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으로 이사를 하던 도중 공교롭게도 싸가지 없는 꼬맹이를 하나 떠맡게 된 우리들은 더더욱 발걸음을 늦출 수 밖에 없었다. 덕분에 우리가 편의점이 있는 골목까지 오면서 소비한 시간은 대략 한시간 하고도 반. 정말이지 한 명의 희생자도 안 나온 것에 대해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멤버인 꼬맹이는 생각보다 얌전했다. 아니 얌전했다기보단 힘이 다 빠졌다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제아무리 건장한 청년일지라도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사태에 빠지면 순식간에 스태미나를 소모하게 되는 법인데, 하물며 이런 꼬맹이가 런너에게서 그정도로 버틴 뒤 우리를 따라 걸어오다니.. 그것만으로도 용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어.."
나와 태완이의 뒤에 꼬맹이를 두고 뒤에서 가운데를 지키며 걷고 있던 재복이가 짧게 탄성을 질렀다. 뒤를 돌아보자 나라가 선 채로 꾸벅거리며 비틀비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나는 손을 들어서 일행을 멈춘 뒤 녀석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야 꼬맹아. 괜찮아?"
조금 전까지만 해도 꼬맹이라고 부르면 역성을 냈을 녀석이, 이젠 의식이 날아가버리기 직전인지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에에..?"
"안 되겠다. 이녀석 체력게이지가 0으로 떨어진 것 같아."
"0이면 죽은거잖아. 1이겠지. 삐꼬- 삐꼬- 거리면서 빨간색으로 번쩍거리겠는데."
듣고보니 그렇군.. 이 아니라,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나는 손바닥으로 녀석의 볼을 아주 약하게 톡톡 치면서 물었다.
"어이 야! 나라야! 여기서 자면 감기걸려! 정신차려!"
감기만 걸리면 얼마나 좋게. 죽지.
"우웅.."
녀석은 흔들거리던 몸을 멈춘 뒤 신음소리를 내면서 눈을 비비적거리다가, 녀석을 붙잡고 있는 내 손을 지지대로 하면서 땅에 무너져내린 뒤 반쯤 주저앉아버린 상태로 잠에 빠져들어버렸다. 내가 엉덩이를 빼고 손을 내민 채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몰라 굳어있는데 뒤에서 태완이가 말했다.
"어지간히도 피곤했던 모양이네."
그래, 이 나이때의 애들은 가끔 걸어가면서 졸기도 한다. 실제로 내 동생은 4학년땐가 졸면서 길을 가다가 돌벽에 이마를 부딫혀 병원에 가서 꼬맨 적도 있을 정도니까. 나는 자세를 바꿔서 녀석을 곱게 앉힌 뒤 뒤에서 녀석을 받혀들고 말했다.
"아무나 얘좀 업어. 편의점은 바로 앞이니까 빨리 가자구."
"으음.."
내 말을 들은 수정형이 일행을 죽 둘러보았다. '변태' 라는 말을 알고 있는 녀석이니 남자가 업고 있으면 도중에 깨어났을 시 어떤 난동을 부릴지 모르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여자가 좋겠지만, 공교롭게도 여자들은 모두 등에 짐을 지고 있는 상태. 남자들 역시 모두 손에 무기를 하나씩 들고 있는 상태다. 각자 포지션도 있고.
가만, 포지션이라고 한다면.. 재복이가 서포트니까 녀석을 쓰면 되겠군.
"재.."
"그냥 니가 들어라."
내가 재복이를 부르려는데 윤호가 말했다. 그러자 모두가 불시에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그래. 뭐 다들 역할들이 있으니까 그냥 니가 업어."
"말 나온김에 그냥 니가 해라."
다들 아까 녀석의 드센 모습을 보고 별로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훗, 하지만 나는 선두에 선다는 중요한 임무가 있다는 말씀.
"난 선두.."
"선두엔 내가 설게. 니가 앞에서 열심히 싸웠으니까 나랑 교대해."
내가 입을 열기가 무섭게 재복이가 말했다. 녀석은 내가 응 이라고 하지도 않았건만 내 식칼창을 뺏어들고 태완이 옆에 서 버렸다. 허허.. 이용하려 한 이에게 당하다니. 인과응보라는 것인가? 나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내가 업는다 그래. 거 피곤한 꼬맹이 하나 업어주는 선한 역할이건만 다들 왜 이런대?"
"어.. 난 나쁜 뜻은 없었는데. 싫으면 내가 할까?"
"됐어."
재복이가 머쓱하게 말하며 내게 다가오자 나는 손을 흔든 뒤 나라를 업어들었다. 녀석은 생각보다 가벼웠다. 나는 한 손으로 녀석의 엉덩이를 재탱하며 다른 손으로 왼쪽 허벅지춤에 달아놓은 손도끼를 살짝 밀어서 녀석의 다리에 닿지 않게 만든 뒤, 왼쪽 어깨에 녀석의 턱을 기대었다. 내 오른쪽 귀가 다친 상태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픈걸 떠나서 꼬질꼬질한 붕대에서 나는 악취 때문에 그쪽에 머리를 대고 있으면 꽤나 괴로울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럼 가자. 뭐 요앞이니까.."
"좀비다."
진짜 타이밍 끝내준다. 내가 몸을 추스리고 녀석을 들쳐업은 뒤 영차 하면서 일어나는 찰나 들려온 윤호의 외침에 나는 힘이 쭉 빠지는 걸 느꼈다. 이 녀석을 내려놓고 싸워야 하나 하면서 옆을 쳐다보니 저쪽에서 좀비 세 마리가 빠른 걸음으로 비척비척 다가오고 있었다. 외길이라 빠질 곳도 없다.
"첫 출전이다, 이재복. 나가서 승리를 쟁취하도록."
나는 내 대신 선두에 선 재복이에게 농담을 던졌다. 대답이 들려오질 않아 녀석을 돌아보니, 녀석은 내 농담에 대꾸를 할 여유가 없는 것 같았다. 아까같아서야 무작정 맡겠다고 했지만 녀석으로선 이게 진짜 처음 전투니까. 그것도 셋이나. 재복이는 내 식칼창과 자기 쇠파이프를 양 손에 하나씩 든 채 살짝 떨면서 녀석들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이건 안 좋군."
내가 나라를 내려놓으려고 자세를 숙이는데 뒤에서 수정형의 목소리가 들려오며 덜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형은 무기를 내려놓고 총가방을 꺼내고 있었다. 윤호 역시 앞으로 나오고 있었다. 여자들은 셋이나 되는 좀비들에게 와싹 얼어서 각자의 무기를 앞으로 드리우고 살짝씩 뒷걸음을 치고 있었다.
"후우.."
재복이의 심호흡.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한 듯 했다. 녀석들이 몰려올 때 다른 이에게 의지를 하려 했었다면 선두 실격이지만 뭐.. 저렇게 나오는데 뒤로 빼게 할 수는 없지. 그것도 여친 앞에서.
하지만 만약의 사태라는 게 있다. 나는 아름이에게 나라를 부탁하고 녀석을 살포시 내려놓은 뒤 손도끼를 꺼내들었다.
"허어- 허억- 어어-"
"꾸륵! 꾸륵!"
목에서 나는 소린지 입에서 나는 소린지, 아니면 어떤 일로 뚫려버린 몸의 구멍에서 나는 소리인지, 소름끼치는 소리들을 내며 좀비들이 다가왔다. 두 놈은 앞에서 나란히 다가오고 남은 한 놈은 조금 떨어진 상태. 그나마 다행이다. 내가 자세를 숙인 채 앞의 친구들 뒤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며 작전을 짜고 있는데 태완이가 재복이에게 말했다.
"이재복, 니 앞에 있는 녀석을 식칼창으로 잠깐만 막아. 5초면 돼. 옆에놈을 내가 없앨테니까."
"알았어."
뭐 저렇게 되었는데 내가 할 말은 없다. 적이 다가오고 있는데 작전을 두번씩이나 짤 정도로 우린 한가하진 않으니까. 나는 말없이 손도끼를 치켜든 채 윤호의 옆에 섰다. 언제라도 튀어나갈 수 있도록. 좀비들이 약 3미터 정도 앞까지 다가오는데 뒤에서 철컥 하며 수정형이 안전장치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나가!"
"으아아아!"
태완이는 오른손잡이라 그런지, 자기가 알아서 오른쪽으로 선 뒤 앞으로 튀어나갔다. 검을 빼고 호를 그릴 때 오른쪽에 사람이 서 있으면 베어내기가 힘이 들 뿐더러 그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태완이는 목도를 들고 있었다!
"훗!"
빠각
마치 검집에서 검을 빼듯 왼손으로 목검의 자루를 제지하고 있다가 힘껏 빼어가른 목검은, 희한한 궤도를 그리며 오른쪽에 서 있던 좀비의 오른쪽 관자놀이를 강타했다. 왼쪽에 서 있던 놈은 재복이의 식칼창에 배가 꿰뚫려 잠깐 움직임을 제지당한 상태였다. 그런데 태완이가 검을 채 추스르기 전에 재복이에게 제지당하고 있던 좀비가 식칼창에 찔린 자기 배를 마구 밀어넣으며 재복이에게 다가서는 것이 아닌가!
"히이익!"
재복이는 기겁을 하고 뒤로 물러서다가 땅에 엎어졌다. 마구 뒷걸음을 치다가 걸려 넘어진 재복이의 위로 좀비가 쓰러졌다. 쓰러지는 좀비의 뒤로 뚫고 나온 식칼창에 썩어들어간 내장이 마구 비어져나온 것이 보였다. 저 상태에서 무기를 들은 태완이나 윤호가 내려치면 물릴 수도 있다. 나는 주저없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우아아! 물린.."
"떨어져 신발새꺄!!"
뻐어억
천만다행으로, 들어갈 대로 들어간 식칼창의 자루가 지지대가 되어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좀비의 몸이 멈추어 재복이는 물리지 않았다. 윤호와 태완이가 주춤하는 사이 좀비의 대갈빡에 작렬한 내 사커킥은 놈의 목을 아예 꺾어버리고 말았다. 옆으로 엎어져 덜덜 떨고 있는 좀비의 몸에 언제나처럼 윤호의 소나기같은 쇠방망이 러쉬가 쏟아졌다. 녀석도 저 짓을 많이 하다보니 익숙해졌는지, 놈의 배에 꽂힌 채 하늘로 치켜올라가있는 내 식칼창을 교묘히 피하며 때리는 기술이 거의 달인급이었다.
탕탕-
"뭐해! 빨리!"
잠깐 위기에 빠졌던 재복이 때문에 정신이 완전히 쏠려버려 넋을 놓고 있던 우리들의 귀에 총성이 들려왔다. 앞을 보니 수정형이 쏜 총에 맞아 비틀거리고 있는 좀비가 보였다. 한 마리가 더 있었던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수정형의 외침을 들은 태완이는 곧바로 앞으로 달려나가 좀비를 발로 차 넘어뜨리고 목검으로 두부를 두 대 때렸다. 그리고 다시 놈의 몸을 뒤집고 뒤통수에 한방.
태완이의 확인사살을 보고 있던 나는 혹시나 해서 태완이가 먼저 쓰러뜨린 놈을 쳐다보았다. 역시나 놈은 확실히 뒤통수가 깨지지 않은 상태라 살짝씩 몸을 떨고 있었다. 나는 혹시라도 잡힐세라 멀리 돌아서 놈의 머리쪽으로 간 뒤 손도끼로 손수 머리를 부숴주었다.
퍼어억
앞서 묘사하진 않았지만, 내 손도끼의 앞부분은 살짝 뾰족하다. 놈의 미간부터 이마까지를 가르며 머리가 부숴지자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광경이 펼쳐졌다. 두개골이 부숴지자 양쪽으로 시신경을 타고 배어져나온 눈알.. 하나는 아예 튀어나왔다. 그리고 코가 막혔을때 항상 궁금해 하던 비강 구조의 해부도같은 광경과 죽은 후부터 썩어들어가기 시작한 엄청난 양의 분홍색 뇌수, 터져나온 핏덩이와 꿀럭꿀럭 흘러나오는 회색의 수분.. 나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손도끼를 뽑아내었다.
"우웁.. 쿨럭! 콜록!"
갑자기 누군가가 구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완이었다. 앞서 나가서 좀비들의 머리를 부수었지만 역시 조금은 견디기 힘든 장면이었나보다. 나 역시 울렁거리는 속을 참으며 태완이에게 달려가 등을 두드려주었다. 뒤를 보니 재복이가 윤호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고 있었다. 둘 역시 입을 꽉 다문 채 욕지기를 참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기야, 괜찮아?"
누가 여자친구 아니랄까봐, 전투가 끝나기 무섭게 서영이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재복이에게 달려와 윤호에게서 재복이를 넘겨받았다. 재복이는 힘없이 말했다.
"으응.. 괜찮아. 그보다 고맙다 진환아."
녀석이 나를 보며 말하자 나는 태완이를 툭 친 뒤 웃으면서 말했다.
"노 프라블럼. 하나 빚진거라고 쳐."
처음으로 괴물에게 칼을 겨눴다가 죽을 뻔 했으니 힘이 빠질만도 하지. 재복이는 얼굴이 새햐얘져서 다리를 덜덜 떨고 있었다. 그래도 나보단 훨씬 낫다. 나는 뒹굴고 토하고 울고 별 지랄을 다 떨었으니까. 서영이는 재복이를 끌어안고 엉엉 울고 있었고, 재복이는 누운 채 손을 올려 그런 서영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정말 뭉클하다마는, 너희들 바로 뒤에 배가 뚫려서 내장이 쏟아져나오고 윤호의 쇠빳다 찜질에 떡이 된 시체가 하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줄래?
"욱.. 이게 뭔 냄새야?"
나는 남들보다 유난히 후각이 강하다. 하지만 그걸 떠나서 누구에게나 풍겼을 법한 고약한 냄새가 갑자기 퍼져나왔다. 꼭 정화조에서 나는 듯한 구린 냄새였다. 피비린내는 익숙하지만 이런 냄새는..
나 말고도 대부분이 맡았는지 모두들 얼굴을 찡그리며 킁킁거렸다. 내 후각을 따라가 본 결과, 그것은 죽은 좀비들 중 한 놈의 엉덩이에서 피어나오고 있는 냄새였다. 이쯤되면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안다.
"미친새끼.. 곱게 뒈질것이지 똥지랄을 하고 죽냐? 지가 무슨 90처먹은 노인넨가."
내가 코를 막고 얘기하자 태완이가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사람이 죽으면.."
"알어 알어. 죽으면 온몸에 힘이 들어간 근육들이 다 풀려서 똥이고 오줌이고 죄 쏟아져나온다는 거. 아는데 처음이잖아, 이런 사태는."
우리가 앞서 확인했듯, 좀비들은 소뇌에서 나오는 근육의 움직임을 관장하는 신호만을 가지고 움직인다. 뭐 정확하게 어떻게 돌아가는 시스템인지는 모르겠지만 뒤통수를 부수면 확실하게 죽는다는 것 만큼은 알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알고 있는 사실은 감염된 사람이 '죽는' 순간 이 바이러스가 발동된다는 것. 죽는 순간에 똥을 쏟고나서 변하는지 어쩌는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죽인 놈들 중에 똥지랄을 하고 죽은 놈은 없었다. 그럼 이놈은 죽을 때 똥꼬에 힘을 주고 죽었나?
..조금 웃기는군.
나는 실소를 터뜨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자들은 다시 짐을 챙기고 있었고(서영이가 재복이에게서 안 떨어질 것이라 예상한 윤호가 알아서 짐 하나를 짊어졌다) 앞에서 싸운 남자들은 각자 몸을 추스리고 있었다. 내가 혀를 차면서 그야말로 메스(mess)가 되어버린 사체들을 발로 밀며 애들 쪽으로 다가가는데 수정형이 총을 다시 정리하는 것이 보였다.
전투를 여러번 해왔지만 이렇게 머리를 부순 시체가 세 구나 우리 근처에 있고, 또 그것을 넘어서 가야 하는 경우는 없었다. 또 특히나 이번 녀석들은 더럽게 죽었으니..
"빨리 가죠."
나는 피를 살짝 닦아낸 뒤, 등 쪽에 피가 뭍었나 확인한 뒤 아름이에게서 나라를 받아들고 말했다. 내가 녀석을 딱 업어들자 내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이 짐을 추스리며 다시 걸어갈 준비를 했다. 감상에 젖어있을 시간은 없으니까.
재복이는 서영이의 부축 아래, 태완이와 윤호가 선두를 서고 수정형과 내가 뒤에 선 채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시체들을 넘어설 때 나영누님과 아름이가 고개를 하늘로 쳐들고 눈을 질끈 감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 밟기라도 하면 미끄러져서 시체랑 키스할텐데. 하하.
철퍽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내 발에도 철벅거리는 핏덩이의 감촉이 느껴졌다. 순간 떠오른 좀비의 박살난 머리가 머릿속에 그려져 나 역시 별수없이 시체를 보지 않기 위해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걸음을 크게 해서 놈들의 시체를 지나친 뒤 몸을 한번 들썩거려 나라를 업고 있는 손을 조금 더 편한 위치에 두었다.
"태완이도 너네도 참 대단하다."
"네?"
수정형이 말하자 내가 아름이를 업은 채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도 그렇게 주저없이 앞으로 나가서 막 때려부수냐. 너네 뭐 폭력단 그런거의 아들들은 아니겠지."
"말도 마요. 우리 처음에 좀비 만났을 때 고작 한 마리가지고 다 죽을뻔한 거 생각하면 아직도 한숨이 나오니까. 지금 우리의 용맹은 변환된 두려움이라고 봐도 될 걸요. 거기에 플러스 경험 조금."
왜, 극단적인 예지만, 고딩급 쌈쟁이들과(양아치를 말하는 게 아니다) 조폭들의 전투력은 거의 5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고 한다. 무리를 지어서 친다면 거의 10배 정도. 왜인지 아는가? 싸움에 임하는 자세가 틀리기 때문이다. 고딩들은 그저 쌈질이 쌈질에서 끝나지만, 조폭들은 쌈을 '목숨을 걸고' 한다. 그것 자체가 삶이자, 동시에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지면 죽는다. 각목으로 얻어맞아 어디 병신되고.. 이 정도가 아니라 진짜 배때기에 회칼로 구멍이 뻥 뚫리거나 쇠몽둥이로 윤호 좀비 때리듯 쳐맞아 죽어버리는 것이다. 뭐 꼭 그러란 법은 없지만..
얘기가 좀 생소한 곳으로 샛는데, 여하튼 우리는 그거다. 처음 싸웠을 때야 반쯤 재미였지만 딱 몇 초 후에 진실을 알게 된 - 그러니까, 좀비는 우리를 '먹으려' 한다는 것에 대해 알게 된 우리들은 너무도 큰 두려움에 휩싸여 몸부림친 것이다. 거기서 운좋게도 우린 살아남았고, 말이야 안 했지만 그 깨달음을 몸으로 새긴 우리들은 이제까지 살아남아 온 것이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우리의 싸움은 살기위한 것이다. 죽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걸 모두가 알아야 할 텐데.
나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수없이 떠오르는, 내 눈앞에서 죽은 책방의 커플과 총을 주신 할아버지의 모습을 다시 새기며 입술을 물었다.
"이사도 했고.. 다음은 짱박힐건지 피난인지 정하는 일만 남았군."
최후의 생존까지, 아직 29일-
혹은, 사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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