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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무덤에서 내가 꼭 보고싶은것!

마루PD |2010.02.13 09:09
조회 538 |추천 1

 

MBC뉴스를 통해 지난달(2010년 1월) 중국의 국가문물국이
최근 발견된 조조의 무덤을 공식으로 인정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조조는 사후 자신의 무덤이 도굴될 것을 우려해
8 x 9 72개의 무덤을 만들도록 했는데

 

 

 


그동안 발굴된 무덤들이 많았지만
이렇게 국가문물국의 공식인정이 나온것은 처음.

 

 

 

삼국지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유비 관우 장비 세 의형제의 훈훈한 이야기라던지
조조 손권 유비가 삼국지의 세 나라를 이끈 왕이라는 것 정도는 알겠지

 

 

 

조조는 원래 하후씨로, 어린시절에...
당시 권세를 누리던 조씨 성을 가진 환관의 집안에
양자로 들어가 조씨가 된 것.

 

 

 

 

 

하후돈과 그의 사촌동생 하후연이
조조군의 가장 든든한 맹장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조조가 항상 종씨로서 대우하고 친애했기 때문이다.

 

 


해서, 이번 국가문물국의 공식인정이 발표된 후
발굴된 유골의 DNA검사가 시작되자
하후씨와 조씨성을 가진 조조의 후예 수십명이
자청해서 DNA검사를 받겠다고 나섰단다

 

 

 

조조의 무덤에서 발굴될 수많은 유품들 중에
내가 가장 기대하고 있는 것은

 

 


조조의 아들 조비가 조조의 묘에 그려놓도록 지시해
맹장 우금을 죽게 만든 바로 그 벽화.

 

 


아버지 못지않게 머리가 좋았던 조비는
냉혹한 새디스트로 비유될 정도인데...

 

 


도대체 어떤 그림이었기에
수십년을 전쟁터에서 살아온 장군을 죽게 만들었을까.

 

 

 

유비군의 오호대장군으로 관우, 장비, 조운, 황충, 마초가 있다면
조조군에는 장료, 악진, 우금, 장합, 서황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미 조조의 왼팔 오른팔이 되어버린 하후돈과 하후연은
각각 총사령관과 서북지방의 도독이었으므로 열외.

 

 


하지만 이런 하후연조차 나이60이 넘어 유비군에 합세한 노장 황충에게 죽지 않았는가.
'노익장을 과시했다'는 말이 나오게된 이야기...

 

 

 

이정도로 대단했던 맹장 우금이
벽화하나 보고 병을 얻어 곧 죽게된 이야기를
시간을 다시 거슬러 마초, 방덕 이야기부터 더듬어 보면...

 

 

 


황제를 보호한다는 대의로 권력을 잡았던 조조가
사욕을 보이며 황제를 위협하자

 

 


황제는 동국구(국구는 왕비의 아버지, 즉 황제의 장인어른)에게
혈서를 써 도포의 허리띠에 감추어 전달하는데

 

 

 

이 혈서를 함께 읽고 타도조조 연판장에 서명한 인물들은
왕자복, 충집, 오석, 오자란등의 충신들 외에

 

 

 

강족과 몽골 등이 있는 서량지방을 다스리는 마등과
아직은 힘이 약한 유비가 있었다.

 

 

 

이 연판장은 곧 조조에게 발각되어
유비를 제외한 모든 관련인물이 척살을 당하고

 

 

 

서량태수 마등이 죽은 후
그의 아들 마초와 마등의 의형제 한수가
복수전을 꾀하지만...

 

 

 

그마저도 조조의 계략으로
마초와 한수의 내분. 결국 실패.

 

 


마초는 추후 유비군의 5호장군이 될 정도로 용맹했고
서량의 금마초라 불리울 정도로
그 모습도 아름다웠다고 한다.

 

 

 

 

은빛갑옷으로 멋을 낸 마초가 군단의 앞에 서면
적장도 그 모습에 반했다나...

 

 

 

그런 마등에게는 마초 외에도 마대, 방덕과 같은
무시무시한 맹장들이 있었으나

 

 


마초와 한수의 복수전이 실패하며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각자 떠돌이 생활을 하던 마초는 유비군에,
방덕은 조조군에 합류하게 되는데

 

 

서량태수 마등과 유비, 거기에 합세한 마초의 관계를 아는 조조는
방덕의 충성심을 의심해 중용해 주지 않았고

 

 


제갈량이 합세한 유비군은
본격적인 한중 공략에 나서면서

 

 

 

삼국이 모두 접한 전략적 요충지 형주의 수비를
가장 든든한 장군이었던 관우에게 맡긴다.

 

 

 

대추같이 붉은 얼굴에
배까지 내려오는 수염이 아름다워
황제로부터 미염공이라는 별명까지 얻은 관우는

 

 


전투와 전략, 충성심과 인간됨까지 완벽에 가까워
중국에서는 아직도 신격화 되어있다.

 

 

 


홍콩영화등을 보면 중국인들이 집을 나설때 마다
제삿상 같은 제단에 향을 꽂고 나서는데
이 제단에 조각된 관우의 상이 놓여있는, 그런 장면이 자주 나온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도, 이런 관우장군을 본받고 존경하는 의미에서
관우장군의 묘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는데
이것이 동묘다.

 

동대문역 옆에 동묘역이 있는데, 이 동묘역이 바로 관우장군의 묘.
우리나라로 치면 이순신장군급 되겠다.

 

 

 


관우라는 단 한사람의 무장 때문에
조조의 위나라와 손권의 오나라는
중원공략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관우를 두려워한 손권은 자신의 아들과 관우의 딸을
결혼시켜 유비의 촉나라와 화친을 맺어보려 했으나

 

 


관우에게 한번에 거절당한 손권은
결국 조조와 손잡고 합동공격에 나선다.

 

 


손권이 직접 초대한 오나라의 연회에
관우는 부관 주창만을 데리고 단신으로 오나라로 건너가

매복했던 자객들의 위협 속에서
용감하게 탈출에도 성공했던 이야기도 있다.

 

 

 

 

몇년에 걸친 형주공략에
오히려 쩔쩔멘것은 조조군.

 

 


한중공략의 거점이 된 번성을 오히려 역습한 관우는
번성을 지키던 조인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조인은 조조의 의형제로 한 군단을 장악한 맹장.

 

 

 


조인을 구출하고 관우를 몰아내기 위해 급파된 부대가 바로 우금의 부대다.
이때 부관을 자청하고 나선것이 바로 방덕.

 

 


스스로 관을 짜 관우를 죽이지 못하면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를 보여
조조의 믿음을 얻은 방덕이지만

 

 


우금과 방덕 역시도 관우에게 포로로 잡히고 만다.

 

 

 

이 번성공략이 있기 전에는 이렇게까지 패한 적이 없던 맹장 우금은
목숨을 구걸해 포로로 살아남지만

 

 

조조군에 들어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크게 전과를 올린적도 없었던 방덕은
끝까지 투항하지 않고 결국 처형당하고 마는데

 

 

 

방덕의 능력과 절개를 높이 산 관우는
방덕 처형 후 장례를 후하게 치러주며 슬퍼했다고 한다.

 

 

 


고향친구 마초도 유비군에 있는데
어째서 방덕은 조조군에 들어갔으며
끝까지 투항하지 않았을까...
그 어떤 라이벌의식 같은게 있지 않았을까

 

 

 


우금과 방덕을 이긴 관우가 재차 조인의 번성을 공략하다가
성에서 쏘아 떨어지던 쇠뇌를 오른팔에 맞아
명의 화타에게 수술을 받는데...

 

 


대수술을 집도하는 동안 태연하게 바둑을 두었다는 이야기도
하도 많이 들은 이야기.

 

 

회복에 시간을 허비한 관우의 배후를 친 것은
오나라의 여몽과 육손.

 

 

형주와 번성간의 거리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치밀하게 조직된 봉화대를 무력화 시킨 여몽과 육손의 합작으로
결국 관우와 관평, 주창은 맥성에서 농성을 하지만
탈출에 실패, 오나라군에 잡혀 죽임을 당한다.

 

 


여기서 왜 제갈량은 관우구출작전을 펼치지 않았을까
제갈량은 절대 관우의 위기를 모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인데...

 

 


보통 이 대목은 열권짜리 삼국지의 9권째 쯤 나오는데
실제로 내 고등학교 친구녀석은 9권을 읽고 덮으면서
책을 찢어버렸다.

 

 

 

그래서 아직 이친구 집 책장에는 삼국지가 한권 빠져 아홉권이라나.

 

 


조인을 구출하기 위해 급파된 우금과 방덕.
그 중 방덕은 끝까지 투항하지 않고 죽었지만

비굴하게 살아남은 우금은

관우가 죽은 후 오나라군에 구출되어 다시 위나라로 보내어진다.

 

 

 

조조군을 수십년동안 이끌었던 우금이라
다시 위나라로 돌아갈때의 우금은 흰머리가 성성했다고 한다.

 

 


관우의 혼령이 여몽을 죽게 만들고
조조조차 밤잠 못자게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관우를 죽여놓고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손권은
관우의 머리를 조조에게 보내는데


조조는 이 머리를 받아 장례를 후하게 치러주었고
그 성대하기가 왕의 장례와 같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병인 편두통이 심했던 조조는
관우의 혼령이 괴롭힌다는 등
병을 고쳐주러 온 명의 화타조차 투옥시켜 죽게 만드는 등

 


이상한 행동을 보이더니
결국 우금이 돌아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고 만다.

 


돌아온 우금을 맞이한 것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위나라를 이끄는 조비.

 


아버지의 의형제인 조인을 구출해 오지도 못했고,
방덕과 같이 충절을 지키지도 못했던 우금을 달갑지 않게 여겼던 조비는

 


그동안의 우금과 오나라의 친분을 이용해
오나라로 보낼 사신으로 우금을 준비시키면서
출발전 아버지 조조의 무덤에 참배할 것을 명령한다.

 

 

 

이 조조의 무덤에는
조비의 명령으로 그려넣어진 벽화가 있었는데
벽화에는 관우, 방덕 그리고 우금이 그려져 있었다.

 

 

 

관우 앞에는 방덕과 우금이 각각 다른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떳떳하게 죽음을 맞이한 방덕과
엎드려 목숨을 구걸한 우금의 모습이었다.

 

 


이 벽화를 본 우금은 곧 병을얻어 죽게되었다고 하니
조비... 그 아비에 그 아들이지 않나.

 

 

 

왕이된 조비는 형제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고,
그 중 특별히 똑똑하기로 유명한 조식과 대면해
그 유명한 칠보시 외에도
형과 아우의 이야기를... 형제와 같은 단어를 쓰지 않고 시를 지어보라고 했다.

 

 


콩을 삶는데 콩껍질을 태운다.
콩은 솥 안에서 울지 않는가!
같은 뿌리에서 자란 것 끼리
끓고 끓이고 어인 일이뇨.

 

 


이런 시를 듣고도 동생을 죽일 정도로 잔인하지는 않았나보다. 조비는...

 

 

 

 

 

 

 

 

 

 

 

다시 돌아와 조조의 무덤을 보면
과연 이 관우와 방덕, 우금의 모습이 그려진 벽화가 나올지
정말 기대된다.
DNA로 복원될 조조의 얼굴보다 더.

 

 

 

삼국지는 서기 200년 전후 약 100년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1,800년 전의 이야기다.

180년도 아니고 1,800년...

 

 


등장인물의 이름만 600명이 훌쩍 넘고
제갈량 사후의 이야기는 뚝 잘라내 절반만 책으로 써도 소설책 열권이 나오는
이 거대 서사시는

 

 

 

처세와 수단을 배우기 가장 좋은 도서로 많은이들에게 읽혀지고
또 다시 쓰여지고 있다.

 

 


10대때 읽는 삼국지와 20대때 읽는 삼국지, 그리고 30대때 읽는 삼국지는
항상 그 읽는 재미와 맛이 다르다.

 

 

 

전국의 고등학생들이
PC방에 가지 않고, 삼국지를 읽는다면
5년, 10년뒤 대한민국은
과연 어떻게 바뀌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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