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침범했던 6 25전쟁
이원재
|2010.05.18 00:55
조회 1,047 |추천 0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20분, 대남적화통일을 위해 대규모 포사격으로 38선 전역에 걸쳐 일제히기습공격을 감행하였다. 새벽잠에 깬 병력들은 이유도 모른채 전투준비태세를 갖추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남한에 단 한대도 없던 전차와 자주포를 북한은 소련제SU-76 자주포 176문, T-34탱크를 무려 242대나 보유하였다. 당시 남한은 흔히있는 산발적인 무력충돌로만 생각하였다. 하지만 북한은 10개 보병사단 1개비행사단 등 20만군을 남침에 투입하였다. 개전첫날, 우리 군은 병력 10만명중에 5만명 가까이가 휴가나 외출, 외박 등 그리고 후방작전에 투입된 관계로 병력 5만명으로 싸워야만 했다. 기습작전 달성이 확실해지자 김일성은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우리가 진행하는 이 전쟁은 조국의 통일을 위한 정의의 전쟁이므로 전체조선인민은 투쟁에 궐기하라며.. 전쟁을 일으킨 주체가 자신임을 밝히고 있다 또 11시쯤에 남한에 선전포고를 하고 11시 45분쯤에는 평양방송을 통해 남한이 해주를 공격하였기때문에 인민군은 반격에 가한 것이라며 책임을 남한측에 떠넘기기까지 했다. 이어서 오후에는 김일성이 직접방송을 통해 리승만괴뢰정부의 군대가 침략전쟁을 일으켰으며, 이에 공화국경비대와 인민군대에게 반격에 가하라고 명령을 지시하였다고 하여,, 북침을 주장하기까지 했다. 그 근거로 국군의 해주진입설을 내놓고 있으나, 이것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6.. 25전쟁은 김일성이 발의하고 스탈린이 승인한 민족최대의 비극전쟁이였다. 북한은 한반도 공산화를 포기하지 않고 1968년 1,21사태,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침투사건, 버마아웅산 폭탄테러사건, 제1땅꿀,제2땅꿀,제3땅굴 제4땅꿀, 8.18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박정희대통령저격미수사건, 서울올림픽을 방해할 목적으로 KAL기 폭파사건, 강릉무장공비침투사건, 연평해전, 서해교전, 금강산관광객피격사건, 황강댐무단방류치사사건, 대청해전, 등 크고작은 2800여회의 무력도발과 4000여회의 정전협정 위반을 저질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