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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미술ㅡ 용산

shuuuing |2009.09.26 09:37
조회 1,453 |추천 0

내가 살고 있는 

명동 


명동성당 뒷문으로 계성여고 운동장이 이어지고

계성여고 정문 앞에 내가 살고 있는 기숙사가 있다.


짱 밝은 명동에도 어스름한 골목은 많다. 

그 중 한 곳이 이곳이다.

계성여고 정문과, 기숙사 정문을 낀 어둡스레한 골목.


어떤 날부터 

사복입은 형사분들이랑 경찰복입은 경찰들이 

한두명도 아니고 여섯일곱명이 

이 어둡스레한 골목에서

(딱 계성여고의 정문앞에서)

24시간을 버티고 있다..(계신다는 소리가 안나온다. 못하겠다)


왜 ?


사감선생님께선,

용산참사에 관련해서 수배자가 명동성당에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슨말이야? 용산참사의 피해자가 도대체 누구길래 , 

누구를 수배한다는 말일까.

뭔가 바뀐게 아닌가.

길었던 5개월간의 여행에서 돌아오던 그 날, 용산에서 참사가 있었던 날이었다.

시위... 화재... 진압.. 사망... 

피곤했던 날이었다. 


아무튼 

왜 형사가 거기에 있어야 하는지. 여자 고등학교 앞에, 여자 기숙사 앞에서 

무섭게 생기신 분들을 내가 나갈때나 들어갈 때나 마주쳐야 하는건지

계성여고 운동장으로

아침 여섯시반에 운동을 하러 나가면, 왜 제일 처음 마주치는 사람이 

화단에 숨어있는 경찰인지.


내 짧은 머리로는 이해가 안되서, 

'용산참사 명동성당' 으로 네이버에 검색을 해봤다.

 

싸이월드 블로그가 뜬다.

http://www.cyworld.com/shu_aa/2836665



  


 

하늘이 예쁘던 날, 명동성당에 갔다

희선오빠와 영민오빠와 함께_

 

'마침' 우리 손에는

검고 달콤한 포도 한박스와 반짝이는 유기농 사과 한박스와 머핀 한상자와 왈츠와닥터만 아이스커피 일곱잔이 있었다

그래서 '그냥' 명동성당에 갔다

그리고

래군오빠를 '우연히' 만났다

 

오빠는

 

수배 중이다

 


용산참사 유가족이 장례절차에 협의하면, 래군오빠는 감옥에 가야 한다

그게 인권활동가이자, 용산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인 오빠가 재판장에게 보낸 편지의 절반이다

나머지 절반은, 정의를 이 땅에 숨쉬게 하라는 내용이다.

 

"... 사실 오늘(20일)이라도 출두해서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구속된다면 저는 오히려 편할 것입니다. 인신의 자유는 지금보다 더 제한될 것이지만 이 무겁고 버거운 짐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짓입니다. 이십년이 넘는 세월 나름대로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인권활동가로서는 일신의 편함보다는 무겁더라도 함께 짐을 지고 이 일의 해결을 위해 유가족들과 함께하는 것이 오히려 책임으로부터 도피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하루도 눈물이 마를 날 없는 유가족들과 경찰의 연행과 탄압에도 끈질기게 촛불을 들고 노래를 부르는 많은 이들과 함께 유족들의 한을 풀고 돌아가신 철거민 열사들의 명예를 회복한 뒤에 성심껏 장례를 치르고 법정에 출두하려 합니다. 국가 공권력이란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잘못이 저질러졌고,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의 고통이 있었는지 분명히 법정에서 진술하려고 합니다. 헌법과 국제인권조약들이 보장하는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권리들이 대한민국에서 국가권력에 의해 얼마나 쉽게 부정되고 있는지도 법정에서 진술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더불어 실정법상 제가 받아야할 처벌이 있다면 그 역시 받아들일 것입니다. ..

저의 일을 마무리한 다음 반드시 재판을 받겠습니다. 재판장님과 저를 믿어주고 아껴주는 모든 이들에게 약속합니다. 그때까지 제가 법정에 출두하지 못함을 양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2009년 3월 20일

피의자 박래군 드림 "

왜 냉동고에 아빠, 남편 시신을 방치하고 있냐고 설익은 비판을 뱉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공식적으로, 용산 참사로 돌아가신 분들은 공무집행을 방해하면서 자살행위를 한 것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제부검과 의문나는 상처들, 매일 300만원씩의 병원비 빚더미가 해결되지 않았을 뿐더러,

참사 수사기록 3천쪽이 공개되지 않아 제대로 된 변호를 하지 못해 재판을 보이콧 하고 있는 상황이다

높은 분들은, 그냥 내비두면 해결될 문제라고들 쑥덕였다

장례식장은 조용한 섬처럼 고립되었고,

공식적인 사과나 보상은 그 누구로부터도 받지 못했다 

원하는 것은 대통령의 사과와,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과,명예회복과 보상, 생계대책, 탄압중단, 이 다섯 가지다

그리고 이 요구는 장례의 선결조건이 아니며, 정부가 대화에 나서면 얼마든 조정할 수 있음을 여러 차례 밝혔다

 



<-//

아. 

지금 수배령이 내려진 사람은

용산 범대위 위원장이셨고, 인권활동가이셨던 분이구나.

국가인권위원회를 만드신 분이구나.

인권을 위해 싸우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거두어 장례를 치뤄주시는 장의사이시구나..


시신을 아직 장례치르지 못한 이유는 

돌아가신 분들이 '자살'로 판명났기 때문이고, 

공무집행방해라는 죄까지 덮어쓰기 때문이구나. 

정부는 대화라기 보다 폭력에 가까운 수배령을 때렸다.

단지 '대화'를 하면 - 

저렇게 '어려운' 조건: 대통령 사과,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 명예회복-보상, 생계대책, 탄압중단

을 얼마든 조정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

다섯가지 조건또한 하나에 맞물려서,

'우리 좀 알아주세요'- 간절히 원하는 건 관심인데.


그마저도 처절하고 무자비하게

외면하고 있네. 


말로만 들었지, 가시거리안에 들어오기는 처음이다.


 

친서민정책을 펴고 있는 국가는 울고 있는 서민에게 관심도 없나보다.

그렇게 '친한척'하는 국가가 유가족에게 비춰주지 않는 불빛을 이 분이 비춰주고 있다.


세 명의 '수배자'가 '숨어'있는 명동성당

인권을 위해 활동한 분이 왜 '수배자' 로밖에 비춰지지 않을까.


이상하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이 사건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아...


뭐지 이 끓는 듯한 분노와... 

애석함..

월드컵 때 느꼈던 '대한민국'에 대한 무한한 희망은 어디로 간걸까?





용산참사현장에 있던 

'현장미술' 들은, 수많은 용역들의 손에 의해서 무참히 찢겨져나갔다.


내가 배웠던 중요한 가치있는 미술품들은, 적어도 내가 느낀 가장 아름다운 예술은

현장에서, 그 사람이 느낀 감정을 표현하고 그 곳의 공간과 시간을 축약하고 해석해 놓은 작품이다.

그건 작품이었다.

단순한 장난질이 아니었다. 역사의 한 공간을 함께 호흡하고, 증거물이 될 수 있는 작품이상의 자료였다.


그것을

왜 

'뺏아'가는거지?


찢고, 떼버리고, 파괴하는 시간 속에서 그걸 지켜보는 조용한 경찰...

제지하는 신부님과 예술가들을 경찰의 방패로 길을 막아주는 참 조용한 나라.


그렇게 하면 과연 조용해질까?




// 이 글... 적기도 무섭다. 나 빨간글썼다고 잡혀가는거 아닌가- 징역에, 벌금 이천만원을 문 대학생도 수두룩한데.

ㅎㅎㅎ 스릴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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