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외사랑 진행중인 스물셋의 청년입니다.
2년 전, 그러니까... 지금보다 이른 늦봄 초여름.
한 아이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이보다 예전인 고3 입시시절에
그 아이와 저는 같은 미술학원 친구였구요.
입시가 끝난 이후에도 서로 연락하고...집도 횡단보도 건너 가깝고.. 친한 친구처럼 지내던 저희였는데
2년 전 그 때, 제가 고백을 했죠.
나 너 좋아한다고..
그랬더니 그냥 친한 친구로 남자고 하더라구요.
좌절했지만 마냥 전 그 아이에게 매달렸습니다.
그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결국엔 부담스럽다는 말까지 감수해가며... 남자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자존심만 남겨두고
모든 것을 걸었었죠.
숱하게 반복됨을 진행하던 중...
제가 그 아이한테 제안을 했습니다.
하루만이라도 내 여자친구가 되게 해달라고..
우물쭈물하던 그 친구는 마지못해 알았다고 했고
제 고물차 옆 조수석엔 하루동안, 정확히 말해선 초저녁부터 밤 까지.
친구가 아닌 여자친구로 그 아이를 태울 수 있었습니다. 참.. 설레이고, 기뻤죠.
저는 그 날 한 남자로서 그 아이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려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그렇게 해 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그 날 만큼은 길지않은 제 삶 속에선 가장 행복했던 날로 기억됩니다.
술과 음악과 친구를 좋아하는 저인데... 술에 취해 연락도 참 많이 했더랬죠.
밴드 맴버들과 한창 공연이 무르익을 그 때 하루하루가 술독에 빠져 지낸 시간이었는데
그런 저의 술취한 음성을 참 듣기 싫었을텐데.. 그런 제 푸념도 묵묵히 들어주던 참 착한 아이었는데.
그런 시간이 흐르다.. 저도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이기에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기위해
국가의 부름을 받게 된겁니다. 남겨진 시간은 그리 많은 시간이 아니었기에..
저는 그 아이에게 무언가 특별한 선물을 주고 싶었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저는 제 전공을 살려서 '책'을 한 권 만들어 주기로 했습니다.
처음엔 막연한 생각으로 만들기 시작했는데... 참, 보통 작업이 아니더라구요.
입대 전 3개월을 자는 둥 마는 둥 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제가 미대라서 .. 과 특성상 과제가 엄청나잖아요.
그래도 무언가라도 그 아이에게 남기고 싶은 욕심에
결국엔 입대를 며칠 안 남기고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절대치로 보면 정말 초라하고 볼 것 없는 책이었지만
저의 모든 순수한 진심을 담은 책 한권이었습니다.
입대 전 날, 저녁. 그 아이 집 앞에서 그 책을 전해주고는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5년 이라고.. 5년동안 널 기다리겠다고. 그 시간동안 네가 누굴 만나던,
어떤 짓을 하고다니던 신경 안쓰겠다고... 단지, 그 5년이란 시간이 지나기 전
늦지않게 날 거둬달라고....
그렇게 저는 입대했습니다.
군대란 곳은 참 힘든 곳이더군요. 몸이 힘든건 물론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마음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로웠습니다.
짝사랑밖에 할 수 없었던 못난 제 자신에 대한 자괴감.
잠깐동안이라도 행복했던 기억... 그리고 또 괴로움.
군대란 곳에 갖혀 지내는 시간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내 모습...
다시 떠올리고 싶지않은 기억들 뿐입니다.
아. 한가지 있습니다.
이등병때.. 수색정찰 다녀온 날,
제 앞으로 편지가 한 통 왔었습니다.
'김 0 0'
저, 그렇게 편지 받고서 설레인 적이 없었어요.
세장의 편지...
땀에 찌들은 위장을 지울 틈 도 없이 5번 속독하고 2번 정독했습니다.
일병 휴가를 나왔더랬죠.
무심결에 그 아이 홈피에 들어가봤습니다.
무슨 인형을 안고 있는 사진이 있더라구요. 갖고싶다는 뭐 그런.. 제목과 함께요.
무엇에 이끌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 4박 5일이라는 놀기에도 빠듯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그 사진 한장가지고 나름대로의 추리와 추리를 거듭해 그 아이가
사진을 찍은 그 곳에 도착했습니다(그 때 삼성동 코엑스에 처음 가봤습니다 ㅎㅎ).
무작정 집을 나선지라 인형이 겁나 비싸면 어쩌나하고 걱정했는데 적절한 가격이더라구요.
그렇게 인형 사들고 다시 저희 동네로 돌아와서.. 친구들과 술을 먹었습니다.
취했는데... 무슨 안좋은 말을 듣고 속상한 마음에 요란스럽게 먹었는데
기억이 잘 안 나네요..(그 아이와 관련된 말을 들었는데, 제가 상병 때 군대에서 차사고로
머리를 다치는바람에-_- 기억력이 확 깎여내려갔습니다. 헐/)
아무튼 취중에 그렇게 인형만 그 아이에게 전해주고... 전해주기무섭게
다음날 복귀하고...
부대에 있는동안 참 많이 보고싶었고.. 볼 수 없다면 목소리라도 듣고 싶었던 그 아이인데..
2년이란 시간동안 단 하루도 잊지못한 사람인데
전화하고싶어도 할 수 없더라구요. 왠지 나를 반가워하지 않는 듯 한 목소리..
'뭐 어차피 잘 지낼테니까..' 싶어서... 연락하던 주기는 점 점 벌어져만 갔습니다.
상병 휴가 때.. 그 아이가 평소 갖고싶어했다던(친구통 정보입수-_-) 시계를 알게 되었죠.
그냥 질렀습니다. 군인월급 얼마 되지도 않는 돈, 몇달치로 말이죠.
왜 그랬을까요.. 그 곳에서 갇혀 지내는 동안 '잊어야 한다..잊어야 한다..' 제 자신이 못버텨
그렇게 다짐해도 못 잊던 그 사람에게.
결국 선물은 전해주지 못했습니다.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다시 본다는게..
설레임이지만... 저에겐 한편으론 두려움이었습니다.
이렇게 초라해졌는데. 그 시간동안 너는 화려해졌을텐데.
다른 친구한테 그냥 줘버렸죠. 생일선물 명목으로.
그리곤 제가 실수를 해버린 겁니다.
속상한 마음이 들면 술자리가 요란스럽다던데
주량을 초과해도 한참 초과한 전 그 친구에게 키스하고 스킨쉽을 해버린겁니다.
(여기서 끝입니다. 물론 그 이상은 안갔습니다)
참... 사람으로서 할 짓이 아닌거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면서.. 친구로 지내던 여자아이에게 실수한다는 걸요.
다음 날 그 친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시간이 흘러, 뜸하게 연락하던 그 아이에게.. 뜻밖의 소식을 듣고 말았습니다.
제가 실수를 저지른 친구와.. 그 아이가 어쩌다 같은 호프집에서 알바를 하게 됐는데
(모두 미술학원 친구들이예요)
저의 실수 얘기를 듣게 된 겁니다.
참.. 억장이 무너지더라구요.
그게 아닌데.. 그게 아닌데..
한편으론 참 화가 났습니다.
내가 걔한테 천벌받을 짓을 했냐?
미안한건 충분히 미안한데, 너네한테 그딴 취급받을정도로 미안한 짓은 안했다.
그리고 너...
내가 힘들때 넌 어디있었는데. 네 반가워 하는 목소리 잠깐으로도
난 충분히 행복해 질 수 있었는데
모질게 등한시한 너가 왜 나를 욕하는건데. 너랑 관계없는 일이잖아.
평소 하던데로 무시하라고... 너한테 이런 대접받은 사람 아니라고.
물론 저렇게 말은 못했죠-_-;
아무튼 참 .. 허탈하더군요.
그래도... 이대로 묻히긴 죽어도 싫었습니다.
제 진심은 그게 아닌데.
그래서.. 무작정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한통씩..
물론 답장은 없었습니다.
그 많은 편지들은 그저 저 혼자만의 외침이었겠죠.
민간인 진 이라고 불리우는 캐말년 병장 때
친구한테 우연히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 남자친구 생겼다구요.
저에게도 전역이란 날이 찾아왔습니다. 내가 과연 이 곳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날짜 맞추어 내보내주더라구요.
전역한지 한달이 더 넘은 지금....
여전히 그 아이가 보고싶습니다. 목소리라도 듣고싶습니다.
돌이켜보면 좋았던 기억보다 힘들었던 기억들밖에 없는데..
그 좋았던 기억 하나때문에...
이런 제가 초라한걸까요. 집착인가요.
몇안되는 저와 친한 친구놈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말합니다.
"병신새끼-_-"
아직 해주고 싶은게 많은데.. 정말 이대로 묻혀버리긴 정말 싫은데
그래도 전 희망적입니다.
아직 남은 절반의 기다림 동안 정말 멋있어져서...
공부 빡시게해서 잘나지면
그때가 되면 저에게도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해서...
오늘도 책 붙잡고 죄잘죄잘 거리네요.
그래도 안된다면... 뭐 할말없지만-_-
이런 제가 못난건가요. 사람을 너무 좋아하면 비참해진다는데
그 말이 정말인가봐요. 연락할 자신도 없으면서...
혹시나 그 아이에게 닿을까 하는 마음에 주저리 늘어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