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청년 바보의사를 아십니까?.......
종교를 지닌 분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비종교인이 종교 관련 책을 읽는 것은 엄청난 고역이 될 수 있다. 한 지인은 “예전에 독실한 기독교를 믿는 친구가 있었는데, 취미가 기독교 도서읽기였는데, 정말 대화가 안 되었어요.”였다. 비유하자면, 군대에 다녀온 남자가,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는 여자 친구에게 군대의 족구와 축구 이야기를 계속 하는 것과 같다는 이야기이다.
“스포츠는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건강에도 좋은 것인데, 어째서 자기는 스포츠와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짜증을 내는 것이지?”
남자 친구는 여자 친구의 생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진리의 말씀일지라도, 상대방이 그 말씀을 듣기 곤란한 상황과 원하지 않는 입장을 이해하지 않고 일방적인 진리의 말씀은 오히려 상대에게 부담스럽고 거부하게 되는 역작용을 일으키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독교 관련 서적 <그 청년 바보의사>란 책을 소개하게 된다.
고려대 의학과 91학번. 고려대 대학원 의학과(석사수료, 박사과정). 내과전문의였던 그 청년은 서른넷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그는 유명한 대학병원세서 근무하는 명망가나 의료계의 권위자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학계에 뚜렷한 업적을 남긴 의학자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가 세상을 떠나고,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이 책은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어째서일까? 신앙인들은 그의 헌신적인 신앙공동체의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다루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선 내가 어떤 책을 읽었다고, 모두 독후감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 책이 나에게 감명을 주거나, 그 책을 통해 어떤 깨달음이 다가왔을 때, 나는 비로소 독후감을 쓰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그 청년 바보의사>에 대해 무슨 감명과 깨달음을 얻었기에 이 글을 작성하게 되는 것일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나는 이 책을 종교적 서적이 아닌, 철학적 관점에서 해석하고자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보청년(이 책의 내용에 충실해서 호칭을 정했음을 양해하시기 바람)은 의과대에 진학해서, 전공의 시험을 앞두고 시간에 쫓기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기도의 시간만큼은 철저히 고수했다. 또한 선배의사에게 혼나는 일이 중요한 것인가? 환자를 돌보는 것이 중요한 것인가? 갈림길에서, 그는 하나님에게 인정받는 길을 선택한다. 그에게 하나님은 이 지상에서 어떤 권위와 권력 그리고 부와 명예보다 앞선 존재로 인식된다. 그는 자신의 성실한 삶도 하나님의 은혜와 격려로 돌리는 겸손한 청년이었다.
만약 내가 그의 환자였다면 참으로 헌신적인 의료서비스를 받았을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믿고, 절망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을 일을 해나간 청년의 삶은 숭고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나는 종교가 없는 한 아주머니를 알고 있다. 그 아주머니는 자신의 집 앞에서 도로 공사하는 아저씨들에게 커피를 갖다 주신다. 물론 커피는 공짜이다. 구청에서 시행하는 공사로, 어느 누구도 일하는 아저씨에게 커피를 갖다 주는 사람은 없었다. 오직 그 아주머니만 따뜻한 물과 커피를 갖다 주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내 집 앞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이 안쓰러워서였다고 한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아무런 대가도 없고, 특별한 신앙심도 없는 그녀였다.
그녀는 시간이 틈틈이 날 때면, 동네 노인정을 찾아간다. 고구마나 감자 혹은 옥수수를 삶기도 하고, 때로는 부침도 만들어가기도 한다. 무슨 이유로 노인들에게 찾아가느냐고 물었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처럼 안쓰러운 생각이 나서라고 했다. 그녀의 ‘안쓰러운 생각’은 논어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이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정신이다. 나는 종교를 갖고 있던 그렇지 않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바보청년’과 ‘바보아줌마’처럼, 일상생활 속에서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랑의 실천에 대해 종교보다 더 성스럽게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물론 눈을 감고 귀를 닫으면 자신의 문제 밖에 보이지 않고 들릴 수밖에 없다. 열심히 공부하고 직장에 다니는 것도 보람된 일이겠지만, 누군가를 위한 마음으로 하는 공부와 직장 생활은 더 값진 것은 아닐까? 나는 <그 청년 바보의사>를 읽으면서, 참된 삶의 정신은 바로 자신의 정체성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 보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일하는 그 정신, 그것의 상징적 표현으로 ‘하나님의 계시’도 되고, ‘부처님의 마음’도 되고, 그냥 ‘안쓰러운 생각’도 될 수 있다. 그 정신이 살아 있는 한, 인간의 세상은 살맛나는 것이 아닐까? 나는 특정한 종교를 믿지 않으면, 불지옥에 떨어진다, 천국에 갈 수 없다, 혹은 아수라장이 된다는 협박을 하는 사람들의 그 간절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만 동의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 협박은 나의 자발성을 짓밟은 언어적 폭력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다른 삶의 방식도 인정하는 넓은 마음이 진정한 인류애의 실천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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