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우, 일단 이까지 올리고 나중에 저녁에 보구 더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호응 감사하구요... 재밌는 건 역시 같이 보면 더 재밌는 것 같아요 ^-^
즐감 하세요~ ^-^
<살기위해 뛰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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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우아아아아악!"
내 살면서 이렇게까지 겁먹은 적은 정말 없었다. 공포영화를 보다가 머리 위에 물에 젖은 수건이 떨어져 목을 타고 흘러내려도 이것보단 덜 무서울 것 같았다. 아니 이건 겁먹네 뭐네 하는 차원이 아닌가.. 무엇보다 이건 실제상황이니까!
여유를 부리던 우리들은 칼 루이스처럼 뛰어오는 두 마리의 좀비들을 보고 정말 혼이 빠진듯 비명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 제일 빨리 달리기 시작했던 나는 몇 걸음도 달리지 않아 욕설을 뱉으며 가방과 짐을 빠르게 내려놓고 무기를 집어들었다. 나를 지나쳐 달려가던 윤호가 멈춰서서 말했다.
"뭐해 또라이야! 죽을라고 환장했어?"
"미친놈아 잘 봐! 저새끼들 달려오는 속도를!"
"우.. 우와!"
좀비들과의 거리는 10미터도 채 안됐다. 저기서 여기까지 오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몇 초도 되지 않았다. 양팔을 힘껏 흔들면서 새하얗게 까뒤집은 눈으로 온 얼굴에 방금까지 씹어먹던 시체의 살점을 붙인 채 달려오고 있는 놈들의 형상은 정말이지 끔찍하고 공포스러웠다. 좀비를 벌써 다섯마리 넘게 죽여보았지만 이건 정말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나는 아까 만든 식칼창을 오른손에, 방금 얻은 손도끼를 왼손에 들고 이쪽 길가의 가드레일 안쪽에서 대기했다. 이제 5초도 안 남았다.
윤호가 마구 소리를 지르며 태완이를 붙잡았다. 두 녀석이 내 바로 옆에서 짐을 마구 풀러내리면서 무기를 챙기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녀석들에게 신경쓸 겨를 없이 신나게 달려오고 있는 좀비들을 주시하며 놈들을 처리할 준비를 했다.
"께에에에아아악!!"
정수리부터 사타구니까지를 훑고 지나가는 듯한 소름끼치는 좀비의 괴성이 들려왔다. 좀비가 바로 근처까지 오자 나는 덜덜 떨리는 손을 꾹 눌러 참으며 오른손에 들고 있던 식칼창을 힘껏 던지고 왼손에 들고 있던 손도끼를 오른손으로 고쳐잡았다. 물론 창 던지기 같은 건 20년 살면서 단 한번도 해본 적 없는 나의 손에서 날아간 잡동사니 창은 조금 더 가까이 있던 좀비의 가슴에 맞고 힘없이 땅에 떨어졌다. 조금 주춤한 그 좀비의 뒤에서 다른 좀비가 확 튀어나오자 나는 죽기살기로 놈의 머리에 손도끼를 꽂아넣을 준비를 했다.
"신발! 와라!"
"께에아아아악!!"
와당탕탕 쨍그랑
100미터를 8초 안에 주파하고도 남을 것만 같은 속도로 약 20미터쯤을 달려온 좀비는, 내가 차마 도끼를 휘두르기도 전에 내 앞에 있던 가드레일에 아랫배를 박고 공중에서 두 바퀴를 돌면서 내 뒤에 있던 편의점의 유리창을 뚫고 들어가 온몸에 유리파편을 박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
"..미친새끼."
완전이 넋이 나간 우리 셋은 그 좀비를 쳐다보고 있다가, 뒤에서 남은 한 놈의 소리가 들려 황급히 뒤를 쳐다보았다. 그 놈 역시 아까 내 창을 가슴에 맞고 잠깐 움직임을 멈추었다가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는 순간 가드레일에 부딪혀 균형을 잃고 힘차게 보드블럭과 키스를 했다. 코가 깨지고 입술이 터지는 격렬한 키스를.
나는 다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놈의 뒤통수에 손도끼를 꽂아넣었다. 개박살이 난 편의점 대문 쪽에서 이상한 신음소리가 들리자 윤호가 달려가 그 좀비가 일어나지 못하게 쇠파이프로 복날 개 패듯 두드리는 걸 보고 태완이가 말했다.
"지.. 진짜 죽는 줄만 알았어, 이번엔.."
"아아.. 나도 간 떨어진 뻔했다 진짜."
나는 좀비의 머리에 꽂아넣은 손도끼를 회수할 생각도 하지 않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쇠파이프에 피칠을 하고 숨을 돌리고 있는 윤호를 바라보며 내가 외쳤다.
"이 미친놈아. 너 한번만 더 쓸데없는 짓 하면 내가 죽여버릴거야! 가드레일 없었으면 우린 지금쯤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썅!"
"미안해. 나도 진짜 놀랐단 말야."
나는 아직까지도 가슴판을 뚫고 나와서 펌프질을 하고 싶어하는 심장을 억누르면서 내가 방금 처리한 좀비를 바라보았다. 정장을 입고 있는 것이 어딘가의 회사원인 듯 했다. 아니면 회사일이 끝나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는 찰나 변했다던가..
"으.. 가슴이 아파진다."
좀비들이 인간일 때를 상상하면서 자꾸 생각하면 쓸데없이 감상적이 되어 비정해지지 못한다. 괴물이 된 사람에게 쓸데없이 동정을 베풀다 죽는 건 공포영화에서도 자주 나오는 죽음의 방정식.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좀비의 머리에 발을 갖다대고 손도끼를 뽑았다. 뿌직 하는 소리가 내 귀를 타고들어가 등골을 오싹하게 하며 손아귀의 힘을 빼버리는 바람에 나는 금방 뽑아낸 손도끼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잔인하게 쪼개진 좀비의 뒤통수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아닌 무언가를 살짝 보고 만 나는 구역질을 참으면서 녀석의 머리를 발로 밀어 차도 쪽으로 떨어뜨렸다.
윤호가 숨을 몰아쉬면서 짐을 다시 챙기자 태완이도 같이 일어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피묻은 손도끼가 식량에 묻는 걸 피하기 위해 손도끼를 한 손에 들고 나머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내가 가방을 뒤에 메면서 말했다.
"그나저나 좀비들은 원래 달릴 수 있던 건가?"
태완이가 뽑았던 검을 칼집에 집어넣으면서 말했다.
"아닐걸.. 아까 실험을 그렇게 했는데 달리는 놈은 하나도 없었어. 그리고 우리가 처음 싸웠을 때도 놈들이 달릴 수 있었다면 분명 달렸을거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지.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변종이 있다는 건가."
내가 태완이의 말을 잇듯이 말했다. 이건 정말 개같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안 좋은 건, 그 변종들을 가려낼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저쪽에 좀비들이 수십마리 몰려있고 그 곳을 안전히 지나가야 하는데 그 틈에 달리는 놈들이 있을지 없을지, 아니면 죄다 달려올지(이건 좀 무섭다) 모른다는 건 생존에 있어서 상당한 마이너스가 될 것이다.
"그럼 뭐야. 다른 변종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 아냐?"
윤호가 말하자 나는 도끼를 가드레일에 캉캉 부딫혀 피를 털어내면서 말했다.
"아마도. 제기랄 상황 진짜 엿같이 돌아간다. 안 그래서 무서워 죽겠고 힘든 판에 달리는 좀비라니.. 만약에 막 네 다리로 뛰어다니면서 펄쩍펄쩍 뛰는 놈들이 나오면 어쩌지?"
"..죽는거지 뭐."
태완이의 말이 내 가슴을 후벼팠다.
우리는 진작의 목적었던 바깥상황을 살펴보는 일은 까맣게 잊은 채, 지치고도 지친 발걸음을 끌며 집으로 돌아갔다. 걸어서 왕복 20분거리인 짧은 도로에서 생긴 일들은 몇 주일치의 피곤이 되어 우리의 몸을 무겁게 짓눌렀다.
희망은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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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정보를 일단 종합해보자구. 집에서 돌아가는건 뭐뭐야?"
"냉장고, 전자렌지 다 돌아가. 가스도 안 끊어졌고. 아마 발전소는 무사한가봐. 전기공급이 되고 있는 것 같아. 다만 전화가 먹통이야."
집에 돌아온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사정은 알아보지 못했지만 대충 좀비들의 힘과 생존전략을 깨우치기 시작한 터라 조금 더 계산적이 되어 우리의 일차 방공호인 집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집의 상태를 체크한 뒤 알아낸 사실 중 무엇보다 다행인 것은 전기가 아직 공급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우리처럼 집 안에서 농성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냉장고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굶어죽기 십상이었다. 거기에 인터넷도 되니 상황을 살피기도 쉽다. 다만 방송국 같은 미디어체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는지 TV는 KBS 하나만 나오고 있었고 전화 역시 국선은 막혀버렸다. 되는 것은 휴대폰 뿐. 그나마 그것도 언제 막힐려는지..
"다른 전화할 놈들은 없어?"
"있지 그거야. 근데 방금까지만 해도 우리 코가 석자였는데 뭐.. 제기랄, 우리 말고 모임에 간 놈들 불쌍해서 어떻게 하냐."
집에 돌아온 뒤 우리는 한 명씩 샤워를 하기로 했고, 일단 샤워실에 들어간 태완이를 뒤로하고 윤호는 친지들 외에 우리집 근방에 올 확률이 있거나 살거나 하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녀석들은 '단 한 명도' 받질 않았다. 그 소식을 들은 나는 가슴이 무너지는 걸 느꼈다.
"다.. 가버린.. 걸까."
"글쎄."
우리는 어느 쪽으로도 확답을 하지 않았다. 긍정적으로도, 부정적으로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몸에 튀겨 말라버린 피딱지를 떼어내던 나는 손을 탁탁 털고 TV를 틀었다. KBS 하나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건 방금 확인한 일이지만, 그 KBS마저도 '준비중입니다' 라는 대사를 띄워놓은 채 아무 응답이 없었다. 나는 혀를 차며 우리가 가져온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기를 종류별로 구별해놓고 있는데 윤호가 스로잉 나이프를 꺼내며 말했다.
"뭐야 이거? 검? 너무 작잖아."
"그거 던지는 단도야."
"뭐? 니가 닌자냐? 이딴 걸 뭐에 쓰게?"
"뭐에라도 쓰겠지, 가지고 있으면."
개인적으로 나이프 스로잉에는 일가견이 있는 몸이다. 5미터 밖에서 튼튼한 나무에 단도를 던져 깊숙히 꽂을 수 있을 정도로, 가능하다면 이력서를 쓸 때 특기로 쓰고 싶을 정도다(무슨 직업이냐 그게). 글쎄, 좀비 마빡에 대고 던지면 죽을지 몰라도 뒤통수에 꽂아넣으면 충분히 죽일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장거리 무기 이야기가 나온 김에 태완이가 철물점에서 챙긴 타정총을 집어들고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윤호가 그걸 보더니 아는척을 했다.
"우오! 타정총이네? 그거 어디서 났어?"
"태완이가 챙겼어."
"나 그거 써본 적 있는데. 근데 그거 앞부분에 안전장치.."
"알어. 이건 비교적 간단한 구조라 내가 누르지 않고도 쏠수 있게 개량해놨어."
내게서 타정총을 빼앗아 잠깐 그걸 살펴보던 녀석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다시 총을 건네주었다. 윤호는 내가 타정총의 장전방법을 알아내느라 부시럭거리고 있는 걸 가만히 보고 있더니 말했다.
"그거 화약식이지? 들고온 거 보면. 콤프레셔 같은 원리라면 들고다닐 수도 없을 테니까."
"웬일로 머리가 있는 놈처럼 말을 하냐?"
"이 쉬키가.."
우리가 킬킬대고 웃는동안 태완이가 목욕탕에서 나왔다. 뭐 이쯤에서 여자애 한 명쯤이 샤워를 하러 들어간다면 좋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여자가 없어서 말이지..
이런 상황에서 스스로에게 농을 던지는 내가 한심해 코로 한숨을 내뿜고 있자니 어제 우리집 앞을 스쳐지나갔던 누나가 기억났다. 달리기 힘든 옷에 하이힐까지 신고 있었는데, 아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겠지만 살아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투퍽
"우악! 뭐야뭐야?"
"아하하, 쏘리 쏘리. 타정총 실험발사좀 해보느라."
멍하니 혼자만의 정신세계로 날아가있는데 갑자기 뭔가가 퍽 하고 꽂히는 소리가 터지자 나는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윤호놈이 그새 타정총을 가져가 내 근처 벽에 쏘아 본 것이다. 나는 윤호에게서 타정총을 신경질적으로 뺏은 뒤 기왕 실험발사를 해본 김에 못이 박힌 벽 쪽으로 걸어가 타정총의 위력을 가늠해보았다.
윤호가 있던 곳으로부터 벽까지는 대략 3미터 하고 반. 근데 못은 반 이상 들어가있었다. 그것도 아주 곧게. 이 정도라면 약 6~7미터 까지라도 꽤 위력적인 사격이 가능할 것이다.. 라고 자신있게 말하고 싶은데 내가 뭘 아나. 직접 해봐야 알겠지 뭐. 이게 친구들끼리의 장난이라면 잘난척하고 말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실제상황. '이렇겠지 뭐' 했다가 저렇게 되면 그 자리에서 끝이다. 말 그대로 죽는 것이다.
내가 다시 장전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살펴보고 있는데 안방에서 태완이가 머리에 수건을 쓰고 나오며 말했다.
"어~ 뭔 소리야? 퍽 하는 소리가 났어!"
"김윤호새끼가 우리집 벽에다가 타정총을 쐈어. 실험사격 해봤대."
내가 타정총으로 윤호를 쏘는 시늉을 하며 말하자 태완이고 윤호한테 수건을 확 던지면서 나무랐다.
"야아! 그거 진환이가 멋대로 개조한거라 이상한데로 튈 수도 있다구! 혹시 누가 다치거나 컴퓨터같은 소중한 물건이 고장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아이고 알았습니다. 두 분 고정하시죠.. 안 그래도 나도 뛰는 좀비들 사건 때문에 반성중이었어."
"아 그러고보니 까먹고 있었잖아 이 자식! 너 그거 어떻게 책임질거야!"
"책임이라.. 헤헤, 나중에 우리가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지면 내가 희생하는 걸로 하지 뭐."
윤호가 실실 웃으면서 말하자 나는 가만히 있다가 정색하며 말했다.
"새꺄. 그딴 말 하지 마."
"어..? 왜 화를 내고 그래 야?"
윤호가 놀라서 내게 묻자 나는 녀석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똑똑하게 말했다.
"몰라서 묻냐? 그딴 말 다신 하지 말라고. 우린 살아남는거야. 그렇게 정해져 있고. 너희 부모님도, 태완이네 누나도, 다른 친구들도. 그러니까 절대 그딴 말 다시 꺼내지 마. 다음에 그딴 소리 하면 가만 안 둘줄 알아."
"어.. 알았어."
윤호는 내 태도에 맞대고 화를 내려다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건 정신력. 그리고 파트너가 있다면 더욱이 중요한 건 결속력. 뭐 솔직히 말해 평범한 스무살인 우리들이 이렇게까지 헤쳐나왔으니 아직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해도 되겠지. 태완이는 마치 선생님처럼 우리들을 쳐다보고 있더니 주저앉아 장갑을 끼면서 짐을 뒤적거렸다.
"어쨌든 지금 기회에 빨리 무기 정리부터 해 두자구."
"그게 좋겠다. 무기도 많으니까 각자 전용무기 골라놓고.. 지금 세 번째로 말하는 거지만, 무슨 게임같다."
"야 김진환 나 그 손도끼 주라."
"싫거든?"
우리는 도장과 철물점에서 가져온 무기를 좍 늘어놓고 서로 상담을 하면서 무기를 골랐다. 일단 선택방침은 이렇다. 농성용 무기, 휴대용 무기. 이렇게까지 할 것도 없다고 할 녀석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각자가 챙겨야 할 물건들이 정리되어 있고 안 되어있고는 무지막지하게 큰 차이로 다가온다.
약 5분간 웅성거리던 우리들은 드디어 무기의 정리를 끝냈다. 일단 내가 들고 다닐 무기는 이렇다. 아까 얻은 손도끼, 우리의 슈퍼 식칼창, 비도(飛刀) 3자루와 서바이벌 나이프. 식칼창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위로 다시 올라가 쌓여있는 파이프들 중 상대적으로 견고하고 가벼운 재질의 녀석을 골라와 다시 만들었다. 식칼창과 손도끼 중 뭘 손에 들고다닐까 하다가 식칼창이 견제하거나 밀어낼 수도 있고 등에 지고다니거나 하기엔 너무 위험해서 들고다니기로 정했다. 손도끼는 내가 우리 아버지 벨트를 이용해 만든 자그마한 가죽홀더를 이용해 바지춤에 달고다닐 수 있게 했다. 홀더와 바지를 고정시킨 방법은 스테이플러. 비도는 자켓 안주머니에 넣고 서바이벌 나이프는 위급시 바로 뺄 수 있도록 기존에 같이 딸려오는 칼집을 자켓의 왼쪽 어깨부분에 거꾸로 붙여버렸다.
태완이의 무장은 물론 진검, 타정총, 그리고 위급시를 위한 서바이벌 나이프. 내가 사격장 경험이 있어 타정총을 들겠다고 했더니 너는 비도로 만족하랜다. 쳇. 타정총을 샅샅이 조사한 결과, 이 물건은 10연발로 사격이 가능하고 발사하는 못의 길이는 가운뎃손가락 하나 정도. 위력은 인간에게라면 치명적이겠지만 좀비에게는 글쎄.. 쏴보아야 알 일이다. 검에 대해서는 내가 머리를 부수기 위해선 목도가 낫지 않겠냐 했더니 그런 일은 너희 일이라고 한다. 뭐 비꼬는 게 아니고 사실 목도가 일차적으론 쓸모가 많겠지만 진검의 위력이 절실해질 상황이 있을수도 있으니 나는 군말없이 녀석 마음대로 하게 두었다. 총도 있으니 뭐..
윤호의 무장은 혼자 운좋게 챙긴 알루미늄 배트와 장도리, 그리고 역시 위급시를 위한 서바이벌 나이프. 뭐 딴 말이 필요하랴. 무력화시킨 좀비를 완전히 잠재우는 역할이다. 윤호는 앞으로 나갈 일이 더 있으면 일단 배트를 써 보고 목도를 쓸지 배트를 쓸지 정하기로 했다고 내게 말했다.
이렇게 해서, 내가 견제하고 태완이나 윤호가 처리하는 이지선다의 전략이 우리의 주 전투방식인 것으로 결정이 났다. 뭐 나도 손도끼라는 물건이 있으니 결정타를 먹일 수도 있고.. 아무려면 어떠랴. 어쨌거나 밖에 나갈 일이 생겼을 시 살아남는 것이 관건이다. 포메이션따위 정해봤자 탁상공론일 뿐이다.
간만에 여흥 아닌 여흥을 즐긴 우리는 나머지 수확품들을 정리하느라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순간 내 바로 옆에서 도어벨이 울렸다.
띵동
"어?"
우리는 한순간 움직임을 멈추고 도어벨을 울리는 스피커를 쳐다보았다. 내가 다른 두 녀석에게 말했다.
"생존자다! 미친,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우리집에 올 줄이야! 골목에 좀비들이 없어졌나?"
"가만 있어봐. 좀비가 걸어다니다가 운좋게 누른 걸수도 있어."
이런 상황에서 우리집 도어벨이 카메라까지 딸린 고급형이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아까 착용하고 있던 무장을 풀지 않은 채 조용히 문을 열고 나와 정찰스팟으로 올라갔다. 다행이도 그 사람은 생존자였다. 넷이나 되는 사람들이 우리 집 앞에서 지친듯 숨을 몰아쉬며 우리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근처를 확인한 뒤 좀비들의 모습이 눈에 띄지 않자 우리는 조용하게 말했다.
"생존자인가요?"
그들은 대문만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들의 왼쪽 벽의 위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오자 깜짝 놀라며 우리들 쪽을 쳐다보았다. 우리들은 수그리고 있던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지금 문 열어드릴게요."
우리는 아래로 내려가 대문을 열어주었다. 그들은 스스럼없이 안으로 들어왔고, 우리의 안내에 따라 집 안으로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다. 마루에 엎어진 그들을 살펴보니 여자가 셋, 남자가 하나였다. 우리집 바로 앞 홍대의 학생들인지 옷차림들이 꽤 화려했다. 무기 하나 들고있지 않은 그들을 보며 내가 말했다.
"어쨌든 반가워요. 좀 설명해주실래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아아.. 정말 고마워요. 정말로. 정말 당신들 덕분에 살았어요."
서글서글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는 불안해하고 있는 여자들을 쳐다보곤 말했다.
"일단 통성명부터 하죠. 제 이름은 이수정. 홍대생입니다. 그쪽은?"
"난 김진환이예요. 이집 주인. 스무살이니까 말 놓으세요. 이런 상황에.."
"김윤호예요."
"김태완입니다."
우리가 차례차례 소개를 하며 무기를 내려놓자 한 여자가 찔끔하며 수정형의 뒤로 돌아갔다. 꼴을 보아하니 방금 전에서야 사태를 파악하고 운좋게 도망쳐온 모양인데.. 바로 앞이 대학로라고는 해도 홍대에서 여기까지 20분은 걸린다. 그 거리를 무사히 헤쳐오다니 정말 무슨 수가 있었던 건지 단순히 운이 좋았던 건지.
내가 여자들을 뜯어보고 있는데 수정형이 말했다.
"그럼 일단 편히 말할게. 나는 편의점 알바를 하고 있었어.. 홍대가 저 위에 있는건 알지? 편의점은 홍대거리 언덕에서도 후미진 곳에 있는데, 옥상도 있고 하여튼 그런 곳이야. 내가 어젠가 옥상에 올라가서 짐정리를 하고 있는데 그.. 그것들이.."
"좀비요?"
내가 말하자 수정형은 멍하니 있다가 갑자기 어두운 웃음을 머금으면서 말했다.
"그래, 너도 좀비라고 하는구나.."
형은 웃음을 거두고 우리의 옷차림과 사방에 흩어져있는 무기들을 보면서 말했다.
"뭐 너희들 복장을 보면 알겠어. 이미 놈들과 싸워본 거야?"
"예 뭐 조금은. 죽을뻔했지만 대충 이렇게 살아났어요."
"대단하구나."
방금은 산책도 하고 왔답니다.. 라는 말은 안 해도 되겠지.
수정형은 말을 계속 이어갔다. 대충 이야기를 들어보니 편의점 옥상에서 좀비사태를 지켜보게 된 것 같았다. 다행히 평소에도 인적이 적은 곳이라 계속 정찰만을 하며 하루를 보낸 형은 더이상 고립된 것을 참지 못하고 그곳을 목숨걸고 빠져나온 듯 했다. 같이 온 여성 셋은 달려오던 길에 만난 사이로, 아직 이름도 모른다고 했다. 참 나, 그럼 아까 왜 우리가 무기 내려놓을 때 수정형 뒤로 돌아간거야? 그새 만났다고 친한척 하는 거야 뭐야..
어쨌거나 무쟈게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나저나 그렇게 정신없이 아래쪽 마을까지 내려왔는데 도중에 만난 사람이 셋이나 된다면 아직 이 근처엔 사람들이 엄청 많이 살아있다는 뜻이 된다. 나는 아까 밖에 나갔을 때 조금 더 사람들의 기척을 살피지 않을 걸 후회하며 말했다.
"그럼 이제 거기 누나들 얘기좀 들어보죠. 니 이야기도."
다시 보니 여자들 중 한 명은 교복을 입고 있길래 내가 말을 살짝 바꾸었다. 뭐 보나마나 미대입시생이겠지. 한여름에 고생 많구나 너도.
"저기 저는.."
그 아이가 이야기를 꺼내려는데 갑자기 윤호의 핸드폰이 울렸다. 황급히 폰을 꺼내든 윤호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녀석이 외쳤다.
"이재복이야! 와 이새끼 살아있었어! 푸하핫! 복어새끼!"
녀석은 순수하게 기쁨으로 가득찬 목소리로 외치며 전화기의 폴더를 열었다.
"야 이재복! 너 어디야 임마? 좀비 봤냐?"
-윤호야.. 도와줘.
"어? 야 얘들아 이새끼 이상해!"
재복이는 나와 태완이랑도 친한 사이다. 우리는 다같이 휴대폰에 귀를 기울이며 말했다.
"야 이재복 무슨일이야!"
-지금 망원역 옆에 서점인데.. 여친이랑 데이트중에 고립됐어. 그 무슨 미친자식들이 도로에 가득해서.. 아 신발! 어떻게 해 나..
"진정해 이재복. 망원역이라고 했지? 좀비들한테 데이트중에 둘러쌓였구나. 운좋은 새끼."
내가 말하자 재복이가 대답했다.
-어. 틀림없어. 망원역 옆에 고래서점.
"알았어. 구하러 갈게."
-뭐.. 뭐라고? 진짜? 어떻게?
"우리 지금 셋이 모여있는데, 무기도 있고 대충 어떻게 싸워야 할 지도 알아. 지금 당장 갈테니까 기다려."
-알았어. 정말 고맙다. 그럼 기다릴게.. 자꾸 소리를 내면 녀석들에게 들켜.
"좋아. 죽어도 살아있어라."
삑
전화를 끊은 윤호는 허겁지겁 무기를 챙겼다. 막 이야기를 꺼내려던 여자애가 분주하게 움직이는 우리를 멍하니 쳐다보자 수정형이 우리에게 외쳤다.
"너희들 미쳤어? 지금 밖은 밤이라고! 그리고 밖은 그.. 그 좀비들로 넘쳐나는데 어딜 가겠다는 거야! 망원역이라면 나도 알아! 여기서 걸어서 20분 거리잖아! 거길 어떻게 가서, 또 올 땐 어떻게 오려고 그래!"
"형. 나 지금 형이랑 누나들을 받아들인 걸 후회하게 되려고 하네?"
"뭐?"
나는 식칼창을 수정형에게 겨누면서 말했다.
"댁들 거두어준 건 '아직까지는' 식량이 있고, 이런 상황에서 거들 손이 늘어날 수 있으니까 거둔거였어. 무기라면 충분히 있으니까 집어들고 같이 갈 준비 해요."
"무.. 무슨! 안 가 나는! 절대로!"
"그러면 이 집에서 나갈 준비 하던가!"
내가 식칼을 휘두르며 위협을 하자 태완이가 나를 막으며 말했다.
"진정해 진환아. 이 분들은 지금 막 왔는데 뭘 어쩌겠어. 많이 지쳐있을 거야."
"그.. 그래요!"
"우린 안 갈 거예요! 어허어엉.. 그 놈들은 이제 정말 보기도 싫단 말예요!"
"내.. 내 눈 앞에서 남친이 뜯어먹혔.. 흐흑.. 뜯어먹혔어요.. 난 정말 안 나갈거야.."
나는 미간에서 힘을 풀면서 말했다.
"미친.. 그딴식으로 울고 있어봤자 지금 도움되는거 하나도 없거든요? 당신들 그러면서 식량 축내고 있을거면 진짜 조만간에 쫓아낼 테니까 각오 단단히 해요. 아 그리고 만약 우리가 돌아왔을 때 배신을 때린다던가 하면.."
나는 식칼창을 마루에 꽂고 장갑을 끼면서 말했다. 덜덜 떨면서 울고있는 여자들 옆에, 꼭 밤새워서 밀린 숙제를 데드라인에 맞춰 겨우 해왔는데 알고보니 딱 한 가지 숙제가 더 있어서 점수가 깎이게 될 상황에 처한 학생과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수정형에게 윤호가 다가가서 말했다.
"형. 지금 우린 정말 중요한 친구를 구하러 가는 길이예요. 좀비들은 생각보다 그렇게 강하지 않아요. 뭐 좀 변종도 있지만.. 하여간에 여기서 있어봤자 어차피 언젠가는 식량을 구한다던가 하러 나가야 할 텐데 지금 경험해두는게 어때요? 우린 정말 급해요. 형이 빗자루만 들고 같이 나서줘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데."
"으으.. 미안해, 하지만 난 정말.."
수정형이 덜덜 떨면서 웅크려앉자 태완이가 말했다.
"괜찮아요. 우린 지금 한시가 급하니까 나가볼게요. 근데 다들 이거 알아두세요. 정말로 겁에 질려서 우리 배신때린다던가 하면 안돼요. 정말이예요. 일단 여기에 우리가 이틀동안 얻은 정보를 써놓은 공책이 있으니까 이걸 보면서 조용히 기다려주세요. 식량은 많이 있으니까 배불리 드시고 푹 쉬세요."
"야 넌 언제 그런걸.."
우리의 행동은 정말이지 아무 보험도 없는 폭락중인 주식에 전재산을 거는 것보다 무모했다. 하지만 방법이 없다. 생존자들은 이미 우리 집에 들어왔지, 친구는 좀비들에게 둘러싸여 한시가 급한 상황이지.. 이게 바로 사면초가라는 건가.
"하여튼 다녀올게요."
"저.. 저기.."
누나들 중 한 명이 일어나면서 말했다.
"안 나가면 안돼 정말로? 나 너무 불안해서.. 너희들은 제대로 어떻게 하면 살아야 할 지 알 것 같으니까 그래서.."
"안됐지만 지금은 안돼요 누님. 뭣보다 급한 상황이라."
우리들은 더이상의 대화를 피하기 위해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이미 문명의 힘을 잃은 도시의 칠흙같은 어둠 속에, 피묻은 무기들을 쥐고..
아무 보험도 없이, 그저,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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