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글]해변에서 생긴 일
"정말 덥구만... 흐휴~"
형민이가 상규의 낡은 자가용을 타고 가다가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는
곁에 놓인 신문지롤 집어들어 얼굴에 부채질을 하며 중얼거렸다. 상규
는 운전을 하다 말고 형민이 쪽을 '힐끔' 바라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모처럼 떠나는 여름 피서인데... 차가 말썽이라... 흠..."
"그러게... 정비 좀 잘하라고 했잖아? 이 찜통 더위에 에어컨이 안되면
어떻게 하냐? 하긴... 고물차를 탄 내가 바보지. 애당초 고속버스로 갔으
면... 기름 값이나 차비나 그게 그걸 텐데..."
형민이가 계속해서 궁시렁거리자 상규가 약간 짜증난 목소리로 대꾸했
다.
"거참.. 미안하다고 말하니까 더 하네? 아침까지만 해도 에어컨이 빵방하
게 들어왔단 말이야. 네가 차에 탄 이후로 에어컨이 안 돼는 거지. 그렇
게 생각하면 네탓이기도 하잖아? 네가 워낙~ 재수없는 놈이라..."
"지랄하네. 별... 말도 안돼는 핑계를... 알았다. 알았어. 그만하면 되잖
아?"
형민은 여전히 오른손을 재빠르게 움직이며 부채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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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바다다! 바다. 이게 얼마만에 보는 바다냐?"
서해안의 호젓한 해변가에 차를 멈춘 둘은, 넘실거리는 바다를 향해 뛰
어가며 소리쳤다. 바닷가에 다다르자 형민이 느닷없이 웃통을 벗어제끼고
무작정 물에 뛰어들려고 하자 상규가 말리며 얘기했다.
"임마,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은 여기가 아냐. 여기는 해수욕장도 아니고...
하도 덥길래 잠시 쉬러 들린 곳인데..."
웃통에 이어 바지까지 반쯤 내린 형민이가 상규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
다.
"바보... 바다만 있으면 되지. 이 더운날 굳이 해수욕장을 찾아 갈 필요가
뭐있냐? 그냥 여기서 수영이나 하다가 밤되면 적당한 곳에서 민박이나
하면 되지. 아직 휴가 기간도 5일이나 남았는데..."
"그래도... 여기는 모래사장도 없고... 자갈 뿐인데. 더구나... 아까 입구
에 보니까 '군사지역' 이라고 써있던데... 아마도 그래서 주위에 사람들이
없는 거 아냐?"
"됐어. 너나 하기 싫으면 관둬. 난 수영할 거야."
결국 팬티만 달랑 남은 형민이 상규의 손을 뿌리치고 보기에도 시원한
짙푸른 바다에 뛰어 들었다. 상규는 한동안 주위를 둘러보다가 마침내
포기를 하고 혼자서 신나게 수영을 하고 있는 형민을 물끄러미 바라 볼
뿐이었다.
"짜식, 생긴 것 처럼 성격까지 급해놔서... 30분 정도 저러면 또 다른
곳으로 가자고 할게 뻔하니... 그냥 기다리기나 하자."
상규가 돌투성이 해변에 쭈그리고 앉았다. 형민은 잠수를 했다가 떠올랐
다가 하며 계속 수영을 하고 있었다. 수평선 가까이에는 조그마한 돌섬들
이 몇개 있었고 해변 근처에도 제법 큰 바위와 자그마한 섬들이 줄지어
있었다. 형민은 그 사이를 수영을 해서 왔다갔다 했다.
한참을 처다보던 상규가 무료해진 듯 기지개를 피며 입이 찢어져라 하
품을 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며 중얼거렸다.
"저놈... 지치지도 않나? 벌써 어두워 지는데... 어쨌거나 체력하나는
대단하... 어? 어? 쟤, 왜 저래?"
바다 속을 물개처럼 헤비집고 다니던 형민이가 갑자기 손을 하늘로 뻗
어 허우적거리는가 싶더니 공포에 가득찬 눈길로 상규쪽을 바라보며 무
언가 알아 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댔다. 그와 동시에 물속으로 가라앉
는가 싶더니 잠시후 파도만 넘실 거릴뿐 형민의 모습은 아무곳에도 보
이지를 않았다.
"이... 이런... 형민이 놈 쥐가 났나? 바다에 빠진 거 아냐?"
상규는 다급함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형민이가
빠진 곳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형민아! 김형민!!! 어떻게 된거야? 야, 이 새끼야!!!"
처절한 상규의 외침은 그저 공허하게 하늘로 울려퍼질 뿐이었다. 상규는
물속에 뛰어들까 생각을 하다가 저 넓은 바다에서, 수영도 잘 못하는 자
신이 형민을 구해낸다는 것이 다소 무리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괜히 섣불리 들어갔다가... 나까지...'
어찌 보면 치사한 생각일 지는 몰라도 상규의 심정은 그랬다. 최소한 형
민이 빠진 곳까지 가기 위해서는 10분 넘게 수영을 해야하고... 또 막상
그곳까지 갔다하더라도 형민을 찾는다는 건...
얼마전 낚시터에서 사람이 빠졌던 일이 생각났다. 밤낚시를 하던 중이었
는데 옆에서 조용히 낚시질을 하던 어떤 사람 한명이 볼일을 보려는 듯
어둠속으로 사라지더니만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살려달라'는, 소름끼치
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근처에서 낚시를 하던 사람들이 뛰어가 옆 저수지에서 허우적거리는 그
사람을 발견했고, 빠진 사람의 친구인 듯한 사람이 무작정 물속으로 뛰
어들었다. 그리고 10분 후... 그 둘은 더이상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나중에 구조반이 와서 3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꺼낸 둘의 시신은 수초로
마구 휘감겨 있었고 그 둘의 배는 개구리처럼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더욱이 먼저 빠진 사람은 나중에 뛰어 들어간 자신의 친구의 허리를 꽉
붙잡은 채 두 눈을 부릅뜨고 죽어 있었는데... 친구는 죽는 순간까지 자
신의 허리에 감긴 손을 뿌리치려 안간힘을 썼었는지 손톱들이 반넘어
뜯겨 나가 있었고 먼저 빠진 사람의 팔목과 손등은 가죽이 벗겨진 채
너덜거리고 있었다.
'그... 그렇다고... 친구가 빠져 죽는데... 이... 이러고만 있으면...
어... 어쩌지?'
이런 상황에서 생각외로 침착한 자신의 행동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상규는 고개를 두어번 흔들고 멍하니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그... 그래, 119...'
그제서야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생각났는지 여전히 눈은 형민이가 빠진
바다 쪽을 응시하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귀에 갖다 대었다.
그때 자신의 어깨 위에 척척하고도 싸늘한 느낌이 드는가 싶더니 누군
가가 어깨를 '툭, 툭' 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뒤로 돌아 보는데...
"엇? 아~ 악!!!"
상규의 뒤에는 까만색 선글라스를 얼굴에 낀 어느 여자 한명이 너무나도
창백한 얼굴을 하고 '씨익' 웃고 있었다. 상규는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
어 뜨리고는 뒤로 두어걸음 물러나며 물었다.
"노... 놀랬잖아요? 다... 당신은 누구예요?"
그 여자는 상규와 바다 쪽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 신, 친구가 물에 빠졌죠?"
"어떻게 그... 걸?"
"훗... 아까부터 저쪽에서 보고 있었죠. 당신... 보기와는 달리... 냉혹한
이네요? 친구가 물에 빠졌는데... 구할 생각은 안 하고..."
여자의 이죽거림에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상규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건... 내가... 수영도 못하고... 또..."
여자는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고는 땅에 떨어진 핸드폰을 주워 주며 말
했다.
"어서 신고나 하세요. 시신이라도 건져야죠."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의 명령 아닌 명령에 상규는 떨리는 손으로
119에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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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민의 시신을 찾는 구조 작업은 밤이 늦도록 계속되었다. 근처에 위치
한 군부대에서도 지원을 나와 도와주었지만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더욱
이 해가 진 후에는 날씨까지 거칠어져서 대부분의 구조반원들은 포기를
하기 시작했다. 다만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 시작한 상규와 알 수 없는
여자만이 해변에 쪼그리고 앉아 몇 남지 않은 구조반원들의 작업을 지
켜 볼 뿐이었다.
"젠장... 내가 수영하지 말라고 했더니만..."
이윽고 상규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옆에 앉은 여자는 여전히 쓴웃
음을 지으며 썬글라스를 낀 얼굴을 살짝 돌려 상규를 바라보았다.
"다, 팔자죠. 죽음은 한순간이니..."
"그런데... 그쪽은 무슨 일로 여기에 오신거죠? 그리고 아직도 여기에
계시는 이유를... 저는 잘 모르겠어요..."
여자는 발 밑에 놓인 자갈들을 손끝으로 '툭, 툭' 건들며 지나가는 말투
로 말했다.
"이 바닷가... 저한테는 사연이 깊은 곳이죠. 작년에... 제 애인도 바로
이 바닷가에서 익사를 했고요..."
"예? 아, 그... 그렇군요."
한동안 둘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잠시후 구조반원들이 상규에게 다가
와 다음날 날이 밝으면 다시 구조작업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하면
서 아마도 시신은 조류에 멀리 떠내려 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절망적으
로 말했다.
상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숨만 쉬었고 그들은 장비를 챙기고 어둠속
으로 사라져 갔다. 바닷가의 밤바람이 점차 거세게 불어오기 시작했다.
여자는 동상처럼 바다를 바라 볼 뿐이었고, 상규의 한숨섞인 푸념이 입
속에서 흘러 나왔다.
"젠장... 형민이 놈... 정말 착했는데... 그 놈, 일가친척도 없는 불쌍한
놈이였다고요. 시신을 못 건진다해도 아무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없을
만큼 외로운... 그런데... 하나있다는 친구인 저마저도... 형민이가 물에
빠져 죽어가는 것을 뻔히 쳐다보며... 내 목숨하나 건지겠다고 가만히
있었으니..."
"그렇군요. 죽는 다는 건... 훗... 제 애인도... 비슷했죠. 저 하나만
미친듯이 슬퍼했을 뿐..."
어느새 잔뜩 지푸렸던 하늘에서 한, 두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
다. 상규는 힐끔 하늘을 쳐다보다가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
"휴~ 저는... 차 안에라도 들어가 밤을 새야겠네요. 그쪽은 어쩌실 거죠?
계속 여기에 계실 건가요? 아니면..."
여자는 고개를 흔들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여기서 그냥 있을래요. 사실 오늘이... 제 애인이 이 바다에 빠진
지 꼭 일년 째 되는 날이거든요?"
"그러시군요. 하지만... 비가 거세질 것 같은데... 괜찮으시다면 제 차에
서 비라도 피하시고..."
"괜찮아요. 오늘밤에 그를 만나야 하니까요."
"예? '그'라니요?"
"훗... 제 애인 말이예요."
갑자기 상규는 등골이 오싹해지며 온몸에 소름이 순식간에 쫘악 돋았다.
"무... 슨 말씀이세요? 애인은 작년에 여기서 익사를 하셨다고...
방금... 말... 하셨잖아요?"
"맞아요. 죽었죠. 그러니 오늘 밤에 만난다고 하는 거 아니예요?"
순간 상규는 이 여자의 정신 상태가 의심스러워졌다.
'제길... 미친 여자구나. 어쩐지... 좀 이상하더라니...'
상규는 여자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을 치며 애기했다.
"그럼... 그러세요. 애... 애인과... 아름다운 밤을 보내시기를..."
상규의 말에 그 여자는 환한 웃음으로 답하며 여전히 바다쪽을 쳐다보
았다. 뒷걸음질 치던 상규는 여자와의 간격이 조금 벌어지자 근처에 주
차해 놓은 자신의 차를 향해 황급히 달려가 운전석에 앉고는 차문을 잠
그며 중얼거렸다.
"젠장... 오늘, 왜 이런 일들만 생기지? 형민이는 물에 빠져 죽고...
아무도 없는 해변에는 미친 년이 홀로 앉아 죽은 자기 애인을 기다린다고
하지를 않나... 휴~ 어쩌지? 그렇다고 시신도 못 찾았는데... 다른 곳으
로 간다는 건... 죽은 형민에게 미안한 일이고..."
더운 날씨와 긴장으로 얼굴에 흐르는 땀을 손으로 훔쳐내며 상규가 중얼
거렸다. 차 앞창문으로 보이는 그 여자는 여전히 웅크리고 앉아 바닷가
를 응시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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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픗 잠이 들었는지 철썩이는 파도 소리에 상규가 눈을 떴다. 주위는 여
전히 칠흑같은 어둠뿐이었고 하늘에서는 거세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상
규는 머리가 아픈 듯 몇번 흔들더니 자세를 고치고 좌석에 바로 앉아
무심코 바닷가를 쳐다보았다.
"엇? 저게 뭐야? 저... 여자... 뭐하는 거야?"
해변에 앉아 있던 그 여자가 비를 흠뻑 맞은 채 천천히 바다를 향해 걸
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상규는 너무 놀라 차문을 벌컥 열고 뛰듯이
내려 그 여자를 향해 소리쳤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지금 뭐하는 짓이예요?"
그 여자는 상규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해서 바다를 향해 걸어 들어가는 것이었다. 상규는 다급히 그 여자쪽으
로 뛰기 시작했다.
"정신차려요! 죽을려고 환장했어요?"
상규가 바닷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 여자 몸의 대부분이 바다물 속
으로 잠겨가고 있었다. 상규가 몇발자국 내디뎌 발목에 올 정도 깊이의
바다물로 들어갔을 때는 검푸른 파도만이 넘실 거릴 뿐 아무것도 보이
지를 않았다.
"젠장... 어떻게 된거야? 어쩌지? 어쩌냔 말이야?"
문득 발아래를 보니 철썩이는 파도를 타고 방금 자살한 그 여자의 까만
색 썬글라스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천천히 허리를 숙여 썬글라스를
집은 상규는 손을 파르르 떨다가 마침내 핸드폰을 꺼내서 형민의 시신을
찾던 구조반에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여... 여보세요? 아, 예... 어제 저녁에 바다에 빠져 죽은 김형민이라는
사람의 친구인 최상규인데요... 예... 아시죠? 그런데 지금 또 한명이 그
근처 바다에 빠졌어요. 그... 그러니.. 어서..."
[예? 또요? 이번에는 누군데요? 언제 빠졌어요?]
"아까... 제 옆에 있던 여자 아시죠? 그 여자가 조금전 바다로 미친 듯이
걸어 들어 가더니만..."
[무슨... 여자요? 해변에 계실 때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까는... 혼자 계
셨잖아요?]
"예?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그때 철수를 하시면서 제게 말을 하실 때
까지도 제 옆에 앉아 있었는데... 그 여자 기억 안 나세요?"
[아뇨... 저는 상규씨 밖에 못봤는데요? 아무튼 지금 그쪽으로 출동할테
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상규는 핸드폰을 끊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 여자를 보지 못했다니... 아니... 그러면 여지껏 내가 봤던 그 여자는
도대체 뭐란 말이야?'
무심코 자신의 손에 들린 썬글라스가 눈에 띄었다. 상규는 그 썬글라스
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빗물이 흘러 번들거리는 그 썬글라스는 뭔가 묘
한 구석이 있었다. 약간의 야릇한 감정이 느껴져 무심코 써보았는데....
"엇? 아~~ 악..."
방금 그 여자가 걸어 들어가다 사라져 버린 바다 한가운데 그 여자의
머리가 둥둥 떠다니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옆에는 푸른색 군복
을 입은 군인 한명이 목만 물 밖으로 내밀고 서서는 자신을 매섭게 바
라보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은 몹시 기쁜 듯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군인은 멀뚱한 표정
에 슬픔이 가득찬 얼굴로 철썩이는 파도에 이리저리 떠밀리고 있었다.
여자는 군인의 머리에 올라갔다가 내려왔다가 하며 재주를 넘고 있었는
데 이상하게도 전혀 물에 젖지 않는 괴상한 모습이었다.
'호.. 혹시... 귀... 귀신???'
너무 놀라 뒤로 돌아서는데 발 밑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천천히 아
래를 내려다 보니...
"앗! 세... 세상에..."
상규의 발밑에는 저녁 나절에 물에 빠져 죽은 형민의 시신이 팬티만 입
은 채 엎어져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의 등은 날카로운 손톱에 긁힌 듯
다섯줄의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있었고 두 손은 상규의 발목을 잡은 채
밀려오는 파도에 이리, 저리 흔들거리고 있었다.
바다 속에 두둥실 떠다니던 여자는 군인의 퉁퉁 불은 얼굴을 한참동안
애무하더니 상규쪽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러자 엎어져 있던 형
민의 고개가 갑자기 들리더니 작은 물고기들이 잔뜩 뜯어 먹은 검붉은
입술이 우물, 주물거리며 쉰 목소리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나... 쁜... 놈... 저 여자가... 바다 속에서 내 발목을 붙잡고 놓지
않아... 물에 빠져 죽어가는 나를... 너는 그저 보기만 했지? 커헉...
너도... 나와 함께... 저 여자에게로 가야해... 바다 속이 얼마나...
춥고 캄캄한지... 너도... 느껴봐... 너도... 느껴보란... 말이야..."
"아... 안돼... 아~ 악!!"
형민의 두손은 바다 물속으로 상규의 발목을 잡아 끌고 있었고 물위의
여자는 신이 난듯 낄낄거리며,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는 상규를 그윽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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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두명의 군인이 해변을 걸어가다가 파도에 밀려온 듯한 까만색
썬글라스를 발견했다. 그 중 한명이 그 썬글라스를 주우며 다른 군인에게
말했다.
"이거... 작년에 이 바닷가에서 빠져 죽은 우리 중대장님 것과 똑같이 생
겼네?"
"작년에.. 죽다니요?"
"아, 너는 잘 모르겠구나. 이곳에 배치되기 전의 일이니... 작년 이맘때쯤
에 우리 중대 이대위라는 분이 저기 보이는 바위 근처에서 실족해 바다에
빠져 죽었어. 훗~ 어떤 사람들은 물귀신이 잡아갔다고도 하는데..."
"물... 귀신이라니요?"
"응... 예전에 이 마을에 살던 박수무당의 딸이 한명 있었는데...
이대위님을 짝사랑했었어. 매일 같이 부대 앞에 와서 미친 듯이 애걸을
하곤 했지. 자기와 결혼해 달라고... 이대위님은 애인이 있던 터라 당연
하게도 거절을 했고... 그 여자는 실망한 나머지 저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
을 했거든? 약간 맛이 간 여자 같긴 했는데...
아무튼 나중에 시신을 찾고 보니 평소 이대위님이 자주 끼고 다니시던
이것과 똑같은 모양의 썬글라스를 손에 '꽉'쥐고 있더라는 거야. 언제
훔쳤는지 모르지만... 그 여자... 자살하면서 오죽 이대위를 원망했겠어?
그런데 며칠 후 밤에 -그날밤 보초를 섰던 최이병한테 들은 얘기인데...-
이대위님이 그 여자가 죽을 때 쥐고 있던 자신의 썬글라스를 어디서 다
시 구했는지... 코에 걸치고는 바닷가 쪽으로 걸어갔다는 거야. 마치 넋
이 나간 사람처럼 무표정한 모습으로 말이지.
그리고 다음날, 이 해변에서 파도에 떠밀려 온 이대위님의 시신이 발견
됐지. 이상한 건... 등에 누군가가 할퀸듯한 시뻘건 손톱 자국이 선명하
게 있었는데... 살점이 뚝뚝 뜯겨 나가 있었고... 발목은 누군가가 세게
쥐었는지 피멍이 들어 있더라는 거야.
얘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여자가 물귀신이 되서 이대위님을 잡아
갔다고 했지. 그 뒤로도 종종 남자들이 이 근처 바다에 빠져 죽었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그 여자가 남자에 원한이 맺혀서 이 해변을 떠돌며
그런 짓을 한거라고들 말을 하지. 그래서 우리 부대 사람들은 여기서
수영을 안하잖아?"
"흠... 그렇군요. 그런데... 참 이상하네요. 오늘 낮에 이 근처 바닷가에
서 발견된 두구의 익사한 남자들 시신도, 등에 손톱 자국이 있었다는데...
더구나 발목에도 피멍이 들어 있었고..."
"그래? 어제도 빠져 죽었데? 정말 희한한 일이야. 하필이면 같은 곳에
서... 그것도 남자들만 빠져 죽다니... 훗... 정말 그 여자 귀신이 있기는
한 건가? 그나저나... 이 썬글라스... 한번 껴보기나 할까? 음... 어때...
폼나지? 어? 그... 그런데... 네 뒤에 있는 여자는 누구니? 어? 저.. 바다
물 속에 서있는 군인... 은... 엇... 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