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니나랑 폴이랑 cafe.daum.net/ninapa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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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말 레슨 25
대학교 다닐 때, 환경이 언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배운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일년 내내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아프리카에서는 평생 눈
내리는 걸 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에 눈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하다.
근데 에스키모가 사는 동네에 가보면 눈을 지칭하는 단어만도
열 몇가지쯤 된다고 한다.
(확실한 단어수는 모르겠구…… 어쩜 스무개가 넘을 수도 있다……
하여간 그정도로 많단다 ……)
학술적인 용어로써의 눈이 아니라 일상에서 쓰는 말이 그렇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말이 없는 건 아니다.
너무도 유명한 김치를 예로 들어보자...
언젠가 미국에서 인기 높은 퀴즈 프로그램인 Jeopardy 를 본 적이 있다.
그때 음식 문제가 나왔는데 답이 자랑스러운 우리의 “김치”였다.
근데 출연자 한명이 자신있게 버튼을 누르더니 하는 말…
"Cabbage" … -_-
당연히 틀렸다…
뭐냐, 배추도 아니구 양배추라니… -_-
근데 이따우 한심한 답을 말한 것도 모자라서 광고나오는 시간 동안
프로듀서에게 건의를 했나 보다.
김치가 Cabbage로 만든 거 아니냐구, 맞는 거 아니냐구……
인간아, 그럼 케이크가 답인데 밀가루라구 하면 맞겠냐…? -_-
사회자가 김치에는 양배추 뿐이 아니라 마늘도 들어가구 생강두
들어가구 파도 들어가고 양파도 들어가구… 하면서
양배추 만으로는 답이 될 수 없다구 설명을 했다…
양파가 들어가는 김치는 어떤 김치일 지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_-
이야기가 옆으로 좀 샜지만…
결국 김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김치건 양배추건 그저 비슷할
뿐이다.
그러나 김치가 많은 우리나라에 와보면 김치도 그냥 김치라고 하면
틀린다는 걸 알게 된다.
장장 50여 가지에 달하는 김치의 종류가 있으니 나박 김치나 깍두기,
총각 김치 등 무김치만도 엄청나게 먹는 우리에게 김치를 양배추라구
하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언뜻 구분이 안간단
말이다…
아프리카 사람이 진눈깨비 보고 눈이라고 그러는 걸 에스키모가 들으면
아마도 무쟈게 웃을지 모르겠다……
이런 와중에 내가 항상 궁금하게 여겼던 것이 한가지 있는데 ……
눈이 많은 곳에 사는 에스키모가 눈에 관한 단어를 많이 아는 것은
당연하구 김치 먹는 울나라 사람이 김치에 관한 이름을 많이 아는 것이
당연하다면…
울 나라는 미술의 나라였던가?
어찌 이리도 색깔을 말하는 단어가 무궁무진하고 복잡무도한 것인가?
Lesson (1)
한국에서 친구가 며칠 놀러와서 와이키키에 있는 호텔에 묶을 때다……
신랑이랑 나랑 친구에게 구경을 좀 시켜주려고 차타고 섬 한바퀴를
도는 대장정을 떠나기로 했다…… (그래봐야 몇시간이다…… -_-)
내 친구, 영어는 잘 못하지만 그래도 배우려 하는 자세는 열심이다……
정말 자세만 열심이다……
신랑이 운전을 하다가 신호등에 멈춰 서있을 때다……
CD 를 바꾼답시고 CD 케이스를 뒤적거리느라 신호등이 바뀐 걸 못봤나
보다……
친구가 외친다……
친구: Go! It’s blue light!
짜식도 원…… 나한테 그냥 한국말로 해도 되는데……
하여간 자세는 열심이라니께……
아니나 다를까, 울 신랑 호기심 또 발동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잡는다…
신랑: 니나, 니 친구 색맹인가봐…
니나: 그 말 할 줄 알았어…
신랑: 정말? 정말 색맹이야?
니나: 이젠 척하면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뻔하다니께… -_-
내가 당연하다는 듯 암말도 안 하자 신랑은 헷갈리나보다…
신랑: Green 이 Blue 로 보이는 색맹도 있나?
니나: 말은 Blue 라고 했지만 Green을 말한 거야
신랑: 왜?
니나: 친구가 말한 Blue는 파랑색이 아니구 파란 계열이거든
신랑: 왜?
니나: 뭐가 왜야?
신랑: 왜 Green 이 Blue 계열이야, Green 계열이지…
니나: 크게 빨간 계열하구 파란 계열만 보면 파란 계열이쟎아
신랑: RGB도 몰라? 어떻게 빨강하구 파랑만 있냐? 녹색도 있지……
그건 미국 사람 생각이구……
울나라에선 크게 청색, 적색 계열로 나누는데 ……
니나: 미국에서도 아기 나면 딸은 분홍색, 아들은 파랑색이쟎아
신랑: 그거야 그렇지
니나: 그럼 초록색 밖에 없음 누구 줘? 아들 주쟎아?
신랑: 꼭 그런 건 아냐……
니나: 하여간 빨강보단 파랑에 가깝쟎아
신랑: 그럼 노랑색도 한국에서 빨강이겠네?
니나: 왜?
신랑: 노랑색도 딸한테 주니까…… 으허허, 한국 신호등은 헷갈리겠네~
-_-;;;;;;;;
Lesson (2)
가끔 엽서나 달력에서 바닷가를 찍은 사진들을 보면 바닷물이
너무너무 파랗다……
마치 물감같다……
태어나서 그렇게 파란 바다를 본 적이 없었기 땜에 모두 사진의
조작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었는데……
하와이 와서야 바다가 정말로 새파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워찌 바닷물이 이리도 맑을 수가……!
한국에서 막 건너온 내 친구도 감탄한다……
친구: 세상에…… 바닷물이 새파랗다!
니나: 그치? 꼭 물감 같다!
둘이 한국말로 감탄하고 있는데 신랑이 갑자기 외친다
신랑: Ocean is blue!
친구, 니나: ????
당연한 소리를 왜 그리 힘줘서 말하는 거야……
니나: 바다가 파란 걸 누가 몰라?
신랑: 니 친구가 혹시 green 이라고 그럴까봐…… -_-
니나: 아이구, 걱정도 많다……
신랑: Ocean 이 파란 건 알어?
니나: 알어, 알어… 아주 새파랗데
신랑: 쌔파라? No! Blue is 파랑! Not 쌔파라!
얼씨구리, 자기가 우리한테 한국말을 가르치려 드네……
친구가 신나서 낀다……
친구: 새파란 is very very very blue!
신랑: 엥?
니나: 앞에 새를 붙히면 그 색깔이 아주 많이 나는거야……
신랑: 오호~! 그럼 red는?
니나: 새빨간!
신랑: 오, 쌔팔칸! Then, black is 쌔카만!
니나: 그렇지!
신랑: White is 쌔하야!
친구: 잘한다!
니나: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니께~ (으흐흐흐 으쓱이다…)
신랑: Green is 쌔초로!
니나, 친구: 뭐…?
새초록…… 우씨, 이건 뭐야……
신랑의 엽기적인 한국말 수준을 모르는 친구가 당황하기 시작한다……
친구: 흠, No 새초록……
신랑: Why not?
친구: 흠…… Because no 새초록… -_-
설명이 안 되는 걸 영어로 하려니 당연히 막힌다……
나한테 설명하라구 그래도 역시 막힌다……
왜 그런지 모르는데 어떡해……
신랑: Yellow는 쌔노라?
갈수록…… -_-
니나: 그건 새노란이 아니고 샛노란이야……
신랑: 왜?
니나: 몰라……
신랑: 니나는 맨날 몰라……!
뭘 또 맨날 몰라!!!!
가끔 몰랐지……
좀 자주 가끔 몰랐지……
생각해보니……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Lesson (3)
울 신랑을 상대로 열심히 영어를 배우려다가 울 신랑의 한국말 공세에
질려버린 친구도 돌아가고……
다시 평화로운 하와이 일상으로 돌아………… 온 줄 알았다……
신랑: 니나 니나!!!!!
불 난 것처럼 요란스럽게 날 부른다는 건……
신랑이 엉뚱한 한국말을 들었다는 뜻이다……
신랑: Blue is 푸룬!
니나: 푸룬?
신랑: Blue가 파란이 아니고 푸룬이래……
니나: (아씨, 정말…… -_-) 푸른도 맞어
신랑: 왜?
니나: 푸른은 느낌상 파란보다 스케일이 큰 Blue야……
신랑: 색깔에 스케일도 있나?
니나: 그건 한국말을 하다 보면 알게 돼……
신랑: 스케일이 큰건 아주 푸른거야? 새푸른처럼?
니나: 새푸른이란 말을 없어
신랑: 왜?
니나: 그럴때 시퍼런이라고 하는거야
신랑: 시푸른?
니나: 시퍼런!
신랑: 왜 갑자기 푸른 말고 퍼런이야!??
오, 주여 ……… -_-
이걸 도대체 어케 설명하오리까……
모른다고 하면 또 한국사람이 자기네 나라 말도 모른다고 비웃겠지……
좋다...................!
비장의 카드다...................!
니나: 비밀이야…… -_-
그리고 들리는 소리는 hhhhhhhhhh (신랑의 비웃음 소리……)
신랑: 니나는 한국 사람 아닌가봐…… hhhhhhh
빠직~!
울나라 말이 단지 변화무쌍하고 절묘하다는 이유 땜에 내가 바보가
되란 말인가?
니나: 앉아봐!
신랑: 왜… 갑자기 무서운 얼굴을 하는 거야……
니나: 우리말이 얼마나 놀라운지 알려줄까?
신랑: ……
니나: 흥! 한번 듣기 시작하면 놀라 까무러칠걸?
으허허허허허, 본격적으로 지옥훈련에 들어가주마!
니나: Blue가 뭐야?
신랑: 파라
니나: 또!
신랑: 푸룬
니나: 또!
신랑: 쌔파라
니나: 또!
신랑: 몰라……
니나: 방금 시퍼런 가르쳐줬쟎아!
신랑: 오, 그렇지…… 시퍼러
니나: 시 빼고 그냥 퍼런도 Blue니까 외워!
신랑: 인제 고만 배울래……
니나: 뭘 그만 배워!
아직 갈길이 먼데……
내 성질을 긁었으니 오늘 어디 색깔 공부 지겹도록 해봐라
니나: 푸르등등!
신랑: ??????
니나: 푸르등등도 Blue 야!
신랑: 푸르둥둥? 뭐야, 그게?
니나: 외워!
신랑: 너무 많어!
니나: 푸르딩딩도 있어
신랑: 뭐야, 그게……
니나: 말 많으면 Black으로 넘어가는 수가 있어!
신랑: Black 은 왜?
니나: Black 한번 들어볼래?
으허허허허허…… 검은색…… 엄청나다……
검은, 까만, 꺼먼, 검정, 새까만, 시커먼, 시꺼먼, 거무 죽죽,
거무 튀튀, 거무스름, 거무스리……
신랑: 뜨아~!!!!!!!!
놀랍도다~ 이것이 바로 문화국의 언어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니나: 봤지? 대단하지?
신랑: 응!
니나: 나 한국말 잘하지?
신랑: 응!
니나: 이제 빨간색으로 넘어가볼까?
신랑: 악!!! 아냐 아냐.....!
니나: 훗~ 니나는 존경할 만한 한국말 선생님이지?
신랑: 응!
좋아~
그날은 간만에 스승의 도리를 다 했다는 흐뭇한 느낌으로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러나……
울 신랑이 누구냐……
담날 아침도 늦잠자고 있는 나를 어김없이 때린다……
신랑: 한대오~ 두대오~!!!
니나: 아야! 뭘로 때리는 거야!
신랑: 책으로 때리는 거야!
니나: 아씨, 배게로 때리다말구 왜 책이야, 아프쟎아!
신랑: 엉덩이에 멍드나 보려구……
니나: 뭐?
신랑: 니나 엉덩이에 멍들어서 파래지면 뭐게?
니나: 뭔데?
신랑: 푸르둥둥!
파시시시시식~
할 말 없음……이다
이하 생략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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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정말 미술의 나라였을까요……
색깔을 말하는 단어가 어찌 이리도 무궁무진할 걸까요……
아마 사계절이 뚜렷한 금수강산에 살다보니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