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선 제압
연수에서 돌아온 세현은 인턴은 까맣게 잊은 채 친구들과 놀기에 바빴다. 가끔씩 하정에게서 문자나 전화가 왔지만 세현은 문자는 바쁘다는 핑계로 대충 보내거나 못 본척 하고 전화도 거의 받지 않았다. 혹시나 채진아 대리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을까 기대를 해보았지만 그것은 기대 뿐이었다.
"너 운명의 여자를 만났다며 어떻게 된거냐?"
술 자리에서 친구들은 궁금해하며 이렇게 물었다.
"몰라, 잘 안 되고 있어.
그보다도 다른 여자가..."
그러면서 세현은 그간에 하정이 자신에게 보여준 태도를 친구들에게 설명해주고 상담을 구했다. 연애 경험이 없었던 세현은 연애에 있어서는 선수인 친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야, 그 여자가 너 좋아하네."
"뭐? 정말"
"근데 넌 그 여자 싫으냐? 어떻길래? 사진 봐봐!"
세현이 단체사진에서 하저을 가리키자 친구들이 아우성이었다.
"야, 이렇게 귀여운 여자가 왜 싫으냐?
너가 굴러들어온 복을 발로 차는구나."
"너 싫으면 나나 소개시켜줘."
친구들은 제각기 이렇게 한 마디씩 하며 눈높은 세현에게 어이없어 하였다. 술자리에서 집에 돌아온 세현은 민하정이라는 여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녀에게는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센스일렉트로닉에 인턴으로 첫 출근하는 전날이 되었다. 이제 출근을 하면 민우와 본격적인 경쟁을 벌인다고 생각한 세현은 요 며칠 새 어떻게 하면 민우와의 경쟁에서 기선을 제압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였다.
고민 끝에 세현은 갑자기 머리 속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민우네 조는 UCC 동영상을 만들어 센스일렉트로닉의 신제품인 '센스Q NO.1'을 홍보한다고 했었다. 세현은 민우네 조보다 먼저 선수를 치기로 했다. 민우네 조보다 한 발 앞서 UCC 동영상을 만들어 인터넷에 퍼뜨리는 것이 세현이 생각한 방법이었다. 어차피 민우는 홍보마케팅팀 소속의 인턴이었으므로 홍보를 먼저 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었다.
민우는 우선 '센스Q NO.1'이 무엇인지부터 공부하기로 했다. 세현이 인터넷을 찾아보니 '센스Q NO.1'은 세계 최초로 센스일렉트로닉이 개발한 UMPC였다.
'UMPC는 또 뭐지?'
세현은 계속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았다. UMPC가 노트북보다 작으면서 휴대성을 강조한 울트라 모바일 PC라는 정보를 찾아낸 세현은 좀 더 자세한 설명도 빼놓지 않고 읽었다. 세현은 컴퓨터공학을 전공으로 하고 있었지만 컴퓨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던 탓에 처음 들어보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세현은 민우를 이겨야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를 하였고 드디어 '센스Q NO.1'에 대한 파악을 모두 끝냈다. 그리고 세현은 평소 연마해 두었던 동영상 제작 실력을 발휘하여 그럴 듯한 UCC 동영상을만들기 시작했다.
장시간의 작업 끝에 꽤나 만족스러운 동영상이 완성되었고 세현은 그것을 인터넷 사이트 곳곳에 업로드하였다. 시간을 보니 밤 12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다. 다소 피곤하긴 했지만 다음 날 출근하여 벌어질 광경에 세현은 기대감이 생겨 기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드디어 세현은 첫 출근을 하였다. 원래 취업에는 큰 흥미를 못 느끼던 세현이었지만 일단 모두가 선망하는 회사에서 일한다고 하니 웬지 설레기도 하였다. 우선 출근을 하면서 세현은 회사 분위기를 살폈다. 어제 밤에 자신이 인터넷에 올린 UCC 동영상이 어떤 파급 효과를 일으켰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 외로 회사는 조용했다. 의아한 세현은 우선 일하게 될 사무실로 올라가서 팀장을 비롯한 직원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 중에는 채진아 대리와 민하정도 있었다. 또한, 정훈을 비롯한 조원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세현이 자기 책상으로 가서 앉으려고 하는데 하정이 세현을 쫓아와 물었다.
"많이 바빴어?"
"네, 그냥 좀..."
"그랬구나. 이거 마시면서 해."
하정은 세현에게 커피를 건네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세현은 친구들 말대로 하정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세현의 눈길은 채진아 대리에게로만 향해있을 뿐이었다.
'사랑은 왜 이렇게 엇갈리는 것인가.'
세현이 한탄을 하고 있는데 잠시 후에 회의를 한다고 채진아 대리가 알려왔다. 세현은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자신의 작전이 실패로 끝났다고 체념하고는 회의실로 이동하였다.
회의 주제는 역시나 '센스Q NO.1' 홍보에 관한 것이었다. 회의가 막 시작하려는 데 갑자기 연수원 때 봤었던 김 부장이라는 사람이 황급히 들어왔다. 모두의 시선이 김 부장에게 집중된 가운데 홍보마케팅 팀장인 이지혜 차장이 물었다.
"부장님 무슨 일이세요?"
"여기 한세현씨라고 있습니까?"
"네, 그런데요."
"네, 제가 한세현입니다.
무슨 일이신지요?"
세현은 일어나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는 김 부장을 바라보았다.
"한세현씨, 정말 대단합니다.
한세현씨가 올린 UCC 동영상이 인터넷 상에서 아주 큰 인기를 끌고 있어요.
덕분에 우리 '센스Q NO.1'이 아주 큰 홍보가 되고 있어요.
이번에 정말 좋은 인재를 뽑았군요. 하하하!"
세현은 속으로 무척 기뻐하며 민우를 바라보았다. 민우의 표정은 다소 화가난 것 같기도 하고 세현이 그런 일을 했다는 것에 의아한 것 같기도 하였다.
홍보마케팅팀 팀장을 비롯한 직원들과 세현의 같은 조 조원들 모두 세현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김 부장이 다시 말을 꺼냈다.
"한세현씨, 잠깐 나를 좀 따라오세요.
사장님께서 찾으십니다."
"네, 알겠습니다."
세현은 사장이 자신을 찾는다고 하니 더더욱 기뻐서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그러나 애써 태연학 척 하며 김 부장을 따라 회의실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