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6월 17일에 아무것도 모른채 102보에 입대에서...
2010년 5월 04일, 신병교육을 마치고 배출되었던 7사단 3연대 3대대 10중대에서 전역을했습니다.
해병대에 가고 싶었으나 시력과,간기능 이상으로 신체등급 3급 판정을 받아서
아예 서류심사 대상에서 제외되어버린 저는 그냥 육군으로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처음..2007년 겨울에 날짜 지정으로 자신의 입영 장소를 정할때. 102보충대가 춘천에 있는 줄도 몰랐고
그곳으로 가면 강원도에서 뺑뺑이라는 사실 조차도 모르고 지원을 했습니다.
후일에.. 내가 군생활을 강원도에서만 해야한다는 사실을 알았던 순간에.. 그 충격이란..;;[
그렇게..집까지 너무나도 멀었던 관계로.. 환송하는 사람 없이 홀로 쓸쓸하게 입대했던 102보충대에서
나와 같은 사람 몇천명을 보았고..그곳에서 강원도 7사단이란곳에 배치받게 되었습니다.
그때 6개 사단으로 신병 분류를했었는데.. 이기자부대(27사단)에 안걸린것 만으로도 정말 감사해 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사실.이기자랑 칠성부대는 같은 주둔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강원도 화천..ㅡ,.ㅡ>
신병교육대에서 태어나서 받아본적도 없는.. 여러가지 교육을 받고
내가 누리던 소소한 일상들.. 심지어 집 화장실에 있던 비대를 쓰는것 조차도 얼마나 소중할 일상 이었는지 깨닫고
엄니의 편지에 소리내어 끅끅 거리며 울었던 기억들..
신병교육을 받으면서 조차도 많은 것을 느꼈었습니다.
그리고 신병교육 면담중..
조교를 해보겠냐는 교관님의 제의에..
할수 있다면 해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자대배치날 저는 이미 정해진대로 조교가 되었습니다.
< 신병교육 5주차에 찍었던 사진들 >
그렇게 군생활을 시작했는데..
군생활을 하는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나중에야 알게된..여자친구의 고무신 거꾸로 신기..
식판 세개 분량의 밥과 몇만원짜리 냉동을 선임의 강요에 못이겨 다 먹고 변기통에 대고 웩웩 거리던 기억..
150일만에 간부BOQ에 내려가 잠깐이지만 인터넷을 해보고 신기해 했던 기억..
막내때 화장실에서 몰래 숨어 부라보콘 하나를 먹으면서 서러움에 몰래 울었던 기억..
생일이라고 소대 선임들에게 생일빵 맞고 다리 병신된 기억..
제식,화생방,개인화기 교육 연구강의를 다 통과하고 휘장 수여식을 할때 자부심에 가득 찼던 기억..
처음 박격포 조포훈련을 하고 포집체에 가서 고폭탄,조명탄 사격을 하고 신기해 했던 기억..
내리막 커브길에서 트럭 브레이크 파열로 인해서 황천행 갈뻔 했던 기억..(그것도 두번이나..)
신종플루 터졌을때 의증환자로 격리되어서 일주일간 혼자 독방에서 지냈던 기억..
몇번이나 훈련병 소원수리에 긁혀서 자괴감에 빠졌지만..훗날 훈련병의 편지한통,한통에 위로 받았던 기억..
영하 28도의 날씨에서 야간 위병소 근무를 서면서 몰래 뽀글이 해먹고 담배 피우며 헤헤거리던 기억..
캐말년에 훈련병 탄받을때 오발사로로 파편이 얼굴에 튀어 다칠뻔 했던 기억..
말출 2주 남겨두고 보안검열때 mp3걸려서 휴가짤릴번한 기억..
< 세상이 내것같았던 물상병때.. >
< 물상병때 훈육.. 지금 이 녀석들은 상병일거다..ㅋㅋㅋㅋ >
< 09-2기 신병 야외종합 훈련때... 겨울산은죽고싶을만큼 춥다. >
< 존경(?) 을 넘어서 숭배했던 선임 휘동이형과..ㅋㅋ 이때 내 몸무게가..아마..90넘었을걸..?>
< ㅋㅋ 이건 뭐..그냥..ㅋㅋ >
< 훈련병 따위가 쓴 10중대 공략집..ㅋㅋㅋ 팔굽혀 펴기 얼차려가 내가 악마가 된 시발점이었다.>
2년 이라는 시간은 정말 긴 시간입니다.
2년만에 핸드폰으로 마음껏 인터넷을 할수 있는 세상이 되었고
이등병 막내때 처음갔던 삼겹살집의 어린 꼬꼬마 딸이 기어다니다가,
이제는 걸어다니며 말을 할수 있을만큼의 시간이지요..
그 긴 시간동안 멍하니 있다가 전역할지, 조금이라도 더 배우거나 자신의
결점을 고쳐서 나올지는 자신이 선택할 몫입니다.
군대를 가고.. 상병즈음에 어머니께 이런소리를 들었습니다.
" 군대 보내니까 사람되서 왔다 " 라고요.
물론 그 전에도 견공 같은 삶을 살았던것은 아니였지만
그 전의 삶은 확실히 나 자신만을 위한 개인적은 사고와 행동을 많이 했던것 같습니다.
군대에 가서야 하나보다는 전체를 보는 시각을 길렀고,
남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되새기며 그것을 고치려 하였고,
어떠한 조직을 이끌기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을 해야하는가도 많이 배웠습니다.
2년을 같이한 후임들에게, 속칭 X같은 선임이었고, 훈련병들에게는 악마같은 조교였겠지만..
그런 존재가 없으면 조직이 돌아가지 않는다는걸 알았던 순간, 그것을 감수하고라도 했던 선택이었습니다.
비록 2년의 군생활동안..
타인의 기억에 남았던 것은 " 저 새끼 강아지 "라는 욕과..
20Kg나 늘어버린 몸무게..
미쳐버린 얼굴 피부 밖에는 없지만..
그럼에도 전역했으니..행복합니다.
2년동안 많은 편지와.. 쓸대없는 군인의 전화를 받아주셨던 모든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정신적으로후원해 주시지 않았다면 정말 힘들었을겁니다.
< 여자친구 없는 와중에 이만큼이면.. 많이 받은거지 뭐..ㅋㅋ >
2년동안 추억이 샐수 없을만큼 쏟아져 나왔던 신병교육대 조교 생활이었습니다.
얼마전 전역자 1명 캐말년 병장 1명과 술자리를 했는데..
군대 이야기가 끊이 질 않더군요..
군대는 남자들에게 행복했던 기억도, 편했던 기억도 아닙니다.
그것을 보상받고자 떠들어 대는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20대의 길목에서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었기에..
서로 그 기억들을 회상하고, 또 회상하며 지금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것인지를 다시한번 일깨우는 것이지요.
지금이야.."에라..이런X 같은 군대.."라고 말하면서 친구들과 술한잔을 하지만..
훗날에..나이먹고 자식과 마누라가 기다리고 있는 중년의 아저씨가 된다면..
" 그래도 군대 있을때는 먹여주고 재워주니까 나름 편했는데.." 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그때 부끄럽게 생각했던 남의 모습이 혹여..나의 모습은 아닌지 다시한번되돌아보기도 하겠지요..
전역자의 주저리를 마치면서..
이 기억들이..한순간의 꿈이 이니었으면 좋겠습니다.
꿈이라면..
다시 군대를 가야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