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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냄비의 추억

내안의 세상 |2003.06.13 15:50
조회 402 |추천 0

이거 보고 퍼온건데..

[엽기주장] '양은냄비'를 살려내라!!

2003.5.27.화요일
딴지과학부 산하 '양은냄비' 복원 사업국


된장찌개는 뚝배기에 끓여야 보글보글거리는 운치가 살고, 갈비는 숯불에 궈먹어야 지글지글거리는 맛이 살 듯 라면은 양은냄비에 끓여서 그 뚜껑에 덜어먹어야 후루룩거리는 품격이 사는 게 바로 십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의 음식문화를 지배해 온 패러다임이었다.

그러나 대망의 21세기가 새 똥꼬를 연 지금은 어떠한가? 둘러보시라, 뚝배기와 숯불은 날이 갈수록 서민덜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그들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있는 반면 양은냄비는 언제부턴가 설자리를 잃고 개 밥그릇用으로 급전직하, 그 명맥을 간신히 유지한 채 멸종될 위기에 처해있음이다.

이에 옛날 제품 복원사업에 남다른 애착만 보여 왔던 본지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양은냄비의 몰락을 바라보며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한 번 그 가치를 재발견하고 위상을 재정립해야할 필요성을 느꼈음이다.


양은냄비의 탄생에 대해서는 많은 썰들이 전해 내려지고 있으나, 6.25 종전 이후 먹고 싸기 힘들었던 서민들의 가정갱제 사정을 고려한 냄비업계가 값싸고 튼튼한 냄비 만들기에 몰두, 밤낮을 연구한 결과 나온 노력의 결과일 꺼라는 주장이 꽤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아님 말구...

우짰든, '찌그러지긴해도 깨지지 않는' 양은냄비는 그 재질 상, 바닥에 떨어뜨리면 아예 박살이 나버리는 뚝배기와 달리 반영구성을 자랑하며, 예나 지금이나무조건 싸고 오래 가는 제품을 선호했던 당시 깍쟁이 주부덜의 고정관념을 타파한 첨단 부엌제품의 효시였다.

게다가 한 쪽이 아니라 양가생이에 전부 달린 손잡이는 이동의 용이성에 있어서도 타 냄비를 압도하였는데 이와 같은 양은냄비의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능은결국 냄비시장의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키며 매장에 내어놓는 즉시 날개 돋친 듯팔려 나갔고 급기야 전국은 '양은냄비 신드롬'으로 몸살을 앓았다.

그러나 양은냄비의 행보가 그리 탄탄대로만은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은냄비는 사람들 사이에서 '신비한 존재' 혹은 '영물'에 비유되며 누구나 쉽게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되는 물건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양은이 구리와 니켈, 아연으로 된 합금이다 보니 오래 사용하면 할수록 금으로 된 겉표면이 마모돼 은으로 된 속살을 드러내고 마침내 겉이 다 까져버려 처음 구입했을 때와는 달리 은색의 냄비로 탈바꿈했기 때문에 오해를 샀던 것이다.

그로 인해 서민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양은냄비는 본의 아니게 사회적 지위를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바람에 고위층사이에서 사재기가 극성을 부리고 고가에 거래가 되며 그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하였다.


 

찌그러진 양은냄비에 담긴 라면의 위용을 보라!

그러나 라면의 등장과 함께 양은냄비는 새롭게 재조명 받기 시작하였다. 양은냄비에 끓였을  때 라면 맛이 가장 좋다는 조사결과가 속속 발표되면서 라면회사들은 앞 다투어 양은냄비에 담긴 라면을 봉다리의 표지모델로 기용하기 시작하였고, 결국 라면의 대중화에 힘입어 양은냄비는 다시금 서민의 품으로 돌아오게되었다.

이 때 한 라면회사는 양은냄비가 한국의 오천 년 역사가 응축된 산물이라는주장을 제기하여 눈길을 끌었다. 양은냄비는 외부에 어떤 타격이 가해져도 찌그러지기만 할 뿐 그것에 아랑좃하지 않고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는데 이는단군 이후 외세에 숫한 침략을 받아왔음에도 이에 굴하지 않고 여지껏 건재함을과시하는 한민족의 기상과 얼추 닮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라면회사는 이를 '오뚜기 정신'이라 칭하고 양은냄비를 앞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을 감행하였으니 이 회사는 다름 아닌 지금의 최대 식료품 생산회사 '오뚝이' 였데나...

물론 양은냄비의 효용도가 라면에만 국한 된 것은 아니었다. 김치찌개 조리에 있어서도 양은냄비는 맹활약을 보였는데 항간엔 '양은냄비에 끓인 김치찌개를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김치찌개를 논할 자격이 없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 당시 양은냄비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이렇듯 양은냄비는 격동의 근현대사를 거치면서 서민과 함께 동고동락을 나누며한국의 음식문화를 수호해 온 첨병에 다름이 아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양은냄비는 미를 강조하고 편리주의가 대세를 이루는 현재 촌스럽고 투박하다는 이유로 각 가정의 부엌에서 퇴출당하는 등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양은이파의 등장도 양은냄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안 좋게 하는데 한 몫 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스포찌라시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90년대 중반 이 후 일부 언론덜의 빨리 끓고 빨리 식는 보도행태를 양은냄비에 빚대 '냄비언론'으로 칭함으로써 안 그래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양은냄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호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전해지고 있다.  

이와 같은 마녀사냥 식 '양은냄비 죽이기'로 인해 우리 서민덜이 알게 모르게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일단 양은냄비의 사용이줄어들면서 간식시장의 큰손이었던 라면의 소비율도 급격히(?) 줄어들었고 결국그 자리를 '칼로리의 왕' 패스트푸드에게 내줘 비만아이들이 느는 등 식생활 문화에 빨간불이 켜지기 시작하였다.  

게다가 양은냄비의 몰락과 함께 대형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양은냄비는 냄비 전체가 양은으로 되어 있어 열전도가 손잡이에까지 전달되는 특징이 있는데 만약 음식을 끓인 후 행주와 같은 보호물이 없이 손잡이를 성급하게 집었다간 화상을 입기가 일쑤였다.

그래서 우리는 양은냄비를 집기 전 항상 손을 보호할 수 있는 물건을 찾는 신중함을 보임으로써 대외적으로는 한국인의 '빨리 빨리' 정신을 부정하고, 대내적으로는 화상류의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등의 안전의식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몸소 체화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의 냄비류는 단순히 편리성과 기능성만을 강조, 손잡이에 플라스틱을 두름으로써 양은 냄비가 보유하고 있던 안전철학을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며, 성수대교 붕괴 및 무너진 삼풍 백화점 등은 '양은냄비의 저주'라 불리우며 안전 불감증을 너무나 생생히 보여준 방증이었다.


 

나라의 안정은 가정이 바로 설 때 가능하다고 옛 성현은 말씀하셨다. 그리고 본지는 이렇게 주장한다. '가정의 안정은 양은냄비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양은냄비에 라면을 끓여 그 뚜껑에 덜어 먹으시라! 그동안 사파냄비덜로 인해 잃어버렸던 옛 맛을 복원하는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양은냄비에 끓인 라면을 자녀덜의 간식으로 집중 제공하라! 패스트푸드 음식으로 몸매를 버린 자녀들의 몸을 정상화하는데 이만큼 좋은 것도 엄따. 게다가 양은냄비는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간의 벌어져 있는 세대차를 좁히는데 있어서도 충분한 가교역할을 할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양은냄비를 안전교육의 교재로 삼아라! 안전 불감증 문제에 대한 해결책에 있어서도 백날 말로 떠드는 것보다 윗썰했듯, 양은냄비 하나만한실천적인 대안은 없다.  

그러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각 가정은 이 글을 보는 즉시 양은냄비를 사용해야 할 거시다. 졸라~


오늘도 '양은냄비'에 라면 끓여 먹은
나뭉이
(namung@ddanzi.com)

딴지일보는 가는으뜸체로 최적화 되어있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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