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싸게 산 중고 컴퓨터

엽호부활 |2007.08.09 23:49
조회 2,634 |추천 0

싸게 산 중고 컴퓨터

 

 

내 직업은 컴퓨터 수리공이다. 아니... 단적으로 수리공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부적절한 표현이고... 정확히 말해서 망가지거나 낡은 중고 컴퓨터
를 싸게 사서 조금 손을 본 다음 다시 비싸게 넘기는 일종의 컴퓨터 딜
러인 셈이다.

전자상가에 하루종일 틀어 박혀 물건이 나왔나 전화를 받고 당사자를
만나 알맞은 가격에 매입을 하고 또 적당히 고쳐 괜찮은 값에 팔면 되
는, 어떻게 보면 단순하기 그지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혼자서 이 일을 하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그래서 내 대학교 컴
퓨터 동아리 후배인 상규를 조수겸 동업자로 함께 일을 시작했는데 처
음에는 그리 장사가 잘 되지 않다가 요새 흔한 생활 정보지에 광고를
몇번 때리고 난 후에는 그래도 한달 매출로 둘의 입에 풀칠은 할 수 있
게 되었다.

하지만 사람 욕심이라는게, 그 정도로는 만족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상규와 나는 밤이 늦도록 머리를 싸매고 어떻게 하면 중고 컴퓨
터로 돈을 더 벌 수 있을까하며 고민을 하고는 했다.

"형민이형, 아무래도... 우리의 사업을 좀더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말이
야... 이런 주먹구구식의 판매 전략 보다는..."

비가 으슬, 으슬 내리는 늦은 밤, 가게 셧터만 내린 채 모처럼 소주 두
어병을 마주 놓고 술잔을 기울이던 상규가 불쑥 내게 말을 건냈다.

"훗... 또 그 어려운 말투로 얘기하기 시작이군. 그래 좋아. 그래서 뭐
어떻게 하자는 거야?"
"잘 생각해 보라고. 우리 사업 중에 가장 돈이 많이 드는 것이 어느 부
분인가 말이야."

상규가 술잔을 홀짝 비우더니 약간 심각한 말투로 내게 말했다. 나는 잠
시 생각하다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글쎄... "
"글쎄... 뭐냐니까?"

술 기운에 약간은 멍해지는 머리라 그런지 상규가 무슨 대답을 원하고
묻는지 도통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저 멀뚱멀뚱 상규의 붉어진 얼굴만
쳐다 보는데 상규가 답답한 듯 담배를 '쓰윽' 꺼내 물며 말했다.

"참나... 명색이 사장이라는 사람이 도대체 사업감감이 없어서... 원..."
"짜식... 그래, 잘난 네가 말해봐라. 우리 사업이 뭐가 문제인지."

상규는 '배시시' 웃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우리가 중고 컴퓨터를 매입하는데 있어서 값을 너무 후하게 쳐
준단 말이야. 그러니까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사는 중고 컴퓨터의 단가
가 너무 비싸단 말이지. 그런데 파는 가격은 다른 가게랑 비슷하니 당연
하게도 남는건 얼마없고..."
"오호라. 너, 참 잘났다. 그러면 어떻게 그 놈의 단가라는 걸 낮출 수
있겠냐? 우리가 뭐 대규모로 매입하는 것도 아니고 중고 컴퓨터 고쳐서
두대 팔면 겨우 망가진 컴퓨터 세대 사는 꼴인데... 어떻게..."

내 말에 상규는 바싹 다가 앉으며 더욱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오전에 이 앞 빌딩 게임방에 잠시 갔었는데... 좋은 얘기를 들었어.
그게 뭐냐하면..."

나는 상규의 말에 구미가 당겨 귀를 잔뜩 기울이며 침착하게 물었다.

"너, 영 멍청한 줄로만 알았더니... 아닌 것 같네? 그래, 어떤 건데?"
"훗... 요 앞 가게 있잖아. 조금 있으면 사업장 정리 한다고 하더라고.
무슨 얘기냐 하면 이젠 게임방 안하고 헐값에 팔아 넘긴다는 거야."

나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상규가 말하는 게임방은 밤에는 물론이고
아침 나절에도 손님들로 북적이는 곳인데...

"아하, 그 집 돈 벌어서 큰데로 이사 가나 보지? 그런데 그게 아까 네
얘기랑 무슨 상관이냐?"

상규는 내 말에 자신의 가슴을 소리나게 '퉁퉁'치며 답답하다는 듯 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이구, 그래서 관두는 게 아니래."
"그럼?"
"나도 잘 모르지만... 그 집 사장, 다시는 게임방 안한데. 그러니까
무슨 소리냐 하면..."
"무슨 소리냐 하면?"
"그 집 사장이 헐값에 컴퓨터들을 팔아 치운다는 거야. 형도 알잖아? 그
집 컴퓨터 정도면 그래도 최신형이라고. 그걸 중고 시세에 한꺼번에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 넘기겠다는 거야. 그 집 컴퓨터가 한 30대 되
잖아?"
"뭐라고? 아니 그런 밑지는 장사를 할 이유가 있어? 네가 잘못 알았겠
지."

내 말에 상규는 술 한잔을 마저 마시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냐. 확실한 정보야. 그 집에 단골로 드나드는 진한이란 놈이 내 친구
잖아. 걔가 사장 부부가 하는 소리를 들었데. 아마  조만간 판다는 얘기
가 돌 것 같은데... 그러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선수를 치잔 말이야. 싼값
에 사들이자는 거지."

나는 상규의 얘기를 듣고 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꽤나 짭짭한 돈벌이
가 될 듯 싶었다. 그만한 물건을 그 정도 가격에 살수만 있다면...

"헌데... 가장 중요한 거... 우린 돈이 없잖아? 컴퓨터 30대면 돈이 만만
치 않을 텐데..."

상규는 물끄러미 내 눈을 바라보다가 결심한 듯 말했다.

"그래서 의논하는 건데... 내 전세방 하고... 형 전세방을 빼서 말이야..."
"뭐라고? 아니 그러면 우리는 어디서 사냐? 그나마 겨우 마련한 집을..."
"어이구, 두세달이면 세배 장사는 된단 말이야. 그러니... 집은  그때 다시
장만하면 되고 그  사이에는 가게에서 먹고 자고 하면 되지 뭐. 확실한
장사잖아?"

듣고 보니 그럴 듯도 했다. 아무리 안 팔려도 석달이면 넉넉하게 다 팔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정말 괜찮은 생각이긴 한데...

"그런데... 네가 들은 소식통이 정말일까? 싸게 판다는..."
"훗... 구미는 당기지? 그러면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직접 게임방을 찾아
가 사장을 떠보자고. 어차피 그쪽에서 팔아야 이루어지는 문제니."
"좋아. 그러자."

나는 괜히 기분이 좋아져서 호기롭게 상규와 건배를 했다. 당장 돈이 내
손에 들어올 것 같은 부푼 기대를 안고서...

             ********************************

"사장님. 정말 그 가격에 넘기신 다는 거죠?"
"그렇다니까. 사람 말을 못 믿네?"

배가 꽤 나온 게임방 사장은 거들먹거리며 어제 상규가 말한 대로 자신
의 게임방에 있는 컴퓨터를 헐 값에 넘긴다는 걸 다짐했다. 나는 알수
없는 흥분에 들떠 그 자리에서 계약서에 싸인을 하고 말았고 상규는 그
즉시로 자신의 전세 계약서를 내게 건네주며 즐거워했다. 나 또한 계약
서에 약속한 날짜에 맞춰 돈을 구할 생각에 흠뻑 젖어 들었다. 그런데...

"참, 이 컴퓨터들... 오늘... 안가져 갈거요? "
"예? 아니... 당장 가져 가라고요?"
"아니... 이렇게 계약을 했으면 가져 가셔야지. 그래야 나도 내 할 일을
하고..."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직 돈을 줄 날짜는 열흘이 넘게 남았는
데 오늘 당장 가져 가라니... 열흘 동안 장사를 하면 돈이 얼마인데...

"저희들도 한시라도 빨리 가져 가면 좋겠지만... 저것들을 보관할  장소가
아직 마땅치 않아서... 사장님께서 이렇게 빨리 가져가라고 할 줄은 몰랐
거든요. 그런데..."

게임방 사장은 잠시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 안에
는 아내인 듯 보이는 여자가 있었는데 한눈에도 병색이 완연해 보였다.
괜히 섬뜩한 생각에 다시 한번 게임방을 둘러보며 곁에 있는 상규에게
속삭였다.

"상규야. 이상하지 않니? 뭔가 사정이 있는 것 같아. 너, 진한이라는 친
구한테 뭐 또 들은 거 없어?"

그때까지 들뜬 기분에  미소만 짓던 상규가 내 얘기를 듣고는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하하하. 형이 그럴까봐 내가 아침에 진한이에게 전화를 걸어 좀더 캐물
어 봤지. 그랬더니...."
"그랬더니... 뭐야?"
"저 안에 있는 여자가 이 게임방 사장 마누라인데 병에 걸렸다고 하더라
고. 그래서 돈이 급히 필요한 거고... 또 빨리 이 곳을 정리해야 요양원
에 갈 수 있다고 하더군.  원래 걸리적거리는 게 있으면  병이 안 낫잖
아?"

나는 약간 수긍이 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거구나...  허긴 겉으로는
장사가 잘되 보여도 속으로 밑질 수도 있고... 또 병이 있다면... 수월치
않게 돈도 들어 갔을테니 돈이 급히 필요해서 컴퓨터들을 헐값에... 거기
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라  무작정 사무실로
들어갔다.

"저... 사장님..."

대뜸 배불뚝이 사장을 불렀는데 뒤로 돌아 앉아 있던 그의 아내가 천천
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는  순간 깜짝 놀라 뒤로
두어걸음 물러났다.

그녀의 얼굴은 살아 있는 사람의 얼굴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창백했
고 또 붉은 두 눈망울에는 묘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내가 그의 아내를
보고 움찔하는 것을 눈치챘는지 게임방 사장은 나를 무작정 사무실 밖
으로 밀어 내더니 조금 화난 얼굴로 물었다.

"왜... 그러는 데요?"
"예? 아... 예... 다른게 아니라... 정, 그렇게 빨리  넘기시려거든...
제가 이 컴퓨터들을 옮길 적당한 창고를 물색하기 전까지 제가 가게를
봐드리면 안될까요? 사정을 듣자하니 계속해서 장사를 못하실 것 같기도
해서..."

사장은 나와 자신의 아내를 번갈아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떡이며 대
답했다.

"좋아. 어차피 마땅한 작자만 나서면 몽땅 넘기고 떠날 참이었는데...
잘됐네. 뭐. 이 건물도 조금 있으면 헐려서 어차피 권리금도 못 받고 나
갈 판이었으니..."
"그래요? 쯧쯧쯧. 그러셨구나. 그러면 당분간 제가 이곳을 운영할께요."
"그래. 그럽시다. 그럼 오늘 밤부터 당장 이곳을 관리하시고... 뭐, 게임
방을 계속 영업하시든... 컴퓨터만 보관하시든 맘대로 하고..."

사장과 나는 몇가지 더 세세한 부분에서 타협을 하고 일단 게임방을 나
서서 상규와 저녁을 먹으러 조그마한 식당에 갔다. 저녁을 먹는 내내 상
규는 기분이 좋아 혼자 지껄였는데 나는 밥을 한술, 두술 뜰수록 야릇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상규야, 아무래도 저 게임방... 뭔가가 있는 것 같지 않니? 너무 서둘러
우리한테 떠 넘기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아무리 자기들 사정이 있다고
해도 저리도 손해를 보며 일을 진행하는 건... 아무래도 뭔가가..."

상규는 주머니에서 조금 전에 받은 게임방 현관의 열쇠를 찰랑거리며
미소를 담뿍 지은 채 말했다.

"형, 신경쓰지마. 저 사람들 그래도 반년 넘게 게임방을 해왔는데 설마
잘못된 물건들이겠어? 혹시 컴퓨터들이 장물일까봐 그래?"
"아니.. 그게 아니라... 그것보다도... 느낌이 말야..."

상규는 내 얘기는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열심히 저녁을 먹을
뿐이었다.

              ********************************

"상규야, 뭐해? 어서 열지 않고."

기분 좋은 저녁이 술자리로 이어져 자정이 되어서야 게임방에 돌아오게
되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 잘까도 했지만 사장의 행동이 의심스러워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컴퓨터들이 제대로 있나 확인도 해볼 겸해서
게임방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이윽고 굳게 잠겨 있던 자물쇠가 풀리자 게임방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
어갔다. 컴컴한 게임방에는 새까만 모니터들만이 달빛에 반사되어 번들
거렸는데, 연이어 왠지 모를 한기가 온 몸에 휘감겨 왔다.

"상규야, 불 좀 켜라.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으? 응..."

상규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가운데 벽을 더듬거리는 그의 등이
보였다. 그런데 잠시후...

"아... 악!!!"

상규의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고요한 게임방에 울려퍼졌다. 나는 깜짝
놀라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그래?"
"스... 스위치를 찾으려고... 벼... 벽을 더듬는데 뭔가가 물컹거리고
척척한게 만져져서... 후~"
"뭐... 라고?"

캄캄한 곳에서 상규의 허연 이빨만이 빛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의 뒤
로 뭔가가 '휘익'하고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나는 덜덜 떨며 손가락만
그쪽을 가리킨 채 더듬거렸다.

"사... 상규야. 네 뒤에... 뭐가... 있어... 뭔가가..."
"뭐?"

다급한 내 목소리에 상규가 몸을 돌리는 순간 일렬로 늘어선 컴퓨터 속
으로 그 물체가 빨려들 듯 들어가 버렸다. 나는 왠지 차갑게 느껴지는
상규의 손을 꼭 잡고 중얼거렸다.

"봐... 봤지? 방금... 그거... 도... 대체 뭐지? 그나저나, 너  손이 왜
이리 차니?"
"형... 뭐해? 난 지금 이쪽에 있는데..."
"헉... 뭐라고? 아니 그럼... 내가 쥐고 있는 건... 엇? 아... 악~"

순간의 일이었지만 왠 젊은 여자의 야릇한 표정이 어둠속에서 빛나는
것이 보였다. 너무 놀라 숨이 멎는 듯 했다. 그때 갑자기 불이 환하게
들어왔다.

"휴~ 스위치가 여기 있었네. 형... 왜 그래? 그렇게 멍한 표정을 짓고..."

조금전 물체가 빨려 들어간 컴퓨터의 모니터에 내가 어둠속에서 본 그
여자가 '히죽' 웃고 있었다. 분명히 꺼진 새까만 모니터였는데 희미하게
창백한 그 여자의 웃는 모습이 점점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놀라 턱만 덜덜 떨 뿐 한동안 아무말도 못했다. 상규는 그 여
자를 봤는지 못봤는지  나와 그 모니터를 번갈아 보다가 천천히 그쪽으
로 다가가 살펴보며 말했다.

"형, 이 컴퓨터...  뭔가가 좀 이상해. 방금 끈 것 처럼 본체랑 모니터가
따뜻하단 말이야."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움직여 그 컴퓨터로
다가가 만져 보았다. 역시 상규의 말대로 컴퓨터의 따스한 감촉이 내 손
끝에 전해져 왔다.

"사... 상규야. 나는 원래 귀신이란건 믿지 않지만... 여긴 너무 이상해.
기분이 나쁘단 말이야. 더구나... 엇? 허억~"

갑자기 내 앞에 있는 컴퓨터의 전원이 켜지며 '그르륵'거리는 소리와 함
께 부팅이 되더니 초기화면에 조금 전  본 그 여자의 얼굴이 희멀건하게
떠올랐다.

그 여자는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며 웃고 있었는데 갈수록 서글픈 표정
으로 변해가고 있었고 나중에는 분노로 가득찬 희한한 표정이 되는 것
이었다. 더구나 얼굴과 목줄기가 소름끼칠 만큼 야위었으며 길게 빼문
혓바닥으로 연신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나는 상규 쪽을 바라보며 외쳤다.

"사... 상규야. 어서 여기를 나가야겠어. 이... 곳은..."

무심코 뒤를 돌며 상규가 있었던 곳에 말을 건냈는데 막상 그곳에는 아
무도 없었다. 뒤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시 그 모
니터를 바라보는데...

"허억~~"

조금전까지도 모니터 속에 혼자였던 그 여자는 왠 남자를 두 손으로 끌
어 안고 입으로 연신 핥고 있었다. 핥고 지나간 그 남자의 얼굴은 붉은
점액질로 뒤덮여가고 있었는데 그녀는 그 점액질을 맛있게 빨아 먹으며
간혹가다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자세히 살펴보니 그 남자는 조금전까지도 바로 내 뒤에
서있던 상규였는데... 몹시 괴로워하는 표정으로 내게 무슨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며 컴퓨터 옆에 있는 스피커
의 볼륨을 높였다.

"혀... 엉... 사... 살려줘...  어서... 나를... 여기서 꺼내줘... 너무
아파... 쓰리고... 답답하단... 말이야... 헉!"

나는 갑자기 일어난 일련의 사태에 어리둥절해 하며 냅다 문쪽으로 뛰
기 시작했다. 뒤쪽에서는 여전히 상규의 절규가 내 귓전을 때렸지만 나
는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문은 열리지를 않았고 상규의 비명과 어울어진 여자
의 발자국 소리가 천천히 내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 여자의 스산한 한
기가 머리 뒤쪽에서 몰려 올 때쯤 나는 그만 기절을 하고 말았다.

내 흐릿한 시선 속에서 일그러진 그 여자의 분노에 가득찬 얼굴이 언뜻
비춰졌고 온 몸이 암흑속으로 빨려들어 가는 느낌을 끝으로......

               ********************************

한밤중에 작업복 차림의 두 사내가 중고 컴퓨터들을 허름한 창고로 옮
기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참, 요 앞 건너편 게임방에 대한 얘기 알아?"
"무슨 얘기? 그 사람들... 가게를 팔고 떠났다며?"

"응... 그렇긴 한데... 어제 배불뚝이 사장 마누라가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경찰에 불쑥 나타나더니 고백을 했는데... 자네도 알지? 그 집에
고등학교 다니던 딸이 있던거..."
"아하... 일주일 전인가 가출을 했다던 그 이쁘장하게 생긴 여학생?"

"사실 그 여학생... 친딸이 아니라 양녀였데. 젊어서 마누라가 애를 못
낳자 의붓딸을 들여 키웠다는데... 글쎄...  게임방 사장 놈이 자기 의붓
딸이 커가면서 얼굴이 반반해지니까... 어느날 부터인가 그 딸을 손님이
없을 때마다 게임방으로 불러 수시로 범했다는 거야. 딸은 도저히 못참겠
어서 '남자들을 다 죽여 버리겠다.'는 유서 한장만 달랑 써놓고는 자신이
능욕을 당하던 게임방 안에서 컴퓨터 전선으로 목을 매달아 자살을 해버
렸다더군. 그 사장 놈은 그 사실이 발각될까봐 게임방 창고에 시신을
암매장하고 서둘러 팔아 버린거고..."
"아이고... 끔찍해라... 그러면 그걸  숨길려고 일부러 가출을 했다고
하고서는... 허참... 그런 몹쓸 놈을 봤나.... 쯧쯧쯧."

"그나저나 이 컴퓨터들... 어디서 난거지? 30대 정도나... 꽤 새건데..."
"우리가 그걸 알아서  뭐해? 사장이 또 어디서 싸게 샀겠지 뭐. 우리는
그저 물건만 옮겨주면 되는 짐꾼이라고..."

"어? 그런데...  참 이상하네? 이 컴퓨터만 왜 이렇게 무겁지? 더군다나
조금전까지 사용했던 것처럼 본체랑 모니터가  따뜻하고 말이야... 그런
데... 모니터에 뭔가가 비치는... 데... 뭐... 지? 앗... 이... 이건...?"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