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답답해서 올려본다.
익명이니 가정환경도 올려본다. 아는 놈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 때 기억을 지금은 많이 못하겠다.
일부러 잊어버리려고
했기 때문인지 글에 가감이 있지만
그딴건 능력있는 판님들의
판단에 따라 걸러서 보시길.
글솜씨 거지같으니 주의요망.
나에겐 특별한 아버지가 있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엔 어머니에게 무슨일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말씀은 많이 해주셨는데 많아서 기억이 안난다.
내가 태어난 후 이야기는 기억이 난다.
많은 가구(약20가구였나)가 세들어 사는 곳에서 우리도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대,여섯남짓 한 딸과 밥을 먹고 난 아기라서 품에 앉겨있었다.
아버지는 문을 열고 우리 세명에게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이려 했다.
어머니는 도망나와서 경찰서에 하룻밤 묶기로 했으나 '거절', 여관에서
하루를 보냈다.
어찌저치하다 내가 유치원생때. 아버지는 머리를 상큼하게
밟아서 하얀빛깔의 tooth를 내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초등학교1학년. 여태껏 단칸방에 4명이 자면서 살며, 푸세식 화장실도
써본 나로써는 침대같은 건 문명의 이기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나는 엎뜨려 숙제하고고, 누나는 만화책을 보고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말없이 할일하고 있는 우리에게 개소리르 읆어주셨다.
"뭐? 또0라이? 지금 나한테 그렇게 말했나?"드립에
콤보로 누나 멱살을 잡으면서 "다시한번말해봐라"이러고 있네.
슈발. 내차례다 숨이 콱 막힌다. "니가 그렇게 말했나?" 걍 버티니까 놔주드라.
아무튼 이런 병진같은 특별한 아버지. 놀고 먹을 수있는 곳 없냐며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병원에 넣어달라고 하신다. 정신병원에 넣어드렸다.
진단이 나왔다.의처증, 피해망상증, 불면증, 우울증, 편집증, 정신분열증 등등...
앓아온지 20년이 넘어 왠만한 전문적인 정신과의사가 아니면 병자인지 구별조차
불가능 하단다. 어쩐지 어머니보고 남자있냐고하고 이사하기전에 액자뒤에 잘 갈린
과도가 있더라. 그때가 내 나이 10살. 단칸방에 3명이 자고, 어머니가 벌고,
집도 싼건만 찾다보니 목욕시설은 없었다. 대중목욕탕 몇번가는 방법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씻기도 힘들어 머리는 떡지지 마련..이게 왕따의 근원이라 생각된다.
중학교때 일이다.
왕따인지 괴롭힘인지 모르겠다. 같다고도 볼 수 있겠다.
중1학년 때 왠 놈이 찝쩍대더라. 참았다. 어느날 점심시간
텅 빈 교실에 그녀석만 남아있다. 내 볼을 때리며 "마, 내가 니 애비다."
때려죽일놈 내 애비는 정신병원에 있다. 애비라는 말 드립하지마라.
다시 볼을 친다. "마, 내가 니 애비라고. 내말 안들리나?"
자존심 상하고 기분이 나빠졌다. 울쩍해졌다. 힘이 없던 나는 선생님에게
하소연을 했다. 이부분에서 욕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글지우지뭐.
그렇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2학년이 되었다. 버스를 기다리던중 그녀석이
인질잡듯 날 뒤에서 잡더니 오른손에 뾰족한 어묵꼬치 막대로 내 목을 찔러왔다.
점점 파고들길레 저항을 하여 그것을 부서트렸다. 중3이되자 그놈과 같은반이다.
그외에 쓰레기들이 같은반이 되었다. 초등학교6학년때 날괴롭히던놈이랑도 같은반이다.
그 녀석이 학기초중반 쯤 나에게 선빵을 날린다. "야 썩소. 썩소지어봐" 싫다고하자
한,두 놈이와서 내입을 강제로 잡아 웃는 모양이 되도록 만들었다.
어쩔때는 커터칼을 내 목에대로 썩소하라는 볖신생퀴도 있었다.
난 이런 장난에 못이겨내고 학교등교거부, 혹은 자살을 생각했다. 하루에도 몇번씩.
내 존재는 쓸모없는 쓰레기에 재활용할 수 없는 핵폐기물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학교는 꾸준히 다녔다. 괴롭힘은 계속됬고 보다못한 선생님은 그 아이들을
수업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자세히 기억안나지만 그러고 몇주정도 뒤 상담
선생님이 날 불렀다. 하루종일 같이 있으면서 신문지 길게 찛기 놀이를 하고 자빠졌다.
"어머~니가 더 길게 했네? 어떻게 했어?"
쌍욕하면서했지. 가해자를 격리하는 것이아니라 제일 간단하게 문제의 원인이자
피해자인 나. 한 명이니 날 격리시킨 것이다. 난 어른도 믿을 수없고, 친구도 믿을 수없다.
친구....안괴롭히면 그건 친구하고 생각한거다. 일종의 방관자들이지. 또한 수준낮다고
말할 수도 있는 녀석들.
우리는 석유를 뒤집어 쓰고있는데 주인집은 남일이라 구경하는
그때처럼... 방관자들은 남의 일에 웃고 즐기고 재미를 느낀다. 그때의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 거기 반학생들 대다수도 같이 속으론 웃고 떠들었을지 모른다.
만약 도와주기만 했다면 좋았을텐데...
그리고 그후 난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여전히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다.
누구의 얼굴을 마주볼수 조자 없다. 난 단지 상대의 목소리로 사람을 구별하고 있다..
왠지 위로를 받고 싶달까, 관심을 받고 싶달까...다시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