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20대 후반 여성입니다. 요새 매일 뉴스에서 부산 여중생 사건 소식이 보도되고 있죠.
대부분의 평범한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성범죄자 뉴스에 분노하며 욕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별로 감정의 동요가 생기지 않네요. 화도 나지 않고 그냥 무감각하달까요.
전 2년전에 밤 12시가 좀 안되는 시각에 귀가길에 괴한의 습격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괴한의 습격이라니 조금 웃기게 들리네요.
평소의 귀가길과 다름없는, 어두 컴컴한 골목길도 아닌, 평범한 신도시 아파트단지 사이 오솔길을 지나 육교 위에서 벌어졌던 일입니다. 타이밍이 더럽게 기가막혀서 그 놈이 절 덮쳤을 때 때마침 사람이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죠.
멀쩡하게 걸어가다가 뒤에서 덮쳐서 길바닥에 엎어지게 되니 온 몸이 굳더군요. 정말 어떻게 반항도 못하고, 겁나서 소리도 못 질렀습니다. 그 놈이 등을 감싼 채 제 얼굴 오른쪽에 뭔가 뾰족한 걸 들이대면서 소리지르면 긁어버린다고 협박을 했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든 그 놈 불알을 걷어찼어야 되는데 그 상황에선 꼼짝달싹 못했습니다.
전 최대한 그 남자로부터 얼굴을 멀리하고, 얼굴을 안 보려고 했어요. 혹시나 제가 얼굴을 봤다는 이유로 제 몸에 위해를 가할까 겁이 났거든요. 그 놈은 저한테서 핸드폰을 뺏고 절 일으켜 세우더니 마치 연인이 서로 어깨를 감싸안은 듯 저를 안고, 여전히 그 뾰족한 물건을 눈에 안 띄게 제 몸 가까이 대고 있느 상태로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 땐 이미 길에 또 사람들이 오고 가고 있었는데.... 왜 도망도 못 가고 소리도 못 쳤는지 저도 참 이해가 안됩니다.
아무튼 정말 떠올리고 싶지도 않지만, 그 자식은 술이 좀 취해있었고 나한테 니가 사랑을 아니 뭐니, 니가 사랑을 못해봤으니 심한 짓은 안하겠다고하며... 암튼 전 결국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제가 졸업했던 모교의 담벼락 밑에서 말이죠. 강간은 아니었고, 처음엔 강간하려고 끌고 갔다가 강간으로 인정되는 행위만 안했을 뿐이었습니다. 얘기하려니 참 역겹습니다. 몇 미터 너머에 인도에 학생들이 떠들면서 지나가고 있는데 보이지 않았나봅니다. 보였떠라도 남들 눈엔 그냥 정신 나간 커플이 풍기문란한 짓이나 하는, 곁눈질 거리의 구경거리 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을거에요.
왜 그렇게 몸이 얼어버렸는지...... 지금 생각해도 잘 이해가 안되네요. 왜 반항을 못했을까. 그 상황에서 놈의 머리카락이라도 쥐어뜯거나 살점이라도 깨물거나 했어야 되는데 정말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 놈이 절 두고 스물을 센 담에 일어나라고 하며 부리나케 뛰어 도망갈 때 무조건 쫓아가서 잡았어야 되는데... 근데 그 상황에서는 몸이 움직여지질 않더군요. 눈물만 났습니다.
부모님이 아시면 충격 받으실 것 같아서 더러워진 옷 잘 정돈하고 울며 집에 돌아갔습니다. 다음날 용기를 내서 혼자 경찰서에 갔습니다. 진짜 입에 담기조차 힘든 수치스러운 상황 다 진술하고, 혹시나 싶어 그 놈이 만졌던 제 핸드폰과 안경을 지문 떠달라고 맡겼는데 결국 안 나오더군요.
정말 그 놈은 평범한 양복 바지에 흰 와이셔츠 입고, 외모 실루엣도 지극히 평범한 30대로 보였습니다. 누가 봐도 범죄자... 같은 사람이 그런 지저분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혹시라도 제가 격렬히 반항했거나 했다면 무슨 짓을 했을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겁니다.
제가 그런 일을 겪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강호순 사건이 발생했죠. 전 강호순 차 얻어탄 여대생이 사는 동네... 그 근처에 삽니다. 그래서 말도 안되겠지만 나를 덮친 놈이 혹시 강호순 저 놈인가 하는 망상에도 시달렸습니다. 차라리 저 놈이면 좋겠다고... 그러면 그 길에서 겁낼 일은 없어질텐데.. 하며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강호순 땜에 매스컴이 시끄럽던 그 시간 동안 너무 괴로웠습니다.
지금도 혼자 걷다가 뒤에너 누가 뛰는 소리가 들리거나 하면 온 몸이 굳어버립니다. 그리고 평범한 남자들도 잠재적인 성범죄자란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이제 텔레비전에 보도되는 많은 성범죄자들에게 별 화도 나지 않게 되었죠. 김길태란 놈은 재수없이 걸린거고, 아직도 길거리엔 김길태 같은 놈들이 여전히 활보하고 있을테니까요. 김길태는 미숙해서 사람을 죽인거고, 정말 악마 같은 놈들은 죽이지도 않고, 또 잡히지도 않고 버젓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테니까요.
여전히 성범죄가 보도되면 여자들이 뭔가 여지, 빌미를 줬니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발 그러지 좀 마세요. 강호순 차 얻어탄 그 여대생 사람들 많이 욕했습니다. 지 발로 차에 탔다고 말이죠. 그 여대생이 마지막 목격된 그 장소, 터널 빠져나와 버스 종점 근처에, 인근에 건물은 그 인적없는 보건소에, 멀찍이 떨어진 물류센터에 논밭밖에 없는 곳입니다. 여자가 아니라 남자도 혼자 거기 걸어가려면 누구 차라도 얻어타고 싶어지는 곳이죠. 저 같은 일 겪은 여자들한테는 꼭 여자가 옷을 야하게 입느니 미니 스커트를 입으니 남자가 혹하지.. 그러시던데, 전 친구들이 10미터 앞에서 봐도 남잔 줄 알았다고 말하는 외모를 지녔습니다.
그냥 그 놈들은 자기 욕구를 주체못하는겁니다. 누가 빌미를 줘서가 아닌거죠. 운 나쁘면 그 놈들이 절 죽일수도 있는겁니다. 전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남들 눈에 평온해 보이고 안전해 보이는 도시 여기 저기에는 구멍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점점 남의 일에 간섭하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뿐입니다. 그래서 전 그 사건이후 무모하지만 주머니에 항상 흉기로 쓰일만한 물건을 넣고 쥔 상태로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씁쓸하네요...
미연에 방지한다는건, 뭐 성범죄자 고유 유전자 같은게 있어서 관리할 수 있을까요? 전과자만 잘 관리해도? 글쎄요, 여성 대상 성범죄의 경우 여전히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발생건수에 비해 신고 건수가 적기 때문에 숨어있는 범죄자들이 훨씬 많을 것 같네요.
강도를 당하면 돈이나 물건은 다시 사면 됩니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 경험은 그렇게 채워놓을 수가 없습니다. 전 스스로 목숨 부지하고 있는 것도 감사하지만, 나라에서 저같이 경미하지만, 개인에겐 정말 괴로운 범죄를 당한 사람을 위한 상담 제도라도 마련해줬으면 좋겠습니다. 피해자들이 수면위로 떠올라야 가해자들도 경각심을 조금이나마 더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 행방불명되거나 처참하게 살해라도 되야지 짐승같은 놈 찢어죽이겠다고 덤비는데... 소용없는 짓 같습니다. 누굴 위한 분노인가요 도대체?
더러운 손에 어린 생명을 잃은 이유리양의 명복을 빕니다. 다음 세상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