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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좌 완등' 오은선 대장의 '도전 인생'~

carwang |2010.05.11 21:01
조회 2,317 |추천 0
◈.'14좌 완등' 오은선 대장의 '도전 인생'.◈ 154㎝ 철녀, 8000m 넘는 '거인'이 되다.
5학년 때 처음 산에 매료… 공무원 일자리 던지고 93년 에베레스트 첫 도전
'죽음의 문턱'까지 수차례… 2년간 4개씩 '최고봉' 정복

오은선(44·블랙야크) 대장은 27일 똑바로 서 있기조차 어려운 칼날 같은 안나푸르나(8091m) 정상에서 두 손을 모아 합장(合掌)했다. 여성 산악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오 대장은 희박한 산소에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도 "고맙습니다" 인사를 연발했다. 가족과 국민의 응원에 대한 감사였고, 끝내 자신을 허락해 준 안나푸르나의 여신(女神)에 대한 인사였다.


▲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들며‘철녀(鐵女)’란 별명을 얻은 오은선 대장은 한 편으론 눈물도 많은 여린 성격이다. 지난해 4월 칸첸중가 등반을 앞두고 환하게 웃고있는 오은선 대장. / 블랙야크 제공 1m54, 48㎏의 작은 체격이지만 오씨는 어린 시절부터 체력과 순발력이 남달랐다. 최씨는 "은선이는 시골 담벼락을 넘어다닐 정도로 활달했고, 예방접종 빼고는 병원에 간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도 어머니는 고기보다 나물을 좋아하는 딸이 산을 타다가 힘이 떨어질까 봐 1년 내내 홍삼과 곰국을 달였다. 최씨는 "이제 은선이가 올바른 사람 만나서 가정을 일구고 사는 것을 보면 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오 대장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 오수만(69)씨의 손에 이끌려 도봉산에 갔다가 산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대학 산악부에 들어간 오은선씨는 2학년 때인 1986년 북한산 인수봉(810.5m)에서 처음 암벽 등반훈련을 했다. "암벽을 처음 경험하고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꼈다"는 오씨는 녹초가 된 부원들 사이에서 펄쩍펄쩍 뛰어다니며 기뻐했다. 이때부터 '날다람쥐'라는 별명이 붙었다.

◆에베레스트의 영광과 고통

대학 졸업 후 서울시교육청 공무원(8급)으로 일하던 오은선씨는 1993년 에베레스트 여성원정대 모집 공고를 보고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에베레스트 정상(8848m)을 밟지 못하고 캠프3(7300m)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4년 뒤인 1997년 오은선은 가셔브룸Ⅱ(8035m)에 오르며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첫 도전 때 실패의 쓴 잔을 안겼던 에베레스트가 오은선 산악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2004년 5월 아시아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 단독 등정에 성공하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오씨는 정상에서 내려오다 마지막 캠프(8300m)를 앞두고 탈진해 죽음의 문턱까지 가기도 했다.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데, 편안한 기분이 들면서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산에서 죽기는 싫었어요." 다른 원정대의 셰르파에게 발견되지 않았다면 얼어 죽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오 대장은 2008~2009년에 매년 4개씩 8000m급 봉우리를 오르며 '철(鐵)의 여인'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14좌 완등의 마지막 고비인 안나푸르나는 쉽게 오 대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작년 10월 그는 두 차례 안나푸르나 공략을 시도했지만, 1m 앞이 보이지 않는 '화이트 아웃'과 혹한에 굴복해 발길을 돌려야 했다. 27일 마침내 안나푸르나의 정상에 선 오은선 대장. "14좌 완등에 성공하면, 행복하게 산을 오르는 것이 무엇인지 여유 있게 생각해 보겠다"던 그의 소박한 꿈도 함께 이뤄질 수 있게 됐다.  '히말라야 14좌' 모두 오른 지구촌 첫 여성 오은선장민석 기자몸집은 보통, 산소 섭취는 2배
고산등반 남자보다 높고 男 철인3종 정상급 비슷… 2개봉 빼곤 무산소 등정세계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14좌(座) 완등에 성공한 오은선 대장(44·블랙야크)은 산악인들 사이에서 '날다람쥐'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작은 체구에 날랜 움직임으로 '속공(速攻·베이스캠프를 출발해서 중간 캠프를 줄여가며 3~4일 만에 정상을 밟는 등정법)'을 펼치는 모습이 워낙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키 154㎝, 체중 48㎏으로 여성 산악인 중에서도 작은 편인 오은선 대장이 히말라야 14좌에 모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한국체육과학연구원 운동생리학 실험실의 측정 결과를 바탕으로 '작은 거인' 오은선 대장의 신체적 특징을 살펴봤다.

■무산소 등정 비결은 심폐 기능

체육과학연구원 이 오은선 대장의 신체 능력을 측정한 것은 지난해 9월. 8월 3일 가셔브룸 Ⅰ봉(8068m) 등반에 성공하고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체육과학연구원 성봉주 박사는 "피로 회복이 제대로 안 된 상태였는데도, 고산 등반에 뛰어난 신체적 특징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자료=2009년 체육과학연구원 운동생리학 실험실, 사진=블랙야크 외형적인 수치는 일반인과 큰 차이가 없었다. 체지방률(15.9%)과 근육량(33.9㎏)은 정상 수준으로, 저지방 근육형에 해당했다. 좌우 악력(손아귀 힘)은 23.7/23.3㎏으로 보통 수준이었고, 유연성도 성인 여자의 평균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오 대장은 심폐 기능에서 탁월했다. 최대산소섭취량(단위:mL/㎏/min)은 단위 시간 내에 얼마나 많은 산소를 섭취할 수 있느냐를 나타내는 수치로 오랜 시간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심폐지구력과 직결된다. 오 대장은 이 최대산소섭취량에서 63.8을 기록했다. 일반적인 고산 등반자의 평균치(남자 57.9, 여자 55.2)보다도 크게 앞섰다. 정상급 남자 철인 3종 선수들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히말라야 14좌 중 12개 봉우리를 무산소 등정으로 오른 비결도 이런 산소섭취능력에 있다는 게 체육과학연구원의 설명이다. 오 대장은 에베레스트(8848m)와 K2(8611m)를 제외하고는 모두 무산소 등정으로 정상에 올랐다. "대자연 그대로를 느끼고 싶어 무산소 등정을 고집한다"는 오 대장의 생각도 이런 신체 능력이 뒷받침돼 가능했다.

▲ 오은선 대장이 27일 안나푸르나 정상을 향해 걷고 있다. 점선 안의 위에서 둘째 사람이 오 대장이다. / 연합뉴스 피로 회복속도를 나타내는 젖산 회복률에서도 오 대장은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운동 30분 후 오 대장의 젖산 회복률은 71.85%로, 일반인의 50%를 크게 뛰어넘었다.

■좌우 무릎의 불균형을 이겨내다

하지만 오은선 대장의 신체적 약점도 적지 않았다. 특히 오 대장의 무릎 근력이 좌우 불균형을 보였다. 오른쪽 다리의 무릎을 펴는 힘이 왼쪽보다 22%가량 약했다. 무릎을 당기는 힘 역시 오른쪽 다리의 힘이 왼쪽보다 14% 부족했다. 2005년 스키를 타다 오른쪽 다리가 부러진 후유증 때문이다. 성봉주 박사는 "좌우 무릎의 근력 차가 심해 고산 등반 때 에너지 사용이 비효율적일 것"이라고 했다.

청각 능력도 둔한 편이다. 보통 사람은 빛보다 소리에 대한 반응이 빠른 편인데, 오은선 대장은 소리 반응(0.295초)이 빛 반응(0.245)보다 느렸다. 산악인들은 8000m 이상의 고지(高地)는 생각으로 자신의 몸을 조절할 수 없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2000년 아시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했던 엄홍길씨는 오 대장의 성공 요인으로 신체 능력을 뛰어넘는 강인한 정신력을 꼽았다. 엄씨는 "해수면 산소량의 1/3 수준밖에 되지 않는 8000m 이상 봉우리에선 전문 산악인도 폐가 찢어질 듯한 고통을 느낀다"며 "오 대장의 집념이 아니었으면 이뤄내기 어려운 성과"라고 말했다.  스페인 파사반, 턱밑 추격…남녀 통틀어 20번째오은선 기록 어느정도?오은선대장과 '여성 최초 14좌 완등'의 기록을 다퉜던 산악인은 스페인의 에드루네 파사반(37)과 오스트리아의 갤린더 칼텐브루너(40)였다. 2007년까지만 해도 칼텐브루너(10개봉 등정)와 파사반(9개봉)이 크게 앞섰다.

하지만 오 대장은 2008년과 2009년 각각 4개봉씩 오르는 '속공'을 펼치며 추월에 성공했다. 국내 라이벌이었던 고미영씨는 2009년 7월 낭가파르바트에 오르며 11좌 등정에 성공했지만 하산하다 숨졌다.

지난해 8월 가셔브룸 Ⅰ봉에 오르며 13좌 등정을 이룬 오은선 대장은 9월 안나푸르나 등정에 실패하며 파사반에게 쫓기는 입장이 됐다. 파사반이 지난 4월 안나푸르나 정상에 서며 13좌 등정에 성공했고, 오는 5월엔 하나 남은 시샤팡마에 도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오 대장은 27일 안나푸르나 정상을 밟으며 세계 산악사를 다시 썼다. 미국 ABC 방송 등 외신은 "한국의 산악인 오은선이 스페인의 라이벌을 누르고 히말라야 14좌에 오른 최초의 여성이 됐다"고 보도했다.

한국은 오 대장의 이번 등정 성공으로 이탈리아 (3명)를 제치고 히말라야 14좌 완등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나라가 됐다. 엄홍길씨가 2000년 아시아 최초로 14좌 완등자가 됐고, 이후 박영석(2001년)·한왕용(2003년)씨가 뒤를 이었다.

오 대장은 "히말라야 14좌를 등정한 20인에 들고 싶다"는 소원도 이뤘다. 히말라야 14좌 완등은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가 1986년 처음 성공한 이후 지난 17일 안나푸르나에 오른 주앙 가르시아(포르투갈)까지 19명뿐이었다.

오은선 대장에게 영광을 안긴 안나푸르나는 그동안 한국 산악계와 질긴 악연이 있던 곳이었다. 갑작스러운 눈사태와 곳곳의 크레바스(빙하 위 균열) 등 위험요소가 많은 안나푸르나에서 한국 원정대 16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1993년 국내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지현옥씨도 1999년 안나푸르나 정상에서 내려오다 숨졌다. 93년 당시 지현옥씨가 이끌던 원정대의 대원으로 활동했던 오 대장은 11년 만에 선배의 한도 풀었다.  [사람과 이야기] 앞장선 셰르파, 왜 등반가 대접 못받나김동석 기자돈 받고 길 안내… 산소 마스크 자유롭게 착용해 체력 손실 적어오은선대장의 안나푸르나 등정을 TV로 지켜본 시청자들에겐 몇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있었다. 그 하나가 오 대장을 돕는 셰르파들이었다. 오 대장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힘들어 보였지만 셰르파들은 앞장서서 길을 안내하고, 등반 로프를 잡아주는 등 별로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셰르파들이 고산에 도전하면 더 쉽게 등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오 대장의 안나푸르나 등정에 함께하며 길을 안내한 셰르파는 '베테랑' 옹추 다와(39)와 체징(29)이었다. 이 중 옹추 다와는 지금까지 오은선과 14좌 중 6곳을 함께 오른 단짝이다. 옹추 다와는 개인적으론 14좌 중 10곳에 올라 베테랑 산악인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이들 셰르파들은 도전이 아니라 생계를 위해 산에 오른다는 점에서 등반가와 구별된다. 대부분 셰르파들이 고산지대 출신이어서 고지 적응에 별문제가 없고, 등반로를 워낙 잘 알기 때문에 프로 등반가로 성공할 여지는 충분하다. 하지만 스폰서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8000m급 산을 오르는 팀을 꾸리려면 1개월에 2억원가량의 돈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네팔의 기업 중에서는 이런 돈을 선뜻 내고 셰르파를 전문 등반가로 육성할 곳이 마땅치 않다. 이들은 산소 마스크도 자유롭게 쓰기 때문에 체력 손실이 적다.

정상에서 사진을 찍어 증거를 남기는 일도 셰르파의 역할이다. 칸첸중가(8586m) 등정 때는 셰르파가 찍은 사진이 불명확했고, 오 대장은 정상을 제대로 밟은 것이냐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한편 이날 14좌 완등을 달성한 오은선은 안나푸르나 정상에 10분가량 머문 뒤 하산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례적으로 긴 시간이라고 블랙야크 측이 밝혔다. 평소엔 정상에 머무는 시간이 5분도 안 되며, 대부분 등정 후 사진을 찍고 곧바로 하산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정상에 머무는 시간이 짧은 것은, 고지대에 오래 머물수록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하산 때 위험하기 때문이다. 오은선은 "정상에 오르면 야호 하고 외칠 기력도 없다"고 말한 일이 있다.

이날 오은선의 등정 장면을 계속 잡아낸 카메라도 관심을 끌었다. KBS 취재팀은 무게 1㎏의 6㎜ 소형 HD 카메라를 개조해 사용했다고 한다. 양기성 KBS 영상제작팀 부장은 "등정 촬영용 카메라는 생중계를 위해 마이크로웨이브 장치를 부착해 개조한 것"이라며 "카메라의 신호가 캠프1과 베이스캠프, 인공위성을 거쳐 안방까지 전달됐다"고 말했다. 오은선, 히말라야를 품다[여성최초 14좌 완등] 세상 꼭대기에 올라… 고미영, 너를 보낸다
"미영아, 너의 무덤 앞에서 내가 약속했잖아 꼭 너와 함께 오른다고…
보고 있니? 난 가슴에 네 사진을 품고 왔어
이 산, 이 하얀 눈 속에 너의 사진, 묻어두고 간다"27일 해발 8091m의 안나푸르나 봉(峯)을 오르는 오은선 (44·블랙야크) 대장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기온은 영하 30도에 초속 12m의 강풍까지 몰아쳤다. 해발 8000m부터는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숨을 쉬기도 어려웠다. 이번에도 무산소 등정을 고집한 오 대장은 "이대로 포기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힘겨워 보였다.

▲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꿈을 이룬 오은선 대장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지난해 숨진 후배 산악인 고미영의 사진을 가슴에 품고 27일 안나푸르나 정상에 오른 오대장은 태극기를 흔들며 감격에 겨운 듯 눈물을 쏟았다. 오 대장은“기쁨을 대한민국 국민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고미영의 사진을 정상에 묻고 내려왔다. /KBS 제공 그러나 오은선 대장은 멈출 수 없었다. 그의 품 속에는 한 살 적은 후배 산악인 고미영 씨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둘은 히말라야 8000m 이상의 고봉 14좌(座) 완등을 놓고 경쟁하던 라이벌이었고, 든든한 동반자였다. 그랬던 고씨가 지난해 7월 낭가파르바트 하산 도중 발을 헛디뎌 추락사했다. "경쟁에만 파묻히지 말고 손잡고 안나푸르나에 오르자"던 그들이었다. 오 대장은 안나푸르나 등정에 나서기 전 전북 부안의 고미영씨 묘소를 찾아, "여성 최초의 14좌 완등 꿈을 꼭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이미 13좌에 오른 경쟁자 에드루네 파사반(스페인)이 내달 초 시샤팡마(8027m) 도전을 예고한 상태였다.

▲ 함께 껴안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2008년의 오은선(왼쪽)과 고미영. /정정현 기자 전날 캠프2에서 캠프3으로 오르던 중 발생한 눈사태로 아찔한 위기를 넘긴 오 대장은 이날도 한계 상황을 딛고 13시간 15분간 악전고투한 끝에 등정에 성공했다. 불교신자인 오 대장은 정상에 태극기를 꽂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등정을 허락해 준 안나푸르나 여신(女神)에게 감사하는 눈물이었을까.

지난 1997년 7월 가셔브롬II (8035m)에 오른 이후 12년 9개월 만의 히말라야 14좌 완등이었다. 오 대장은 14좌를 완등한 20번째 인물이자, 세계 최초의 여성이 됐다. 오 대장은 안나푸르나 정상의 만년설 속에 고미영의 사진을 묻고 내려왔다.  '대단한 카메라맨'… 非전문가로 히말라야 숱하게 등반박세미 기자 ▲ 정하영 KBS 촬영감독 "여기가 히말라야 정상입니다~. 여성 최초 완등입니다. 흐흑."

영하 30도, 초속 12m의 강풍이 부는 가운데 정하영(44)  KBS 촬영감독의 목소리가 흐느끼듯 떨렸다. 오은선 대장이 안나푸르나(8091m) 정상에 태극기를 꽂는 순간, 13시간 넘게 오 대장을 힘겹게 따라오던 그도 거기에 함께 있었다.

그의 카메라 렌즈를 통해 오 대장의 안나푸르나 완등을 눈앞에서 보듯 생생하게 지켜본 시청자들은 "오은선은 물론이지만, 저 카메라맨도 정말 대단하다"고 놀라워했다. 전문 산악인이 아니면서 1㎏ 남짓한 6㎜ HD급 소형카메라로 중계까지 하면서 안나푸르나에 오른 것이다.

1993년 KBS 19기 공채로 입사한 정 감독은 산악 다큐 촬영과 인연이 깊었다. 1999년 엄홍길 대장의 칸첸중가 등반 생중계팀에 합류하면서 히말라야와 첫 인연을 맺었고, 지난 10년간 7회 이상 히말라야에 올랐다. 2004년 카메라 기자로는 이례적으로 정부로부터 체육포장을 받기도 했다.

그가 오은선 대장의 히말라야 14좌 등반 촬영에 합류하게 된 건 지난해부터다. 오은선 대장의 12좌 낭가파르바트(8126m), 13좌 가셔브룸 Ⅰ봉(8069m) 등 히말라야 4개 정상 등정 과정을 밀착 취재해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지난해 10월 오 대장이 안나푸르나 첫 등정에 실패했을 때도 함께 했던 정 감독이었다.

정 감독은 수년 전 아내를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먼저 떠나보내고 초등학교·중학교에 다니는 두 딸을 혼자 키우며 마음고생이 심했다. 하지만 그는 오은선 동행취재를 위해 강도 높은 동계 빙벽 훈련을 받는 등 이번 취재에 애착이 강했다고 KBS 관계자는 전했다.

KBS는 이번 오 대장의 안나푸르나 등반 생중계에 총 23명의 방송단을 꾸려 네팔 현지에 파견했고, 소형카메라와 ENG 카메라 등 총 4대의 카메라를 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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