
재차 칼과 나를 번갈아보던 은아가 무의식적으로 나를 부른다.
“나 많이 미웠지?”
끄덕끄덕.
내 말에 은아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더니 칼을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받아 쥔다.
언제나 네가 말했지. 나에게 복수를 할 것이라고···
비록 사랑이 생겼다 할지라도, 네 마음엔 증오도 함께 하겠지.
“은아야··· 안돼.”
간절하게 말한다.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저놈들에게 죽는 것보단, 차라리 은아에게 죽는 것이 나았다.
하지만 나를 죽인다해도 은아가 돈을 받을 수 없다.
대갈이는 그런 놈이다.
그리고 은아가 비록, 이 더러운 세상을 벗어나게 된다 할지라도,
감옥에 가야하며 평생 살인자라는 이름으로 살아야한다.
더군다나, 어머니를 살릴 수 없을 것이다.
“아저씨···”
은아가 칼을 쥔 체 나를 쳐다봤다.
그러자 대갈이는 비릿하게 웃는다.
그로서는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상황.
다른 놈들이 대갈이와 원한 관계가 있는 나를 기용한 것처럼,
대갈이 역시 은아를 이용해 살인을 피하려는 것이다.
결국 은아와 나, 모두는 필요 목적에 따라 책임을 져야하는 상황···
이 상황을 바꾸고 싶다. 지금 이 현실을 어떻게든 극복하고 싶다.
하지만 나에게는 더 이상 힘이 없다···
그때 은아의 목소리가 재차 들렸다.
“아저씨··· 전 아저씨가 미워요··· 좋아하는 만큼, 미운 마음이 가득해요. 그런데요··· 그런데요···”
은아가 돌아선다.
“아저씨를 다치게 한 사람은 더욱 미워요!!”
은아의 손에 들린 칼이 목표를 바꿔, 대갈이를 향한다.
그러자 옆에 있던 기적이 황급히 나섰다.
“아, 아저씨···”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은아는 당황했다.
자신의 칼이 기적의 손에 붙잡힌 것이다.
주르르르륵.
칼을 타고 흐르는 기적의 피.
괜찮은 척 하지만, 얼굴에 아프다는 것이 다 보였다.
“내놔!”
“은아야!”
기적의 힘에 밀린 은아가 내 품으로 떨어졌다.
나는 다신 놓지 않겠다는 듯 꽉 안았고,
대갈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외쳤다.
“크큭. 기적, 잘했다. 이제 저 놈을 죽여라! 그럼 네놈의 위치가 더욱 확고해질 것이다.”
대갈이가 은밀한 유혹을 뿌렸다.
그러자 이마가 꿈틀거린 기적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쳐다봤다.
“행님, 지는 행님을 배신했습니더. 크기 위해서 말입니더. 이런 저를 용서해주소.”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죽는 것은 각오한 일이다. 하지만 돈을 은아에게 건네줘야한다.
그리고 어떻게든 은아만은 살려야한다.
생각이 빠르게 회전했다.
내가 살기 위해서가 아닌, 은아에게 돈을 무사히 건네고,
대갈이와 의뢰를 한 조직을 따돌릴 수 있는 방법을 위해 말이다.
그때 기적이가 움직였다.
“허, 허억! 이, 이새끼.”
모두가 움찔하며 기적을 노려봤다.
대갈이 옆에 서 있던 기적이, 일을 저지른 것이다.
어느새 대갈의 목에는 칼이 닿아 있었고, 뒤에서 붙잡힌 상태.
“그런데 말입니더··· 그렇게 배신까지 한 지를 용서하지 않을지도 모르것지만···”
기적이 나를 바라본다.
“행님을 죽일 순 없었습니더···”
눈이 촉촉이 젖는 녀석···
“행님. 빨리 가예!!”
대갈이가 나를 죽이기로 작정했을 때부터, 결심을 한 것인지
원만 역시 빠르게 우리를 도왔다.
끼이이익!!
거친 철문이 열리며 빛이 들어왔다.
대갈이로 인해 건달들은 접근을 하지 못했고, 우리는 밖으로 빠져나왔다.
“오···빠.”
경악이 가득한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리니 4명의 조폭들과 함께 하영이 보였다.
“내놔!”
나는 서둘러 기적을 대신해 칼을 쥐었고, 우리는 둘러싸이지 않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자, 이전 건달들과 하영의 무리가 합쳤고, 우리와 대치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 이새끼! 이거 안 놔!!”
“움직이면 죽는다.”
힘주어 누르자 대갈이가 움찔하며 몸을 부르르 떤다.
그러자 몇 걸음 다가오던 놈들도 자리에서 멈춰 섰다.
“기적아, 원만아.”
뒤로 조심스럽게 물러서던 나는 둘을 불렀다.
“예, 행님.”
“행님···”
“은아 데리고 가라.”
“예? 행님!!”
“그기 무슨 말입니꺼!!”
“아저씨!!”
모두가 싫다는 듯 큰 목소리로 외친다.
귀 아프다··· 이 잡것들아.
그러자 나는 씁쓸히 웃으며 말했다.
“은아 잘 부탁한다. 못난 형이었지만, 부탁할 사람이 너희 둘 뿐이구나.”
“행님!! 안 됩니더!!”
“행님예···”
“아저씨. 싫어! 저 안 가요!! 우리 같이가요··· 예?”
고개를 젓는다.
나에게는 해야 될 일이 있다.
대갈이를 죽여야한다. 그래야 모든 것이 끝나게 된다.
만약, 대갈이를 죽이지 못하면, 의뢰를 한 조직에서 돈을 회수할 것이고,
그리고 대갈 역시 셋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은아 앞에서 사람을 죽일 수 없다.
아니··· 어차피 한 명은 남아야한다.
그래야 셋이 무사히 도망친다.
“기적아, 원만아!!”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한 나는 다시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둘은 서로를 쳐다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 안 주머니 봐라.”
기적이 곧 내 안 주머니를 뒤져 돈을 찾았다.
“은아 어머니 수술비로 써라.”
“········”
“·······”
“아저씨!!!”
은아가 운다. 너무나 구슬프게 운다.
기적과 원만은, 그런 은아를 힘겹게 품에 안고 뒤로 돌았다.
“해, 행님··· 꼭, 꼭 행님이 웃으며 오실 것이라 믿습니더!!”
“우리 다시 카트 해야지예!!”
“내 아디 무지개 만들어놔라.”
농이 섞인 내 말에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우는 녀석들.
비록 현실로 인해 배신을 했지만, 이 세계와 어울리지 않을 만큼···
착한 녀석들이었다.
“가라!!”
재차 큰 목소리로 외치자, 셋은 움직였다.
뒤에서 기적과 원만의 우는 소리와, 은아의 울부짖음이 들렸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웃는다.
잘 됐다. 모든 것이 원만하게 끝났다.
이제 대갈이와 나만 죽으면 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쓰레기들끼리···
그때 기적이 큰 목소리로 외치며 달려온다.
“행님!! 진 안 되겠습니더!! 행님과 같이 죽겠습니더!!!”
“꺼져.”
“예이.”
괴성과 함께 달려오다가 차가운 내 말에, 배꼽인사를 하고 물러서는 기적.
···· 정말 너란 놈은.
문득 실소가 흘러나왔고, 그때 머릿속으로 생각이 스쳐갔다.
“은아야.”
은아의 움직임이 멈춘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걸레가 자신을 더럽혀서 주위를 깨끗하게 해주잖아? 난 그렇게 생각해. 누구랑, 몇 명이랑, 몇 번을 잤냐가 중요한 것이 아닌··· 네 마음이 중요하다고. 적어도 내가 봤을 때의 넌··· 그 누구보다 아름답고 맑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마라.”
“아저씨····”
“이제 가라····”
“아저씨···!!!”
은아의 찢어지는 슬픔의 외침..
얼마나 지났을까? 뒤를 돌아보니 셋은 보이지 않았다.
기적과 원만이 은아를 데리고 떠난 것이다.
고개를 돌려 하영과 건달들을 쳐다봤다.
이제 끝낼 시간···
“하영아. 그렇게 노려보지 마라. 눈 아프겠다.”
“오···빠. 지금 무슨 짓 하는지 알아?”
“어? 잘 아는데. 쓰레기가 쓰레기를 처분하잖냐.”
스파아아앗!!!
“커, 커커억!!”
“혀, 형님!!”
“아빠!!!!”
잠시··· 정적이 흐른다.
솟구치는 피, 무너지는 대갈이의 육체.
경악한 표정의 건달들.
하영은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고, 건달들이 나에게 달려든다.
그러자 나는 칼을 떨어뜨리며 웃는다.
모두를 죽일 수 없다. 이제 또 다른 쓰레기였던 나 역시 사라지면 된다.
“크크큭!!”
구타, 쉬지 않는 구타가 시작되었고,
내 입 안 가득에서 피가 흐르지만 나는 웃었다.
아프고, 아프지만 나는 웃었다.
그때 비틀, 비틀거리며 하영이 차가운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런 하영의 손에는 칼이 들려있었다.
푸우욱.
“····잘 가.”
주르르르륵. 피가 흐른다.
배가 불에 지진 듯 뜨거워졌지만 곧 정신이 몽롱해졌다.
하영의 눈물이 나의 얼굴로 떨어진다.
그리고 그때, 모두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경찰차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아마 기적과 원만이 가면서 신고를 한 것 같다.
‘숨어서 지켜보던 놈들도 갔겠지···’
내가 대갈이를 죽였기에 그들은 만족하며 떠났을 것이다.
하늘을 쳐다봤다.
바닥에 대자로 누워 하늘을 쳐다봤다.
어둡지 않아서 별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은아가 있었다.
정신이 점점 희미해졌고, 의식을 잡기 힘들었다.
죽음··· 죽음이란 단어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투두두둑.
그때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누구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빗줄기는 나의 전신을 감싸 안았고···
희미해지는 의식의 밧줄을 놓으며 난 무거운 눈을 감았다···
나의 마음이 빗방울과 함께 전해지기를 바라며···
흐르는 비처럼 나를 씻을 수 있다면,
뿌연 눈물처럼 나를 희미하게 볼 수 있다면,
흩어지는 연기처럼 나를 날려 보낼 수 있다면,
희미해지는 기억처럼 나를 잊을 수 있다면,
타오르는 아픔처럼 나를 태워 버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너는 웃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나를 잊을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너를 혼자 두고 떠나는 나를 용서 할 수 있을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부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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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이이익.
굳게 닫혀있던 철장문이 열리며 나를 내보낸다.
고개를 들어 맑은 하늘을 쳐다봤다.
그러자 주마등처럼 그 동안의 일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하영에게 칼을 맞은 난··· 병원으로 긴급 이송되었고 2주나 의식불명 상태였다.
하지만 끝내 목숨을 놓지 않았기에 일어 날 수 있었다.
그 모습에 포기하고 있던 의사들은 혀를 내둘렀고···
오랜 시간 치료를 마친 나는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누가 뭐라해도 살인죄였으며, 부정 할 마음도 없었다.
그렇게 난 12년 형을 선고 받아 철장에 갇혔다.
그리고 소식을 접했는지, 기적과 원만, 은아가 찾아왔다.
은아의 어머님은 몸을 많이 회복한 상태이시고,
내가 준 돈 중, 남은 것과 기적, 원만이 모아뒀던 돈을 합쳐 작은 가게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 다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한 집에서 같이 지낸다고 했다.
그 후, 은아를 비롯해 셋이 면회를 자주 왔지만 언제부터인가 내가 거절했다.
은아가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고 나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12년, 그때면 내 나이가 38살이다. 물론, 은아 역시 30대가 되겠지만···
그 오랜시간, 젊음을 버리며 나를 기다리게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은아에게 오는 편지도 무시한 체, 착실히 수감 생활을 하였고,
형량이 줄어 9년 뒤인, 오늘 출소하게 되었다.
셋 모두에게 알리지 않았기에 오늘 내가 나온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하아. 이제 어디로 가나?”
기적과 원만, 은아에게 갈 수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내 나이 35. 살인자라는 전과.
그들에게는 이젠 짐만 될 것이다.
끼이이이익!!
그때 급정거 소리와 함께 검은색 그랜져에서 세 명의 남자가 내렸다.
그와 함께 굳어지는 나의 얼굴.
하영이의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9년이란 시간이 흘렀기에, 이전보다 많이 성숙한 모습이었다.
‘···· 결국은 이렇구나.’
웃었다. 그냥 웃었다.
어쩌면 예상했던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그 셋과 관계를 끊으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한 조직의 보스를 죽였다.
그렇기에 분명 내 출소날에 맞춰 갚아주려는 놈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이렇게 현실로 나타났다.
“오랜만이네.”
“어떻게 알았냐?”
“오빠랑 같은 방을 쓴 철진이란 사람 있지? 오빠는 모르겠지만, 내가 아는 사람이야.”
하영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에 올라탄다.
어차피 저들을 이길 능력이 없다. 아니,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부르르릉.
곧 차가 움직이고, 나의 눈이 마개로 인해 가라졌으며,
얼마 뒤, 내가 도착한 곳은 한 방이었다.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영을 쳐다봤다.
그러자 입구에 서 있는 하영이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난 그런 하영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이상해? 왜 오빠를 죽이지 않는지?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을 뿐이야. 누군가 그러더라.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고···”
하영의 목소리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예전에 아빠가 그랬어. 오빠와의 관계가 깊어지면 안 된다고. 데리고 노는 것은 상관없지만··· 그 이상의 감정을 가지게 되면 오빠를 죽이겠다고.”
처음 듣는 얘기다.
“아빠는 그럴 사람이었지. 그래서 난 오빠를 잊어야 했어. 그런데 쉽지 않더라··· 아무리 잊으려고 해도, 오빠란 사람이 내 가슴을 후벼 파더라. 그래서 모질게 대했어. 그럴 수밖에 없었어. 그렇게 대해서 오빠가 나를 미워하게 되면··· 조금이라도 잊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모질게, 오빠를 상처 주며 그렇게 대했어.”
하영의 목소리가 떨린다.
“그래서 난 오빠를 가질 수도 없지만 누구에게도 줄 수 없었어··· 오빠를 다른 여자가 가져가면 미쳐버릴 것 같았거든.”
잠시 침묵이 흐른다.
“오빠··· 그 사람, 내가 죽인거 아냐. 아무리 미웠어도 그럴 마음 없었어. 그런데, 내가 힘들어하는 것을 본 조직원 한 명이···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멋대로 일을 저지른거야.”
뭔가 답답함이 가슴 가득 치밀어 오른다.
당연히 하영이가 시킨 일이라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 할 수밖에 없었다.
통화를 할 때 내가 들었고, 하영은 변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째서····
“왜 내가 변명하지 않았는지 궁금해? 그냥··· 오빠가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기에 나 역시 그런 것뿐이야. 오빠가 나를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나 역시 잊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에서···”
“········”
하영이 뒤돌아서서 나를 바라봤다.
볼을 타고 눈물이 흐르는 상태로.
“이젠 다시 볼 일 없겠지. 우리는 어쩌면 악연인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오빠는 인연이었어. 안녕···”
하영은 천천히 문을 연다.
“하영아.”
하지만 나의 목소리에 우뚝 멈췄다.
“기도할게.”
하영의 몸이 부르르떤다.
간결하지만, 많은 의미가 담긴 말.
“바보··· 정말 넌 바보다··· 바보···”
하영이 벽이 기대어 눈물을 흘렸다.
나를 용서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무리 아버지를 미워했고, 나를 사랑했다 할지라도···
나의 죄는 용서되지 않는다···
하지만 하영은 나를 용서했고, 이해했다···
이런 못난 나를 위해서···
“어렵게 이루어졌으니··· 꼭 행복해··· 둘 다.”
한참이나 벽에 기대어있던 하영은 그 말을 남기고 문을 닫았고, 가버렸다.
그리고 얼마 뒤, 조심스럽게 문이 열렸다.
그러자 설마, 설마 하던 나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를 악물어도, 입술이 부르르 떨렸고···
눈에 힘을 주어도 눈물은 나의 마음을 표현했다.
나를 잊으라했지만, 정작 내가 잊을 수 없었던 소녀.
눈을 감아도, 무엇을 해도 마법에 걸린 것처럼 아른 거렸던 소녀.
나로 인해 상처를 받았고··· 그런 나를 사랑해준 소녀.
죽는 순간에도 생각났던··· 죽음조차 아쉽지 않게 만들었던 소녀.
아니, 이제는 소녀에서 20대 후반의 여인이 된 그녀.
은아가 나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힘겹게 다가와 품에 안겼다.
따스했다. 지금까지 삭막하게 느껴지던 모든 것들이 따스하게 변했다.
향기로웠다. 비릿한 세상의 냄새가 사라지고, 은아의 향기로 가득 찼고,
나는··· 너무나 하고 싶었지만, 다시는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말을 전했다···
“다녀왔어···”
그 날 저녁, 어두운 하늘에서는···
나의 별도, 은아의 별도 아닌··· 우리의 별이 환하게 반짝였다.
출처: http://cafe.daum.net/siniistears『시니is눈물』
글쓴이: 시니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