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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말고 더 있는데 일단 보시는게.
최고문명은 어디에"..中 문명공정 세부연구 개시 1
기사입력 2008-08-28 13:57 |최종수정2008-08-28 14:50 (선양=연합뉴스) 조계창 특파원 =
중국 고대문명의 근원을 파헤치는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 세부연구가 본격 착수됐다.
28일 중국의 관영 신화통신 웹사이트에 따르면 중화문명탐원공정의 세부과제인 '홍산옥기공예연구(紅山玉器工藝硏究)'와 '화하제일촌(華夏第一村) 역사전 취락형태연구가 최근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 츠펑(赤峯)시의 아오한치(敖漢旗)에서 시작됐다.
중국 과기부와 국가문물국의 공동 주관 아래 지난 2001년부터 시작된 중화문명탐원공정은 신화와 전설 시대로 알려진 3황5제 시대를 역사에 편입하고, 이를 통해 중화문명이 이집트나 수메르문명보다 오래된 세계 최고(最高) 문명임을 밝히려는 중대 과학연구 프로젝트이다.
중국은 세부과제 연구착수에 앞서 올해 5월초부터 6월말까지 우한치의 자오라이허(叫來河) 유역의 싱룽와(興隆窪), 자오바오거우(趙寶溝). 훙산(紅山), 샤오허옌(小河沿) 유적지 160여 곳에 대한 사전 조사를 벌여 자료 정리 및 표지 작업을 이미 끝마쳤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들 지역에서 발견된 옥기와 탄화 좁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 세부과제 연구에는 세계적인 옥기 전문학자인 홍콩 중원(中文)대학의 덩충(鄧聰) 교수,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네이멍구공작대장인 류궈샹(劉國祥) 교수, 츠펑학원 홍산문화국제연구중심의 시융제(席永杰) 주임 등 저명한 고고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항공대의 우실하 교수는 이날 연합뉴스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중화문명탐원공정이 세부연구에 들어갔다는 것은 이미 기본적인 이론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세부연구를 통해 중원의 황화문명과는 애초 이질적이었던 랴오허(遼河)문명을 중화문명의 시발점으로 만들어 이 일대에서 발원한 맥족, 흉노족, 조선족, 여진족 등 북방 고대민족의 상고사와 고대사를 중국사로 편입하려는 행보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요하문명은 고조선의 뿌리 (우실하 항공대 교수)
"요하문명은 고조선의 뿌리…中 '문명공정'에도 경각심 가져야"
(선양=연합뉴스) 조계창 특파원 = "중국이 고조선 이전의 상고사까지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시도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요서(遼西)지역 신석기문화와 한반도의 관련성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입니다."
지난 15일부터 대학교수와 사학자 등 10여 명으로 구성된 고조선유적답사단을 이끌고 21일까지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와 랴오닝(遼寧)성 북서부 지역을 둘러본 우실하 항공대 교양학부 교수.그는 1999년부터 002년까지 랴오닝(遼寧)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일찍이 요하문명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사학자로 23일 중국 심양(瀋陽)에서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요하문명은 중원에서 시작된 여타 명과 별개로 중국 동북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출현한 문명으로 한반도와도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지난 1983년 랴오닝(遼寧)성 젠핑(建平)현과 링위안(凌源) 사이의 뉴허량(牛河梁)에서는 기원전 5천500년 전의 제단, 여신전, 여신상, 적석총 등이 대거 발굴돼 전 세계 고고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3황5제 시대를 운운하는 신화시대였던 기원전 3천500년에 이미 초기국가 진입단계의 대규모 유적이 발견된 것은 고대국가발전단계를 황허(黃河) 유역의 하(夏)에서 시작해 상(商)과 주(周)로 이어지는 것으로 봤던 역사학계의 정설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뉴허량유적은 훙산(紅山)문화, 더 나아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문명의 하나로 꼽히는 요하문명의 꽃으로 불리고 있다. 뉴허량유적지는 최근 광산개발업자들의 불법채굴로 훼손된 사실이 중국 언론에 보도되면서 또 한번 주목을 끌기도 했다.
문제는 중국이 이런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요하문명의 주도세력을 황제(黃帝)족으로 설정하고 중화민족의 시조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우 교수는 "최근 중국에서 요하지역에서 발원한 모든 고대 민족이 황제족의 후손으로 중화민족으로 일원으로 보는 역사해석이 등장하고 있다"며 "이런 논리대로라면 이들 지역에서 등장한 단군과 주몽은 당연히 황제의 후예가 된다"고 우려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중국의 동북공정은 깃털에 불과하며 중국의 고대문명탐원공정(古代文明探源工程)이 몸통이라고 지적한다.
우 교수는 "중국고대문명탐원공정은 21세기 중국의 '대중화주의건설'을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로 동북공정은 그의 일환으로 동북지역의 민족문제와 역사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추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의 문명공정을 반박하기 위한 논리로 국경이 없었던 시절의 과거 문명 주도세력이 어디로 이동했는지를 중심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일례로 요서지역에서 발견된 적석총, 피라미드식적석총, 빗살무기토기, 비파형청동검은 중원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한반도와 일본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됐다. 바로 요하문명이 중원에서 발상한 문명과는 달리 주로 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전래된 동북아문명의 시원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원전 2천∼1천500년 시기에 형성된 샤자뎬(夏家店) 하층문화는 고조선문화로 이어졌으며 이 지역에서 발견된 '이(齒)를 갖춘 석성'과 비파형청동검은 고조선문화의 상징이면서 비슷한 시기 중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고구려 특유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 교수는 "이러한 특징을 갖춘 요하문명은 동북아 모든 국가들의 공통적 시원문화로 21세기 동북아 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한 근원으로 삼을 수 있다"며 "이를 위해 협소한 영토중심의 역사관을 넘어 역사를 흐름과 교류로 보는 '열린 역사관'과 '열린 민족주의'를 한.중.일 국가들이 공유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산문화 발견
홍산문화를 세상에 처음 알린 사람은 일본 고고학자 도리이 류조(鳥居龍藏)였다. 1906년 적봉 일대 지표조사를 하던 중 많은 신석기 유적과 적석묘 등을 발견했는데 동북지방과 만주, 한반도 일대에서만 발견되는 무덤 형태다. 1955년 이를 ‘홍산문화’로 이름 붙였는데 이후 1982년 요녕성 뉴허량(牛河梁)에서도 같은 유적이 대거 발굴되자 각국 언론들은 ‘5천 년 전 신비의 왕국’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이 일대는 현재 발굴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황하문명보다 앞선 기원전 3천500년경으로 추정되는 홍산문화는 통상 청동기 시대에나 출현 가능한 분업화가 이뤄진 국가형태를 띠고 있다. 특히 가면과 玉(옥) 장식 등에 곰 형상이 투영된 유물이 대거 발견돼 국내 학자들은 곰 토템을 지닌 웅족과 고조선(청동기 시대) 이전 한민족 원류 중 하나인 배달국(신석기 시대)이 자리했던 곳이라고 주장한다. 즉 홍산문화는 단군조선 건국의 토대일 가능성이 높은 유적이다.
발견의 위치와 그 파장
황하문명보다 고대국가를 먼저 형성시킨 문명이 요녕에서 발견되었는데 발해만 북쪽에서 신석기문명 중 가장 주목할 문명이 홍산문명입니다.
이 문명의 발견으로 중국은 황하중심 문명전파론을 철회하게 되었으며 '다중심문화론'을 인정하고 산동에서 발견되는 북신문화, 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가 바로 이 홍산문명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론까지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홍산문명이 바로 한(韓)민족의 나라인 고조선의 중심지로 인정되는 요녕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에 한국학계의 일부에서도 홍산문명을 보고 고조선이 실제로 BC. 2333년에 건국이 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부근에서 발원한 부여와 고구려의 역사또한 고대 황화중심의 한(漢)족이 아닌 환(桓)족..즉 한(韓)민족에 가깝다는것이 중국 사학계의 터부시 되는 고민입니다. 이 문명은 또한 강단 사학계를 '반도중심의 식민사관'이라 비판했던 사학자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홍산문명은 황하문명보다 먼저 고대국가를 형성한 유적으로 성곽과 왕궁터가 발견되므로 고조선의 건국전에 이미 고대국가의 발판을 만들었다는 사학자들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환단고기>에서 나오는 환국이 바로 홍산문명(BC.4500~BC.2500)이고 홍산문명은 흥륭와문화, 신락문화(BC.6000~BC.5000)을 기반으로 세워졌다는 주장이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매도할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홍산문명은 요녕지역과 내몽고 동부지역에 넓게 전개된 BC.4,000년의 신석기-중기에 해당하는 2단계 신석기문화로 인식되고 있으며 사해문화와 연속고선문계 토기와 세석기등을 융합하여 한 단계 발전하여 전개 되었고 그 후에 하가점-하층문화에 연결되며 중국 황하유역과 산동반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동이족(東夷族)의 활동영역을 문헌으로 보면 하북성 동북부와 산동지역 그리고 양자강 하류지역인데 산동지역에서 가장 앞서는 신석기유적은 북신문화이고 북신문화는 BC.5000년전까지 소급되며 황하의 자산- 배리강문화와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그리고 BC.4500년경에 이 지역에 있었던 대문구문화와도 직접적인 연원관계에 있습니다. 대문구문화는 하남성서쪽의 앙소문화와 대비되는 문화로 동이계(東夷系)문화로 추정되고 있고 이후의 용산문화에 연결됩니다.
문명의 특징
고고학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가 묘장법인데 죽은 사람의 장례의식은 오랜기간 변하지 않는 그 민족 고유의 전통이기 때문입니다.
홍산문명의 가장 큰 특징은 석묘계(石墓系) 돌무덤인데 돌을 쌓아 묘실을 구성하는 적석총(돌무지무덤)과 돌판을 잘라 묘실벽을 짜는 석관묘(돌널무덤)가 대능하 상류지역 요녕성 우하량유적에서 발굴되었습니다.
반면에 중국의 화하족은 땅을 파서 묘실을 만들고 시신과 유물을 안장하는 토광묘가 유행하였고 주(周)나라시대에 들어서 나무로 관을 짜서 묘실을 만드는 목관묘가 유행합니다.
역사에서 홍산문명과 동일한 석묘계의 묘장법을 채용하고 있는 나라가 고조선이며 고조선의 전단계인 홍산문명은 고조선의 선조들이 이룩한 문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돌을 이용해 구조물을 축조하는 방식이 고조선 이후 부여, 고구려 그리고 백제에도 계속해서 계승되는 한(韓)민족 고유의 풍습이기도 합니다
이 곳 홍산문명은 중국의 사서에 나오는 헌원과 전쟁을 했던 치우의 근거지로 지적이 되는 곳 입니다. 헌원과 결전을 벌이며 하남, 산서와 산동일대를 개척하여 청구국을 세웠다는 기록은 사마천의<사기>에 자세히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또한 홍산문명 이후 하가점-하층문화(BC.2000~BC.1300)가 그 지역에 광범하게 확산되는데 홍산문명은 하가점-하층문화로 이어졌고 하가점-하층문화는 고조선의 문화입니다.
홍산문명은 소하연문화를 거쳐 하가점-하층문화로 연결되는 것은 중국학계에서 공식화 되었습니다. 더구나 소하연문화에 이어지는 하가점-하층문화, 구체적으로 풍하문화에서는 고조선의 건국연대보다 조금 앞서는 BC.2400년경으로 보이는 청동기유적이 발굴되는데 출토된 유물을 보면 화살촉, 칼, 창 등도 발굴되어 BC. 2333년에 고조선의 건국이 신빙성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이 요동, 요서일대에서 발굴된 청동기유물은 황하유역에서 발굴되는 청동 유물보다 연대가 앞서며 중국 동부에서 발견되는 청동기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문명의 의미
홍산문명의 발견은 한국과 중국의 고대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파장이 큽니다.
중국의 학자들은 지금까지 중국의 앙소문화와 대비되는 문화로 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로 보았는데 홍산문명을 발견한 후 대문구문화와 용산문화의 주인공으로 홍산문명을 듭니다. 즉 홍산문명의 주인공이 동이족이므로 한(韓)민족의 선조들이 중국의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고 하북, 산동의 동이족이 한민족의 선조였다는 근거가 됩니다.
또한 북신문화, 대문구-용산문화, 악석문화로 이어지는 [산동문화]와 흥륭와문화, 신락문화, 홍산문명, 하가점-하층문화로 이어지는 [요령문화]의 주인공이 한(韓)민족 입니다.
그래서 중국학자들도 산동문화의 주인공인 동이족이 동북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느 민족인지 밝히기를 꺼려하고 있습니다. 전백찬 같은 중국학자의 일부가 개인적으로 고조선(古朝鮮-辰國)이 동이족의 중심지였다고 주장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홍산문명은 고조선의 선조가 일으킨 문명이고 그 당시에 화하족은 하북성과 산동성을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홍산문명의 주인공이 동이족이라는 것은 중국학계도 인정하고 있고 그 동이족이 고조선입니다.
현재 한국학계에서도 고조선의 중심을 평양에서 요서,요동의 요녕지역으로 보고 있으며 한(韓)민족의 기원도 요녕지역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중국문화에 중요한 획을 그었던 홍산문명이고 그 주인공은 동이족이 됩니다.
이 홍산문명의 주인공이 고조선을 건국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다
이런역사를 중국이 자신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대충 요약하면 이런겁니다. 중국 동북지역에서 요하문명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문명이 발겻됬습니다. 그 문명은 고조선의 위치와동일한데 중국은 요하문명에서 퍼진 민족은 모두 중화민족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민족도 중화민족이라는 거죠. 그리고 우리민족뿐만 아니라 북방 고대민족 모두를 중화민족으로 편입시키려는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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