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에 대한 고찰
◈ 보다 확실하게 알기 위해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릴 것.
◈ 더욱 큰 가치를 붙들기 위해 이미 접근해 있는
모든 가치로부터 떠날 것.
◈ 미래의 더 큰 발전을 위해 현재 자질구레한 애
착에서 용감히 벗어날 것.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매년 그랬듯이 올해도 어김없이 조, 중, 동을 비롯한 각 신문 신년호에 발표됐다. 프로문인을 꿈꾸는 아마추어 작가들은 새봄부터 가슴앓이를 하며 원고를 써서 응모하곤 연말연시를 초조하게 기다린다. 한국 사회에서 등단(登壇)이란 사회적 신분과 명예를 얻는 일이자 ‘작가 자격’을 얻는 일이며, 문학 활동으로 수입을 기대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통한다. 정보통신 시대인 오늘에는 인터넷을 통한 데뷔의 길까지 생겼지만, 국내에서 문단에 이름을 올리고 작가로 대우받는 길은 네댓 가지. 문예지 또는 동인지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거나 기성 문인의 추천을 받거나 출판을 통한 방법이 있고, 신문의 신춘문예에 당선해 등단하는 길이 있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문학 작가로 등단하는 무대는 ‘창조’ ‘폐허’ ‘백조’ 같은 동인지였다. 하지만 이상과 뜻을 같이하는 동인 활동은 ‘폐쇄적’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이를 극복하고 능력 있는 신인들을 발굴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1920년 전후의 신문사 신춘문예 모집. 1914년 12월10일 매일신보가 신년문예를 모집, 이듬해 1월1일 당선작을 발표한 것이 처음으로 알려진다. 5년 뒤 ‘신년문예’ 대신 ‘신춘문예’란 표현을 사용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신문의 신춘문예는 문학 지망생의 데뷔 무대로 자리를 굳혔다.
19세기에 ‘문학’으로 번역된 영어 리터러처(literature)의 뿌리는 글자·문자를 뜻하는 라틴어 ‘리테라(littera)’. 생각이나 느낌을 글로 나타낸 예술 장르가 곧 문학임을 확인시켜 준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의 경쟁력 배경에도 셰익스피어, 빅토르 위고, 괴테, 톨스토이 등 세기적인 문인들의 명작이 자리잡고 있다. 전 세계 독자들은 그들의 문학 세계에 매료됐고, 그 작품들은 모국어를 세계적 언어 반열에 올려 놓았다.
장 폴 사르트르는 “문학이 현실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독서라는 구체적인 행위가 필요하며, 그것은 단지 독서를 하고 있는 동안에만 계속된다. 독서하지 않을 때에는 단지 종이 위의 검은 점들일 뿐”이라고 했다. 불후의 명작은 작가들이 만들지만 그 작가는 독자들이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는 명언이다. 결국, 문학 신인들을 대문호로 키우는 일도, 모국어의 경쟁력을 키우는 일도 모두 독자의 몫이다. 다만, 아쉬움은 한국문단의 기성 작가들의 보이지 않는 존심싸움이 치열하다는 것과 그 들 나름대로의 파벌을 형성하여 후학을 양성함에 있어 자신들이 가르치고 키워낸 문인들이 언론 매체 및 각 문학지에서의 심사 과정에 입김으로 작용한다는 것과 등단 당선자의 글들을 직 간접적으로 퇴고에 관여한다는데 미래를 꿈꾸는 신인들에게 창의성과 질적 저하를 준다는 것에 문제점으로 제기 된다 볼 수 있다. 또한 온라인 인터넷 문학이라는 장소를 빌어<다음, 싸이월드, 네이버 400여개>등. 하여, 그들에겐 자신들과 맥을 함께 한다는 명목으로 자신들의 우월성과 등단을 미끼로 한 문학의 순수성을 저해하고 있으며, 하나의 수입 수단과 "사단"(시조단 Y), (자유시 S역량)이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한국 문단에는 “문인협회(문협), 민족문학작가회의(민작),”등의 양대 산맥의 세 싸움이 만만찮은 현실에서, 그 들 중엔 정권 물 타기에도 가세하고 문예진흥기금에도 관여하여 지인들끼리 수혜를 받기도 한다. 그 것 뿐 인가? 시조단의 일각에서는 Y사단 출신들이 신춘문예 싹쓸이를 하는 등 불을 질러 시조단의 보이지 않는 세 싸움은 ㅇㅇ일보 시조백일장의 대다수가 정해진 심사의원들에 의해 측근들의 당선이 눈에 띄게 늘고 있으며, 시조가 자유시보다 습작과 배움이 정형적인 틀이라는 선에서 수월하고 자유시보다는 전국백일장 응모수가 적다는 것도 등단에 유리한 점으로 작용한다. 시조단에 몇 년간 활동하면 전국의 시조인들 대부분 지인이 될 수 있으며, 중 장년 층이 대다수이고 작금에 와서젊은 시조인의 활성화와 여류시인의 세 불리기에 혈안이 되어 등단시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자유시단의 양대 산맥 중 한곳의 소속인 ㅇㅇ중견 시인의 역량과 영항은 메가톤급이라서 입김만 불면 신춘문예와 “최우수급 문예지”(창작과비평, 작가세계, 문학동네, 문학과 사회. 현대문학, 실천문학)등 작품상과 신인상을 비롯해, 심지어는 어줍짢은 문인들은 작품게재와 출판조차도 힘이 든다는 것도 상식 밖의 소문이 아니다. 또한 ㅇdㅇ교수의 평론을 게재하면 가치를 인정받는 다는 등, 문인들의 처녀작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것은 로또당첨보다도 힘이 든다는데, 일약 스타덤에 오른 시인도 그의 추천과 역량이라는 소문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은 문인들 대다수가 알고 있는 공식화된 사실로 알려졌다. 때로는 문인 자신이 클럽이나, 카페를 만들어 회원을 모집하고 (다움카페 4만여명 회원 만여권 판매고를 Y문인)자신을 추종하는 심복들을 활용하여 자신의 허접한 시집이나 문집을 강매하는 행위 등. 선생님 시인님하며 따르는 이들의 마음을 동요하여 등단의 가십으로 회원을 배가하는 등, 많은 등단자를 배출하고, 동향인이라는 인연의 고리로 회원에 가입시켜 홍보하거나 문단의 힘을 불리려는 목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 이러한 현실 앞에 우수한 한국문학의 미래는 암울할 뿐 아니라, 세계로의 우수성 알리기에 후진성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 문인들의 거만한 옷을 벗기는 데는 문학의 순수성을 위해 절실하며, 신인문학 지망생들의 심적 흔들림을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 다만, 이것은 기성문인들의 몫이기는 하지만.......현실에 안주 할 것인가? 나설 자는 없는가 묻고 싶다. <모르면서 알려하지 않는 것보다, 알면서 알려 주지 않는 것이 더 큰 죄일 진데> 매년 신춘문예당선자들을 축하해주고 축하 받는 자들부터 각성하여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고 한길을 향해 간다면 자신의 길 앞에 펼쳐진 한국문단은 머지않아 길이 빛을 발 할 것이다. 등단을 하였다고 시인이고, 등단을 하지 않았다고 시인이 아니지 않은 것처럼.......詩人은 전 생애에 걸쳐 단 한편의 좋은 시를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바쳐야 하며, 시는 한 포기의 풀, 한 마리의 풀벌레처럼 살아 있는 것이어야 한다. 또 그 무엇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존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존재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각성을 위해 깊은 고요 속에 침잠할 줄 알아야 한다.
◈ 시인이기 전에 인간이 되어야 하는 덕
목을 갖추는 것이 바른 문인의 길이
아닐까?
◈ 본 글은 현실적 사실을 토대로 허명의 생
각을 버무려 고찰하였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