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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이야기(완성판).

이석희 |2009.08.07 16:12
조회 677 |추천 0

 

1. 미스테리(이상한 마을의 서막).

 

이수일촌(異首壹村).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다.

논밭이 있고 사람은 별로 없으며 조금은 외진, 그러니까 전형적인 시골냄새가 나는 그런 곳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촌은,

비가 내리는 날이면 아무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 그런 독특한 관습이 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살인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마을사람 그 어느 누구 하나도 범인을 잡으려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 어느 누구 하나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을 뿐이었다.

 

2. 서스펜스(불쾌한 만남).

 

오후 4시.

 

오늘은 저녁 약속이 있는 날이다.

읍내까지 걸어나가려면 지금 준비해야 한다.

 

'근데, 무슨 약속이었더라...'

 

혼자 중얼거리며, 모든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서는데,

갑자기 하늘에 검은 구름이 끼기 시작하더니, 곧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아...인생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약속이고 뭐고, 집에 그냥 있어야 겠다.

음산한 기운이 도는 게, 왠지 나가면 안될 거 같은 기분이다.

방에 들어와 잠시 누워 눈을 감는다.

며칠 전, 비오는 날 밤에도 마을 사람이 살해 당했었다.

마을 과부였는데, 성격이 아주 괴팍한 도씨 아주머니였다.

뭐, 친하지 않은 사람이었을 뿐더러, 왠지 기분 나쁜 사람이었다.

 

편안한 기분.

 

몇 초면, 잠들 것 같다.

눈앞엔 흐릿한 집앞 모습이 보이고, 터벅터벅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리고 앞에 보이는 어느 한 여자의 뒷모습.

그 여자를 따라간다.

 

그 순간,

 

"꺄아아아..."

 

어디선가 여자의 비명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왔다.

 

'뭐...지?...꿈...인가?"

 

아직 완전히 깨지 못한 상태에서 여자 소리가 또 들려왔다.

 

"사람살..."

 

빗소리에 묻혀 선명하지 않았으나,

왠지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듯 했다.

순간, 눈이 떠지고 여자의 소리는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비 내리는 마을.

어디선가 들려온 여자의 흐릿한 비명 소리.

 

한번 집주위만이라도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한 뒤,

우산을 챙기고 집을 나서는데,

순간 문 옆으로 튀어 나와있던 못에, 오른손이 걸려 피가 났다.

안전할 거 같다고 오랫동안 방치한 게 잘못이랴...

누굴 탓하겠나...

장도리를 찾아 못을 장도리로 빼내고, 일단 주머니에 넣었다.

 

'아...싫다. 손이 더러워 지는 거...밖에 버려야지.'

 

피를 대충 닦고 집밖으로 나와 우산을 쓰고,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데,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에이...아무일도 아니겠지. 꿈을 꾼걸거야.'

 

집에 다시 들어가려는데,

오른쪽에서 마을 동생인 상현이가 왼손으로 비를 막으면서 뛰어오고 있었다.

 

"야! 어딜 그렇게 뛰어가?"

 

미처 못 보았는 지 상현이는 약간 멈칫 하더니 누군지 확인하고는,

 

"어라? 형! 비오는데, 여기서 뭐해요?"

 

"아...방금전에 이 근처에서 여자 비명소리같은 게 들려서 말야. 뭔가 하고 나와 봤어. 근데, 넌 어딜 그렇게 뛰어가?"

 

"일하다가 비가 내리길래 집으로 뛰어가던 중이었어요."

 

"그래? 넌 비명소리 못...?"

 

순간 상현이의 오른손에 피가 묻어 있는 걸 봤다.

 

"너...너 손에 피가 묻었는데?"

 

"네? 어라? 뭐지? 또 일하다가 다쳤나봐요. 일만 하면 꼭 어딘가 다치더라. 형! 전 이만 갈게요. 비오니까 조심하세요."

 

그리고 상현이는 그렇게 말을 듣기도 전에 다시 가던 길로 뛰어갔다.

 

'뭐야. 뭐가 그리 바뻐?'

 

집에 돌아와 다시 누웠다.

 

'저녁 약속이 뭐였더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삐리리리...삐리리리...삐리리리...'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비가 오는 지라, 방안에 울려퍼지는 전화벨 소리.

 

'깜짝야. 누구지? 이시간에..."

 

수화기 건너편으로 들려온 목소리는 익숙한 목소리였다.

 

"형. 한 5분전에 무슨 소리 못들었어요?"

 

"어...잠결에 얼핏 여자 비명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나가보니 아무도 없었어. 너도 들었니?"

 

"......네. 저도 희미하게 여자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비도 오고 해서 나갈수가 없었어요."

 

옆 집사는 문영이다. 마을 동생인데, 성격이 광장히 다혈질적인 동생이다.

 

"그래. 혹시 모르니까 이따가 비 그치면 생각해 보자."

 

전화를 끊고, 잠시 누웠다.

또다시 살인 사건이 일어난 걸까. 에라 모르겠다.

몽한 기분.

그래 이제 다시 잠이 오려나 보다.

그 순간,

 

"삐리리리...삐리리리...삐리리리..."

 

아 또 전화군. 잠에서 깨어날 때 받는 스트레스는 언제난 굉장하다.

하지만 전화기를 부셔버릴 순 없지.

5분정도 지난 느낌이다.

 

'또 누구야?'

 

"형! 지금 비가 그쳤어요. 나가요."

 

'문영이군. 뭐가 급해진 걸까. 비가 그치자 마자 전화질이야.'

 

"으...응. 알았어."

 

뻐근한 몸을 이끌고, 밖을 나가보니 하늘은 구름이 곧, 걷힐 듯 했다.

 

'소나기였던가...'

 

옆 집의 문영이를 만나 집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집주위는 그저 익숙한 모습뿐이었다.

 

"에이...아까 잘 못 들었나 보네...이제 그만, 들어가자."

 

"아니에요. 혹시 모르니까. 반경을 넓혀서 찾아봐야 겠어요."

 

'거참. 성가시군.'

 

문영이는 앞장서서 집밖을 둘러보았다. 그러던 그는 무언가를 발견했는 지, 급히 어디론가 뛰어갔다.

 

'응? 뭐지?'

 

급히 따라가 문영이가 선 곳 밑을 보니, 한 여자가 축 늘어져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수척해 보이는 이 여자. 비명소리.

진짜 살인 사건이었구나...!!!'

 

3. 스릴러(폐쇄적 진실).

 

왠지 와본 듯 한 장소.

죽은 여자의 시체.

 

죽은 여자 옆엔 상현이가 쭈그려 앉아 시체를 보고 있었다.

 

'언제 왔지?'

 

"상현아 너 언제 온거야? 이 시체는 대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

 

"살인 사건 같아요. 저도 비 그쳐서 일하러 가다가 방금 발견했어요. 목에 흉기자국이 있고 팔에 저항으로 생긴 멍이 있으며, 오른손에 상처가 있어요. 아무래도 살인 같아요. 비 내리는 날의 저주..."

 

"너 이자식!!"

 

갑자기 문영이가 상현이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노려 본다.

 

"너지? 그치?"

 

"무슨 소리야? 난 지금 일하러 가다가 발견한 거라고. 이거 놔!"

 

멱살을 놓고 흥분을 조금 가라앉힌 문영이는 이내 측은한 모습으로 시체가 된 그녀를 바라 본다. 그리고 다가가 그녀의 볼을 어루 만진다.

 

"야! 만지지마! 더러워지잖아!"

 

문영이는 볼을 지나 목 주의를 만진다. 아니, 뭔가 느끼는 것 같았다.

 

"문영아. 니 오른손에 피 묻었다. 에이...재수없게..."

 

"아, 이거는 아까전에 피 흘린거 대충 닦아서...확실히 안 닦아서..휴. 빨리 경찰을 불러야 겠어요. 뭐 어차피 해결도 못할테지만, 누군가는 시체를 치워야 하니까..."

 

그러고는 문영이는 경찰에 전화를 한다. 이 근처에 있었는 지 경찰은 바로 달려오고, 형식적인 질문을 한다.

 

'뭐야. 이러니 범인을 못 잡지...붕대 감은 오른손은 또 뭐람.'

 

시체가 있는 곳에 오래 있지 않고, 문영이와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 문득, 생각이 났다.

 

"아 맞어! 문영아 근데, 아까 꿈에서 그 여자 본 거 같아. 꿈에선 뒷모습만 봤는데, 왠지 모르게 닮은 거 같아."

 

"에이, 형! 농담 말아요."

 

"근데, 너무 선명했어. 꿈이 아닌 거 같았어."

 

"......형! 범인이에요?"

 

"뭐? 아냐!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마!"

 

"알았어요. 들어가세요!"

 

집으로 들어와 다시 눕는다.

 

'아...죽어 있는 그녀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신기있다고 소문났던 거 같은데...성격이 모나고 다혈질적인 그녀였지만...음...그나저나 생각해 보면 마을 사람들 모두, 그다지 성격이 좋은 거 같진 않아...음...'

 

시계를 보니 5시 반이다.

 

'약속이 7시였던가. 비도 그쳤는데 나가볼까? 장소는 읍내인데, 대체 누구와의 약속이었을까? 일단, 나가자.'

 

머리가 지끈거린다.

일단, 나가보기로 하고 집을 나섰다. 읍내까지 가려면 걸어가야 했다. 다른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서 천천히 걷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이 또 다시 어두워 졌다.

 

'아...제발 비만...'

 

조금 걸어가다 보니, 머리에 비가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이건 뭐, 아니다 싶다.'

 

이럴때면, 인생의 주인공이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절실히 든다.

생각해 보면, 주위엔 자기합리화하는 글들이 참 많다.

결국 의지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중간에 돌아가기도 그렇고 해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 갔다.

 

'뭐. 아까 살인 사건도 났고, 이젠 없겠지.'

 

결국 인생은, 의지의 문제일 거란 생각으로 현실을 자기합리화한다. 어차피 인간은 무언가에 의지하는 동물이니까.

 

5분정도 걸었나? 앞에 사람 두명이 어렴풋이 보이는데, 아는 얼굴 같이 보였다.

 

'뭐야? 싸우는 건가? 돌아갈까?'

 

남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어느 덧, 내 앞에 두 사람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두 사람 모두, 상대방의 멱살을 굳게 잡고 큰 소리로 싸우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들.

 

"너 빨리 말해라. 네가 죽였다고. 내가 다 알아!"

 

"무슨 소리야? 너야 말로 의심스러워!"

 

조금 있음, 그냥 대화가 아닌 몸의 대화를 나눌 것 같았다.

말려야 할 것 같다.

 

"야! 너희들 왜그래? 왜 싸우는 거야?"

 

"형! 마침 잘왔어요. 문영이 얘가 범인이에요. 살인자라구요!"

 

"무슨 소릴! 너야 말로 실토하시지 그래?"

 

서로 범인이라고 싸우고 있는 상현이와 문영이.

상현이 성격도 거친데, 다혈질 문영이와 다투다니...

 

'골치 아프군.'

 

"야! 그만둬! 좋게 말로 하라구!"

 

막는 힘은 두 명의 힘을 이기지 못한다. 둘이 떨어 뜨리지 못한다.

 

"문영이 너! 손에 피! 아까 걔 거지? 죽여 놓고, 범인이 아닌 척! 다시 와 본거지? 그치? 알리바이 만들려고! 맞지? 경찰서로 가서 검사 한번 해보자!"

 

"난 집에 주욱 있었거든? 너야 말로! 니 손에 반창고는 뭐야? 이거야 말로 충분한 증거라 생각 되는데?? 살인을 저지르고 집에서 반창고 붙이고...시간상으로도 딱인데? 안그래?"

 

순간, 문영이가 주먹으로 상현이의 얼굴을 가격한다. 결국 둘은 서로의 얼굴을 가격한다.

 

'어쩌지? 아...벗어나고 싶다.'

 

그때, 말릴새도 없이 문영이가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얼굴만한 돌을 찾아 상현이의 얼굴에 던진다. 상현이는 충격을 받고 일어나지 못한다. 그 사이에 문영이는 돌로 상현이의 얼굴을 무참히 가격한다.

 

'읔! 피가 튄다. 보고 싶지 않다. 더러워질텐데...아니다. 빨리 말려야지!'

 

하지만, 이미 상현이는 숨이 끊어진 채 몸의 움직임이 없었다. 문영이의 눈은 살기가 가득해 보였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렸다.

 

"......근데 있잖아. 난 말야. 사람들이 이 곳으로 이사오면서 부터, 불만이 많았어. 원래 혼자 사는 곳이 었는데 말야."

 

그렇다. 이 마을은 원래 문영이 혼자 살던 곳이 었다. 그러다 십여년 전부터, 사람들 하나 둘씩 이사오기 시작하더니, 이번엔 어느 날 부턴가 사람들 하나씩 살인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영아...대체 왜!"

 

"형! 형은 누가 범인인거 같아요? 상현이라고 생각하죠? 그쵸? 근데, 살인자는 죽었으나, 지금 현장 목격자는 살아 있네?으흐흐..."

 

문영이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노려보면서 내게 조금씩 다가왔다.

 

"참, 형! 아까 비명소리 들었다 했죠? 근데, 그녀가 죽은 곳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사람이 형이랑 저뿐이죠. 근데, 형 나갔다 했었죠? 아! 그리고 그 시체랑 꿈속에서 본 여자의 뒷 모습이랑 닮았다 했잖아요. 근데, 그게 꿈이 아니고 사실 이라면요? 꿈이라고 거짓말한거라면요?"

 

"문영아. 설마 날?"

 

"알리바이가 성립할까요? 상현이가 범인이 아니면, 형이 가장 유력할 것 같은데..."

 

이젠 코앞까지 와있다.

문영인 상현이를 죽인 후,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나가서 상현이를 만났었다고! 아...물어볼 수도 없고..."

 

그때, 머릿속에는 잠시 잠들었었던게 기억이 났다.

 

'그 때, 잠결에 여자의 비명소릴 들었는데...아닌 것 같기도 하고...처음에 본, 여자의 뒷 모습! 꿈이 아니었나?'

 

생각해 보니, 여자의 뒷모습과 죽어있던 여자의 시체는 얼핏 비슷해 보였다. 더군다나 꿈속에서 본 장소까지...비명소릴 들었을 때는, 비몽사몽한 상태였다. 잠에서 깼을 땐 이미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때다. 꿈에서 여잘 본 거였는데...꿈이 아니었다면...

 

'설마...내가...설마...'

 

절망이다. 왠지 문영이 손에 죽을 것 같단 생각이 든다. 문영이가 진짜 범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순간,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조금 가지도 못하고 문영이의 주먹에 넘어지면서 코피가 났다. 다시 도망가려 했지만, 이젠 시체가 된 상현이 몸에 걸려 넘어졌다. 문영이는 성큼성큼 다가와 내 멱살을 잡아 살인자는 죽어야 한다고 소리친다.

 

'아 이대로 죽는 건가...'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봤지만, 손에 잡히는 건 반창고가 붙어 있는 상현이의 오른손일 뿐.

 

'아! 못!'

 

재빠른 몸놀림으로 주머니에 넣었던, 못을 꺼내어 문영이의 얼굴에 찔렀다. 문영이는 살짝 피했지만, 충격이 조금 있었는 지, 조금 멈칫한다.

이제는 몸속 파괴 본능에 의해 문영이를 마구 때리기 시작한다. 문영이는 고통스러워 하지만, 나의 파괴본능은 그 모습을 무시한다.

인간은 어쩌면, 규범하에 파괴본능을 어쩔 수 없이 숨겨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왜. 인간은 자유의지-곧 본능-를 갖지만, 사회적 동물이라는 어느 멍청한 자의 말 때문에 ...-인간의 본능인 고독을, 그 허(虛)함을 다른 사람-사랑이 아닌-과의 공동체 속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 난 아냐!!!!!!!!"


 

문영이의 눈은 점점 힘을 잃어간다.

누군가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난다는 쾌감과 함께, 누군가를 이겼다는 쾌감이 곧 온 몸으로 올라올 것이다.

 

그때,

 

어디선가 부드러운 음성이 흐릿하게 들려왔다.

 

'서문영씨! 서문영씨!'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잠시 행동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뭐지? 이 부드러운 목소리는?'

 

'서문영씨! 일어나세요! 일어나셔야 합니다!'

 

'누가 말하는 거지?'

 

부드러운 목소리는 점점 크게 들려 온다.

하지만, 주위엔 그 어느 누구도 없다.

더군다나 지금 정신은 점점 흐릿해지는 느낌이 든다.

 

......

 

그리고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4. 반전(마음의 상처).

 

"서문영씨! 서문영씨! 일어나세요!"

 

몸이 뻐쩍찌근한 느낌이 든다. 정신이 혼미하고 머리는 아파온다.

 

"오! 서문영씨. 자! 이제 셋을 세면, 눈을 뜹니다. 준비하시고. 하나. 둘..."

 

몸이 무거워지고 정신이 돌아오는 느낌이 든다.

 

"...셋!"

 

부드러운 목소리와 손가락을 맞대어 튕기는 소리에 내 정신은 돌아오고, 눈을 조금씩 뜨기 시작한다. 아직 아닌가? 갑자기 눈으로 들어오는 빛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다.

 

'여긴 어디지? 나는 지금 무얼하고 있던 거지?'

 

내 눈을 빛을 조금씩 받아 들이고 주위를 둘러 본다. 오른쪽 벽엔 6시를 가르키고 있는 시계가 보인다. 하얀 페인트를 칠한  벽들. 그리고 이 공간 안에 수트를 입은 한 남자가 내 옆에 앉아 있었다.

 

"서문영씨. 다행이에요. 목숨을 잃을 뻔 했어요."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말을 하고 싶은 내 욕구는 움직이지 않는 강한 몸부림이 된다.

 

"주욱 당신을 지켜보았는데, 더이상 가만히 둘 수가 없었어요. 당신이 죽을 뻔 했다구요. 아...원래 7시까지 지켜봐야 했는데...그 놈이 당신을 죽일 것만 같았어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요."

 

'그 놈? 누구? 이 사람. 대체 무슨 소릴하는 거지? 음. 가만히 생각해 보자.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었지?'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것 같다.

 

'아! 그래! 싸우고 있었다.'

 

내 눈은 점점 생기가 돋아나고, 내 입술을 점점 감각이 살아나는 것 같다. 지금 정말 궁금한 그것을 내 옆 사람에게 물어봐야 겠다.

 

"저기...제가 지금 무얼 하고 있었죠?"

 

"아. 네. 전 지금 유병웅씨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원래는 7시까지 지켜보기로 했는데, 서문영씨와 싸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눈을 뜨게 했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제가 지금 여기에 왜 있는 거죠?"

 

"아...싸음으로 인해 충격이 있었나 보군요. 서문영씨는 지금, 정신치료를 받고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 시간에는 서문영씨 몸안에 있는 유병웅씨를 지켜보고 있었고요."

 

아! 기억났다! 난 지금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몇 년 전 부터 내 몸안에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몸안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상행동이나 말을 보이자, 가족들은 나를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한 것이다. 갑자기 내가 멀쩡한지 궁금해 졌다. 아니, 내가 나인지 궁금해졌다.

 

"저 지금, 제가 맞나요? 저 자신이 맞냐구요?"

 

"아, 네. 서문영씨는 지금 자신의 인격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다행이군요. 근데, 지금 저는 제 치료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었는 지 몹시 궁금합니다."

 

"서문영씨는 현재, 해리성 정체감 장애 (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를 앓고 있습니다. 흔히들 다중인격이라고 부르죠. 그것을 치료하기 위해 서문영씨 안에 있는 다른 인격들에 대해 최면으로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부터, 인격의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그저 자연히 치료가 되고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계속 지켜보니 그게 아니었어요. 서문영씨 인격이 다른 인격들을 하나씩 죽이고 있었거든요."

 

"제가요? 왜 그랬죠?"

 

"의지가 약하고, 숫기가 없던 소심한 서문영씨의 인격이 어느 날 부턴가 변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변했다는 거죠?"

 

"완전히 다른, 그러니까 다혈질적이고, 공격적인 인격으로 변해 버렸었어요. 서문영씨 안에 있는 다른 어느 인격에 의해 변한거 같아요."

 

"그...그게 누구죠?"

 

"글쎄요. 누구라고 아직 확답하지 못했지만, 현재 성격이 서문영씨의 원래 성격하고 반대의 성격을 가진 여성인격일거라도 추측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자신이 이겨내고자 하는 마음이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상태에서 자신이 갖고 싶어하는 성격을 가진, 더군다나 그것을 가진 성(性)이 이성이라면, 서문영씨 인격에 변화를 주지 았않을까하는 추측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되는 여성인격이 서문영씨의 다른 인격이기도 하니까요. 음. 그러고 보니, 아까전에 서문영씨가 측은한 모습을 보인 여성인격이 있긴 했죠. 근데 자세한 건 확실... "

 

"그...그래서요?"

 

"네? 아...서문영씨는 인격 하나하나를 죽여가고 있었어요. 스스로에게 의지하고 굳은 마음으로 바뀐 성격을 이용하고 있었죠. 사실 죽이는 데 큰 이유는 없었죠. 그저, 내안에 다른 누가 있다는 게 싫었을 뿐이었던 것 같아요. 살인이 충동적이긴 했지만...서문영씨는 다른 인격들에게 그 사실을 숨기려 했죠. 아무래도 그 사실을 알게 되면 골치 아프니까요..."

 

"그...그랬군요. 아무 기억도 나질 않아요."

 

"아까 정신적 충격이 커서 그런 것 같습니다만, 가족분들이 얘기해 주더군요, 어렸을 적 비 내리는 날 동네에서 살인 장면을 본 이후로  정신적 큰 충격을 받았다고. 이번에도 그것 만큼의 충격을 받은 듯 합니다. 역시 고통이란 건, 참기 힘든 거거든요."

 

"제 안에 다른 인격들이 아직 남아 있나요?"

 

"네. 아직 남아 있습니다. 치료를 아직 많이 받으셔야 하는 상태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집에 돌아가셔서 푹 쉬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내일 치료를 제대로 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나는 몸을 가다듬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 오른손.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따금거렸다. 피가 닦인 흔적도 있는 게, 다쳤었나 보다. 오른손을 쳐다보고 있으니 수트를 입은 그가 말했다.

 

"아. 치료하는 과정에서 당신이 약간의 몸부림을 치다가 의자에 긁혔는지 오른손에서 피가 나더라구요. 다행이 심하지 않아, 피만 닦고 계속 정신치료를 진행했습니다. 괜찮으시죠?"

 

"아...네...괜찮습니다. 상처가 크지 않으네요."

 

나는 인사를 하고 나온다.

 

'어쩌다 내 안에 다른 인격들이 살기 시작한거지...휴...'

 

습관처럼 담배를 찾기 위해 주머니 속을 뒤적 거린다.

그러다 주머니에서 담배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꺼낸다.

 

'아 뭐야. 이거.

왠 못이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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