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 오는 날은 촛불을 밝히고 그대에게 편지를 쓰네
습관적으로 내리면서도 습관적인 것을 거부하며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그대에게 내가 처음으로
쓰고 싶던 사랑의 말도 부드럽고 영롱한 빗방울로
내 가슴에 다시 파문을 일으키네
2
빨랫줄에 매달린 작은 빗방울 하나 사라지며
내게 속삭이네 혼자만의 기쁨 혼자만의 아픔은
소리로 표현하는 순간부터 상처를 받게 된다고
늘 잠잠히 있는 것이 제일 좋으니 건성으로 듣지 말고
명심하라고 떠나면서 일러주네
3
너무 목이 말라 죽어가던 우리의 산하 부스럼난
논바닥에 부활의 아침처럼 오늘은 하얀 비가 내리네
어떠한 음악보다 아름다운 소리로 산에 들에
가슴에 꽂히는 비 얇디얇은 옷을 입어 부끄러워하는
단비 차갑지만 사랑스런 그 뺨에 입맞추고 싶네
우리도 오늘은 비가 되자 사랑 없이 거칠고
용서 못해 갈라진 사나운 눈길 거두고 이 세상 어디든지
한 방울의 기쁨으로 한 줄기의 웃음으로 순하게
녹아내리는 하얀 비 고운 비 맑은 비가 되자
4
집도 몸도 마음도 물에 젖어 무겁다
무거울수록 힘든 삶 죽어서도 젖고 싶진 않다고
나의 뼈는 처음으로 외친다 함께 있을 땐 무심히
보아 넘긴 한 줄기 햇볕을 이토록 어여쁜 그리움으로
노래하게 될 줄이야 내 몸과 마음을 퉁퉁 붓게 한
물기를 빼고
어서 가벼워지고 싶다 뽀송뽀송 빛나는
마른 노래를 해 아래 부르고 싶다
이 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