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에 대한 새로운 비판서가 나왔다. 한윤형이라는 인터넷 논객 겸 대학생(...)이 쓴 책인데 나름 재미가 있다.
뉴라이트 논란이 우리 사회를 휩쓴 후 뉴라이트에 대한 분석, 비판서들이 서서히 출간되었다. 탈민족주의, 비주류 사학의 관점에서 뉴라이트를 비판하려 한 김기협의 『뉴라이트 비판』, 뉴라이트에 대한 기성 주류 사학계의 입장을 정리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묻다』등의 단행본을 비롯, 뉴라이트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담은 글과 논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의 비판은 날카로웠고 가차없었다. 뉴라이트의 오류, 맹점을 잘 지적해내는 글들이 적지 않았다.
다만 그 대부분의 글을 읽을 때 마다 나는 불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이들은 뉴라이트의 진정성은 무시하지?'
'왜 뉴라이트의 실증적 자료에 대한 반박은 없을까?'
난 한때 뉴라이트의 이론에 무척 감명받았던 사람이다. 지금은 그들의 주장과 방법에 회의적이며 비판적인 입장에 서 있지만, 적어도 뉴라이트가 내세우는 논리와 비판이 황당무계하고 사악한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문제의식은 날 매료시켰으며 그들이 광범위하게 포섭한 탈민족적, 진보적 시각과 탁월한 실증적 역사해석은 교과서의 세뇌 속에서 꽉막힌 민족주의에 빠져있던 나에게 역사인식의 이면성, 상대성을 인식시켜 주었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뉴라이트 논리의 모순과 자가당착을 발견하게 되며 나는 뉴라이트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러나 뉴라이트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지금 역시, 뉴라이트 논의의 진정성이나 그들이 제시하는 실증적 역사해석, 그들의 비판에 대해서는 귀를 막은 채 뉴라이트에 대해 피상적이고 감정적인 비난과 매도만을 늘어놓는 여론과 똑똑한 '지식인'들의 태도에 더 큰 반감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좋아하는 지식인들 역시 뉴라이트 문제 앞에서는 이성적인 판단과 비판의 끈을 놓아버리는 이들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이와 같은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나와 비슷한 생각으로 책을 썼나보다. "너는이런 얘기를 하니까 친일파야!", "너는 수구 꼴통이니까 안돼" 에서 벗어나 뉴라이트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고 분석하여 비판한다. 특히 이전에 김기협의 『뉴라이트 비판』을 통렬히 비판한다.
뉴라이트는 일본의 한국 지배가 기본적으로 선의에 입각한 것이었다고 주장함으로써 한국에서 실제로 진행된 근대화가 당시 상황에서 최선의 길이었다는 인상을 주려 한다. (중략) 예컨데 일본의 한국 병합 의도가 '영구 병합', 즉 일본의 완전한 일부로 만드는 데 있었기 떄문에 한국을 무책임하게 수탈하지 않고 잘 키우려고 노력했다고......
- 김기협, 『뉴라이트 비판』, 43쪽.
하지만 김기협의 주장은 명백한 오류와 왜곡으로 점철되어 있다.
첫째, 나는 뉴라이트 학자들이 일본 제국주의가 선의에 입각한 통치를 했다고 주장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다. 일제가 조선에 대한 영구병합을 꿈꾸었던 이유는 당연히 조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을 위해서였을 게다. (중략) 더군다나 이영훈은 이렇게 말한다. "제국주의는 수탈 여부로 비판할 것이 아니지요. 수탈 여부와 무관하게 제국주의는 그 자체로 비판의 대상입니다. 왜 그럴까요. 다름 아니라 인간 본성에 반하는 체제가 제국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이영훈은 오히려 상식 수준의 인식에 근접한다.
- 한윤형, 『뉴라이트 사용 후기』, 85쪽.
이렇듯 저자는 뉴라이트에 대한 오해와 다분히 의도적인 왜곡, 곡해를 하나씩 파헤쳐 가며 식민지 근대화론 등, 뉴라이트 주장에 대해 이성적인 해석을 보여준다.
이영훈은 일제 식민통치는 모순적인 체제였지만, 그것을 통해 조선인들이 근대의 물결에 동참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그의 말을 최대한 선의를 가지고 해석하자면, 그는 일제 식민통치의 타당성은 부정하지만, 그것이 파생시킨 효과는 우리 역사의 유산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한용운이 '자유'의 논리로 조선 독립의 당위를 강변하고 일본 순사를 설복한 것을 그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제시한다. 조선 주자학자들이 공맹의 윤리를 강변하며 중국의 침략자들을 질타했던 것 처럼, 서구와 일본을 통해 들어온 근대 사상이 조선인으로 하여금 '자유'라는 말로써 침략자를 논박하게 만든 것이다.
- 한윤형, 『뉴라이트 사용 후기』, 88~89쪽.
이러한 해석을 도출해내기 위해 그는 기존의 민족주의적 사학이 외면했던, 혹은 애써 묻어두었던 부분과 모순점들에 대해 탈민족주의적 시각에서 비판을 토해낸다.
여기까지만 보면 뉴라이트에 대한 옹호를 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저자 자신이 밝혔듯 기본적으로 이 책은 뉴라이트를 비판하는 책이며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은 뉴라이트에 대한 정밀한 비판을 위한 비판일 뿐이다(9쪽).
이 말은 정당하다. 뉴라이트 담론 자체가 민족주의 사관이 갖고 있는 모순점, 한계를 비판하며 출발한 것이기에 기존의 민족주의 사관에 얽매여서는 뉴라이트에 대한 비판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 설령 철저한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비판을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뉴라이트가 비판하는 민족주의 사학의 모순점을 철저히 부정하거나 외면할 수 밖에 없는데, 이러한 민족주의 사학의 모순점은 뉴라이트 뿐 아니라 임지현, 박노자를 비롯한 '좌파적' 비판자들로부터 이미 제기되어온 문제들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민족주의 사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민족주의 사학 스스로 극복해야 할 성격의 것들이다.
저자의 역사인식은 기본적으로 위와 같은 바탕에 서 있는데, 그 위치에서 뉴라이트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는 부분은 인상적이다.
이영훈은 북한의 1950~60년대 경제성장을 가볍게 무시해주신다. 북의 경제성장은 일본이 물려준 유산을 적절하게 관리한 덕이라는 것이다. (중략) 북한은 일제가 물려준 유산이 많았는데 그걸 점점 까먹다가 남한에 역전당한 것처럼 써놓았다.
하지만 북한은 물려받은 유산을 까먹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까지는 실제로 경제성장을 했다. 물론 이후 남한의 경제성장률에 비하면 대단치 않은 수치일 수 있지만, 순조로운 경제성장을 통해 '한강의 기적'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기적'이라고 부를 정도의 성장을 이루었다. (중략)
그런데 식민지기 조선의 경제성장률 3.7%를 중시하며 식민지 근대화론을 펼치는 경제사학자 이영훈은 왜 이부분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는 걸까? (중략)
이영훈은 대체로 친일파를 일제 치하에서 근대 문명을 습득한 테크노크라트와 동일시한다. 한국 사회가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을 처단하지 않고 이들의 경험을 활용했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북한은 친일파 청산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만일 북한에서 한동안 경제성장이 가능했다면, 그것은 친일파 청산과 경제성장이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그러므로 이영훈은 이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
더 중요하고 핵심적인 문제는 이거다. 이영훈은 근대문명을 옹호한다. 근현대사에서 일제 시기의 비중을 말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근대'는 자본주의와 동일하다. (중략)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인용하면서도 김기협은 끝내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바로 '사회주의' 역시 근대적인 기획이며 근대 문물의 큰 요소였다는 사실 말이다.
- 한윤형, 『뉴라이트 사용 후기』, 113~115쪽.
인용이 좀 길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라면 바로 이러한 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해석을 볼 때, 비로소 뉴라이트가 남한의 독재정권을 찬양하면서도 그 거울상인 북한을 그렇게 극단적으로 부정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물론 그 이유가 이것만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렇게 뉴라이트의 주장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편견없이 분석하여 탈민족적인 입장에서 날카롭게 비판한 후 책은 2부로 넘어가 민족주의와 뉴라이트의 모순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역사를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 저자는 역설한다. 남북의 정통성 논쟁과 이를 둘러싼 민족주의 세력, 뉴라이트 간의 극단적 논쟁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탁통치 반대운동의 광기와 이승만과의 비교 속에서 과대평가된 김구를 다시 돌아보고 여운형의 중도노선을 재조명한다. 이어 현대사의 줄기를 타고 민주화와 현재의 과제에 대해 저자의 견해를 피력한다.
저자는 최대한 이성적인 입장에서 좌우에 대한 합당한 비판을 펼치며 독자를 인도하는데 눈여겨 볼 부분이 많다.
하지만 저자는 지나치게 '상식인'의 입장이다 보니 깊이가 부족하거나 오류를 범하는 부분도 꽤 보인다.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학술논쟁을 관통하는 흐름이 친일파 옹호론과 친일파 처단론의 정치논쟁이라는 부분에서는 중간논리가 생략된 채 성급하고도 무책임한 논점의 이동이 일어난다.
물론 상식인의 입장에서 학술논쟁의 저변에 깔린 키워드를 전달하려는 노력에서 나온 결과임은 인정하나, 설령 대다수의 상식인이 그러한 인식을 지니더라도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논쟁을 이렇게 단순화시켜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이 학술 논쟁이 담고 있는 다양한 의미들을 사장시켜버릴 우려가 있다.
또한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하며 '정착자 식민지' 문제를 단순히 인구문제로 이해하는 어설픔을 보여주며 의미없이 대체역사소설을 쓰는 부분도 있다. 게다가 역사교과서를 통해 역사관을 형성해본 일이 없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특수한 경우를 근거로 국정교과서와 이를 둘러싼 헤게모니 다툼을 '안이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황당할 정도이며 242쪽에서 김구가 남한 단정 수립운동을 펼치는 이승만에 대해 '절대적 충성을 다짐' 했다는 서술에는 그 내용의 파격성과 더불어 아무런 근거도, 각주도 달지 않아 독자를 당황하게 만드는 구성의 파격성도 함께 갖추고 있다.
이외에도 전후 50년대에야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북한의 집단농장화를, 해방 직후 북한에서 실시된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을 설명하는데 적용하는 등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도 보여준다. 사실 처음엔 이와 같은 오류가 너무나 눈에 띄어서 책을 읽고자 하는 마음이 반감될 정도였다.
그러나 이는 저자가 사학 비전공자이며(철학 전공) 아직 학부를 졸업하지 못한 대학생이라는 점을 살펴본다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와 같은 문제점을 많이 품고 있지만 저자가 보여주는 이성적인 태도, 참신한 해석과 패기넘치는 열정은 위와 같은 문제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책을 읽을만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현실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뉴라이트가 뭔지 알고 싶다면, 뉴라이트가 죽도록 밉거나 뉴라이트가 미치도록 좋다면 읽어보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