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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우 '목산수화')
중풍으로 어느날 갑자기 떨어져 버린 사람.
그러나 그는 거기서 멈출 수 없었다.
대산(大山) 박용우 화백(50세).
그는 말한다.
"어떻게든 살아 볼려고 하는 자기 의지가 있으면 다 살아진다네.
욕심없이 산다면 말이네."
전남 진도군 진도읍 포산리 263번지.
그의 화실은 건넌방을 개조해 만들었다.
노모를 모시고 사는 삶이 고달프기도 하겠지만 그는 유유자적이다.![]()
(박용우 '매')
대산은 원래 어쩜 서화와는 거리가 먼 인생이 될 뻔했었다.
그의 천부적인 운동감각 때문에 일찌기 한양공고에 시골에서는 보기 드물게 스카웃이 되어 갔기 때문이다.
그는 진도에서 장래가 유망한 축구선수로 이름이 알려 졌었다.
그러나 매의 눈처럼 날렵하게 중원을 호령하던 그가 운동을 그만두고 갔던 삶은 의외로 파격적이었다.
그는 주먹세계의 정신적지주로 한 동안 인생을 살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그 세계를 용납하지 못했다.
10년 전부터 서서히 어렸을 때 마음먹었던 붓을 들기 시작했다.
마음의 평정이 오나 싶었다.
하지만 이도 잠시, 갑자기 몸이 불어 나면서 중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박용우 '산수화')
생사의 향방이 막연했지만 그는 기적적으로 깨어날 수 있었다.
그가 다시 일어나서 생각한 것은 더 성실하게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진도축구협회로부터 연락이 왔다.
진도 축구 부흥을 위해 힘 좀 써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 일은 후배들에게 일임하고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전력을 다 하기 시작했다.
재능이 있었던터라 그의 화력은 날로날로 향상되어 갔다.
어느덧 국전작가의 반열에도 오르게 되었다.
아직도 대산과 대화를 하노라면 말이 약간 밖으로 새는걸 느낄 수 있다.
완전하게 몸이 회복된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그러나 그의 열정과 삶에 대한 애정은 굵은 붓끝의 자욱마냥 선명하다.![]()
(박용우 '산수화')
그는 고향을 대단히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지 선후배에 대한 존경과 배려가 특별하다.
선배에 대해서는 깍듯이 예우하고, 후배에 대해서는 애정으로 이끌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잘잘못에 대해서는 선후배를 따지지 않는다.
그로부터 바른 정도를 걷지 못한 선배들이 못들을 말을 듣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정도를 걷는 삶을 그는 삶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말들이 가능할 것이다.
그는 또한 사람이 돈을 벌면 돈 쓸 줄을 알아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면서도 또한 돈 없는 사람은 허세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작업중인 대산)
"00여객 00회장 있쟎은가?"
"네. 00사장님 말씀요?"
"그래. 그 분은 돈을 벌 줄만 알지 쓸 줄을 모른단 말일세.
이 지역발전을 위해 좀 희사하고 후배들을 육성하는 일도 힘을 기울여야지.
그 돈 가지고 어디 무덤까지 갈 것인가?"
대산은 조용조용히 말하고 있었지만 힘이 있었다.![]()
(박용우 '합죽선에 산수')
그는 또 말하기를,
"경험이 일천한 나는 아직 그림을 제대로 그리지 못해서 정성만을 다 한다네."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
언젠가 진도 어떤 분이 말하기를 진도에서 그림에 혼을 집어 넣는 화가가 두 사람 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대산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 그가 겸양을 보인 것이다.
그는 또한 수석과 난을 즐긴다.
자연의 천태만상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주는 수석을 통해 우주의 오묘함을 배우고, 단아한 난초의 자태를 통하여 고결한 삶을 배운다.![]()
(수석 '수반석')
몸이 성한 사람도 중노동이라 일컫는 그림을 그리는데 쉽게 지치고 혀를 내 둘리는데 그는 힘들면 가끔 일어나 방안과 마당을 서서히 걸으면서 다시 작업에 매진하곤 한다.
그의 삶에 대한 의지가 보통 사람의 눈에는 인간승리로 비추어지고 있었다.
대산 박용우 화백의 화실은 늘 손님들이 들끓지만 그의 붓을 잡은 손은 결코 쉬는 법이 없다.
인간승리는 오늘도 이렇게 계속 되어지고, 홀로 살아가는 내게는 그의 삶은 변치 않는 귀감이 될 것이다.![]()
(밑그림 작업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