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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생활 2년, 34평 아파트를 장만했습니다.

홀주 |2010.03.19 12:22
조회 4,042 |추천 1

나는 가난이 가장 싫다.”

 

제 기억이 살아있는 어린시절, 찢어진 고무신을 신고 다녔습니다. 동네 친구들은 만화주인공이 그려저 있는 운동화를 신고 자랑스럽게 다닐 적에 전, 여기저기 긁히고 구멍도난 하얀 고무신을 신고 다녔습니다. 가난했던 우리집은 외동아들에게도 시장에서 파는 그림없는 운동화도 살 돈이 없었습니다. 고물을 주어팔며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던 우리 아버지와 그 돈을 쪼개어 5남매 키우시느라 그 흔한 외식한번 못하고 사시는 부모님과 돈 없고 배고픈 집의 5남매 중 막내인 저는 새 옷이 없

었습니다. 큰누나가 입던 옷이 그대로 물려 내려와 내가 입는 옷은 언제나 여자옷이였습니다.

먹을 꺼리가 따로 있나요? 김치면 만족하고, 가끔 아버지 술 담그신 포도주 찌끄리가 그렇게 맛있었고, 원미산 중턱에서 케온 칡뿌리가 맛있었습니다. 그렇게 먹고 싶던 바나나. 정말 일 년에 한번 먹을 기회가 있다면 다행이였습니다. 어린시절 제 별명은 백원만이였습니다. 늘 백원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엄마, 백 원만” 하며 손을 벌려봤습니다.

늘 받지는 못했지만, 백 원을 받아서 하고 싶은 것이 많았죠. 딱지를 사고, 구슬도 사서 동네 친구들과 놀고 싶었습니다. 지금도 생각납니다. 2001년 말까지 우리 집은 흙벽을 쌓아 지은 오래된 기와집이였습니다.한겨울 갈라진 벽 틈으로 찬바람이 들어오면 벽지로 발라 찬바람 막고, 개미가 살고 있는 곳에 모기약 뿌리던 우리 집. 살아오면서 싫지는 않았지만, 좋지도 않았다. 사춘기때 “난, 왜 이렇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나” 신세 한탄을 하며 울어본적도 있습니다.하고 싶은 것도 못하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어본 저의 어린 시절. 난 그 어린 시절을 내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습니다. 부자는 아니어도 가난하고 싶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훌륭한 재테크인 절약을 통해 가난의 챗바퀴를 끊으려 합니다.제가 절약을 가장 훌륭한 재테크라 한 것처럼 저는 \\'절약\\'을 실천하면서 경제적인 기반을 다질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섞었던 나

20살, 전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갈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월급치고는 적지만, 내가 쓰기엔 큰 월급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전 돈을 벌어도 쓸줄을 몰랐습니다. 배운 것이라곤, "아껴야한다"라는 부모님의 말씀외에 경제적인 지식은 전무한 상태였죠.

어린시절 못써본 것에대한 복수라도 하듯 월급이 들어오는 즉시 써버렸고, 남아있는 것은 빈 지값과 돈을 벌어야겠다는 욕심뿐 돈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어떻게 벌어야하는지 아무런 방법도 몰랐습니다.

시간은 흘러 2년여의 회사생활이 지났어도 제게 남은 것은 빈지갑과 돈욕심뿐 이였습니다.

그리고 군에 입대했죠. 군에서 절제라는 단어를 몸에 익혔고 제 나름대로의 미래계획을 정한 후 전역하였습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 입사했고, 습관처럼 일찍일어나 열심히, 하면된다는 각오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며 한달을 보냈고, 두달을 보냈습니다. 저에게 월급이 남아 있다더군요. 누구의 말처럼 한번에 톡털어도 그만인 소중한 돈!

 

이미 부모님께 배울 것은 다 배웠다. 아껴보자.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제 꿈을 이루기 위해 친구들과의 만남도 자제했습니다. 사고 싶은 것, 먹고 싶은것, 하고 싶은것 다 참아가며 한푼, 두푼 모으고 또 모았습니다. 전화요금 아끼려고 분실신고 매달 하며 요금을 줄였고, 점심값 아끼려고 도시락싸며 다녔고, 차비도 아끼려고 될 수 있는 한 걸어다녔습니다.

아르바이트 보다는 능력을 인정받는 사원이 되기 위해 머리 싸매고 노력했고, 3년이 조금 지난 어느날 나의 첫번째 꿈을 이뤘냈습니다. 살고있던 오래된 집을 허물고 꿈처럼 느껴지던 집을 지은 것이죠. 가난으로 힘들었던 60년을 사시던 어머님 소원이자 저의 소원이고, 제 가족이 앞으로 살아갈 꿈같은 집이였습다. 유행처럼 번지던 재테크들, 주식, 부동산등은 생각해본적도 없고, 오로지 단 하나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하지만, 가장 훌륭한 재테크인 절약을 통해서 입니다.언젠가 저를 붙잡고 이야기 하시던 사회의 선배는 이런말을 했었습니다. "내가 벌어 모으는 돈보다 세상이 더 빨리 크기 때문에 직장인은 꿈을 이루기 어렵다고,," 틀린말은 아니지만, 그 선배는 겪어보지 못한것이 있습니다. 절약을 실천하는 것은 돈을 모은다는 것보다 두배더 벌수 있다는 것을요.

 

대왕소금의 성공재테크

시간이 흘러 내 생의 첫 번째 집에서 제 딸아이가 태어났고 아내의 소원인 아파트로 이사가기위해 다시 또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이젠 안먹고 안입고가 아닌 제가 같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쪼개어 본업 외에도 저와 함께 평생을 같이 할 친구들과 함께 수입경로를 분산하였습니다.

작은 홍보회사를 세워 인터넷을 활용한 광고컨텐츠 사업을 같이 하며 본업에서 받는 급여보다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짠돌이카페를 운영하다보니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70만 회원의 대표로서 소비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광고주가 아닌 소비자가 원하는 광고컨텐츠를 기획.제작하여 진행하는 작은 일이지만, 소비자의 반응은 당연히 좋을 수 밖에 없었답니다. 그렇게 시작한 작은 회사는 크진 않지만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2년만에 34평 아파트 구입 성공

불과 2년만에 아내가 꿈꾸던 34평 아파트를 구입하게 되었고 지금도 전 이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집에서 앞으로도 오랬동안 저의 꿈이자 아내의 꿈, 그리로 제 아이의 꿈을 키우며 살 것 같습니다.가난했던 어린시절이 있었기에 전 가난이 싫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부모님의 어려웠던 상황을 보며 부모가 되면 어렵다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제가 부모가 되었고, 제 아직 어린 저의 딸이 부유하진 않지만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도 가난만큼은 물려주지 않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해야겠죠.

 

제 이야기를 듣는 분들께 말하고 싶습니다.

 

“현재의 자신을 뛰어넘고 싶다면 절약생활을 실천” 하기를.. 생각보다는 즐거운 일이란 것을..

 

2010년부터는 작은성공을 이루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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