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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의 비밀

엽호부활 |2007.08.09 23:46
조회 1,179 |추천 0

e-mail의 비밀

 

"상규야... 이제 그만 먹자. 너무 취했어. 끄윽~"
"으? 어... 어... 그래. 나가자. 나가..."

형민과 상규는 이년만에 술자리를 같이 했다. 대학교 다닐 때는 같은 입
학 동기 중에서도 꽤 친한 사이였는데 졸업 후에는 서로 연락이 끊겼다
가 이년만에 우연히 길에서 만나 술을 한잔 거하게 걸친 것이었다.

굳이 술값을 내겠다는 상규를 말리며 형민이 계산을 한 뒤 차가운 밤바
람이 을씨년하게 불어오는 길거리로 나왔다.

"아... 오랜만에 너를 만나 반가워서 그랬는지 술을 너무 많이 먹은 것
같다. 참, 너 아직도 거기서 사냐?"
"아니... 이사갔어."

상규는 여전히 몸을 비틀거리며 형민의 물음에 대답을 했다. 형민은 눈
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다시 물었다.

"그래? 어디로?"

형민은 도로 위를 쌩쌩달리는 택시들을 주시하며 지나가는 말투로 물었
다. 상규는 자신의 왼팔을 들어 시계를 바라본 후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
다.

"이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전철이 끊겼겠네? 어쩌지? 내 집까지
는 택시가 안 갈텐데... 외진 곳이라..."
"흐흐흐... 나도 그래 임마. 사실 택시 탄다는 게 돈이 좀 아깝기는 하더
라. 집에서 기다리는 마누라도 없는데 몇만원씩 들여가며 택시를 탄다는
게... 안그러냐?"
"그렇기는 하지만..."

상규가 여전히 흐릿한 시선으로 형민을 바라보며 어쩔줄 몰라하자 형민
은 주위를 '휘'둘러 보다가 좋은 생각이 난 듯 말했다.

"상규야,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저기 들어가서 밤샐래?"
"어디?"

형민이 가리킨 쪽을 따라 쳐다보니 건너편 건물 2층에 PC방이 보였다.
상규는 알겠다는 듯 머리를 주억거렸다.

"아하... PC방에 가서 밤새자고? 너 PC방에 자주 가나 보구나? 재미있
니?"
"훗... 자주 가는 건 아닌데.. 게임하거나 인터넷 같은 것을 할때는 좋더
라고. 속도도 빠르고... 하여간, 어때? 마침 내일이 휴일이니... 저기 가
서... 밤을 새고 내일 아침에는 사우나에 가서 숙취도 풀고..."

잠시 생각하던 상규는 결심한 듯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

"형민아, 그 게임 재미있니? 아이고...  너는 그 나이에 무슨 오락을
그렇게..."

PC방에 들어오자 마자 게임 CD를 뽑아 들더니 한시간 넘게 아무 말없
이 몰입하고 있는 형민의 어깨를 툭치며 상규가 말했다. 형민은 그새
술이 어느정도 깬 표정으로 입가에 미소까지 지으며 대답했다.

"하하하. 너도 해봐. 얼마나 재미있는데? 특히나 인터넷 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하면 더욱... 그나저나 너는 안해? 아무거나 해라.
게임을 하든 인터넷 싸이트를 뒤지든..."
"에고... 난 통신밖에 할 줄 몰라... 내게 e-mail 온 거 있나 확인만
하고 좀 졸아야 겠다. 너나 밤새 게임해라. 후후후."
"좋으실 대로..."

형민은 다시 게임에 열중하기 시작했고 상규는 마우스를 움직여 수신된
메일을 확인했다.

"그런데 말이야... 요새 대학 동창들 좀 만나본 적 있니? 다들 바빠서
그런지 도통 연락도 안돼고... 너한테도 꽤 연락을 하고 싶었는데...
이상하게 그게 잘... 어?"

형민은 게임을 계속하며 혼잣말처럼 상규에게 물었다. 그러나 한참이 지
나도 상규의 대답이 없자 이상한 느낌에 옆자리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런데 상규는 두려움에 잔뜩 질린 얼굴로 자신의 모니터만 뚫어지게 쳐
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상규야... 왜... 그래?"

형민은 상규 자리로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상규와 모니터를 번갈아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나 상규는 여전히 모니터만 물끄러미 바라본 채
넋을 잃은 사람처럼 아무말 없이 앉아 있는 것이었다.

"정신차려... 너 갑자기 왜 그래?"

몇번 어깨를 흔들고 나서야 상규가 겨우 정신을 수습한 듯 손을 천천히
들고는 모니터를 가리키며 중얼거렸다.

"내... 게... 온... 메일을 확인하다가... 아무튼 저... 이상한 메일 좀
읽어봐봐..."

형민은 눈을 크게 뜨고 모니터에 떠 있는 상규에게 온 메일을 읽었다.


[그동안 잘 있었나?
나... 기억하겠지? 네가 내게 그런 이후로 난 서서히 자멸하고 있어.
너무 분하고 원통해서 말이야... 너는, 내게 한 행동을 조금도 미안해
하지 않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생각을 하면... 난 너를 때려 죽여도
시원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야. 훗...

결국 오늘에야 결심했어. 널 죽여버리기로  말이야. 너... 이제부터 조심
해. 언제 어느때 너의 뒤에 내가 나타나서... 소리 소문 없이 죽여버릴
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알겠어?

너를 저주하는... ]


"이... 게 무슨 소리야? 이 메일 보낸 사람, 너 알아?"

상규는 한숨을 '푹'쉬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는 조그마한 소리로 말
했다.

"모르겠어. 이 메일의 아이디가 눈에 익기는 한데... 누구인지 도통 생각
이 나지를 않아... 도대체 누가 내게 이런 메일을 보낸거지?"

형민은 상규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크게 심호흡을 하고 조용한 목소리
로 얘기했다.

"에이... 그러면 이 메일에 너무 신경쓰지마. 잘못 온 거든가... 누가
장난친 거겠지. 요새 통신하는 사람 중에는 하도 희한한 애들이 많으니까
말이야."
"그런 거라면... 나도 좋겠지만... 기분이  좀... 그렇잖아? 아무튼 신경
이 쓰이는 건 사실이고..."
"됐다. 됐어. 삭제해 버리고 잊어버려. 자, 나와 재미있는 게임이나 같이
하자. 기분도 전환할겸..."

형민은 상규에게 수신된 그 메일을 삭제한 뒤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

형민이 모처럼 휴일을 맞아 집에서 뒹글고 있는데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렸다. 형민은 기지개를 한번 크게 펴고는 천천히 방에서 나가 문을
열어 보았다.

"어? 상규구나. 왠일이야? 여기까지... 더군다나 연락도 없이... 그런데
너 안색이 좀..."

상규는 아무말 없이 고개를 '푹' 숙인 채 형민의 방으로 무작정 들어와
털썩 주저 앉았다. 형민은 의아한 생각에 상규 앞에 마주 앉았다.

"드디어... 생각났어. 그게 누군지..."
"누구? 뭐가?"
"생각 안나니? 일주일 전쯤... PC방에서 내게 온 메일..."
"아~ 그거? 누군지 알아냈어? 누구야?"

상규는 형민의 물음에 대꾸도 하지 않고 방안을 살펴보다가 형민의 컴
퓨터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거, 통신 되지?"
"응... 그런데 왜?"

상규는 형민의 컴퓨터 앞 의자에 걸터 앉더니 전원을 올리고 통신에 접
속을 하기 시작했다. 형민은 상규의 느닷없는 행동에 그저 바라만 볼 뿐
이었다. 잠시후 통신에 접속을 한 상규는 자신의 메일 수신함을 열어 그
동안 저장된 메일을 형민에게 보여 주며 말했다.

"일단 그동안 내게 온 메일을 읽어보고... 그후에 내가 자세히 얘기해 줄
께."


[어때? 오늘도 즐거웠나? 나쁜 자식... 넌  나한테 죽어야만 해. 그래야만
한다고... 내일부터는 네 뒤를 쫓아다니며...  너를 죽일 틈만 노리기로
했다. 네 뒤를 조심하라고... 하하하...]

[흠... 오늘은 하루종일 돌아다니더구만? 바빴나보지? 너만 잘 살려고 그
러면 안돼. 나한테 한 짓은 생각도 안하고. 어쨌든... 오늘 길거리를 걷다
가 어느 빌딩 위에서  벽돌이 떨어져 맞을 뻔 했지? 누가  그랬을 것 같
아? 그때 놀라는 표정하며... 오늘은 경고였어. 훗훗훗...]

[어디보자... 오늘은 네 놈에게 무슨 일이 있었더라? 여자 두명 만나고
남자 셋이랑 술마시고... 흠... 이정도면 내가 네 가까이에 있다는 걸 알
겠지? 어때? 몸조심하는게... 얼마 안남았어. 너를 죽이고 말테니...
기다려... 기다리라고...]

[아깝더군... 네가 조금전 한강 다리를 오밤중에 걸어 갈때 몰래 다가가
강물 속으로 밀어 버릴려고 했는데... 네가 갑자기 택시를 잡아 타는 바
람에... 하지만 괜찮아. 난 드디어 결심했거든? 이번주 내로... 너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다... 아주 처절하게... 계획은 다 세워져 있으니...
기다려라. 하하하...]


메일을 다 읽은 형민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상규를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소리야? 너... 이 사람에게 무슨 짓을 했는데..
이러는 거야?"

상규는 담배를 한대 꺼내 피워 물더니 몇모금 힘없이 빨다가 또박또박한
말투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처음 PC방에서 그놈의 메일을 읽었을 때는 네 말대로 장난으로 치부해
버렸지... 사실... 기분은 좀 찝찝했지만... 그렇게 신경 쓰지는 않았었
거든?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 매일같이 이런 메일이  오니까... 너무
신경이 쓰이더라고... 좀 섬뜩하기도 하고 말이야... 그래서 곰곰히 생각
해 보니까... 바로 그 놈이었어..."

"도대체 누군데? 이런 이상한 메일을 보내는 놈이..."

"휴... 몇달 전이었나? 통신상에 주제별로 토론 하는 게시판이 있잖아?
거기서 나와 토론을 하며 싸웠던 놈이야. 토론의 주제는 별 것이 아니었
는데... 그 놈, 아주 미친 놈 같더라고... 그 놈이 게시한 내용이 별로
마음에 안들어서... 몇마디 내가 반박의 글을 썼더니... 내 욕을 하기
시작하는데..."

형민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다.

"뭐? 아니... 겨우 그 정도의 일로 이런 메일을 보낸단 말이야?"

상규는 자못 심각한 얼굴이 되더니 말을 이었다.

"사실 나는 통신에서 쓰는 아이디가 두개거든? 하나는 내 진짜 이름으
로 등록한  거고...한개는 가명으로... 가명으로 등록된 아이디로 싸우게
된 건데... 그러고 보니 내 익명성이 보장된다는 생각에 좀 거칠게 대하
기도 한 것 같다만... 어쨌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놈도 자신의
아이디가 아니더구나... 다른 사람 걸 빌려서 한건데... 그런데... 그
빌린 아이디가 그놈이 다니는 회사에서 공용으로 쓰던 아이디였나봐..."

"그런데?"

"나와 토론방에서 싸우던 사이에 그 회사 아이디로 내 의견을 동조하는
다른 네티즌들이 별 욕을 다해서 메일을 보내곤 했나봐. 훗... 물론 내가
아는 사람들을 좀 부추겨서 그랬기도 했지. 그 놈... 너무  싸가지 없이
반박하길래 말이야... 그런데 그놈은 열도 받았겠지만 자신의 의견이 무
시당하는 것 같아서... 그때마다 회사에서 일은 안하고...해명성... 혹은
변명의 메일을 보내곤  했는데... 결국 회사 윗사람이 그 사실을 알고...
직무태만으로... 짤렸나봐... 물론 주위 사람에게 웃음거리도 됐겠지...
그래서..."

형민은 짧게 한숨을 쉬며 상규를 쳐다보고 물었다.

"그렇구나... 너는 그냥 재미삼아 그런 것이... 그 사람에게는 그런 피해
가 가다니... 헌데 너는 그 사람에 대해 어떻게 그리도 자세히 아니?"

"어느날인가... 그 놈이 게시판에 마지막으로 올린 글에 그런 내용이 써
있었어... 장장 20페이지가 넘는 글로... 그동안 자신과 통신상에서 싸운
사람들에게 푸념을 써놓은 건데... 뭐 통신도 다신 안한 다던가? 그런 내
용도 있었고... 하여간 그 글을 보니 정말로 그 놈 정신 상태가 의심스럽
더라고..."

상규는 약간 안쓰러운 표정이 되어 다시 담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곧 그 일을 잊어 버렸지. 어떻게 생각해 보면... 
통신에서 일어난 일은 접속을 끊고 나면... 아무리 화가  나거나... 열받
던 것도 어느정도 잊게 되지 않니? 그렇게 시간이 흘렀는데... 그날...
내게 그놈에게서 다시 그런 메일이 온거지..."

"그런거구나... 참, 그런데.. 오늘 나한테  찾아온 이유는 뭐야? 그 얘기
를 해 주려고 일부러 온 것 같지는 않고..."

형민의 말에 상규는 싱긋이 미소를 짓더니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그 놈을 계속 놔두자니 너무 신경이 쓰이고... 안그러겠니?
누가 보냈는줄 알고 나니까 말이야. 물론 정말로 미친 놈이 아니라면 그
정도 일로 나를 죽일리가 없겠지만... 하지만 장난삼아 그런 메일을 매일
같이 쓴 거라고 생각하자니... 마음에 좀 걸리고 말이야. 아무튼 그냥 놔
둔다는 건 너무 기분이 이상하잖아? 계속 누가 나를 감시하는  것 같기
도 하고... 그래서..."

"그래서?"

"그 놈을 직접 만나 정신 좀 차리게 혼내주려고 생각했지. 그래서 며칠
전부터 하루종일 통신에 접속해 있으면서 그 놈이  접속하기를 기다렸
지... 그러다가 그 놈이 접속을 했길래 잘 구슬려서 오늘 밤에 직접 만
나기로 했거든? 내가 사과한다고 말이야. 그랬더니 나온다고 하더구나..."

형민은 상규의 말을 듣고 썩 내키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혹시... 그래서 나보고 같이 가자고? 가서... 어떻게 할 작정인데? 응?"
"아무튼... 따라와봐..."

상규는 눈을 찡긋하더니 무작정 형민의 팔을 잡아 끌며 일어났다.

              **************************

"여기가 어디야?"

형민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상규가 형민을 데리고 간 곳은 인천의 어
느 항구였는데 후미진 곳인데다가 늦은 밤이라 그런지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상규는 형민을 끌고 그 근처에 위치한 작은 창고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보는 바와 같이... 여기는 냉동식품을 보관하는 창고야. 여기 있는 콘
테이너 박스들에는 외국에서 수입했다가 아직 팔리지 않은 것들이 가득
히 쌓여 있거든?"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상규는 히죽 웃으며 얘기를 계속했다.

"30분쯤 있으면 그 놈이 올거야. 이쪽으로 오라고 했거든? 너는 이 창고
안에 숨어 있다가... 내가 그놈과  말을 할때 나타나서... 여기있는 물건
을 훔치러 온 도둑처럼 행동하라고. 그러니까 흉기하나 들고 나타나서
일단, 나와 그놈을 여기 냉동 콘테이너에 가두어 달라고..."

형민은 여전히 모르겠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옆에 있는 냉동 콘테
이너를 만지작 거렸다.

"대강... 내가 할 일은 알겠는데... 그렇게 한다고 그 놈 버릇을 어떻게
고쳐? 그리고... 또 여기에 누가 오면 어떻게 하니?"

상규는 재미있다는 듯 입가에 웃음을 잔뜩 띠었다.

"여기는 지금 내가 아르바이트 삼아 몇달째 일하고 있는 곳이거든? 예
전에는 이곳을 관리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현재는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아서... 이 창고, 물건만 보관하지 관리는 나 혼자 한다고. 그러니
다른 사람은 오지를 않아... 어쨌든 내가 그 놈하고 이 냉동 콘테이너에
들어가면 너는 밖에서 문을 잠그고 물건 훔치는 시늉만하다가 그냥 집으
로 가라고... 네가 간 후에 시간이 좀 흐르면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다시
는 그런 짓 못하게 다짐을 받고 내가 그놈하고 이 냉동 창고를 빠져 나올
테니까...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가니?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앞에서는 순
수해 지자나? 그걸 이용하자는 거야. 아마...  이렇게 추운 곳에 갑작스
러운 일로 갇혀보면... 다시는 그런 쓸데 없는 짓 안할 거 아냐? 어쨌든
별 어려운 일 아니니까 해 줄거지?"

"네 말은 알아 듣겠는데...  흠... 내가 어떻게 해야할 지 잘 모르겠어.
그리고... 너는 이 속에서 무슨 수로 빠져 나올거야?"

형민이 주저하자 상규는 형민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냉동 콘테이너를 열
고 안으로 들어가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자, 잘 봐봐. 저기 쌓여 있는 상자 윗쪽에 조그마한 창문이 보이지? 이
곳은 한번 갇히면 별짓을 다해도 냉동 콘테이너 문이 안에서 절대 안
열리거든? 그래서 실수로 사람이 갇힐 것을 대비해 만들어 놓은 건데...
저쪽을 통해 나가면 된다고... 물론 오늘 나올 그놈은 저런 통로가 있는
줄 전혀 모르겠지만 말이야."

상규의 설명에 그제서야 고개를 끄떡이며 형민이 말했다.

"아, 그러니까 내가 도둑 흉내를 내며 너와 그놈을 이 곳에 이렇게 가두
고 나간 뒤에는..."

형민은 상규를 그 안에 놔 두고는 실제로 냉동 콘테이너의 문을 잠그며
밖으로 나갔다. 상규는 컴컴해진 그 안에서 여전히 미소를 띠며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밖에서도 들리게 큰 소리로 외쳤다.

"그렇지... 네가 그렇게 우리를 가두면 나는 여기서 그 놈과 얘기를 하겠
지. 별 일도 아닌 걸로 사람을 약올리니 이런 일이 생긴 거라고... 나는
이곳을 잘 아니까.. 살아 나갈 수 있는데... 당신이 무릎을 꿇고 빌면 빠
져나갈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말이야.  후후후... 생각만 해도 통쾌한
걸? 아마 내가 시키는 일은 뭐든지 다하면서 살겠다고 내  발밑에서 애
걸하겠지? 그렇게 좀 놀리다가 여기 창문쪽으로 올라가서... 밖으로...
어? 그런데... 왜 이 창문이 안  열리지? 형민아... 여기, 망가졌나봐.
어서 문 열어줘. 그 놈 오기 전에 창문을 손좀 봐놔야 겠다. 어서..."

상규가 한동안 소리를 쳐도 밖에 있는 형민은 아무말도 없었다. 상규는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어 콘테이너 윗쪽 창문을 다시한번 힘껏 밀며
소리쳤다.

"형민아... 뭐하는 거야? 어서 나를 꺼내 줘. 그 놈 올 시간이 다 됐단
말이야."

그때 문쪽에서 형민의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자그맣게 들려왔다.

"네가 말하는 그놈... 벌써 와 있잖아?"
"뭐... 뭐라고?"
"훗... 그래 바로 나였어. 네가 말하는 그놈이라는 게..."
"아... 아니... 그럴 수가..."

상규는 깜짝 놀라 창문에서 뛰듯이 내려와 냉동 콘테이너의 문을 발로 
거세게 찼다. 그러나 역시 꿈쩍도 하지 않자 다시 상자를 밟고 창문 쪽
으로 올라가 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두군데 모두 꿈쩍도 하지 않자, 상규는 점점 추워만 오는 냉동
콘테이너 안에서 '부들부들' 떨다가 얼음이 잔뜩 끼인 콘테이너 벽을
머리로 '쾅, 쾅' 들이 받으며 울부짖었다.

"야! 이.... 강아지야.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네가 내 친구라면...
어서 열지 못해? 나를 정말로 얼려 죽일 셈이야? 응?"

조용하던 밖에서 형민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 지더니 그의 분노 어린
목소리가 상규의 귓전을 때렸다.

"아무리 애를 써도 윗쪽 창문은 안 열릴거야. 내가 조금전에 막아 놨으
니... 훗... 모두 말해 주지... 네가 예전에 통신상에서 싸웠던... 그 놈
이라는 사람은 이미 이 세상에 없어. 내가 어떻게 아냐고? 그 놈이라는
사람은 바로... 내 동생이었단 말이다... 통신상에서 그 일이 있고 난 후
자살해 버렸지... 집에서 목을 메달아 끔찍하게 말이야... 흑, 흑, 흑...

왠줄 알아? 내 동생은 장애자였어. 자신의 몸뚱아리 중에 쓸 수 있는 것이
라고는 양팔 뿐이었다고. 그런 애가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어렵사리
장애인을 고용하는 회사에 취직을 했었는데... 너와의 그일 때문에 회사에
서 짤리고 하루, 하루를 실의에 빠져 살다가 죽어버린 거란 말이다.

이해가 가? 너는 사지육신이 멀쩡한 놈이고 또, 장난삼아 그런 일을 했겠
지만... 더구나 그 애의 유일한 낙이라고는 통신상에 글을 올리고 사람들
과 채팅을 하며 간접적으로나마 얘기를 나누는 것 뿐이었단 말이야...
그런데 그 일이 있고 난 후 모든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또...
자신의 처지에 더욱 비관을 하게 된거지... 풋...

그간 네게 메일을  보낸 사람? 물론 나였어... 나와 PC방에서 밤을 샐때
네가  통신에서 그 아이디를 쓰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지... 바로 내 동
생을 죽게 만든 장본인인... 그 아이디를 네가 쓰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처음에는 설마했는데... 오늘 네 얘기를 듣고 보니 확실해 진거야.

네 말맞다나... 나도 너를 이렇게 까지 할 생각은 없었어. 몇번 폭탄 메일
을 보내고 정신이나 차리게 할 생각이었는데... 네가 오늘 내게 와서 하는
얘기를 듣고... 네가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는 것을 보니...  갑자기 먼저
죽어버린 불쌍한 내 동생이 생각나더구나...

내가 얼마나 그 애를 사랑했는 줄 알아? 아무튼... 넌 네 무덤을 판 셈이야.
그곳에서 한번 얼어 죽어보렴... 불쌍한 내 동생... 죽어서 라도 만나 용서
를 빌고 말이야. 어차피... 네 놈 말대로... 사람들이 싸늘해져 버린 네
시신을 발견할 때쯤은... 일하다가 실수로 이곳에 갇혀 변을 당했다고 생각
하겠지...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통신의 익명성으로... 얼굴도 모르는 상대방의 
입장을 전혀 고려도 하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네 놈같은...  놈은 이
세상에서 살 가치가 없어. 필요가 없단 말이다... 흑... 불쌍한 내 동생...
그런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든 멋지게 살아보려고 노력했었는데...
흑, 흑,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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