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의 분함을 아는 자만이 승리에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듯이
죽음에서 눈을 돌리면 삶을 실감할 수 없을 것이다.
행복이란... 역시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인가?
쉬운 듯 어렵고, 어려운 듯 쉬운 일이다...
작품은 많은 것들의 도움을 받아 이루어진다. 좋은 영화를 보면
창작의욕이 불타오른다. 좋아하는 음악이 없이는 오랜시간 책상을
마주할 집중력을 지속할 수 없다. 같은 만화가의 혼이 담긴 좋은
작품을 보는 것은 더할 수 없는 위로가 된다. 그렇게 만들어낸 작품
을 읽고 무언가를 느껴주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목소리야말로, 이것을 조금이라도 좋은 작품으로 만들겠다는
근성을 내게 심어준다.
도피에 대하여.
책방을 몇군데 돌고, 레코드점에 들러 음악이며 영화 소프트를
찾아다닌다. 때로는 영화관에도 가고, 산 책들을 훑어보며 맥주집에
서 한잔을 기울인다. 얼큰해진 기분으로 2차를 간다.
매주 콘티작업 직전의 이런 의식은 정면으로 맞서야만 하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미루려는 도피다. 눈길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알고는 있지만... 인간은 약한 생물이다.
만화는 어렸을 때부터 내 곁에 있었다. 흠뻑 빠져들어 읽어내린
수많은 작품들에 대한 기억은, 확실히 만화를 그리게 된 지금의
나에게 피와 살이 되고 있다. 선인들에 대한 존경심을
망각할 때, 자기자신의 가치도 놓쳐 버리게 된다.
혼자가 아니다. 이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면 그릴수록, 앞으로 가면 갈수록
보이는 것은 나의 부족함뿐이다.
행복한 순간.
여행을 떠나기 바로 직전, 공항 또는 역 매점에서 잡지나 신문을
살 때. 그리고 비행기나 혹은 기차 안에서 그 페이지를 넘길 때.
하루의 일에 대해 일기(비슷한 것)를 쓰기로 했습니다.
모든 일에는 그것을 하는 의미나 이유가 있음을 알고,
의미없는 일이나 하기 싫은 일은 점차 하지 않게 되겠지요.
의도적으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늑한 기억. 무사시는 오래 전 "진리"를 만났다. 왜 그것을
잃었을까? 어디에서 길을 잘못 들었던 것일까? 코지로에게 있
는 "그것"은 무사시의 내면에 잠든 과거와 공명한다. 사람은 똑바
로 사물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태어나 후천적으로 획득한
삐딱하게 보는 눈으로 떠받들다가 언젠가 다시 버리게 된다.
그렇다면 더 일찍 버리는 자가 이긴다.
그러기가 어려운 것이 이 세상이지만.
- 이노우에 다케히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