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건국대학교 수의과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가끔씩 판에 들어와서 이런 저런 글들을 그저 보기만 하다가, 제가 요즘 고민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 오늘 처음으로 글을 써 봅니다.
저는 중학교 1학년 때 한 동물보호 시민단체를 알게 되어 지금까지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사실 수의사로서의 삶을 선택한 이유도 이 단체를 알게 된 후, 제가 동물들에게 좀 더 많은 그리고 나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적인 자격을 갖추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1~2년 사이에 모 시민단체나 몇몇 시 위탁 유기동물 보호소에 대한 문제들이 제기되고 또 여러 사람들이 서로 상처를 주고받아 가며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윤리적이면서도 우리나라의 실정에 가장 잘 맞는, 그리고 시민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대안이 없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현재 운영중인 우리나라의 몇몇 유기동물 보호소의 운영방식이나 다른 특징들을 제가 아는 한에서 따져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래 내용은 ‘사실’만 썼고 제가 모르는 부분은 아예 쓰지 않았습니다.
A 시민단체 보호소(저희 단체입니다)
- 전액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안락사 제도가 없다.
-특별한 불가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입소 동물에게 불임수술을 한다.
-시민단체 보호소 중에서 시설은 상당히 좋은 편이지만, 시 위탁 보호소나 수의사회 보호소 등에 비해서는 조금 떨어진다.
-60마리 정원으로 지어졌지만 현재 150마리가 넘게 수용되어 있다.
-질병에 걸릴 경우 치료해 주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2명 이하의 유급 관리자가 있다.
-개체 수준에서 동물들의 상태는 매우 양호한 편으로, 털이 뭉치거나 질병이 방치되는 동물들이 없다.
-모든 입소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 이름을 통한 개체 파악을 한다.
B 시민단체 보호소
- 안락사 제도가 있다. (그런데 안락사에 명확한 규칙이 없어서, 보호기간이 지났어도 입양 가능성이 높거나 회원들에게 귀여움을 받는 경우 안락사 대상에서 제외되고, 보호기간이 다 지나지 않았어도 질병이 심하거나 입양 가능성이 떨어지면 안락사 당한다는 의문이 가끔 제기된다(그렇다는 단정이 아니며 실제 이런 의문이 몇몇 사람들에 의해 여러 번 제기되었습니다).)
- 시설은 좋은 편이다.
C시 수의사회 동물보호소
- 일반 사설 보호소보다 시설은 상당히 좋지만, 시설이 좋은 편에 속하는 시민단체 보호소에 비해 월등히 나은 것은 아니다.
- 안락사 제도가 있지만 법정 기간인 10일 이후에 안락사하는 것이 아니라, 질병 등으로 상태가 매우 심각한 동물들에 한해 안락사를 한다.
- 일련번호와 목걸이 색깔로 개체 파악을 한다.
- 시민단체 보호소에서는 정기적인 예방 접종을 매번 챙기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만 이곳에서 보호중인 동물들은 수의과대학 학생들이나 수의사들의 자원봉사로 접종이 이루어진다.
- 그러나 개체 수준에서 볼 때 동물들의 상태가 A 단체 보호소의 동물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하여, 미용이 전혀 되어 있지 않으며 털이 뭉쳐 피부가 괴사되는 경우도 생긴다.
얼마 전까지 저는 저희 단체 보호소만 다니다가 C시 수의사회 보호소를 가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특히 안락사 문제의 경우, 넘쳐나는 유기동물들을 무조건 끌어안기만 할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데리고 있는 동물들의 관리도 중요하기 때문에 개체수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여러 시민단체 회의에서 종종 나오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안락사 제도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입장입니다. 유기동물은 그야말로 넘쳐나지만 보호 공간과 돈과 사람은 턱없이, 아니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부족하니까요. 하지만 막상 저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얼굴도 알고 이름도 알고 성격도 아는 저희 보호소 녀석들을 안락사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런데 저희 단체의 경우에도 몇몇 녀석들을 안락사로 떠나보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치료하다가, 정말 상태가 너무 심각해서 살아있는 것 자체가 더 큰 고통일 녀석들을 눈물로 보냈기에 그것에 대한 비난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C시 보호소와 비교했을 때, 저희 보호소에서는 입소 동물들에게 모두 이름을 지어 주기 때문에 앞으로도 안락사 제도는 절대 생기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각각 일련번호를 매겨 놓고 그것으로만 동물을 파악한다면 모르겠지만, 이름을 지어 주고 흰둥아, 라고 부르는 순간 그 녀석을 단지 보호소에 오래 있었다는 이유로, 또는 못생기거나 늙었거나 좀 아프다는 이유만으로 죽일 수는 없게 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길거리를 떠돌다 비참하게 죽어가는 수많은 생명들을 생각하면.... 그리고 정원을 훨씬 초과한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스트레스를 받고, 늘 정에 목말라 서로 시샘하고, 좀더 많이 예쁨받는다 싶은 녀석들을 물어 버리기까지 하는 저희 보호소 녀석들을 보면 무조건 끌어안기만 한다고 그게 옳은 일은 분명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물보호 시민단체에는 국가 보조금이 땡전 한 푼 주어지지 않고, 시 위탁 보호소는(다 그런 건 절대 아니지만) 소유권이 시로 넘어가는 법정 기간인 열흘이 지나면 안락사를 하는 곳도 있고, 또 여러 사설 보호소의 동물들은 당장 먹을 사료도 부족해서 보호소에 들어와서까지 배고픔에 시달리고....
뭐가 답인지, 아니 답이 있긴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다른 분들 - 특히 직접적으로 동물보호활동을 하시는 분들이 아닌, ‘일반인’에 속하는 분들 - 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습니다.