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일까? - THE ROMANTIC MOVEMENT- ALAIN DE BOTTON]
신들은 자주 자리를 비우거나 있어도 잡히지 않는 특징이 있기에,
인간들은 부엌에서 커피를 마시며 느긋하게 터놓고 수다를 떨기보다는
기도나 꿈을 통해서 의사소통한다.
에릭은 침묵을 통해 신성한 거리감을 얻었다.
그 남자는 수다스런 사람이 아니어서,
회의나 식사 시간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경우도 많았다.
가까운 친구들은 이런 면을 놀리면서,
오늘 할 말의 분량을 다 해버렸느냐고 놀렸지만,
그 남자를 잘 모르거나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은
그의 이런 면에 위압감을 느낄 수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본인의 말주변이 부족하다고 자기 탓을 했고, 편집적인 증세를 보였다.
'내가 그렇게 지루한 사람인가?'
'그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말없는 사람은 상대의 불안을 반사한다.
침묵과 마주하면,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죄가 발각되었다고 느끼고,
아둔한 사람은 멍청한 걸 들켰다고 생각한다.
신체적으로 위축된 사람은 못생겨서 그러리라고 여긴다.
"거리감"이라는 말은 친하지 않음을 대표하는 말처럼 들린다.
"거리감"을 위한 수단으로는 말을 하지 않는 것.
이른바, "침묵"을 사용함으로 인하여,
당신과 나의 관계를 당사자 뿐만아니라 제 3자에게도 영향을 주는 것이다.
알랭드보통이 이야기하는 침묵은
상대의 자책감을 일으키게 하는 침묵인 것 같다.
죄책감과 열등감 덩어리가 마주한 상대의 침묵으로 인하여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
내가 말하고 싶은 침묵은 그 내용이 다르다.
상대와의 반복적인 침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언어장벽으로 인하여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경우가 있을 것이고,
정말 말이 통하지 않는 가치체계가 너무 충돌하여
"난 더 이상 당신과 대화라는 것을 하고 싶지 않아!"라고픈 경우가 있을 것이다.
전자의 경우 외국인과 대화할 때 많이 느끼게 되며,
후자의 경우는 어느 조직에 속하든 한 두명씩 반드시 있는 그들의 존재에서 느낀다.
가까운 가족 중에서 나는 이런 침묵의 방법을 사용한다.
나는 TV 드라마를 볼 때 옆에서 말 시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잠을 자고 있는데, 주관적 기준의 아침이 밝아오면 청소기를 돌린다거나,
아침 준비하는 티를 다 낸다거나,
가족이 부딪혀 살다보면 일어날 수 있는 어쩌면 이해하고 넘어가는 지극히 일상적인 일들..
그리고 대상의 부정적 측면에만 집중하는 화제거리
그냥 턱 밑에서 올라오지 않았으면 하는 말들이 있다(이건 잘 표현 안됨..)
내가 집중하는 것에 방해받는다고 느끼면, 짜증이 올라온다.
물론.. 혈연관계가 아니기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결국 나는 침묵의 방법을 통하여 대화의 맥을 끊는다.
물음에 대해서는 "예"와 "아니오"로 일관할 뿐이며,
권하는 음식에 대해서는 "괜찮아요"와 같은 단답식일 뿐이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끊임없이 권하고, 묻는 당신께 상당히 죄송하지만 말이다.
가족 속에서도 나는 고립을 느낀다.
"침묵"의 참혹한 결과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 가족은 참 말이 없다.
집이라는 울타리 내에서 공감하고 공유하는 것보다는
각 자가 세워둔 울타리를 그 속안에 또 만들어 놓고,
침묵한다. 울타리를 허물고 싶은 생각은 서로 조금도 없다.
그렇게 울타리는 점점 높아지고, 그게 무너졌다가는
가족이라는 울타리 전체의 위기가 닥친다.
그래서 요즘은 "침묵"의 울타리를 올리는데 더 신중하다.
"말은 많을수록 득보다는 실을 더 많이 가져다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