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이번 사건은 마녀사냥이 아니다.
이도경씨 발언을 보고 느낀 것은 일단 '(맘보가)밉상이다'라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교만'하다고 느꼈다.
말은 속에 있는 것이 밖으로 더러나는 것이다.
교만하기에 저런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이 말로서 나오는 것이다.
자신이 뭔가 있고, 근사하고 대단하다 여기는 듯 하다.
그래서 많은 것을 요구하고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고 자임하는 것이다.
'키는 180을 넘어야 하고, 돈도 좀 있어야 하고, 편하게 해줄 수 있어야 하고,
모든 면에서 나보다 나아야 하고... 기타 등등.' 이런 식이다.
이번 사건이 무고한 개인-소수에 대한
잔혹한 다수에 의한 폭력일까? 글쎄.
이번 사건은 마녀사냥이 아니다.
이번 일은, 네티즌 쪽에 문제가 있었던
'지하철 개똥 사건'이나 '디워 논쟁'과는 크게 다르다.
성경에, 교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힌 부분이 있다.
"교만한 자는 수치를 당하나, 겸손한 자는 지혜롭다.
교만은 파멸의 선봉장이고,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다.
교만은 다툼을 초래하나, 충고를 잘 듣는 사람에게는 지혜가 있다.
교만하고 거만한 사람을 비웃는 자라고 부르니, 이는 그가 아주 거만하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장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다."
또, 말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도 있다.
"되는 대로 하는 말은 비수처럼 찌르지만, 지혜로운 자의 혀는 상한 마음을 고쳐 준다.
자기 입을 잘 지키는 사람은 생명을 보존하지만, 입술을 함부로 여는 사람은 망한다."
이도경씨는 말을 통해 공공연히(공중파 방송에서) 자신의 교만을 드러냈고,
자업자득. 스스로 욕을 자초했다.
그러니 무고한 개인-소수에 대한
잔혹한 다수의 폭력으로, 마녀사냥으로 몰지 말라.
대중, 네티즌 탓으로 돌리지 말라.
1.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마라"
키 180이 안되는 남자는 루저라니. 이것이 얼마나 우스운 말인가.
그런 식으로 따지면 세계 모든 사람은 다 루저이다.
모두가 제각각, 제 나름의 결핍과 부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얼굴에, 몸매에, 학벌에, 경제력에, 키에, 건강에, 목소리에, 성격에, 대인관계에,
패션에, 배경에, 가족에, 기타 등등에
모든 사람은 결핍이나 부족한 부분을 갖고 있다.
이 세상에 어느 한 군데라도 '하자' 없는 사람이 어디있나?
그런데 결핍은 어디에서 오는가 먼저 생각해 보자.
사실 결핍과 부족의 대부분은,
이도경씨의 발언을 예로 들자면
'키 180이 안되면 그것은 결핍이고 부족이다'
라는 생각과 기준에 따른 것이다.
'그것은 결핍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핍이 있다는 것이다.
가난하다고, 질병이 있다고, 장애가 있다고,
배운 것이 적다고, 외모가 빼어나지 않다고
그것이 곧 결핍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한 부분을 결핍으로 볼 때
그걸 결핍으로 보는 사람에게 그것이 결핍이 되는 것이다.
사람마다 나름의 생각이 있는 것이니까
가난이나 작은 키를 결핍으로 생각할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이도경씨가 욕을 바가지로 먹는 것은
작은키나 가난을 결핍으로 봐서가 아니라
'결핍=루저'라는 의식 때문이다.
결핍은 감싸주어야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결핍이나 부족을 보고 패배자로 여긴다면
그러한 인성에는 문제가 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마라.
너희가 비판한 그대로 비판을 받을 것이며, 너희가 판단한 기준에 따라 너희도 판단받을 것이다.
어찌하여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작은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나무토막은 보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나무토막이 있으면서, 어떻게 네 형제에게 ‘네 눈 속에 있는 작은 티를 빼주겠다’라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들아! 먼저 네 눈 속에 있는 나무토막을 빼내어라. 그후에야 잘 보여서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씀이 참으로 옳다.
나는 보통 다른 사람의 외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판단하거나 지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도경씨가 한 말을 들으니, 이도경씨의 외모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 저 얼굴에 저런 말이 나오는구나... 정말 뻔뻔하다."
이런 말이 절로 나왔다.
비판한 그대로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2.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이도경씨는 "남자가 여자보다 경제적인 면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는데,
그런 식의 마인드로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대로 사랑의 흉내는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진짜 사랑은 결코 할 수 없을 것이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남자를 창조하신 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고 하시며, 여자를 창조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사랑, 결혼, 배우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남자는 여자에게, 여자는 남자에게
서로 돕는 배필(Helper)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 때 거기에 진정한 사랑이 있고, 기쁨과 감사와 평화가 있다.
나보다 조건 좋은 사람을 만나 받기만 하는게 편하고 좋을 것 같은데
왜 돕는 배필이 되어야 하나?
서로가 나보다 조건 좋은 사람만 찾는 다면 사랑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모두가 나보다 나은 사람을 찾는다면
사랑이 성립될 수 있겠는지.
A가 자신보다 나은 B를 좋아하더라도, B는 자신만 못한 A가 성에 차지 않고,
B는 자신보다 나은 C를 원하지만, C는 자신만 못한 B가 맘에 안들고...
계속 이런 어긋남이 계속될 뿐이다.
나보다 조건 좋은 사람을 원하고
그런 사람을 찾아 결혼에 이르는 것은 사랑이기보다
'조건을 좋아한다'라거나
'필요나 욕망에 따른 요구'이거나
'(상대의 조건과 경제력 대 내 몸 또는 내 어린 나이의 상호)교환'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사람은 누구도 완벽하지 않고 완전하지 않다.
결핍이 있고 부족함이 있고 외롭고 상처가 있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결핍이 있고 부족함이 있고 외롭고 상처가 있는 여자가 만나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돌보아 주며 함께 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하자가 있는 서로가 서로의 하자를 불쌍히 여기고 돌보는 것, 보듬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성경에 베드로가 말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줍니다."
나도 물론 남자가 경제적으로나 여러 면에서
가정의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책임감과 성실함에 대한 것이다.
다시 말해 여기서 무게는 경제력이 아니라 책임감과 성실함에 있다.
설령 가난하고, 벌이가 적다 하더라도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책임감과 성실함을 지닌 남자라고 한다면
그런 남자에게는 사랑하고 가정을 이룰 자격이 충분하다.
남자에게서 배울점이 있고 존경할 만한 면이 있을 때 끌리는 것이
여자의 자연스러운 심리이고,
남자에게 기대고 싶고 보호받고 싶은 마음도 여자에게 자연스러운 것임을 안다.
이도경씨가 욕을 먹는 것은
남자의 경제력을 요구해서가 아니다.
남자에게 배울점과 존경할 만한 면이 있기를 요구해서도 아니다.
바로 "남자가 여자보다 경제적인 면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는
대단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생각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이도경씨가 앞으로 만나야 할 남자는,
그 남자 입장에서 따져 보면 모든 것이 쳐지는 여자를 만나야 한다는 것인데.
왜 이리 이기적이냐 말이다. 왜 남자 입장은 생각 않느냐 말이다. ㅎㅎ
3. 핑계, 남탓, 거짓말
이도경씨는 자신의 발언이, 자기 생각과 진심에서 나온 것임에도
방송국에서 강요했다고 빤한 변명을 하고 핑계를 댔다.
차라리 침묵을 하는 것이 더 좋았을 번 했다.
핑계, 남탓, 거짓말은 실수 보다 훨씬 더 좋지 않은 것이다.
만일 대본이 주어졌고 정말 강요가 있었다 하더라도
일부 네티즌이나 언론의 지적대로,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런 말은 정말 아니다' 싶다면
말을 가려서 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래야 하는 게 아닐까?
어린 애도 아니고.
도경씨의 사후 처리를 남녀 생활 탐구 버전으로 풀어 보았다.
남녀 생활 탐구 - 오늘의 테마 '위기 대처'
... ㅈㅗㄴ만한 개티즌들이 싸이에 개떼처럼 몰려와서 방명록에서 왈왈 짖고 있어요.
대체 루저에게 루저라고 한 것이 뭐가 잘못이라고 죄없는 내게 이ㅈㄹ인지 모르겠어요.
이런 때 모든 면에서 샤방샤방♡한 남자가
백마탄 왕자님 처럼 뿅~* 하고 나타나 개티즌들의 개수작으로부터 나를 구해주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모든 면에서 샤방샤방♡한 남자는 결코 이딴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 줄도 모르고 도경씨는 착각의 늪에 빠져 빠져 빠져 있어요.
... 이불을 뒤집어 쓰고 방콕, 쉘터에 은둔한지 반나절이 지났어요.
아무리 기다려봐도 백마탄 왕자님은 나타나지 않아요.
젠장. 알아서 해결해야 해요.
왜 내가 개티즌을 상대하는 따위의 이런 허드렛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게다가 나한테 뭐라고 하는 놈들은 분명 다 난쟁이 똥자루저들일 거에요.
키 170에 당당히 빛나는 내가 루저들을 상대해야 하다니 졸라 굴욕적이에요.
아, 성질같아서는 그냥 "난쟁이 똥자루저들은 아닥하고 찌그러져 있으라"고 확 지르고 싶지만
그랬다간 이바닥에서 완전 한방에 훅 가게 될 게 뻔해요.
루저들 앞에 고개 숙이고 싶지 않지만 일단은 살고 봐야 겠어요. 난 소중하니까요.
이쯤에서 나는 아니라고, 내 진심이 아니었다고 급 아닌 척 한번 하며
개티즌 턱 좀 쓰다듬어 주면서 살살 구슬려요.
이제 금방 고분고분해져서는 꼬리를 살랑 거리고 드러누워 낑낑대다가 잠잠해질 거예요.
"방송국에서 시켰어요"라고 다소곳이 말해요.
그런데 이런 개같은. 구라인게 간파됐어요.
방송국이 시켰다는 말에 이젠 방송국 성질까지 건드렸어요.
아 ㅆㅂ 완전 ㅈㅗㅅ 됐어요.
대박을 꿈꾸며 나갔다가 쪽박을 차게 됐어요.
와우와우와우~ @.ㅠ 게임 오버에요.
지금까지 사후 처리에서 또 한번 미성숙을 드러낸 도경씨의 최후였어요.
4. 나는 나, 너는 너
네티즌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이도경씨 때문에 화내지 말자. 열내지 말자.
이도경씨나 그의 생각이 무엇이관데, 그것이 당신을 노엽게 하는가?
노엽다는 것은 거기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헛것, 아무것도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
그리고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의견과 입장은 다를 수 있다.
다름과 차이가 곧 잘못이거나 악인 것은 아니다.
"아,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렇구나. 그럴 수도 있지."라고 넘기라.
이도경씨는 그냥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일개인일 뿐이다.
그런 일개인과 그의 생각에 의미를 부여하고, 포커스를 맞출 필요가 있을까? 없다.
시간낭비고, 감정의 소모일 뿐이다.
세상에 정말 중요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
이도경씨나 그의 생각이 무엇이기에 그런 것을 신경쓰고
그로 인해 감정을 상한단 말인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그런 생각, 그런 믿음대로 살게 될 것이고,
그 결과가 그 삶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생각은 전적으로 그 개인의 몫인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신경쓰고 왈가왈부할 필요도 그럴 이유도 없다.
그냥 다름을 인정하라. "나는 나, 너는 너"다.
미워하거나 분노하지 말고(그렇게 하면 그것으로 당신이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너그럽게 넘기자.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마라.
너희가 비판한 그대로 비판을 받을 것이며, 너희가 판단한 기준에 따라 너희도 판단받을 것이다.
어찌하여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작은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나무토막은 보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 나무토막이 있으면서, 어떻게 네 형제에게 ‘네 눈 속에 있는 작은 티를 빼주겠다’라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들아! 먼저 네 눈 속에 있는 나무토막을 빼내어라. 그후에야 잘 보여서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끝으로, 키 작은 사람은 루저가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결핍=루저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당신은 이미 진실을 알고 있다.
누군가 거짓을 말한다 해서 화내지 말고,
거짓이 아닌, 진실에 촛점을 맞추라.
거짓말에 귀기울이지 말라. 신경쓰지 말고 무시하라.
그것이 거짓에 대처하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