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6살 평범한 직딩이구요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 글솜씨가 서툴뿐만 아니라 읽기 전에 글이 많이 길 수도 있으니 양해해 주세요
저는 아무것도 없는 깡촌에서 6남매 중에 셋째로 태어나 15년 동안 자랐습니다.
딸이 4명이고, 아들을 못낳아서 할머니와 친척들에게 구박받는 세월속에 드디어 92년도에 5번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남동생은 자라면 자랄수록 지능이 점점더디어져갔고 결국 정신지체1급판정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현재19살로 보호의 손길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 합니다.
우리엄마는 옛날에 시골에서 시집와서 아버지에게 수도없이 개패듯이 맞고, 신발년아 썅년아, 욕지거리를 들으면서 결혼생활을 보냈습니다.
우리아버지는 조선시대의 사상으로 앞뒤가 꽉꽉막힌 너무나 보수적인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6남매도 아버지한테 개패듯이 맞고 욕설을 들으면서 자라왔고 우리6남매는 이젠 아버지로 보이질 않습니다. 단지 인간의 모습을 한 짐승이 설치고 있구나 하며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음 약하고 바보같이 부지런하기만한 우리엄마가 불쌍해서 몇글자 적어봅니다.
우리어머니가 많이 겪으신 사건중에 하나만 쓰겠습니다.어머니에게 들을 바로는 (물론 어머니 일기장에 씌여있지만) 할머니가 혼자 몰래 구석에서 밤을 까먹고 있었습니다.
우리 큰언니가 당시 4~5살정도였구요 어머니가 할머니에게 "세상에 손녀랑 같이 나눠먹지 혼자드시요..라고 조심스럽게 말씀을 하셨는데 아버지는 자기 엄마한테 뭐라했다고 왕반지 낀 주먹으로 우리엄마 입을 힘껏 쳤습니다. 그래서 엄마 입이 찢어지고 이빨이 나갔습니다. 피가 철철흘려서 윗도리에 흠뻑적실 정도로 할머니에게...
"어머니 제가 이렇게 맞았는데 억울합니다" 라고 말하자 할머니 왈
"애비야 된장이랑 가져와라 치료좀 하게" 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픈몸으로 동네 아줌마에게 전화를 해서 읍내 병원으로 데려다 주었고 아버지랑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집에서 티비를 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1997년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엄마는 우리 6남매 공부가르칠려고 시골에서 더이상 공부를 할 수 없으니까 광주광역시로 올라가서 조그마한 분식집을 차려 근근히 혼자 고생하시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집 강아지는(아버지) 시골에 모내기 한다고 돈이 필요하다고 엄마에게 돈을 요구하였고, 또 시골에서 쌀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역시 돈을 요구하였습니다.
우리아버지는 이날 평생 우리6남매에게 외식 한번해준적이 없고 용돈을 주지않으셨고 소소한거 챙겨주지도 않았습니다.
엄마가 우리6남매 용돈 주라고 아버지에게 맡겼지만 아버지는 우리에게 전해주지않았고
읍내 양복점에 화투치는데에 쓰였습니다.
-이때까지 우리아버지가 저질렀던 만행이 리스트로 뽑으면 엄청나지만 그중에 기억나는데로 몇글자 적어 봅니다-
그리고 제가 고1 2001년도에 광주에 전학을 가자 아버지는 시골생활이 지겨웠는지 좁아터진 광주집에 꾸역꾸역 살고 또 시골에서 농사지으면서 보험일을 하셨는데 어머니가 우리 공부갈치려고 모아둔 보험금을 빼돌려 몰래 쓰기도 했습니다. 증거가 있는데 아버지는 아직도 모른다고 잡아땝니다.
6번째 아들을 낳은지 얼마되지않아 산후조리 하느라고 몸이 성치 않았을 텐데 아버지는 어머니가 분식집에서 고생스럽게 번 돈..아껴서 모아 둔 큰 돈도 두들겨 패면서 뺐다시피 해서 화투치는데에 다 날리셨고
우리엄마 고향이 제주도 인데 엄마 친청네는 거의 돌아가셨고 배다른 이모랑 외삼촌이 계십니다.
그래서 외할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남기신 마지막 희망인 재산마저 갈취하려고 한달을 소리지르면서 때리고 쌍욕을 하면서 공갈협박을 해왔습니다.
1970년대에 시집와서 2007년까지 아버지에게 모진 욕설과 폭행을 당하시며 또 작은아빠가 4명인데 작은아빠, 동서들 마저도 우리엄마를 무시하고 천대합니다. 우리엄마가 못배우고 가진게 없다는 이유만으로////
지금 우리엄마얼굴을 보면 아버지에게 맞은 흔적들이 많습니다. 물론 아버지때문에 주름살이 늘어서 50대 중반인데 얼굴은 60~70먹은 할머니처럼 보입니다. 아버지는 맘편하게 자기 이익만 챙기느라 50대 중반인데 40대 중반처럼보이구요...
그리고 2007년도에 엄마는 큰 고심 끝에 이혼을 결심했습니다. 법정에 증거를 낼려고
이때까지 광주 올라와서 10년가까이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아서 경찰에 신고했었던 조서를
뽑으력고 경찰서에 갔는데 조서가 다 사라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없드라고요...막내 작은아빠가 경찰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엄마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먼저 작은아빠와 손을 쓴것이 틀립없습니다.
엄마는 또한번 허탈감을 느꼇구요.
거금을들여 변호사를 쓰고 법정에서 이혼을 했습니다
2007년11월13일
더 웃긴건 이혼할 떄 법정에서 판사가 엄마에게 물어보았답니다.
홍미자씨께서는 결혼생활을 하면서 한번이라도 좋은일이 있었나요??
물어보시더니
한번도 없었다면서 30년동안 서러웠었던 과거를 떠올리며 서럽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더니 옆에 듣고있는 아버지가 엄마에게 ...뭐가 좋은일이 없어??
판사님 여자들은 시집을 가면 원래 좋은일이 없는 법이요 라고 주둥이를 놀리더니 판사가 아버지에게 김성배씨는 조선시대에서 오셨나보군요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또 웃긴건 이혼한지가 3년이 지나가는데 자기에게는 재산이 한푼도 없다는 이유로 위자료와 양육비를 엄마에게 지불하지 않았고
이혼 후 아버지가 이때까지 말아먹었던 우리집을 10년동안 셋빵살이 하면서 우리어머니가 이젠 셋빵살이가 지겨워 쓰러져가는 우리집안을 일으켜 세우느라고 고생하시며 일구
어서 2층집을 사셨는데 아버지가 우리호적에 세대주로 등록을 하면서 같이 살고 있습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변한건 없습니다. 술처먹고 엄마에게 언성을 높이며 욕설과 폭행은 여전합니다. 바보같은 우리엄마 마음이 약해서 경찰에 한번도 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신고하면 집안이 시끄러워져 작은아빠들에게 욕을 먹을까봐 무서워서 신고를 하지 않습니다.
제가 어른들의 일에 상관을 잘 안할려고 노력을 하는데 같이 살다보니 자꾸만 나도 모르게 신경이 쓰입니다.
엄마가 스트레스 받는 모습을 보면 저도 미칠노릇이구요...
이번에 우리 아버지는 막내 작은아빠가 경찰진급했다고 목에 힘주고 다니십니다.
그리고 우리아버지는 케이티에 경비원으로 일하시구요 이때까지 살면서 가장이라는 사람이 집안에 버팀목이 되어야 하는데 생활비도 거의 보태지도 않았고 말아먹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엄마는 30년동안 이날평생 명절 제사 다 챙겨줬습니다. 엄마가 큰며느리니까 제사는 거의 엄마몫이었구요 식당일 하면서 제사지내는 거 쉽지 않죠... 친척들은 엄마에게 다 떠맡기시니까요
친척들이 시골에서 제사 지내기 싫으니까 아버지랑 포함해서 우리엄마에게 제사를 형수님집으로 옮기시는게 어떨지 라고 염병지랄을 떨었습니다.
어이업게//이혼한거 뻔히 알면서 외할아버지 제사도 이날평생 못해드렸는데 남 제사를 왜 우리엄마에게 맡기는지//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한가지 덧붙여서 우리큰언니가 마음이 약해서 친구에게 보증을 세워서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갔습니다. 그래서 깡패들이 전화하고 난리치고 이와중에 아버지란사람은 나몰라라 큰언니에게 언행높이면서 쌍욕하고 견디다 못해 큰언니는 몇달동안ㄴ가출을 했었지만 그 사이에 아버지는 큰언니를 대상으로 종신보험을 들여놓았습니다
또 2005년 제가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사장이 월급70만원을 몇달째 주지않아 아버지께서 받아주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이후 몇달째 소식이 없자 사장한테 전화를 해보니까 사장이 아버지에게 밀린월급 드린지가 옛날인데 몰랐냐며 그러시더라구요
어버지는 제 월급을 다~~먹은셈이죠 ㅋㅋㅋ어이가 없어서
우리엄마 불쌍해서 더이상 눈뜨고 보고 있을수는 없어서 이렇게라도 몇글자 적어보면서 하소연을 합니다. 글이 너무 길어서 읽다만 네티즌님들도 있을거에요 그래도 몇글자 읽어주신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합니다.
여기 사진이 있는데 얼마전에 6번째 동생 초등학교5학년 막내남동생이 아버지가 사준 자전거를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몽동이로 디지게 얻어맞는 사진도 있습니다.
사진 찍어 놓은거 많은데 부천에 살고있는 동생카메라에 있어서 이것밖에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