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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 <6>

사나토스 |2003.07.02 01:48
조회 169 |추천 1

이른 아침에 고형사는 박형사의 상태를 확인 하기 위해 먼저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에 도착한 그는 소란스러움을 느끼고 불안한 마음에 얼른 박형사가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한 명의 의사와 두명의 간호사가 박형사 주변에서 부산하게 움직이는 광경이 보이자 고형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다행히 어제의 그 간호사가 고형사에게 다가오며 웃음을 보였다.

 

"아, 오셨어요?"
"상태는 어떻습니까?"
"지금 중요한 고비긴 한데..... 가끔씩 정신이 드네요."
"큰 병원으로 옮겨야 하진 않습니까?"

 

의사들이 알아서 하겠지만 걱정스러움에 한마디 한 것이 오히려 걱정을 가중시켰다.

 

"지금 옮길 수 없는 상태거든요. 성한 곳이 한군데도 없어요."

 

그 때, 그의 눈에 박형사의 손가락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이자 얼른 그에게로 다가간 고형사가 박형사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어둠속을 계속 달리고 있던 박형사는 주위가 밝아지며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그토록 만나고 싶던 사람인데 누군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뛰고 있는 것 같지만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주위의 빛이 점점 더 환해지더니 이윽고 아는 얼굴의 윤곽이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무어라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머리 근처에서 울리기만 할 뿐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무어라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겨우 턱을 조금 움직이며 소리를 내긴 했는데 그 소리조차 자신의 귀에는 울림으로만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주변이 어두워지며 달리기를 계속 해야 한다는 느낌이 왔다.

 

고형사가 얼굴을 가까이 대자 눈을 조금 뜬 박형사의 눈동자가 살짝 움직였다.

 

"이 사람..... 이제 살았구만 그래.... 도데체......"

 

무언가 질문을 하려고 했지만 아직 그의 상태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기에 그만두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박형사가 입을 달삭거리며 무어라 말을 하려고 하는 것을 느낀 고형사는 얼굴을 박형의 얼굴에 더욱 바싹 갖다댔다.

 

"저.........저어......언..........사........."

 

겨우 눈을 뜬 듯 하더니 작은 소리를 내고는 다시 의식을 잃자 놀란 고형사가 의사를 쳐다보았다.
의사는 박형사을 얼굴을 자세히 보더니 다시 의식을 잃었다며 오늘이 고비가 될 것이라는 말로 고형사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잠시 후, 고형사와 김형사, 그리고 구조대원 한 명이 박형사가 발견되었다는 장소에 서 있었다.
차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바람에 새찬 바람이 계속 뺨을 때려대고 있었다.
김형사는 바람에 압력을 받는 안경을 잡은 채로 주변 바닥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곳에서 발견했습니다."

 

구조대원이 가리키는 곳은 고속도로 가장자리의 갓길이 끝나는 좁은 부분이었다.
바닥에는 박형사의 것으로 보이는 핏자국이 넓게 퍼져 있었고 도로의 중앙으로 이어져 있었다.
아마 누군가 쓰러진 그를 이곳까지 옮긴 것으로 보였다.
구조대원이 차소리 때문에 큰 소리로 설명을 계속했다.

 

"바로 이곳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아마 신고한 사람이 여기까지 옮긴 모양인데 저희들이 왔을 때는 없었습니다."
"뺑소니라고 하던가요?"

 

고형사는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서 신고 내용을 물은 것이다.

 

"그런 말은 없었다고 합니다. 만일 뺑소니로 신고가 들어왔다면 바로 모든 고속도로 출입구를 봉쇄하고 검문을 실시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신고한 사람이 박형사를 친 당사자거나 아니면 염려하던 대로 누군가가 사고로 위장하기 위해 이곳에 박형사를 버리고 간 것을 누군가가 발견하고는 신고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그가 구조대원에게 물었다.

 

"이 근처에 건물이 있습니까?"
"네. 하지만 사람이 살지는 않습니다. 근처에 버려진 농가가 몇 개 있기는 합니다만....."
"정확한 위치를 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바로 이 밑에도 하나가 있습니다."

 

구조대원이 가리키는 곳으로 내려가자 낡은 농가가 하나 보였다.
상당히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농가 옆에는 창고처럼 보이는 건물도 있었다.
고속도로가 나면서 버려졌을 것이다.
주변에는 이미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었고 도로 위에서는 쉽게 발견하지 못 할 정도로 나무가 높이 자라 있었다.
그 건물 가까이 다가간 고형사는 상당한 수의 발자국을 발견하고는 심장의 고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최근에 난 발자국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발자국들은 농가 주변에서 서성인 듯 하더니 바로 창고쪽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고형사가 창고 쪽으로 뛰어가자 김형사도 얼른 뒤를 따랐다.
창고 앞에 서자 문이 부서져 있는 것이 보였는데  최근에 부서진 것이 확실했다.
창고 안으로 들어선 고형사는 머리털이 서는 것을 느꼈다.
안에는 다시 하나의 문이 있었는데 철제로 만들어진 문이었다.
자물쇠가 달린 것으로 보아 밖에서 잠그도록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자 고형사는 박형사의 처참한 몰골이 다시 떠오르며 분노의 감정이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문 안으로 들어선 고형사와 김형사는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최근에 만들어진 듯한 창고 안의 밀실은 완벽했다.
먹다 남은 빵조각과 빈 물병들이 널려 있었고 벽에 뚫린 작은 구멍에서 가늘게 들어오는 빛이 그 광경을 비추고 있었다.

그때 김형사의 전화기가 울렸고 잠시 후 전화기를 닫은 그가 고형사를 불렀다.

 

"선배님."

 

김형사의 표정을 보니 또 살인이 발생한 것이라 생각하며 여기를 조사할 감식반을 불러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김형사의 입술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박형사님 돌아가셨답니다."

 

 

 

그날 저녁 고형사는 김마담의 가게를 찾았다.
그 밀실에 박형사가 갇혀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벽의 구멍 또한 그가 오랜 시간 피를 흘려가며 만들어 놓은 절박한 심정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 외 다른 흔적도 상당 수 나왔지만 고형사는 김형사에게 뒤를 맡긴 채 이곳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신다기 보다는 미친 듯이 부어대고 있었다.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이 안들때까지 마셔대고 있었다.
처참한 몰골로 먼저 가버린 후배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날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연숙은 방금 부장과 면담을 하고 나오는 중이다.
고형사로부터 독자적으로 정보를 제공받은 사실 때문이다.
경찰서 앞에서는 연숙 말고도 다른 신문사들의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헌데 다른 기자들이 손가락을 빨고 있는 동안 혼자서만 감추어진 진실을 들고 나왔다.
그것은 연쇄살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한 여기자의 기사에 집중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녀는 아무에게도 고형사가 자신만을 조용히 불러 김덕중이 첫 번째 희생자라는 사실등을 말해주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저 차 안에서 노트북으로 기사를 전송하고는 집에 틀어박혀서 일주일이 넘게 차 안에서 지내느라 쌓인 피로를 풀고 이제서야 출근한 것이다.
출근하자마자 편집부장이 자신을 불렀고 어떻게 해서 고형사와의 단독적인 면담에 성공했는지 물었지만 연숙은 자신의 노하우라며 입을 꼭 다물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 경력까지 화려한 무서운 형사가 왜 자신을 많은 기자들 중에서 선택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이제 자신도 이 바닥에서 확실하게 이름을 알릴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만이 가슴에 뿌듯하게 새겨졌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연숙은 고형사에게 전화를 했다.
정보를 제공받고 어서 빨리 기사를 써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서 인사도 없이 그냥 나왔던 것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지만 혹시 또 다시 그가 정보를 내놓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바로 또 살인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아, 김기자요?"

 

고형사가 바로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보자 그녀는 기쁜 마음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기사 보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김기자한테 연락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그 말을 들은 연숙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지만 다시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일이 또 있나요?"
"경찰이 죽었소. 아무래도 이번 사건과 깊은 관련이 있는거 같아서."
"지금 바로 갈께요."

 

서둘러서 장비를 챙겨 나오던 연숙은 얼른 부장의 방에 들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부장님."
"왜, 김기자."

 

그녀를 바라보는 부장의 표정은 예전보다 상당히 친근하게 보였다.

 

"저 지금 고형사님 만나러 가는데요."
"아! 그래?"
"저기..... 근데요."
"뭐 필요한거 있나?"

 

부장이 얼른 다가왔다.

 

"제 차가 조금 낡아서요. 그리구 아직 진치고 있는 친구들이 제 차를 알아볼텐데....."

부장이 얼른 자신의 허리춤에 메달려 있던 열쇠를 건네주며 써억 웃었다.

"얼른 가봐."


수화기를 내려놓은 고형사는 초췌한 모습이었다.
아침이 되어서야 잠이 깬 그는 자신이 처음 와보는 곳에 누워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벌떡 일어섰다.
아직 시야가 맑아지지 않은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사방이 온통 하얀색이라는 것을 느끼고는 허리춤의 권총을 찾았다.
하지만 손에 잡히는 것이 없자 깜짝 놀라며 주변을 살폈다.
잠시였지만 박형사가 갇혀 있던 밀실과 교차되어 보였던 사방은 그의 시야가 맑아지면서 전혀 다른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직 술이 깨지 않았는지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정신을 차리기 위해 세차게 머리를 흔든 그는 자신의 몸을 살폈다.
옷이 전부 벗겨져 있었고 침대 위에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며 김마담이 잠옷 차림으로 서 있었다.

 

"일어나셨어요?"
"아, 김마담........"
"아주 떡이 되셨던데..... 술값이 꽤 나오겠어요."
"내 나중에 이자까지 주지."

 

안심이 되자 고형사는 속이 상당히 쓰리기 시작했다.

 

"여긴 어디야?"
"어디긴요. 내 집이지."
"이거 내가 실수를 한 모양이야."
"실수는요. 짐승은 되지 않았었으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시도는 했지만 완전히 시체가 되셨길레 포기했어요."
"정말이야?"
"옷은 거기 옷걸이에 있구요 총은 서랍에 넣어 두었어요. 그거 만지면서 얼마나 무서웠던지. 지금 국 끓이고 있으니까 드시고 가세요. 남편오기 전에."
"남편?"
"호호호. 왜요? 걱정되세요?"

 

김마담은 35살 노처녀다.
그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실없는 농담에 깜짝 놀라고 만 모습을 본 김마담은 마냥 즐거운지 계속 소리내서 웃었다.

 

 

서로 돌아온 그는 깊은 생각에 잠기다가 연숙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지만 그녀로부터 먼저 전화가 걸려왔다.
고형사는 박형사의 일도 언론에 공개하기로 했다.
범인은 죽은 이인화라는 여인의 동생이라는 이인겸 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그의 사망소식과 함께 날아가고 말았다.
하지만 김덕중 의원이 죽기 직전 범인과 나눈 얘기에 의하면 그는 이인겸의 주변인물일 가능성이 컸다.
기자에게는 김인겸의 사망소식을 알리지 않았었다.
그가 범인이라는 뉘앙스를 풍김으로서 범인에게 조금이라도 자극을 주어 스스로 움직이도록 유도한 것인데 아직 낌새는 보이지 않는다.
15년 전에 있었던 그 일을 알고 있는 인물이라면 그녀의 동생이 죽은 마당에 살인자로 몰리는 상황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고형사가 생각해 낸 것이다.
이제 곧 김기자가 도착하면 박형사의 일을 알려줄 계획이이다.
물론 내용은 조금 바꿀 생각이다.
박형사는 잡혀 있던 도중 전혀 다른 인물들에 의해 그곳에서 빠져 나오게 된 것이다.
그들이 누구인지 아직 알 길은 없지만 어쨌든 박형사를 가둔 인물은 아닌 것은 확실했다.
창고의 문은 안쪽으로 부서져 있었기 때문이다.
밖을 보니 또 다시 새찬 빗줄기가 바람과 함께 유리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 연숙이 쓴 기사가 또 다시 국민들의 관심을 모았다.
수사를 진행하던 형사 한 명이 피살된 채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박형기 형사는 범인에 대한 단서를 잡고 수사를 하던 중 범인에 의해 감금당했다가 무참히 살해된 채 버려진 것을 인근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내 사망했다는 골자의 기사가 나오자 다른 신문사에서 또 다시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이번엔 검찰측에서도 발끈하며 당장 수사책임자를 바꾸라는 지시까지 내려왔지만 고형사는 묵묵무답의 자세로 있었다.
대신 서장이 직접 경찰청장에게 불려다니며 변명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

 

"이봐, 고동우 형사."
"네. 서장님."
"자네 이번 사건 해결하고 그만 둘 생각인가?"

 

서장이 직접 내려와서 인상을 구기고 있었다.

 

"범인이 잡힌 후에 기사가 다시 나가면 됩니다."
"그럼 자넨 범인을 잡기 위해 언론까지 이용한 영웅이 되겠구만 그래."
".........."
"입이 얼었나?"
"..........."
"그리고 자네가 말한 용의자는 이미 죽은 사람이 아닌가? 만일 그 사실을 기자들이 알게 되면 그 책임은 어떻게 질텐가?"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이사람이....... 기자들이 얼마나 집요한지 몰라서 그래?"
"일본 경시청에 미리 손을 썼습니다."
"뭐?"
"이인겸이 죽은 사실을 당분간 비밀로 해 주기로 했습니다."
"허허.... 자네가 다 해먹지 그래. 내 승인도 없이 그 친구들한테 도움을 청해?"
"범인은 분명 반응을 보일겁니다."
"그 기사를 보고 말인가?"

 

서장의 눈빛은 이제 경멸의 빛을 띠고 있었다.

 

"이인화라는 여자의 주변인물이 확실합니다."
"근거는?"

 

서장이 물었지만 고형사는 대답할 수 없었다.
최여린과의 약속을 지금 어겨봤자 수사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가 해결합니다. 믿으십시오."

 

이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서장은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책임을 묻게 될 거라는 말을 던지며 나가버렸다.
박형사의 책상에는 김순경이 갖다 놓은 국화꽃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연숙은 지금 새 차를 몰고 쇼핑을 나왔다.
수사를 진행하던 형사 한 명이 피살된 채 발견되었는데 범인의 소행같다는 기사가 나오자 신문사에서 업무용 차량을 지급해 준 것이다.
최신 노트북도 새로 지급받았고 앞으로도 이 사건의 취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하겠다는 부장의 약속도 받았다.
왜 고형사가 자신에게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괜히 물었다가 상대를 바꿀지도 모른다는 노파심에 묻지는 않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리란 것을 모른 체 그저 즐거운 마음이었다.

지하 주차장에 세워 놓은 차로 돌아온 연숙은 열쇠고리에 있는 버튼을 일부러 멀리서 누르며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몰고 다닌 차는 아빠에게서 불려 받은 낡은 차였다.
정년을 마치고 집에서만 계신 아빠가 이젠 필요 없다며 자신에게 물려준 것이다.
가끔 녹슨 열쇠구멍에 키를 꽂느라 애를 먹었는데 이젠 그럴 일이 없으니 마냥 즐거웠다.

트렁크를 열고 들고 있던 커다란 봉다리를 집어 넣던 연숙은 그만 봉다리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봉다리가 떨어지면서 내용물이 바닥에 흩어졌지만 그녀는 주울 생각을 하지 못했다.

 

"조용히 하시오."

 

뒤에서 자신의 입을 감싼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연숙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사내는 바로 손을 놓았다.

 

"고맙소. 당신을 헤치지는 않겠소."

 

그녀는 천천히 뒤돌아서려 했지만 사내가 어깨를 감싸며 막았다.

 

"날 볼 필요는 없소. 그러면 당신을 죽여야 하니까."

 

연숙은 이 커다란 주차장에 자신과 이 남자 외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기가 막혔다.

 

"가, 강도인가요?"

 

사내가 아무 말이 없자 연숙은 눈물이 나려고 했다.
가끔 기사거리가 없는 선배들이 억지로 짜내던 내용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무참하게 성폭행을 당한 채 주차장에 쓰러져 있는 자신의 사진이 신문에 실리는 장면이 눈 앞에 스치자 한 줄기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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