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2년3개월 그리고 3일전 나는 없다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괌에서 보았던 푸른바다는 없고 내 앞에는 지하철공간에서 서로를 밀쳐내며
힘겹게 하루를 시작하는 직장인들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하고 있다
나는 아직 운전면허가 없다
보통 20살이 되고 나면 운전면허를 따기 시작하지만 난 아직 운전면허를 따고 싶지않다
겁이 나기도 하고 아직 차를 살 여유도 없다
그래서 난 아침마다 지하철, 버스에서 전쟁같은 하루를 보낸다
사람에 찌들려 일에 찌들려 졸음에 찌들려 하루를 시작한다
“여러분 한지유가 돌아 왔습니다”
Rupam 내가 일하는 이곳
“지유 왔니 3일 못봤는데 30일은 못 본 것 같아 어서와 친구야”
나를 가장 반겨준 사람은 친구이자 동료인 사랑스러움의 최고봉 공주연 이었다
“어라 지유씨 왔네 조금 있다가 내방으로 와”
모두들 평소와 다름없이 날 반겨주었다
이인우가 결혼을 한 사실을 분명 알고 있을 텐데 말이다
이런 사소한 배려에도 크게 감동하는 사람이 나 한지유이다
사람들은 행복이 그리고 감동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만 뒤돌아 보면 볼수도 들을수도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걸 느끼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나 또한 그랬다 모두들 뒤를 한번 돌아보시길 누군가가 미소짓고 있을 줄 모르니 말이다
하지만 감동에 젖은 나에게 누군가가 말을 하였다
“지유 선배 파이팅”
도대체 머가 파이팅이란 말인가
나를 동정하는 눈빛에 그녀는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 사원이었다
‘넌 나이가 어리니까 눈치가 없어도 용서가 될 줄 아니‘ 이렇게 말할 만큼 난 모진사람이
아니었고 그녀 또한 진심으로 날 응원하였다
“예진씨도 파이팅”
‘똑똑똑’
“팀장님”
“한지유 프리준 이라고 들어봤지”
우리 팀장님은 38살의 이혼녀이다
“프리준 이라면 쇼핑몰 보고 말하시는거예요?”
“그래 맞아 요즘 제일 잘나가는 쇼핑몰이지 음.. 내 경험상 시련의 아픔은 일이 최고야”
“팀장님 저 진짜 괜찮아요 이제 괜찮아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그래도 일은 해야겠지? 프리준을 한 달간 조사해보고 글 써봐 ”
“한달이요 그럼 일주일에 1~2번 다녀가면 되겠네요”
“알면 당장 뛰어 출발!”
“공주연씨 난 오늘 외근나갑니다 점심 같이 못먹겠다”
“오자마자 바쁘네”
“그러게 말이야 우리 팀장님 빨리빨리 좋아하시잖아 그건 그렇고 오늘 밤 약속 없으면
소주한잔어때 ”
“난 좋아 그럼 9시까지 요 앞 포장마차에서 보자”
빨리 빨리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행동이 느리던 나까지도 빠르게 만들어 버린 한국 사회생활
그 생활에 난 이미 적응하였다
모두들 경보 선수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산다
어떤 이는 인생은 마라톤 같은 거라 하였지만 난 마라톤도 경보도 싫다
그냥 걷는 게 좋다
프리준은 지하철을 2번 갈아타면 되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였다
“아무도 안계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작고 뚱뚱하지는 않은 통통한 직원이 날 반겨주었다
“안녕하세요 전 루팜잡지에 한지유 기자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안계시는데”
“다들 어디갔나요?”
“네 ..직원들은 사진촬영 갔고 사장님은 오후쯤에 나올 실 듯한데”
아 이런 난 가장 기본적인 전화를 하고 방문하는 절차를 생략해버렸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죄송해요 정신없이 와서 사장님한테 전화를 안드렸네요 핸드폰번호 좀 알려주시겠어요?”
똥글이 나는 이제 이 여직원을 똥글이로 부를 것 이다
똥글이는 친절히 번호를 알려주었다
사장이라는 사람은 긴 신호음 뒤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 .. 여보세요? 신은준씨 전화 아닌가요”
“누구야”
“ 아 저는 루팜에 한지유라고 합니다”
“하 한지 뭐 ”
“한 지 유 기자라고요”
“몰라 이따 전화해”
뚜뚜뚜뚜 .. 분명 방금 전까지 자고 있었을 이 남자는 나에게 반말을 내 뱉으며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런 싸가지
난 결국 그 잘나신 프리준의 대표를 만나지 못하고
똥글이 에게 프리준의 경영스타일과 대표라는 사람의 이야기만 조금 들은 채 돌아갔다
“어이 한지유 여기야 ”
주연이가 먼저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 주연이와 술을 부어라 마셨다
술술 잘 들어가서 술인가 오늘 따라 술이 맛있었다
주연이에게는 4개월 된 남자친구가 있었고 옆에서 계속 전화를 한다
나의 핸드폰은 오늘 휴무인가
한번도 울리지 않았다 더구나 1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에 다 큰 딸이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집에서 연락조차 없다
이건 뭐 막장인생이구만
주량 소주 반병을 넘어서버린 주연이는 점점 혀가 꼬이고 그 큰눈이 반쯤은 감겨 소주앞에서
허우적 되고 있었다
“지유야 내 친구 한지유 ”
“얘가 왜 이래 그래 난 니 친구 한지유다”
난 웃으며 친구의 주정을 받아 주고 있었다
“힘!”
“응? 그래 나 힘쎄 ”
“아니아니 힘 힘 내라고”
사람은 술에 의존한다
술은 소심한 사람을 대범하게 만들어 주고 무뚝뚝한 사람을 애교쟁이로 만들어 주며
하기 힘든 이야기를 쉽게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내 앞에서는 내가 아플까봐 이인우 이야기를 꺼내지 않던 내 친구는 술 앞에서 날 위로한다
“그래 힘힘힘 자 원샷 ”
정확히 30분 뒤 그녀는 4개월을 넘기고 있는 2살 연하 남자친구에게 끌려 집으로 갔다
매너 좋은 주연이의 어린 남자친구는 나까지 집에 바래다 주겠다 하였지만
난 술 을 더 먹겠다며 극구 사양하였다
혼자 주거니 받거니 하며 술 잔을 비우니 나도 어느새 혀가 꼬이고 눈 앞이 흐려지기
시작했을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23시간39분만에 일이었다
“여보세..”
“이놈의 지지배가 또 술 퍼마시고 있네 빨리 들어와 택시할증붙어 빨리 들어와”
뚝 . 항상 할 말만하고 전화를 끊으시는 우리 엄마
오늘의 용건은 결국 할증 붙기 전에 들어오란 말이군
전화에티켓 제로다
( 띠띠띠띠 )
다시 한번 더 울리는 전화벨
“ 오늘따라 왜이르세요 아주머니 가요가요가요 ”
“가긴 어딜가요”
23시간41분만에 걸려온 2번째 전화 엄마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