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 동상 ,사진출저- encyber.com)
秋夜雨中 추야우중
秋風唯苦吟 추풍유고음
世路少知音 세로소지음
窓外三更雨 창외삼경우
燈前萬里心 등전만리심
비오는 가을밤에..
가을바람 괴로이 오로직 읊조리나..
세상에 알아주는 이 없구나.
창 밖엔 밤 깊도록 비만 내리고,
등불 앞에 마음은 만 리밖을 내닫네..
혹시 최치원이라는 인물을 아싶니까..?
당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먼저 떠오로는 인물은 아니겠죠
충무공 이순신이나 조선왕조가(家)나 여느 시대 왕실가의
후손들은 자랑스레 자신들의 선조에 대해 애기하곤 하죠..
심지어 외국인들에게도..
그치만 우리나라에 있는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성씨중
경주 최씨 시조인 최치원 만큼 많이 알려지지 못한 인물도 없을겁니다
통일신라 3최중 하나로 당나라에서 17년가 유학한 사람입니다.
어느 사람들은 그가 우리나라 최초의 유학파라는 소리도 하더군요.
어쨋든 그는 12살에 홀로 당나라에 유학가 공부하여
관직에 오릅니다. 당나라 헌종때 활약하던 문인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죠.
지금의 양저우시가 그의 주 활동 무대였다고 하며 지금 그곳엔
"최치원 박물관"이라는 박물관이 있습니다.
고국인 신라가 휘청거린다는 소식을 들은 최치원은 큰 결심을 합니다.
당나라에서의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신라로 다시 돌아오는거죠
그리고 훈 10조로 불리는 신라가 해야할 10가지를 왕께 올리지만
묵인당하고 한탄하며 외직으로 보내주길 스스로 간청.
외직을 돌며 여생을 보내다 홀연히 산으로 들로 다닌 사람이기도하죠.
당나라 황소의 난을 제압하는데 시발점이기도 했고
황소가 군을 물리는데 영향을 주었다는 "토황소견문"을 지은 이가
바로 최치원이죠. 그래서인지 당 헌종은 그가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하자 만류하며 돌아가지 말아 줄것을 부탁했다고 합니다.
나라의 큰 어른이 돌아가셨습니다.
나라를 위해 일하고 싶어했고 그러길 평생 꿈꾼 분..
위의 시는 나라를 위해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나라가 기우는걸
바라볼수 뿐이 없었던 최치원이 가을의 어느 밤에 쓴 오언시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라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직 우리나라는 가능성이 있는거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