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족주의 과잉 왜?”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이 ‘단일 민족국가’ 이미지를 극복해야 한다고 18일 권고했다. 단일민족 논리의 ‘사실 왜곡’이 이주노동자와 이주결혼 여성 등에 대한 인권침해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혀 사실이 아님에도 ‘순수혈통’ 신화는 어떻게 의심받지 않는 ‘역사적 진실’로 창조될 수 있었을까? 영화 ‘디 워’의 완성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왜 네티즌들로부터 집단 이지메를 당하고 있을까?일본 지하철 승객을 구하고 숨진 이수현씨는 왜 개인이 아닌 국가적 의인이 됐고, 평소 천대받던 기지촌 여성은 미군에게 살해되는 순간 왜 ‘순결한 민족의 누이’로 탈바꿈될까?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을 접한 한국 국민은 왜 국민적 죄의식에 사로잡혔을까? 이들 질문의 저변에 깔린 ‘집단적 흥분’의 요체는 바로 민족주의다.
최근 출간된 ‘제국 그 사이의 한국’(휴머니스트 펴냄)은 1895(청일전쟁)∼1919년(3·1운동) 사이 한국 민족주의의 기원을 풍부한 실증자료를 바탕으로 세밀하게 파헤쳤다.“민족주의는 위기를 먹고 자란다.” 저자 앙드레 슈미드(캐나다 토론토대 동아시아 연구분과 교수)는 민족주의 ‘발명’의 핵심 메커니즘을 한마디 선언적 명제로 정의한다.‘대한제국’이란 국명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민족’ 개념이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사회 담론의 최전선에 배치될 수 있었던 까닭은 국난극복이란 절체절명의 시대적 과제 때문이었다.
당시 민족 개념 형성과 확산의 첨병은 신문이었다.‘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 등 민족지가 선두에 섰고, 신채호와 장지연은 당대의 스타이자 ‘펜을 든 무사’였다. 당시는 최초의 미디어전쟁 시기이기도 했다. 일본은 식민지 한국에 걸맞은 이미지 창조가 시급했고, 한국 민족주의자들에겐 국권침탈에 맞설 단결된 민족 이미지가 필요했다. 각자 ‘의도된 편집’을 십분 활용했다. 슈미드는 “다양한 섹션을 한 지면에 묶어내는 신문의 지면 구성은 단번에 다양한 화제들을 조사할 수 있게 해주었다.”면서 “이러한 화제들은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일지라도 민족적 관점에서 그 취지를 천명하기 위해 편집부가 분명하게 또는 암묵적으로 짜깁기한 것들이었다.”고 적었다.
슈미드는 저항담론으로서 민족주의의 시대적 당위를 긍정하면서도, 민족주의가 수반하는 경직성 또한 놓치지 않는다. 민족지 편집자들은 의병의 애국심에 연민의 태도를 보이면서도 의병의 폭력저항이 자신들이 의도하는 문명화전략과 충돌한다고 비난했다. 한국 민족주의 운동의 은폐된 갈등이다.
슈미드는 민족지 편집자들의 문명개화 전략이 일제의 식민주의 전략과 묘하게 공명했다는 ‘논쟁적 지적’도 피해가지 않는다. 그는 “두 집단 모두 문명개화를 중심으로 정치적 계획을 수립했기에, 편집자들은 1905년 이후 자신들이 그렇게 열심히 전달하려는 지식이 사실상 한반도의 식민지화를 부추길지도 모른다는 딜레마에 부딪히게 된다.”고 주장했다.
옮긴이인 문학평론가 정여울씨는 “수치와 분노로 가득찬 ‘원한의 민족주의’를 벗어날 수 있을 때,100년 전 저마다 애끓는 동상이몽으로 민족을 사유했던 옛사람들의 꿈은 새로운 역사적 상상력의 도화선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서울신문 기사일자 : 2007-08-21 24 면
위 기사의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몇 자 언급해 본다.
영화 ‘디 워’의 완성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왜 네티즌들로부터 집단 이지메를 당하고 있을까?
'디 워'는 심형래씨의 그 동안의 노력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감복했다. 그래서 그가 한 일(영화)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그의 노력에 대한 숙고가 없이 오로지 평균적인 수준에서의 작품에 대한 평가만으로 왠지 심형래의 그 교훈적인 노력까지도 함께 모든 것이 최선의 작품이란 평균적인 수준에 놓여져서 완성도가 낮다고 평가되어지는 것에 많은 한국인들이 반발을 하는 것이다.
일본 지하철 승객을 구하고 숨진 이수현씨는 왜 개인이 아닌 국가적 의인이 됐고,
한일간의 문제로 인해 부각된 측면이 강하다. 우리는 너희 일본에게 당했어도 오히려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목숨까지 던지는데 너희 일본은 과거의 잘못조차 제대로 반성하지도 않고 허구헛날 "위안부는 없다." "독도는 일본땅이다" 라고 헛소리를 하니 그에 따른 일본측의 반성을 촉구하는 측면이 강했다. 그런 측면에서 이수현씨는 개인이 아닌 국가적 차원으로 승격된 것이다.
평소 천대받던 기지촌 여성은 미군에게 살해되는 순간 왜 ‘순결한 민족의 누이’로 탈바꿈될까?
해방직후 미국이 한반도에서 한 일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미국 스스로도 당시에 해방군이 아닌 점령군(즉 침략자란 의미)으로 이 땅 한반도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은 남한내의 민족반역자들인 친일파들을 그대로 인정해 주었다. 결국 그런 미소간의 대립은 적어도 남한에서는 그런 미군의 주둔이 계속되고 그 주둔에 따른 한미간의 협정내용과 일반사회에서 미국인들에 대한 우월적 차별인식들이 한국인들의 머리속에 쌓여진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 의한 범죄는 침략자의 탐학으로 비쳐지는 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을 접한 한국 국민은 왜 국민적 죄의식에 사로잡혔을까?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 사건에서 보여준 한국인들의 반응은 친미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의 반응이였다. 그 중 대다수는 미국을 자주 왕래하거나 그 곳에서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그의 한국내 가족들이였던 것 같다. 흔히 미국이란 나라는 인종차별로 인해 폭동까지도 일어나는 나라로 한국인들은 알고 있다. 그런 나라에서 그것도 대학교라는 합리성과 이성이 살아숨쉬는 곳에서 무려 수십명을 살해했다는 것에 일부 한국인들이 이러다 자칫 인종차별로 이어지는 것 아닌 가는 하는 우려를 많이 한 것으로 안다. 무엇보다 그 사건에서 한국 정부가 그런 한국인들의 과잉행동을 부채질 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주권이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에서 "사죄"의 의미로 해석이 가능한 언행들을, 연일 떠들어대는 언론에 내놓으니 더욱더 사건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이 확대과장될 수 밖에 없었다.
이들 질문의 저변에 깔린 ‘집단적 흥분’의 요체는 바로 민족주의다.
심지어 놀 때조차도 혼자 논다는 미국의 '사회적 자본'의 결려를 비판하는 말에 비하면 한국사회의 저변에는 그에 비하면 정말 강한 집단적 특성이 잠재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일본이나 중국 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아니 오히려 그들보다는 낮는 수준이라고 판단된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오히려 '민족반역의 뿌리'를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각 나라마다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나라가 있고, 개인주의 문화가 강한 나라가 있다. 그들은 두 종류는 서로 좋고 나쁜 관계가 아니다. 서로간의 장단점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위에서 언급된 '민족'개념의 시대적 과제는 국난극복이란 절체절명의 시대적 과제였다는 것은 곧 민족개념의 필요성이자 기원이 될 것이다. 그리고 경제성장 및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입장에서 뿐아니라 남북분단이란 현실과 일제잔재청산이라는 측면들에서 민족개념은 지금의 시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