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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여귀산(해발 457m)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등을 타고 가노라면 탑돌로 유명한 탑립이라는 동네가 있고 다음은 검은몽돌이 아름다운 귀성이라는 동네가 오봉산을 가이드로 두고 있으며, 조금 더 내려오면 상만과 중만이라는 동네가 나온다.
천연기념물 제 111호인 비자나무를 가운데 품고 있는 상만은 윗동네라 부르고 아담한 교회를 안고 있는 중만은 아랫동네라 부른다.
여기 전라남도 진도군 임회면 중만리 849 번지에 이제 갓 60줄에 들어선 은발의 노신사를 만나 보고자 한다.
위상(渭尙) 강공수 화백(1944년 진도 출생)
노신사는 언제나 손을 맞을 때 위아래 가리지 않고 공손하면서도 절도 있는 자세로 예를 갖춘다.
"어! 이군, 어쩐 일인가?
어서 오시게."
아주 오랫만에 만난양 그분의 얼굴은 환하면서도 활기차다.
"반갑습니다. 장로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강 화백은 그 흔한 선생 소리보다는 한 교회의 장로인것을 훨씬 명예롭게 생각한다.
"오늘은 어쩐 일로 이렇게 오셨는가?"
의자를 손수 권하시면서 믈어 오신다.
비가 내리는 오후시간이라 조금은 한가해 보이는 서재겸 화실은 은은한 묵향으로 채워져 있다.
"예. 장로님.
저 가까운 동네 좀 들렀다가 얼굴이라도 뵙고 가려고 들렀습니다."
"오! 그러신가?
잘 왔네."
강 화백은 마침 합죽선에 동양화 한 폭씩을 옮겨 싣고 있었다.
대화는 하고 있지만 눈과 손의 온 신경은 붓끝에 실려 있다는 것이 옆에서 보고 있는 내게도 느껴지고 있었다.
"난 아직까지도 그림을 일필휘지로 그리고 있지를 못하네.
연습을 더 많이해야 될 것 같으이."
"제가 알기로는 그림은 일필휘지로 그리는게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모든 작가들이 물론 그렇게 하려고 노력 하겠지만, 자신의 작품에 온 정성과 혼을 집어 넣지 않고서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긴 하네만...대가들은 그래도 일필휘지로 붓을 들어도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다네."
붓끝의 움직임에 따라 밑그림이 완성되고 또 그다음엔 명도를 조절하고 다음엔 또 요소요소에 채색을 함에 따라 흰 창호지를 입힌 합죽선에 시원한 농촌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지난 2001년 9월 세종문화회관에서 강 화백의 전시회가 있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보통 실력도 실력이지만 예술인들이 평생에 한 번 꿈꾼다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돈도 뒤도 없는 분이 전시회를 갖게 된다는 것은 상상밖의 일이었던 것이다.
"장로님, 어떻게 세종문화회관에서 전시회를 갖을 생각을 하셨습니까?"
주제를 살짝 돌려 궁금했던 일을 물어 보았다.
"그게 그렇다네.
난 사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 온 것을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있다네.
넘치게도 배고프게도 아닌 데일리 브레드(daily bread)를 내게 허락하신 하나님께 말일세.
매일의 양식만을 주시는 내게 어떻게 그렇게 큰 장소에서 전시회를 했겠는가?"
"저는 이해가 안 갑니다."
"난 사실 그 전부터 꿈을 꾸고 있었다네.
난 전시회를 갖게 되면 예술의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서 하리라고 말이네.
그게 난 무리라고 생각지 않았다네.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대로 행동한것 뿐이라네."
"네."
"전시회를 갖기 위해 난 9개월 전부터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에 부탁을 해 놓았다네.
답이 오기를 예술의 전당에서는 6월에 전시회를 갖게 되면 어떻겠느냐고 하길래 시간이 너무 촉박하여 사의를 표했다네.
그 전부터 난 이 문제로 기도를 해 오고 있었는데 한 군데서 거절을 하면 다른 쪽에서는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시라고 해 왔다네."
"네. 그러셨군요."
마른 합죽선에 낙관을 꼭꼭 눌러 찍으시면서 강 화백은 말을 잇는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연락이 오길 기다렸는데 한 참이 지난 후에 담담자가 전화를 해 왔더군.
지금 상황으로는 수 없이 밀려 있는 사람들 때문에 9월엔 전시회가 어렵다는 얘기였다네.
난 그 때 걱정이 돼야 하는데도 걱정이 들지 않더구만."
"아니 어찌 하셨길래 걱정이 없었을까요?" ![]()
"글쎄 난 확신이 있었다네.
그래서 난 담당자에게 말을 했었지.
혹 빈자리가 나오면 저에게 연락을 주십시요.
저는 분명 9월에는 전시회를 해야 합니다."
어디서 그런 용기와 확신이 있었을까?
강 화백은 키래야 겨우 165Cm에 깡마른 체구, 그리고 부드러운 인상을 가지고 있다.
강 화백의 사모님께서 녹차를 내오셨다.
"이거 잘 탔는가 모르겠어요.
맛있게 드세요."
전형적인 농촌의 아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습과 달리 사모님께서는 밭으로 마을로 교회로 산으로 무섭게 뛰어 다니는 맹렬여성이다.
60을 바라 보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성경학교 교사로 뛰신다고 노래와 율동을 연습중인 것을 보았었다.
"잘 마시겠습니다."
강 화백의 이야기는 이어져 간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 놓고 몇 일이 지났는데 전화가 왔었다네.
내가 예정하고 있는 날짜에 전시를 하기로 했던 어떤 분이 사정이 생겨 취소를 하였다는 것일세.
그러나 담당자는 내게 기회가 올런지 모르겠다고 한더구만.
밀려 있는 대기자들을 대상으로 추첨을 해야 된다고 하길래 난 알았다고만 했다네.
그런데 금새 전화가 오더니 내게 시간을 배정한다고 하더구먼."
"참 신기 하군요."
난 그랬다.
뭔가 무대뽀도 보통 무대뽀가 아닌듯 싶은데 일은 그렇게 풀렸다니까 이상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 전시회를 통해서 어느 정도 돈도 들어 왔었네만 지금 내 손엔 하나도 없다네."
하하! 어련 하실려고.
난 그 분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오랜동안 지켜 보면서 속사정을 어느정도는 알고 있다.
논 한 뙈기와 밭 몇 평으로 조강지처와 함께 인고의 세월을 보내 온 것 하며 당신이 사랑해 오던 교회의 건축헌금으로 큰 돈을 내어 놓은것과 기대하는 큰 아들이 오랜동안 병마와 싸우며 살아 왔던일...![]()
우리나라의 동양화가 중에서 가장 농촌색이 강한 분을 꼽으라면 난 주저하지 않고 강 화백을 꼽는다.
강 화백은 삶 자체가 농부요, 흙을 아는 사람이며, 또한 농촌을 요람으로부터 무덤까지 지켜갈 인물이다.
그가 대한민국 미술대전에 출품해 입선작가로 등단한 그림 또한 농촌의 흙과 땀, 그리고 배고픔과 풍요를 그린 작품이다.
그의 작품세계를 면면히 살펴 보면 고향의 흙내음을 진하게 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강 화백은 평화론자다.![]()
화폭을 가득 채운 비둘기들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구구구구..."하면서 날아 오를듯 하다.
아마도 언제 보아도 늘 같은 모습으로 평화를 주장하고 온유한 품성과 겸손한 말씨는 신앙과 깊은 관계가 있으리라고 본다.
그 신앙이 생활에 배이고 또한 그의 작품세계에도 삽입되는 것 같다.![]()
어려운 시절, 서숙('조'의 전라도 방언)은 배고픔의 상징이었다.
못 먹어서 헛배가 불룩 나온 아이들이 서숙물을 한 사발 벌컥 마시면 헛배도 꺼지고 영양도 보충하고 했던 구황작물중의 하나가 서숙이었다.
그런 날을 알고 있는 강 화백은 배고픔의 추억속에 오히려 풍요로움을 채워 넣고 거기에 쪼로롱 메추라기 형제들을 등장시켜 평화를 말하고 있다.
"장로님.
정말 어렵고 답답할 때는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을까요?"
"자네가 요즘 많이 힘들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네."
난 어떤 답이 나올까 궁금 하였다.
"이건 실화인데...어떤 사람이 목사님을 찾아 왔다네."
"왜요?"
"이 사람은 자신의 처지가 너무 힘들어서 목사님께는 어던 방법이 있겠거니 하고 찿아간 것이라네.
'목사님. 저 요즘 너무 힘들어서 말씀 좀 하려고 왔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저희 부부는 오랫동안 쓰리꾼(소매치기) 생활을 해 왔습니다.
그런 저희를 보고 자라왔는지 저희 아이들도 똑 같은 길을 가더니 급기야 지금은 두 녀석 다 감옥에 가 있습니다.
한 놈은 청주교도소에 있고 또 한 놈은 대구에 있습니다.
저희가 어떡하면 좋을까요? 목사님.'
'참 딱한 사정이군요.
그러나 방밥은 한가지 있습니다.'
'그래요?
그 방법이 뭡니까?'
'열심히 신앙하시면서 성경을 읽으십시요.'
목사를 신뢰하고 말을 했던 이 사람이 그 순간 목사님의 멱살을 잡았다네.
'아니, 목사님.
저는 제 과거를 다 내어 놓고 도움을 청했더니 겨우 성경을 읽으라는 겁니까?'
하지만 그 목사님은 담력이 있으셨었나 보네.
'이러지 마시고 제 얘기를 들어 보십시요.
만약 1년 동안에 이 성경을 열 번을 읽어 보십시요.
그러고서도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제 목을 비틀어도 상관 없습니다.'
목사님의 말을 들은 그 사람은 그렇다면 누가 옳은가 보자하고 씩씩거리며 돌아 갔다네.
그 사람은 어떻게든 화가 난 마당이라 목사를 어떻게든 죽여 버리고 싶었다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자 마자 성경을 일기 시작했다네.
그 사람의 생각은 성경을 통한 도움을 얻으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거지.
그런데 성경을 한 참 읽고 있는데 그의 아내가 문맹에 가까운 남편을 위해서 성경을 함께 보게 되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 났다네."
여전히 강 화백은 아는 사람으로 부터 주문받은 합죽선을 완성 시키느라 여념이 없다.![]()
"그리고 어떻게 됐습니까?"
"하루하루 성경을 읽던 이 무식한 부부가 울음바다를 이루기가 일쑤였다는 사실일세.
어쨌든 그 사람들은 그렇게 열심으로 성경을 읽으면서 울고 그러다가 기도하기를 열심으로 했다네.
목사에게 가졌던 분노는 새까맣게 잊어 버리고 말이네.
그런데 채 몇 개월이 지나지 않아서 평생을 감옥에서 보낼 줄 알았던 큰 아들이 모범수로 2년 반만에 출소를 했다네.
조금 있으니까 작은 아들 역시 똑같이 모범수로 출소를 하여 지금 각각 대전과 부산에서 잘 살고 있다네."
"야! 대단한 사람들이군요."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강 화백이 말을 계속한다.
"난 어려운 사람들을 만날때 마다 돈 좀 많았으면 하고 소원 한다네.
그러나 아까도 말했다시피 내게는 늘 오늘의 양식이 전부였다네.
전시회에서 한 번 내 평생 큰 돈을 만져 봤지만 그 또한 알게 모르게 빚졌던 것들 갚고 나니 지금도 남아 있는 것은 약간의 빚이 전부일세.
그러나 난 한 번도 서운하지 않았다네.
아마도 내가 그릇이 작은가 모르겠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렇게 사는 삶에 만족하고 약한 자의 필요를 나 몰라라 하지 않고 상 주시는 하나님을 사랑 한다네."
난 이야기 도중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가식이 전혀 들어 있지 않은 나이 어린 내게 인생의 고백을 하고 있었다.
후회함이 없는 인생이란 바로 그런 것이리라 생각되어 졌다.
황희 정승의 정신이 바로 강 화백의 정신이었다.![]()
주인의 말에 한 틈 의심도 없는 소와 같은 삶.
그러면서도 어느 상황에서건 자신을 잃지 않는 소신과 용기.
강 화백은 화가 출신답지 않게 변사마냥 말도 잘 한다.
자신의 교회재단의 진도지구 평신도 협회장으로,
한국연합회 행정위원으로서 그는 할 말은 꼭 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불의에 핍절하지 않고 정의를 소리쳐 외치는 몇 안되는 양심가이기도 하다.
뚜벅뚜벅 걸어가는 소가 화를 내면 무섭기도 하더니 온유함 속에 어떻게 담대함이 나올 수 있는지...![]()
느릿느릿 이야기를 한 덕분인지 세 시간이 훌쩍 지났다.
아직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언제 그 비가 그칠지도 모르고 또 기다리는 사람도 있어서 합죽선의 작업을 다 보지 못하고 방을 나섰다.
"장로님.
이제 가 봐야 겠습니다."
"그러신가.
그래. 그럼 또 다음에 보세."
"네. 오늘 말씀 감사 합니다."
"무슨 말씀인가...열심히 살게.
그리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면 언젠가는 좋아질 날이 있을 것이네."
"네. 저도 그렇게 생각 합니다."
"어이, 지금 이 군 가신다네."
안방에 계시는 사모님을 부르신다.
"아이고, 장로님.
그냥 놔 두세요."
사모님께서 쪼르르 문을 열고 나오시더니 비오는 마당에 두 분이 나란히 내려 선다.
"들어 가세요. 비 맞습니다."
"무슨 말씀. 괜챦으니 걱정말고 조심히 가시게."
"네. 장로님, 사모님. 안녕히 계세요."
가랑비를 맞으면서도 내가 차에 탈 때까지 두 분이 계시다가 손을 흔들고 들어 간다.
환단에 핀 진홍색 복스런 다알리아가 심장처럼 느껴진다.
그 안에 따뜻함이 스며 있는것 같다.
난 안다.
강 화백의 말은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의 생활에서 나오는 진실된 말은 하나의 쭉정이가 섞이지 않은 알곡이라는 것을.
위상 강공수-그는 화가이기 전에 맛있는 삶을 살고 있는 옆 집 삼촌같은 사람이었다.
강공수 화백은 아직 컴퓨터 자판도 모른다.
그는 그 사실을 인정 하면서 껄껄 웃었다.
그의 그림을 사사했던 백포 곽남배 선생께서 그를 지극히 아끼셨던 이유를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