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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東北工程)과 한반도. 중국의 최종 목적은 무엇인가?

조의선인 |2009.12.26 21:23
조회 445 |추천 4

중국의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왜곡 문제가 우리 사회에 알려진지 1년이 넘었다.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를 둘러싼 논쟁은 끊임없이 계속되면서 한국, 중국 간 갈등 요인이 되고 있다. 중국의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왜곡과 그 연구 중심인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한 한국 측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중국 측은 뚜렷한 입장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들의 주장대로 이 문제는 단순히 학술적인 차원에 불과한 것일까?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담겨있는 중국의 또다른 노림수는 과연 무엇인가?

지난해 7월,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갑작스레 한국을 방문했다. 공식적인 방문 목적은 짜칭민 중국 국가 부주석의 방한에 앞선 사전협상 문제였지만 보다 중요한 이유는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문제 해결이었다. 한,중 양국 외교부 간 회담은 27일과 28일 연이틀에 걸쳐 벌어졌다. 무려 9시간 반에 걸친 기나긴 협상이 이어졌다.

최영진 한국 외교통상부 차관 "양국 정부는 향후 역사 문제에 있어서 양국 간 우호 협력관계가 손상되지 않도록 하자..."

결국 양국 정부가 구두양해 형식으로 합의한 내용은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문제가 양국 간 중대현안으로 대두된 것을 인정하고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문제를 정치 쟁점화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2003년 말에 이미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문제로 한차례 홍역을 치뤘던 한국과 중국...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내의 한국 소개란에서 고구려를 삭제하여 또다시 불붙었던 양국 간 역사논쟁은 일단 이렇게 봉합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평가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서길수 서강대학 교수 "내용을 살펴보면 거기서 새로운 것이 없다는 점이다. 그 중에서 주목해 볼수 있는 것은 중국이 역사 교과서에 고구려사(高句麗史)를 왜곡한 내용을 싣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이 교과서를 왜곡하지 않으면 우리가 승리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김용만 한국 역사문화 연구소 소장 "중국 측이 한국의 고대사를 왜곡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지방정부나 민간단체에서 역사왜곡 행위를 하는 것가지 막으려는 의지는 없을 것이다. 실제로 그 구두합의 이후에도 중국에서 역사왜곡을 하는 사태는 계속 벌어졌다. 단순하게 중국 외교부부장의 말을 믿고 한,중 간의 역사논쟁을 마치 평화적으로 끝났다고 보는 것은 우리만의 착각일 것이다."

실제로 고구려사(高句麗史)에 대한 중국 내부의 시각은 구두합의 이후에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상황이다. 2004년 9월 말에는 베이징에서 중국의 역사문화 전시회가 열렸다. 그런데 전시장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고구려 역사 유적을 소개하는 사진과 설명문이다. 고구려의 첫번째 도성(都城)이었던 오녀산성을 비롯해 장군총(將軍塚)과 광개토호태왕(廣開土好太王) 훈적비(勳積碑) 등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유적들이 중국의 역사 유적으로 버젓이 소개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한 문화잡지에는 '고구려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제목의 특집기사가 실렸다. '중외문화교류'라는 이름의 이 잡지는 중국의 문화부가 발행하는 것으로 중국어판과 영어판으로 촐판돼 전세계 180여개국에 배포되는 관영 홍보지이다. 그런데 여기 실린 기사 역시 지금까지 중국에서 진행되어온 고구려사 왜곡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구려는 고대 중국 동북지방에 존재한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을 주장해온 중국인 학자들의 입장 역시 큰 변화가 없다. 2004년 9월 16일 서울에서 개최된 '한국 역사 속의 고구려의 위상'이라는 제목의 국제학술회의에서도 증국인 학자들은 고구려가 중국 역사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펼쳤다.

손홍 심양 동아시아 문화 연구원 "일부 사람들은 고구려가 중국 역사라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4세기에 고구려가 한반도 북부에 침입했고 그곳으로 천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은 중국의 소수민족이 한반도에 침입하여 중국의 식민지 정권을 설립한 것을 설명해주는 것이지 고구려가 한국 민족의 국가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임기환 고구려사 연구재단 연구실장 "고구려가 중국 소수민족의 하나였고 중원 왕조의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호태왕비(好太王碑) 등 금석문(金石文)에도 잘 나타나듯이 고구려는 중원 왕조와는 다른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진 나라였다."

한국인 학자들이 주장하는 고구려 역사 문화의 독자성까지도 이들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손진기 심양 동아시아 문화 연구원 원장 "고구려가 자체의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임 선생이 제기한 도자기, 축성법, 사신도 등은 공교롭게도 고구려의 독특한 문화가 아니다. 모두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손홍 심양 동아시아 문화 연구원 "고구려는 경제 뿐 아니라 문화적인 면에서도 모두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중국의 영향으로 고구려는 놈업과 수렵 혼합형의 과도기적인 경제 상태에서 농업경제로 전환되었으며 고구려는 비록 자주적인 문화의 특색을 갖추고 있었지만 후기에 이르기까지 한(漢) 문화가 중심이었다."

고구려사 문제에 대한 한,중 간 구두합의가 끝났지만 전혀 달라진게 없는 중국 학자들의 태도. 이것이 단지 학술적인 문제에 불과한 것일까?

김현숙 고구려사 연구재단 연구위원 "중국에서는 사실 한국의 정치가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고 얘기하기가 어렵다. 정치적인 명분이 필요하다고 보면 역사학계에서 그것을 제공해주는 역할을 많이 하게 되고 일반론이 하나가 뜨게 되면 다른 이설은 발표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분위기라고 할수 있다."

조민 통일연구원 원장 "현재 중국의 국경 내에서 중세, 혹은 고대에 전개되었던 모든 역사는 중국의 역사라는 논리 아닌가. 그렇다면 만주지방에서 전개되었던 우리 한민족(韓民族)의 역사가 바로 중국 지방정권의 역사라는 그런 주장인 것이다. 이건 엄밀히 말하면 역사 날조인데 지금 와서 중국인들이 그런 주장을 하게 된 이유가 뭐냐. 중국도 일본의 식민사관, 한국에 대한 침략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반도사관을 비판해왔지 않은가? 고조선, 고구려, 발해는 우리 민족의 과거사라기 보다는 우리 민족의 혼(魂)이다. 우리 민족의 혼을 왜곡하고 갈취하겠다고 하는 것은 학문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중국의 정치적인 속셈, 다시 말해서 대한반도(對韓半島) 전략의 핵심이 아닌가? 우리는 여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중국 북경의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왜곡 작업의 핵심으로 알려진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주관하고 있는 곳이다. 동북공정에 대한 한국 측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 프로젝트를 중단하지 않고 있다. 동북공정은 단순히 학술적인 연구일 뿐이며 이를 문제삼는 것은 한국 측의 지나친 민족주의라고 공격하는 중국.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 홈페이지에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 소개문에는 이 프로젝트의 직접적인 목표가 국가의 장기적인 안정과 사회질서 확립이라고 밝혀 놓았다. 동북공정이 단순히 학문적인 연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정치적 목표에 주안점을 둔 프로젝트임을 명시한 것이다. 동북공정의 조직도에서도 정치적인 색깔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중국 공산당의 최고 서열에 포함돼 있는 정치부 위원과 재정부 부장이 동북공정의 고문을 맡고 있다. 또 사회과학원의 부원장 흑룡강성 부서기 등 중국 정부의 주요 관직자들이 동북공정의 요소요소에 포진돼 있다.

그렇다면 대체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연구내용은 무엇인가?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 홈페이지에는 2003년부터 세차례에 걸쳐 수정된 연구과제들이 설명되어 있다. 이들 56개 과제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내용이 중국 동북지역의 공정(工程)과 영토문제에 관한 것이다. 동북공정이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는 동북지역은 중국의 최동북쪽에 위치한 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 세지역을 가리킨다. 총면적이 78.9만 평방 킬로미터로 남한의 세 배가 넘는 동북삼성(東北三省)에는  우리가 흔히 간도라고 부르는 지역이 대부분 포함되는데 이 지역은 오래 전부터 한,중 간에 영토분쟁을 일으켜왔다.

조선조 숙종(肅宗) 38년인 1712년 실록에는 중국의 사신이 국경문제로 방문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당시 양국인 모두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던 간도지역이 영토분쟁의 대상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같은 해에 백두산 정계비(白頭山定界碑)가 세워졌다. 양국 간 국경협정의 출발점으로 평가받고 있는 백두산 정계비. 그 내용은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을 경계로 삼는다는 것인데 이후로 문제가 되는 것이 동쪽 경계인 토문강의 위치다.

토문강을 동쪽 경계로 할 경우 간도지역의 대부분이 조선 영토에 포함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두만강과 토문강이란 지명이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고 이를 근거로 중국은 두만강이 경계라고 주장했다. 조선과 청나라는 1885년과 87년 두차례에 걸쳐 국경회담을 가졌지만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조선과 청나라의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던 간도. 그런데 1909년 당시 한반도를 강점하고 있던 일본이 청나라와의 협약을 체결한다. 간도를 청나라에 넘기고 만주의 철도부설권과 탄광체굴권을 얻는다는 내용이었다. 국경문제의 당사자였던 한민족(韓民族)이 완전히 배제된채 체결된 이 조약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지난 22일 국경감사장에서 반기문 한국 외교통상부 장관은 간도협약이 무효란 입장을 밝혔다.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간도협약에 관해서는 법리적으로 무효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간도협약이 체결된지 95년만에 처음으로 한국 정부가 간도협약의 문제점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박선영 포항공업대학 교수 "지금의 국제법적인 문제로 봐도 국경문제의 당사자가 배제된채 제삼자가 개입을 해서 영토를 중국에 넘긴 것은 분명한 과오라고 볼 수가 있다. 특히 국제법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일본 제국주의 세력이 미국에 항복하기 이전에 체결했던 모든 협약은 무효라는 내용이 있고 그 이후의 샌프란시스코 조약이나 포츠담 카이로 조약에서도 다 무효라고 인정하는데 오직 이 간도협약의 무효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여서 어쨌든 1960년에 중국과 북한 간의 국경협약이 이루어졌다고 할지라도 한,중 간의 국경협약이 다시 재개되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으며 중국도 충분히 이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간도문제가 중국 입장에서는 상당히 골치아픈 문제점으로 부각될 소지가 있다..."

실제로 중국은 이같은 상황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지난 8월 한국 측과의 구두양해 합의 당시에도 중국은 고구려사와 국경 및 영토문제의 연관성에 가장 관심을 보였다. 한,중 간의 외교회담이 한창 진행중이던 지난해 8월20일자 '더 타임'지에도 같은 내용이 실렸다. 중국은 한국이 통일된 이후에도 옛 고구려 영토의 영유권을 주장할 것에 대해 가장 걱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크 바인더 하버드대학 교수 "나는 중국의 입장에 상당히 수세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은 동북지역 세개의 성이 중국 영토라는 입장에 대한 역사적 정당성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이 지역은 1949년까지 중국의 중앙정부가 장기적으로 통치한 적이 없었던 지역이다. 역사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이 영토에 대한 영유권을 지켜내기가 힘들어진다. 중국인들은 그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북동쪽 국경을 유지하고 영토를 보존하지 못할까봐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동북지역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는 또다른 이유는 길림성 연변시에 위치한 조선족 자치주이다. 한반도의 1/4 면적에 중국 동북지방의 국경을 형성하고 있는 이 지역은 조선족이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주요 행정직은 대부분 이들 조선족이 맡고 있으며 이 지역의 정치, 경제, 문화의 주도권 역시 조선족이 가지고 있다. 중국어와 함께 조선 언어를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는 한국의 대중문화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중국 개방 이후 한국과의 교류가 늘어나고 한류열풍까지 겹치면서 조선족 사회에 한국의 문화가 빠르게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연변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조선족 가정에는 한국 공중파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위성안테나가 달려 있다. 한국 방송 수신은 원칙적으로는 불법이지만 이들은 단속을 피해 거의 매일같이 한국 TV 방송을 시청한다. 드라마와 뉴스 등 거의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한국과 동시에 방송된다. 한국과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돈을 벌려고 한국 땅을 찾는 조선족들도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현재 남한에 체류하고 있는 조선족은 1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들을 통해 중국의 조선족 사회에도 한국의 생활양식과 문화가 속속들이 전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에서는 탈북자 문제가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해 9월 27일 북경에선 67명에 달하는 탈북자가 중국 공안에 체포되는 사건까지 있었다. 이것은 탈북자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민감한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다.

북한 경제가 흔들리면서 탈북자의 수는 계속 늘고 있고 이들은 중국 동북지방의 조선족 사회로 숨어든다. 그리고 중국은 이같은 상황이 변경지역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보고 있다.  

보령 동북공정(東北工程) 전문가 위원회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 이를테면 북한의 난민이 끊임없이 중국으로 들어오고 있는데 이것은 한중관계를 생각할때 중국으로서도 대단히 곤란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들이 바로 변경 불안정의 요소이다."

박선영 포항공업대학 교수 "탈북자들이 주로 숨어드는 곳은 연길을 포함한 조선족 거주지역이다. 미국에서도 탈북자 문제와 인권문제를 포함해서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한 상황이고 중국의 변경 즉 동북지역이 중국과 북한 간의 외교적 문제만이 아니고 중국과 남한 간의 외교적 문제만도 아니고 미국도 관여하게 되고 세계가 관여하게 되어서 인권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는 상황으로 번지게 되기 때문에 국제적 문제로도 비화될 수가 있는 것이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주관하고 있는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에서는 이같은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탈북자 문제가 동북지역 불안정의 중요한 요인이며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이 우려하는 것은 한반도 통일 이후다. 통일이 되면 북한과 남한 조선족 사회 간의 교류가 확대되고 이 지역 전체가 한민족(韓民族)의 영향권에 들수 있기 때문이다.

윤휘탁 고구려사 연구재단 연구위원 "그렇게 되면 한반도 북부와 만주 간의 국경선이라는 개념이 모호하게 되는 것이다. 북쪽에는 탈북자와 조선족이 어울리게 되고 남쪽에는 북한 사람과 남한 사람들이 어울리게 되고 또 불법체류하고 있는 조선족과도 어울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역이 한민족의 활동영역으로 고정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중국 동북지역에 대한 한반도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고 또 조선족에 대한 한국인들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 조선족들은 정체성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될 것이고 조선족들의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25일 뉴욕타임즈에는 이같은 내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한반도가 통일될 경우 현재 중국 동북지역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이 현대의 국경을 넘어선 통일한국을 지지할 수 있으며 중국은 이같은 상황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려고 노력하는 조선족들을 중국 정부가 엄하게 처벌한 것도 한국과 조선족들간의 연결을 우려해서라는 시각이 많다.

2003년 12월부터 중국은 조선족들에게 이른바 삼관교육이라는 사상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삼관이라는 것은 역사관, 민족관, 조국관 세가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 내용은 조선족들에게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박홍두 (연길 거주 조선족) "중국이 너희들의 조국이다. 남한이나 북한이 너희의 조국이 아니다. 법적으로 이렇게 규정되어 있는 것을 똑똑히 알아라. 이게 조국관 문제고, 민족관은 너희는 중국의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중국에 사는 56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이다. 역사관은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는 변방에 사는 소수민족의 역사로서 중국 역사 가운데 하나다. 이런걸 정확히 수립해야 된다."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역사왜곡 작업도 조선족의 정체성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고구려와 발해를 비롯한 동북지역의 역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킴으로써 한반도와 연결된 조선족의 역사적 뿌리를 부정하려는 것이다.

윤휘탁 위원 "(중국 입장에서는) 역사적으로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역 간의 관련성을 부정해야 될 필요가 있고 중국에서는 이에 대한 분명한 논리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논리를 개발하거나 찾아내기 위해서 역사서들을 들춰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과거에 우리 민족의 역사라고 여겨져 왔던 고조선, 고구려, 발해라는 국가가 중국 민족이 세운 것이고 이것들이 모두 중국의 역사라는 논리를 내세우게 되는 것이다."

조선족과 동북지역에 대해 중국이 이렇게 민감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에는 다민족국가(多民族國家)라는 중국의 특수한 상황이 있다. 중국은 전체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족(漢族) 이외에도 55개에 달하는 소수민족이 다민족국가를 이루고 있다. 이들 소수민족은 중국 전체인구의 1/10도 미치지 못하지만 이들의 거주지역은 중국 영토의 절반을 넘는다. 때문에 이들의 융화와 단결이 국가 생존의 절대적인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건국 초기부터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通一的多民族國家論)을 강조해 왔다. 중국 내의 소수민족은 모두 중국이라는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구성원이며 각 민족간의 관계는 분리할수 없다는 내용의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 중국 내 각 민족간의 분열을 해소하고 국가를 통합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이론이다.

윤휘탁 위원 "한족(漢族)과 소수민족을 구분하지 않고 적어도 중국이라는 역사적 공동체 안에서 일정한 역할을 한 민족이라고 한다면 그 민족이 어떻든 간에 모두 온전한 중국 민족이라고 하는 그런 전제 하에서 중국 내 각 민족의 단결과 중국 인민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파생시킨 중국의 국가인식이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인 것이다."

사실 중국은 건국 이후 끊임없이 소수민족과의 분쟁에 시달려 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갈등이 심한 지역은 중국 남서부에 자리잡고 있는 티베트다. 1950년 중국의 침공을 받은 티베트는 1959년 3월 수도 라싸에서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반란은 수많은 희생자를 낸채 실패로 끝났고 티베트는 중국에 의해 완전 점령당하고 만다.

1965년 서장자치구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영토 내에 편입된 티베트는 끊임없이 독립투쟁을 벌였지만 중국은 이를 무력(武力)으로 진압해 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티베트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이같은 무력 진압을 통해 중국은 티베트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티베트의 독립운동을 차단시키기 위한 또다른 작업을 진행시켜 왔다. 티베트의 역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시키는 이른바 서남공정(西南工程)이 그것이다.  

서남공정(西南工程)을 진행하는 곳은 이른바 중국의 장학연구중심(奬學硏究中心)으로 알려져 있다. 1980년대에 설립된 중국의 대표적인 연구기관인 이곳에서는 1986년 130여명의 연구인력을 투입해 서남공정을 시작했다.

10년에 걸친 서남공정을 통해 중국은 7세기 이후 독자적인 주권과 문화를 유지해온 티베트의 역사를 철저하게 부정해왔다. 티베트는 중국이라는 다민족국가의 일부분이며 사고(史古) 이래로 중국과 나눠질수 없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것이 서남공정의 주장이다. 이같은 서남공정(西南工程)의 논리는 고구려사(高句麗史) 발해사(渤海史) 왜곡 프로젝트인 동북공정(東北工程)의 논리와 유사하다.

김용만 한국 역사문화 연구소 소장 "달라이라마를 중심으로 해서 정치적 구심체까지 있기 때문에 (티베트는) 중국과는 다른 문명체이다. 그런데 중국은 미국의 양해 하에 티베트 지역을 점령한 후에 여기를 다시 때앗기지 않기 위해서 수십년 동안 티베트 지역의 역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시키는 노력을 해왔다. 또 한족(漢族) 인구를 티베트 지역에 분파시켜 티베트의 독립의지와 명분을 없애려고 하였으며, 동북지역보다 더 먼저 중국이 오랫동안 투자를 했다고 볼수 있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중국 화폐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창설자인 마오쩌둥과 함께 소수민족의 얼굴을 넣을 정도로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강조해온 중국. 소수민족 통합이란 목적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동원해왔다.

규모가 크거나 이탈 움직임이 많은 소수민족의 경우 거주지역에 한족(漢族)들을 대거 유입시켜 한족들과의 동화를 꾀하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에는 대규모 지원도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중국이 최근들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소수민족이 바로 동북지역의 조선족이다.

박선영 교수 "조선족 문제가 부각될 경우 중국 내의 소수민족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고 그것을 억누르거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중국인으로서의 민족관, 중국인으로서의 역사관, 중국인으로서의 국가관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 이것을 생각하게 될 것이고 끊임없이 중국이라는 역사, 문화, 정치의 틀 안에서 소수민족을 가두고 소수민족을 설명하려는 요인이 되지 않을가..."

마크 바인더 하버드대학 교수 "사실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은 (중국 입장에서)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남서쪽이나 북서쪽에서 살고 있는 다른 소수민족들의 경우 계속 독립을 요구하며 독립의 역사적 정당성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중국의 일부가 아니었는데 왜 우리는 중국에 속해야 하나.'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이다. 논지를 확장하면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이 '우리는 옛 고구려 땅에 살고 있고 고구려는 중국의 일부가 아니었는데 우리는 왜 중국에 속해야 하느냐.'고 질문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같은 배경 아래서 중국인 티베트 역사를 편입시키는 서남공정(西南工程)에 이어 동북지역 문제를 다루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시작했다. 지난해 7월 대표적인 고구려 유적 집결지인 집안(集安) 일대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 것도 이같은 동북공정의 일환이다. 집안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중국은 여러 언론매체를 통해 고구려가 중국 역사란 주장을 본격화했고 관광객 유치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고구려의 최전성기를 이루었던 광개토호태왕(廣開土好太王)과 장수태왕(長壽太王)의 흔적도 마치 중국 역사의 일부인 것처럼 홍보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정될 무렵 고구려의 첫 수도였던 환인(桓仁)에서는 대규모의 축제까지 열렸다. 축제의 대부분은 한민족의 전통문화 공연으로 채워졌지만 중국 측의 주장은 한결같다. 고구려와 발해는 중국 동북지역에 존재했던 지방정권의 하나며 한반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집안과 환인에는 엄청난 숫자의 관광객이 몰려들고 있다. 중국인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가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동북지역의 안정과 조선족 정체성 말살의 방편으로 시작된 동북공정. 이로 인한 고구려 역사의 왜곡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집안과 환인에서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한다는 명목으로 각종 책자를 판매하고 있다. 고구려의 대표적인 유적인 장군총(將軍塚)과 호태왕비(好太王碑) 등 우리 민족 역사의 소중한 유산들이 빠짐없이 소개되어 있는 책자들이다. 최근에는 기념 우표집까지 등장했다. 고구려와 발해 등 동북지역에 대한 역사에 관한 책들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만주지역을 지배했던 한반도의 역사를 모두 중국 것이라 주장하는 책들... 그런데 여기는 중국 동북지역 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있는 평양의 고구려 유적들까지도 소개되어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고구려가 중국 역사라고 주장한 광명일보의 기사. 여기에는 한반도의 북부 지방가지도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중국이 동북지역과 한반도 북부지방에 현도군(玄都郡)과 낙랑군(樂浪郡) 등의 통치기구를 두었고 고구려의 수도는 이들 지역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중국은 고구려의 영토였던 한반도 북부까지도 중국의 고대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왕소부 북경대학 교수 "평양으로 천도했을 당시 그 땅은 중국 고대 영토의 일부라고 할수 있다. 왜냐하면 그 곳은 중국의 소수민족이자 지방정권인 고구려 영토이기 때문이다. 그 지방을 점령하기 전에는 한사군(漢四郡), 낙랑군(樂浪郡) 같은 것이 있어 중국이 직접 통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낙랑군은 중국의 영토였다." [옮긴이 주;  사실 중국 역사서인 사기(史記), 독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등에 따르면 낙랑군(樂浪郡)의 위치는 서요하(西遼河) 영주(永州)에 있었다고 전한다. 낙랑군이 한반도의 평안도에 설치되었다는 이론은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가 왜곡한 날조에 불과하다.]

평양을 비롯한 한반도 북부와 중국 간의 역사적 연관성에 대한 주장. 이와 관련해 북한에 대한 중국의 최근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 핵개발 문제가 국제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에서 중국 북경에서는 지난해 6월에 제3차 6자회담이 열렸다. 오래 전부터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온 중국은 6자회담 과정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에 대해 중국이 내세우는 명분은 한반도의 평화유지다.

중국 국제문제 연구소 소속 진림파 박사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정책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한다는 의미는 중국은 한반도 내의 군사충돌,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반대하고 심지어 내란이 일어나는 것도 반대한다. 예를 들어 외부의 압력이나 다른 원인으로 인해 북한 내부에 혼란이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평화가 중국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중국이 북한 핵개발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배경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이것이 중국 자신의 안정과 관련된 문제이기 대문이라고 분석한다.

김일영 성균관대학 교수 "북한이 만일 핵무기를 개발한다면... 물론 지금도 소량의 핵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전해지지만,  핵무기 개발 이후 모험적인 행동을 했을 때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세력의 강대국들이 개입을 해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한반도의 안정이 깨지고 약간의 혼란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것을 중국은 바라지 않는 것이다."

중국이 바라는 한반도의 안정. 그것은 현재와 같은 분단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자국의 국경지대와 근접하고 일종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는 북한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것이 곧 자신들의 안보와 직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봉균 북경대학교 교수 "현재는 한반도의 안보가 중국에게 가장 중요하다. 비핵화, 지역안보 등은 중국의 안보와 동북아시아 안보에 대단히 중요하다. 한반도의 평화, 안정, 발전은 중국의 안보와 직결되기 대문에 중국은 비핵화 안정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중국의 경제, 현대화 건설을 위한 안정적인 외부 환경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윤휘탁 위원 "만약에 한반도 통일과 관련해서 미국이 주도권을 갖고 미국이 자의적으로 동북아시아의 질서를 재편할 경우에 예를 들어 (남한 주도적인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미국군 기지가 압록강이나 두만강가에 설치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된다면 중국은 코 앞에 위협세력을 가까이 두게 되는 것이고 중국의 군사 안보적인 입장에서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완충지대로서의 북한 정권이 갑자기 없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중국으로서는 동북아시아 주도권 장악의 발판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북한의 현 체제에 변화가 일어날 경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미국의 학자 스티븐 모셔는 자신의 저서 '헤게몬'에서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붕괴하면 중국은 군대를 북한으로 파견하여 괴뢰 정권을 수립하거나 자국의 조건에 따라 한반도 통일을 조정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할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그런데 최근 인터넷에서는 이와 비슷한 글이 확산되면서 주목을 받고 있다. 북경대학에서 공부했던 한국인 유학생이 썼다는 이 글엔 북한에 대한 중국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다. 중국의 정치학 교수에게서 들었다는 글의 내용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중국은 앞으로 10년 내에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북한을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만들어 한반도 북부지역을 중국의 영토로 삼으려 한다는 것인데... 과연 이같은 시나리오가 가능한 것인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공표된 대한민국 건국 헌법.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에 대한 조항이 명시돼 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바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내용은 50년이 넘도록 변함이 없었고 우리는 북한 정권이 붕괴될 경우 당연히 대한민국에서 북한 영토를 넘겨받게 될 것으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의 현실적인 상황은 한국의 입장과는 전혀 다르다. UN에서 결의한 문서들이 보관돼 있는 UN기록보존소. 대한민국 건국 당시 UN이 한반도에 관한 문제를 어떻게 결의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문서도 여기에 있다.  UN총회 결의 제195조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 조항에 보면 대한민국은 북한의 변화에 대해 어떤 대비나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은 UN 위원단의 활동이 가능했던 3.8선 이남 지역에 대해서만 유효한 통치와 관할권을 갖는 합법적인 정부라고 명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일영 교수 "본래 UN은 남,북한의 인구비례를 생각해서 남,북한 총선거를 할 것을 결의했는데 그게 북한에서는 실현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한만의 단독선거가 실시되는 것을 확인하고 남한 정부를 어떻게 인정했느냐 하면 UN 한국 임시위원단, 다시 말해 UN의 감시 하에 선거가 치뤄진 유일한 합법정부다. 그러니까 한반도 전체의 합법정부가 아니라 UN 감시 하에 선거가 치뤄진 한반도 남부지역의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승인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한반도에 대한 UN의 입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한국전쟁 당시다. 1950년 11월 UN군이 평양을 점령했을 때에 한국의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평양을 방문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기록한 국회 속기록은 평양 방문 당시 이승만은 대통령 자격이 아니었다고 적고 있다. UN은 3.8선 이북 지역을 대한민국의 영토로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이런 상황은 이후 국제사회의 인식을 더욱 굳혀놨다. 북한은 이미 100여개 이상의 국가와 수교를 맺고 있고 1991년에는 남한과 동시에 UN에 가입했다. 국제 정치무대에서 남한과 북한은 연관성이 없는 독자적인 나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이다.

김일영 교수 "이런 상황이 앞으로 현재 남,북한 관계나 북한 정권의 급변사태, 북한 정권의 붕괴와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에 어떻게 영향을 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만약에 우리처럼 국내법 논리로 대한민국 헌법을 가지고 남한의 북한 영토에 대한 영향력 행사의 정당성을 주장하게 되면 북한 정권이 붕괴될 경우 자동적으로 남한의 헌법이 북한 지역으로 확장되게 되는 것이다. 그럼 북한은 수복 지역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당연히 북한 영토를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반면에 국제법적인 논리로 따져보면 북한은 엄연히 남한과는 다른 별개의 주권국가였고 따라서 북한 김정일 정권이 갑작스럽게 붕괴되는 사태가 벌어진다고 해도 남한이 우선적인 영향력 행사를 주장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 그럴 때에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미국이 중심이 되고 중국이 참여하고 이런 식의 국제적인 개입, UN을 통한 개입 이런게 아마 가장 가능성이 높지 않나 생각을 해본다."

이런 상황이라면 현재 북한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이 유사시에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주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충분하다. 최근 중국이 북한과의 접경지대에 경찰 등 경비력 대신 군병력을 배치한 것은 그런 시각을 염두에 둔 조치라는 해석도 많다.  

조민 통일연구원 위원 "경찰병력으로 충분히 탈북자들을 단속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본다면 군병력으로 전환시킨데 대해서는 중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한 개입의 의지를 보여주는 징표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된다."

또한 중국은 지난해 6월 북한과 국경협력협정을 체결했다. 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유사시 중국이 북한 내부에 대한 개입을 할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이런 맥락에서 현재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은 중국이 북한지역에 개입할 수 있는 역사적 명분이 될 수도 있다.

중국 동북지역에서 시작된 고구려의 역사는 한반도 북부로 이어졌고 북한은 이러한 고구려의 역사를 계승한 국가라고 말해왔다. 때문에 고구려가 중국의 역사라면 북한지역 역시 중국의 영토란 주장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한국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동북공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중국. 그 속내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조민 통일연구원 위원 "중국은 북한의 체제변화라든가 김정일 정권 붕괴 등 다양한 정치적 현상이 일어날 것을 예상해 유사시에 대비한 다양한 방책을 이미 마련해 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바로 동북공정(東北工程)으로 나타나고 동북공정은 바로 그들이 중국의 지방정권이라고 강조하는 고구려의 활동영역이 대동강 또는 한강 이북까지 있었지 않던가. 그러한 것이 북한이란 나라가 만약에 변화가 있을때 그들은 역사적 연고권을 주장할 수 있는 논리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김일영 성균관대학 교수 "중국의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에 대한 큰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는 중요한 부분작업이 동북공정(東北工程)이다. 한반도가 통일된 후에도 간도지방을 중국이 계속 관할하기 위한 포석도 있고 북한이 붕괴된 이후에 북한지역에 대한 우선적인 영향권을 어떻게 주장할 것인가 이런 계산고 있으니까 한반도에 대한 큰 정책이 부분적인 방향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 바로 동북공정이다."

그러나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대한 우리 사회와 정치권의 인식은 아직까지 고구려사(高句麗史) 문제에만 매달려 있다. 동북공정의 목표와 거기에 대한 결과를 치밀하게 분석한 결과가 아니라 잠정적인 대응과 일시적인 대책 밖에는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박선영 포항공업대학 교수 "한국은 미래에 대한 전략 부재가 심각하다.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이며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전략이 없기 때문에 유사시에 순간적인 대응에 그칠 것이고 그 이상의 지혜로운 대책은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꼭 남이 먼저 시작해서 우리가 거기에 뒤따라 대응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강대국들 사이에서 우리 민족의 번영과 한반도를 지켜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현숙 고구려사 연구재단 연구위원 "이 문제가 어차피 장기적으로 가야 될 것이니까 우리도 긴 호홉을 가지고 준비를 해야 된다는 것이다. 지금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해서 아주 단발적인 정책을 내거나 흥분하거나 또는 여론무마용 정책만을 강조한다면 또다시 이런 문제가 계속 일어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중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서 길게 계속 간다....."

김용만 박사 "우리에게 중국이란 존재는 생존문제와 연관을 지어 바라봤을 때에 항상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경계해야 할 존재이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하고 있다면 우리도 그에 못지않게 중국을 철저하게 연구해야 한다. 중국이 과거를 연구해서 미래를 대비한다면 우리도 마찬가지로 미래를 위한 연구를 해야 된다고 본다."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은 한반도와 중국 간의 최대 외교 쟁점이 되고 있다. 1992년 수교 이후 지속적으로 협력해온 한중관계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동북공정과 중국에 대해 어떤 전략을 마련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단순한 역사문제가 아니라 한민족(韓民族)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동북공정에는 중국의 이익과 미래에 대한 치밀한 계산이 존재하고 그것은 한반도의 미래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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