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는 빈민구제병원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도시적 환경에서 성장했다.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인간내면을 탐구하고 시대적 모순에 고민하는 작품을 썼다. 그는 28세 때 혁명적 사상을 경계하여 황제가 일으킨 페트라셰프스키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특사로 감형되어 시베리아로 유형을 갔다 10년 만에 풀려났다.
‘죄와 벌’로 대표되는 후기의 대작들은 정치적, 사회적, 사상적 문제를 반영하고 인간존재의 근본문제를 다룸으로써 20세기 소설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는 때와 사람에 따라 양극단의 평가를 받아왔다. ‘휴머니즘의 설법자’, ‘영혼의 심연을 파헤친 잔인한 천재’로 불리었고, 때로는 실존주의의 창시자로까지 여겨지기도 한다. 신과 인간의 문제, 인간 원죄의 문제 등을 다룬 그는 단순한 작가가 아니라 심리학자, 종교학자이고 철학자였다.
톨스토이는 명문 백작가의 아들로 태어난 귀족이지만 귀족의 특권을 포기하고 자신의 농노를 해방시키고 고향에서 농민학교를 세워 가난한 농민의 자녀들을 교육시켰다. 그는 ‘바보 이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같은 소설을 통해 귀족들의 과다한 재산 소유로 대다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사는 현실을 비판하여 귀족들의 미움을 샀다. 그 유명한 ‘참회록’도 귀족들의 압력으로 출판금지가 되어 러시아 민중들은 필사본으로 읽었고, 해외에서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는 러시아정교회를 비판하여 파문을 당했다.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했던 그는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저작권까지 포기했다. 부인과의 충돌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그는 82세에 방랑길에 오른 지 20여일 만에 객지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